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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TRAVEL & CULTURE | 이탈리아/ 포르토 체르보(PORTO CERVO) 

특별한 부호들을 위한 지중해의 ‘소박한’ 휴양지 

지중해 사르데냐섬의 북동쪽에 있는 코스타 스메랄다는 고급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코스타 스메랄다는 ‘에메랄드 해안’이란 뜻인데 절경을 이루는 해안선 사이로 보이는 맑디맑은 바다는 그야말로 푸른 에메랄드 빛을 머금고 있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한 부호들을 위한 휴양지가 바로 포르토 체르보이다

▎연륜 있는 지중해 마을의 분위기가 그대로 재현된 포르토 체르보. / 사진:정태남
태양이 가득한 지중해에 떠 있는 요트들을 보면 1960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가 떠오른다. 르네 클레망이 감독하고 알랭 들롱이 주연한 이 영화는 그야말로 태양이 가득한 이탈리아의 해안이 무대이다. 주인공은 하층민 출신인 톰. 도벽이 있는 데다가 문서위조에 능통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즐기는 부호 필립의 하수인이다. 필립의 재산에 눈독 들인 톰은 그의 요트에서 그를 살해하고는 시체를 감싸서 바다에 몰래 내던진다. 그러고는 그의 사인을 위조하여 그의 막대한 재산뿐 아니라 애인까지도 가로채는 완벽한 범죄를 막 저지르고 나서, 태양이 가득한 해변에 누워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평생 달콤한 인생을 즐기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그의 꿈은 순식간에 깨어지고 만다. 필립의 시체가 요트 스크루에 걸려 육지로 따라 올라오는 바람에 모든 것이 탄로 나고 만 것이다.

이 영화 대사 중에 톰이 동경하는 고급 휴양지로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Taormina)가 잠깐 언급된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고도(古都) 타오르미나는 19세기 후반부터 고급 휴양지로 각광받아 유럽의 부유한 저명인사들이 몰리면서 유명해졌다. 그런데 만약 이 영화가 나중에 제작되었더라면 톰이 동경한 곳은 타오르미나보다는 사르데냐(Sardegna)의 포르토 체르보가 아니었을까?

사르데냐섬 에메랄드 해안의 백미


이탈리아에는 아주 큰 섬 두 개가 있다. 이탈리아반도 남서쪽 끝에 있는 시칠리아섬은 제주도의 14배 정도 크기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두 번째로 큰 섬은 이탈리아반도 서쪽에 있는 사르데냐섬인데 제주도의 5배 정도 된다. 로마에서 포르토 체르보 가까이에 있는 도시 올비아(Olbia) 항구까지는 로마의 외항 치비타베키아에서 페리 편으로는 대략 5시간 정도 걸린다. 또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올비아의 코스타 스메랄다 공항(Olbia Costa Smeralda Airport)까지는 비행기 편으로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사르데냐섬이라고 하면 장수마을, 양치기, 고기잡이 외에는 특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섬은 아주 까마득한 선사시대부터 시작하여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페니키아, 로마제국, 반달족, 비잔틴 제국, 제노바 해상공화국, 스페인 등 지중해의 여러 지배자가 발을 디뎠던 곳인 만큼 곳곳에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겹겹이 퇴적되어 있다. 따라서 사르데냐는 알면 알수록 그 매력과 마력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포르토 체르보의 상업지역. / 사진:정태남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유럽에서 부동산이 비싸기로 유명한 곳 중 하나가 사르데냐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르데냐는 부유한 섬일까? 그렇지 않다. 딱히 내세울 만한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섬을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었다. 마치 천지창조 이후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그대로 간직해온 듯, 때 묻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강력하게 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르데냐에서도 섬의 북동쪽 리아스식 해안 코스타 스메랄다(Costa Smeralda)는 이탈리아에서는 고급스런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에메랄드 해안’이란 뜻인데 절경을 이루는 해안선 사이로 보이는 맑디맑은 바다는 그야말로 푸른 에메랄드 빛을 머금고 있다. 이곳 해변에 서면 그대로 바다에 한번 안기고 싶다는 원초적인 충동이 느껴진다.


