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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든!”
바이든의 비참한 토론 성과로 인해 멜런이 기뻐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트럼프를 백악관에 다시 밀어넣기 위해 멜런보다 돈을 많이 쓴 사람은 없다. 트럼프 측에 두 번째로 많이 기부한 사람은 트럼프 내각에서 근무했던 WWE 업계 거물 린다 맥마흔이다. 그의 기부금은 1110만 달러로, 멜런이 기부한 금액의 약 1/7에 해당한다. 트럼프의 주요 슈퍼팩(한도 없이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정치조직)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 Inc’에 투입된 자금 중 43%는 이 81세 상속인에게서 나왔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멜런은 수억 달러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기부할 수 있는 블룸버그나 아델슨 같은 부자가 아닌데도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 부자들은 현금흐름이 풍부한 수십억 달러 가치 기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포브스의 추산에 따르면 멜런의 상속 재산과 철도 회사 매각 수익은 약 10억 달러 가치다. 멜런은 자신의 재산이 더 적다고 주장한다. “억만장자 아닙니다!” 멜런은 퉁명스럽게 쓴 또 다른 이메일에서 이렇게 답했다. “억만장자였던 적도 없고, 그렇게 될 일도 없습니다.” 어쨌든 이는 멜런이 그동안 기부한 금액을 생각하면 놀랍도록 적은 액수다. 멜런은 연방 정치 단체에 총 2억37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주 의원 후보와 국경 담당자에게 적어도 6000만 달러를 더 기부했다.
은행업계 거물 앤드루 멜런의 손자인 티머시 멜런은 스스로도 놀라운 액수의 돈을 벌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문의 재산으로 귀족 생활을 즐겼으며, 승마에 오랜 시간을 들여 전미 경마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에 비해 티머시 멜런은 1980년대 초 멜런뱅크에서 돈을 빌려 상황이 좋지 않았던 철도 3개를 구매한 뒤 40년 동안 이를 개발해 6억 달러 규모의 제국을 일궜다. 2015년에 쓴 회고록에서 멜런은 “나는 항상 재정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내가 가지고 시작한 것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항상 머리를 써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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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멜런은 질문에 별로 대답을 하지 않지만 36년 전 포브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멜런은 “당신이 뭔가를 믿는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상속자의 상속자인 티머시 멜런은 가족에게 돈이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 부는 증조할아버지인 아일랜드 이민자 토머스 멜런에서 시작됐다. 토머스는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빠른 시간 내에 피츠버그 은행제국을 설립했다. 토머스는 결국 티머시의 할아버지인 앤드루를 포함한 자신의 자녀들을 사업에 끌어들였다. 앤드루는 셰브론의 전신인 걸프오일 등의 회사에 투자하다가 워런 하딩,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정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1930년대에 약 2억270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5억 달러)를 남겼으며, 이 유산은 티머시를 포함한 그의 세 손자에게 상속됐다. 또 앤드루 멜런은 그의 아들 폴 멜런이 사치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충분한 재산을 남겼다. 폴 멜런은 말에 집착하며 『은수저에 비친 모습』이라는 자서전을 썼다. 폴 멜런이 티머시와 그의 누나에게 얼마를 남겼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멀리 고든의 책에 따르면 두 번째 아내에게 1억1000만 달러를 남기고 2억 달러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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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가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멜런은 인구밀도를 연구하면서 다이어그램을 만들고 싶어서 코딩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그 기술은 졸업 후에 유용하게 쓰였다. 그는 뉴헤이븐 외곽에 있는 부자 동네인 코네티컷주 길포드에서 자신의 첫 번째 회사인 1인 컴퓨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멜런은 나중에 농담처럼 첫 직책은 회장, 프로그래머, 설거지 담당이었다고 말했다. 멜런은 그 시기에 찾아온 자신의 첫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에 뿌리를 둔 가족 성향에서 벗어나 린든 존슨에게 투표했다.
‘위대한 사회’(존슨 대통령의 정치 슬로건)의 시기였다. 1969년 멜런은 세이첨 펀드라는 비영리단체를 공동 설립하여 여기에 동참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사회문제에 대한 잠재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기금은 남부 흑인들을 위한 경제발전을 지원하는 재단,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단체, 시민참여 증진을 위해 랄프 네이더가 후원하는 조직에 기부됐다. 세인트루이스 오리엔티어링(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목표 지점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스포츠) 클럽처럼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활동에도 기금이 투입됐다. 이 단체는 운영 첫 7년 동안 기부금 410만 달러(현재 가치로 2200만 달러)를 받았으며, 보조금 270만 달러(현재 가치로 1400만 달러)를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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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때는 큰 정부에 믿음을 갖기 쉽다. 멜런은 1970년대에 업종을 바꿔 컴퓨터 산업에서 규제가 엄격한 철도 산업으로 전환했다. 그는 여성유권자연합 행사에서 만난 제4세대 철도 종사자인 데이비드 핑크와 협력하여 철도 침목 제조업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철로를 소유하기로 결정했고, 멜런이 살았던 코네티컷주의 마을 이름을 딴 모회사 길포드 트랜스포테이션 인더스트리즈를 만들었다. 길포드의 첫 구매 제안에서는 약간의 오만이 느껴진다. 멜런과 핑크는 메사추세츠주의 고전 중인 10마일 구간에 대해 현재 소유주가 8만5000달러를 건네준다면 소유권을 맡겠다고 제안했다. 멜런은 “그들이 정중하게 문을 열어주며 우리를 내보냈다”고 돌이켰다.
