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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코치가 만난 글로벌 리더스(04) 권율 구글 제품관리 부사장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용기 

학대로 인한 강박증과 불안감 등으로 학창 시절을 힘들게 보낸 권율(49) 구글 제품관리 부사장은 진정한 성공은 두려움도 포용할 줄 아는 용기를 갖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아시아계 미국인과 태평양 섬 주민(AAPI)의 옹호자이자 AI·제품 관리 분야의 최고 비즈니스 리더로 변신한 이야기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력하면 극복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권율 부사장은… 스탠포드대 계산언어학과 졸업, 예일 로스쿨 법학박사, 제2순회 항소법원 사법서기, 미 상원의원 조셉리버만 입법 보좌관, 미 연방통신위원회 소비자 및 정부사무국 부국장, 구글 사업전략그룹·맥킨지앤컴퍼니 경영컨설턴트, 페이스북 제품관리 디렉터, 구글 제품관리 부사장(현)
커리어만 놓고 보면 권율 부사장은 불가능한 일을 쉽게 해내는 듯하다. 스탠퍼드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메타, FBI, 연방통신위원회(FCC), 맥킨지 등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등 많은 이가 선망하는 직장에서 일했다. 2006년에는 구글을 그만두고 CBS의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서바이버: 쿡아일랜드>에 참가해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의 단독 생존자로 우승하는 깜짝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아시아계 미국인은 고위직의 약 6%만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는 제품관리 부사장으로 구글에 복귀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보기 드문 고위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권 부사장의 성공 뒤에는 불안, 걱정, 실패를 겪으며 성장한 남자가 있다. 그는 학창 시절에 수년간 괴롭힘을 당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격했으며, 요거트 사업에 실패해 자신과 가족이 엄청난 재정적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실패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한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기어코 정상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그가 직접 밝히는 성공 포인트는 실패와 좌절에 대한 포용이다.

두려움 속에 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다


▎TV쇼 [서바이버: 쿡아일랜드] 출연장면.
현재의 그는 강연을 자주 다니지만 10대 때는 매우 달랐다. 똑똑하고 부지런했지만 수줍음과 불안감이 많았던 권 부사장은 뉴욕 플러싱에서 자라면서 ‘다르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에 숱한 괴롭힘을 당했다. 많은 미국인이 한국 문화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오늘날과 달리, 1970년대 한국계 미국인들의 삶은 힘겨웠다. 인종차별과 괴롭힘 때문에 그는 강박증과 수면장애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었다. 예를 들어 자신과 같은 유색인종 남학생을 학교 화장실 구석에 몰아넣고 오줌을 싸는 등 괴롭혔던 고학년 아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권 부사장은 다음 타깃이 될까 두려워 화장실에 가지 않았고, 그 결과 방광증후군과 같은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는 등 사회적 불안감이 컸어요. 말 그대로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죠.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권 부사장은 답답했다. 존경하는 부모님에게 힘든 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어도 이민자로 살면서 힘들게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면 차마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부모님은 한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살면서 더욱더 자녀들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어쩌면 성공에 대한 극도의 중압감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종종 성취할 수 없는 기준을 강요받아요. 특히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컸습니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용서나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죠.”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권 부사장은 어느 날 형의 친구가 갑작스럽게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후회할 일을 하기 전에 빠르게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때 깨달았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충격을 받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어요. 나도 왕따를 당하면서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 생각이 들자 두려웠고 무언가 조치를 취하고 싶었습니다.”

두려움 속에 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회복탄력성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작게라도 찾아라.’ 손들고 의견 나누기 같은 변화들은 작은 도전이긴 하지만 쌓이면 더 큰 도전을 자주 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새로운 것에 같이 도전할 수 있는 모임들을 찾아라.’ 권 부사장은 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신청했다. 모두가 무대를 두려워하지만 새로운 공연을 연습하면서 무대공포증을 서서히 이겨낼 수 있었다. 셋째, ‘새로운 환경을 계속 찾아가고 배울 마음을 가져라.’ 같은 공간에서 도전과 성장을 찾으려 하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는 호기심을 갖고 있던 과학, 기술, AI, 공공정책, 법률,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으며 새로운 커리어에 계속 도전했다. 다시 말해 그가 직장에서 이룬 성장은 어떻게 보면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려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 도전하는 모습이 아무리 좋아도 권 부사장이 설정한 도전의 수위는 보통 이들과는 다른 레벨이었다. 그가 TV쇼 <서바이버: 쿡아일랜드>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 바로 그렇다. 편안한 구글을 떠난 것도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이 도전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이유는, 그가 사람들이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강박증이 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평생 볼 수 있는 리얼리티 TV쇼에 출연하는 도전을 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려웠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했던 모든 도전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공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동기가 됐습니다.”

또 그는 아시안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는 큰 동기가 있었다. 당시 미국 미디어가 주로 그리는 아시안들은 약하고 수줍음이 많으며 사회성이 부족한 괴짜였다. 때로는 ‘모범적이고 의견 없는 소수인’으로 소개했다. 물론 아시안이 아예 TV에서 조명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권 부사장은 자신의 방송 출연으로 아시아인과 코리안이 얼마나 멋진 문화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방송 전에 근육운동을 꾸준히 했고, 방송 출연 후 TV 제작자들도 처음 설정한 ‘수줍음 많은 똑똑한 동양인 캐릭터’라는 틀을 깰 수 있는 기회를 모색했다. 그는 노력 끝에 서바이버 쇼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남자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협력적이며 카리스마 있는 사람인지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다.