▎지중해 소도시의 분위기를 살린 포르토 체르보의 거리. / 사진:정태남
코스타 스메랄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고급 휴양지가 바로 포르토 체르보(Porto Cervo)이다. 이탈리아어로 ‘사슴 항구’라는 뜻인데 위에서 보면 지형이 사슴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광장, 아케이드, 높지 않은 집 등으로 이루어진 지중해 연안의 작은 항구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특이하게도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나 모로코풍의 집들도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지중해의 스위스’라고 할 정도로 깨끗하고 차분하며 오랜 연륜이 느껴진다. 이곳의 상주 인구는 400여 명 정도이지만 여름철이 되면 인구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호텔, 레스토랑 등은 항상 붐빈다. 일반 여행 사이트에서는 포르토 체르보가 유명 여행지 정도로 소개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특별한 부호들을 위한 여름 휴양지이다. 즉, 바로 이곳이 유럽에서 부동산이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이다.

포르토 체르보는 올비아 코스타 스메랄다 공항에서 약 30㎞ 정도 떨어져 있어서 전세기나 개인 전용기로도 접근하기 편리하다. 이곳은 고급 요트 항구, 고급 호텔과 리조트, 고급 브랜드 쇼핑센터 등 최고급 인프라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이곳에는 다양한 고급 레스토랑과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이 있어 미식가들에게도 큰 인기를 끈다. 신선한 현지 재료를 사용한 최고급 요리, 전통 이탈리아 요리부터 현대적인 퓨전 요리까지 다양한 메뉴를 제공하여 방문객들의 입맛을 충족해준다.


▎호화 요트들이 정박한 포르토 체르보 항구. / 사진:정태남
포르토 체르보의 중심거리에는 최고급 명품 매장이 즐비하고 요트 항구에는 세계에서 손꼽는 초호화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는 롤렉스 스완컵(Rolex Swan Cup) 등 국제적인 요트 경주 대회, 패션쇼, 음악 페스티벌, 예술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도 열린다. 이러한 행사는 포르토 체르보의 활기찬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 보안 수준이 높아 이곳을 찾는 부호들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다.

포르토 체르보의 탄생


▎고급 휴양지가 몰려 있는 코스타 스메랄다. / 사진:정태남
그런데 이 지역은 원래 허름한 민가 몇 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지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인물이 나타났으니 거부 아가 칸 4세(Aga Khan IV, 1936~)였다. 그는 시아-이슬람 이스마일파의 분파 니자리 교단의 49대 이맘(Imam, 교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지역이 지닌 잠재력을 간파했다. 그가 이끄는 큰 컨소시엄은 이 지역의 땅을 매입하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 대신에 스위스계 프랑스인 무대 디자이너 쟈크 쿠에유와 이탈리아 건축가 루이지 비엣티, 미켈레 비치에게 설계를 맡겼다. 이리하여 이곳은 주변 자연환경과도 어우러지는 지중해풍의 ‘소박한’ 리조트로 개발되었다. 아가 칸 4세는 초창기에 이곳의 입주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여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엘리트’ 부호들만 받아들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리하여 포르토 체르보는 특별한 부호들을 위한 격조 높고 연륜이 있어 보이는 조용한 유토피아적인 리조트로 서서히 알려졌고,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해보는 곳이 되었다.

이처럼 포르토 체르보의 역사는 지중해의 다른 마을이나 도시들과 달리 이제 겨우 60년이 넘었다. 즉, 영화 [태양은 가득히]가 제작될 때 포르토 체르보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 만약 이 영화가 10여 년쯤 후에 제작 되었더라면 영화 대사 중 톰이 동경하는 고급 휴양지로 틀림없이 포르토 체르보가 언급되었을 것이다.

※ 정태남 - 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작가 정태남은 서울대 졸업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유학, 로마대학교에서 건축부문 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건축분야 외에도 미술, 음악, 역사,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로마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 여러 권이 있다.(culturebox@naver.com)

202408호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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