멜런은 돈을 써야 철도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멜런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포브스는 그의 순자산을 1억 달러로 추정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멜런의 회사는 두 주요 철도 회사인 메인센트럴과 보스턴 앤드 메인을 인수하기 위해 4250만 달러를 지출했다. 1984년 1월에는 파산 직전인 델라웨어 앤드 허드슨 철도를 50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 금액의 약 절반은 1988년에 멜런이 포브스에 말한 대로 가족이 소유한 멜런뱅크에서 대출받은 것이다. 멜런은 나머지 금액이 상속금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길포드를 통해 멜런과 그의 파트너는 갑자기 메인에서 버펄로까지 이어지는 약 6400㎞ 길이의 철도를 통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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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앤드 메인 철도는 거의 즉시 손익분기점을 달성했으며, 1984년에는 순이익 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델라웨어 앤드 허드슨은 그만큼 잘 운영되지 않았고, 두 번째 파업이 끝난 1988년에 파산을 선언했다. 멜런의 회사는 1998년에 파산한 패넘 항공사 브랜드를 인수하여 패넘 시스템즈로 브랜드를 개편했다. 멜런과 핑크는 잠시 항공사를 운영해봤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고 10년도 되지 않아 운영을 중단했다. 멜런은 자신의 책에서 그 원인을 정부에 위조된 재무 문서를 제출한 자문 변호사, 9·11 테러사건 이후의 경제 상황과 노동조합으로 돌렸다.
이때 멜런의 정치적 입장은 바뀌어 있었다. 그는 1980년 이후 어느 시점에선가 ‘위대한 사회’를 촉진하는 세이첨 펀드를 폐쇄하고 마지막 수익금을 헤리티지 재단 등 보수적인 단체들에 나눠줬다. 갈수록 보수화되는 멜런의 이념은 직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던 스티븐 뎀보스키는 “멜런과 핑크는 거의 모든 사람과 대립을 일삼았다”며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고,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다. 내 정치적 양심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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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멜런은 최근 자선 활동 기부 중 하나를 수행했는데,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특이한 관심사에 대한 것이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비행기를 찾는 데 1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이다. 1만 시간 이상의 비행 경험이 있는 조종사인 멜런은 자신이 소유한 철도 중 두 곳이 항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에어하트와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멜런은 자서전에서 “아멜리아 에어하트와 내 회사의 연결 고리, 항공에 대한 흥미와 내 세계 일주 여행 때문에, 그리고 이 이상한 수수께끼가 (당시에 알고 있던 것이 적었지만) 해결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에, 나는 내 지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썼다. 이 자선 활동조차도 결국은 원한으로 끝났다. 멜런은 2013년에 이 비영리단체가 에어하트의 비행기를 이미 찾은 후에도 자신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이 단체를 고소했다. 판사는 이 단체가 비행기를 발견했다는 것은 단지 멜런의 의견일 뿐이라며 이 사건을 기각했다.
멜런은 이 무렵 정치에 더욱 헌신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멜런의 정치 참여는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2018년 초 멜런은 다양한 후보자와 사업에 4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 이후에 기부한 액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2018년 5월, 중간선거 6개월을 앞두고 멜런은 공화당 하원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슈퍼팩에 1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단 한 번의 기부로 멜런은 미국 최대 규모의 정치 후원자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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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멜런은 더 많은 현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철도 사업에서 거의 반세기를 보낸 멜런은 2022년 자신의 회사를 상장기업인 CSX에 6억 달러에 매각했다. 소유 지분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멜런이 정확히 얼마를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적지 않은 액수인 것은 분명하다. 수십 년 전의 법적 문서에는 멜런과 핑크만 주주로 표기되어 있다. 멜런이 돈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도 대부분의 자본을 투자했을 테니 회사 지분의 대부분을 소유했을 것이며, 따라서 멜런은 그 매각으로 큰돈을 벌었을 것이다.
이는 멜런이 정치 기부 규모를 거리낌 없이 키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멜런은 작년에 트럼프의 주요 슈퍼팩에 수표 500만 달러를 제공했으며, 이 돈은 예비선거 기간 동안 계속해서 유입됐다. 한편 멜런은 또 다른 미국 명망가의 후계자인 케네디 주니어를 지원하기 위해 슈퍼팩에 2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케네디 가문은 1960년대 케이프 코드에서 멜런가와 함께 여름을 보내던 옛 친구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여전히 트럼프에게 머물렀다. 트럼프의 슈퍼팩은 지금까지 멜런으로부터 7650만 달러를 받았다. 그중 5000만 달러는 뉴욕의 배심원단이 트럼프를 34개 형사죄로 유죄 판결한 다음 날에 받은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반항을 즐겨온 멜런에게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이는 그의 회고록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멜런은 “우리가 성공을 이루기 위해 취한 방향에 관해서는 어떠한 사과도 없을 것”이라고 썼다.
[박스기사] 멜런의 수백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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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ebe liu, Zach Everson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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