2007년 피플 매거진은 권 부사장을 ‘살아 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 ‘가장 만나고 싶은 미혼 남성’으로 선정하면서 아시안에 대한 미디어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버렸다. 또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바이버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여러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우승 이후 권 부사장은 자신의 ‘명성’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 이용하고 싶었다. 그는 대나무천장(Bamboo Ceiling, 아시아계 미국인의 고위직 상승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엄연한 현실인 직장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한인 커뮤니티 발전을 위해 미주한인위원회(Council of Korean Americans)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그리고 골수 기증자를 구하지 못해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는 그는 개인투자자로서 더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골수 기증자로 등록하도록 권장하는 비영리단체를 지원했다. 권 부사장은 사람들의 응원과 높은 인지도가 더 좋은 일을 퍼트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성공의 절정에 있었던 권 부사장은 30대 후반에 예상치 못했던 큰 실패를 맛봤고 ‘성공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 서바이버 출연 후 건강관리에 진심이었던 그는 당시 요거트 디저트 프랜차이즈인 핑크베리와 레드망고에 푹 빠졌다. 그는 2007년에 레드망고 매장 5개를 베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오픈했다. 하지만 3년 만에 모든 것이 다 무너져버렸다. 론칭 이후 경쟁이 치열해졌고,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에 성공을 즐기려 했던 권 부사장의 계획은 순식간에 재정적 어려움과 스트레스로 바뀌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한때 주변 세블록 안에 경쟁업체가 세 곳이나 있었어요. 그렇지만 모든 공급을 감당할 만큼 수요가 충분하지 않았어요. 모든 제 매장은 자금을 소진해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투자자였던 제 친구와 가족들이 손해를 입게 돼 마음이 무거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보증 서류에 서명했는데 그것도 끔찍한 실수가 됐죠. 거의 2년간 매일 눈뜨면 ‘오늘이 회사 문 닫고 파산 신청을 하는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실패가 더 무거웠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예전보다 훨씬 많았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가족에게 해가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지만 장기적 안전망 없이 모든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 도전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그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 같았어요. 정말 암울한 시기였죠. 완전한 실패자처럼 느껴졌죠.”

그는 당시 어두운 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극복해내면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IT업계로 돌아온 권 부사장이 사업 실패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리더로서 자신의 취약점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다. 우리는 리더라면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자주 갖곤 하는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자신이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최고의 기업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일이 처음에는 마법처럼 즐거웠어요. 말 그대로 사람들이 눈앞에서 우리가 만든 제품을 소비하니까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모이는 것을 보니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제가 법학 학위, 자본, 약간의 마케팅 스킬이 있었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어요. 그래서 중소기업가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서 사업을 꾸리는가를 배웠죠. 저는 여전히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고, 내가 내린 결론은 기술이었죠. 그래서 다시 기술업계로 돌아왔어요.”

권 부사장은 다시 일어나 메타, 구글로 성공적으로 복귀해 인공지능(AI), 공공정책, 법률 분야의 전문성을 결합했다. 또 여러 비영리단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아시아계 미국인 문제에 대한 대변인으로 관련 기관에 자주 호출됐다. 그는 자신의 스토리를 공유하며 인생에서 성공의 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방법을 알리고 있다.

“인생은 책의 챕터와 같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는데, 저도 제 인생을 다양한 챕터로 채우고 싶어요. 서바이버쇼에 출연했을 때 섬에서 굶주리며 미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지금 내가 가진 삶이 얼마나 행운’인지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집에 돌아와서는 이걸 붙잡고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깨닫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권 부사장이 마음에 새긴 감사와 겸손의 원천이 그를 좋은 리더로 만들 수 있었다. 자신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는 자신의 실패와 두려움을 솔직히 공유함으로써 다른 이들도 어려운 과거나 현재에 더 용기 있게 대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 지금 어디에서 시작하든, 지금 어디에 있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결과로 자신이 얼마나 멋진 변화와 성장이 가능한지 알아낸다면 정말 놀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패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권 부사장은 그 많은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많은 경험과 도전이 쌓이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와 회복력이 생깁니다. 자신의 취약점에 대한 커튼을 열고,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꽃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해보세요.” 그는 미래와 현재의 리더들이 불안이라는 자극을 느껴도 괜찮다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더 강하고 현명하게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기 때문이다.

※ 모니카H. 강 이노베이터 박스 대표는… 글로벌 500대 기업, 고등교육기관, 정부 및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실행 가능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업문화 변화, 리더십 개발, 팀빌딩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구글, NBC유니버설, 삼성전자, 펩시코, 트위터, 존스홉킨스대학교, 미국 정부 등 다양한 업계의 고객사와 일했다. 백악관, 아쇼카 체인지메이커(Ashoka Changemakers), 전국여성기업위원회(WBENC) 등으로부터 인정(Recognition)을 받은 창의 교육 전문가다.

202409호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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