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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4차 산업혁명…불안정해진 지식노동자 

2025년에도 AI의 비약적인 발전은 계속될 전망이고, 이에 힘입어 메타버스 세상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특히 물 흐르듯 대화가 자연스러워진 챗GPT 같은 LLM들이 메타버스를 통해 신체를 얻게 되면서 파생되는 여러 의문점이 있는데, 2025년에는 어떤 형태로든 이런 변화를 일반 소비자들도 체험하게 되리라 예상된다. 사람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고, 사유하는 AI가 등장할 것이다. 이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쟁점들은 뭐가 있을까?

▎카타르항공(Qatar Airways)에서 선보이는 Sama 2.0은 AI를 활용해 표정과 숨 쉬는 모습까지 고려해 제작된 디지털 휴먼으로, 고객 상담을 맡고 있다. Sama 3.0은 AI 기술을 적용해 검색, 예매, 발권까지 고객들을 대신해 진행할 계획이다. / 사진:Qatar Airways
그래픽 관련 기술이 AI와 함께 점점 발전하면서 마치 사진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정교한 아바타 생성이 가능해졌다. 손을 뻗어 만지면 살결과 체온이 느껴질 듯 현실감 높은 디지털 휴먼들은 특히 현실과 가상을 적절하게 섞어놓은 혼합현실(MR) 환경에서 누가 사람이고 누가 디지털 휴먼인지 자세히 보기 전에는 분간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이런 생동감 넘치는 대화 상대가 언제 어디서든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응원해준다면 어떨까? 일각에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많아지고 외로움이 역병처럼 번지면서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게 설사 AI라 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감정노동이 심해서 이직률이 높고 직원 채용이 힘든 콜센터 같은 서비스 직군에는 이런 디지털 휴먼들이 빠르게 진입할 전망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현실에서 언제 어디서든 나를 위해 기꺼이 감정노동을 해줄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에 오히려 AI 페르소나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현실 적응력을 떨어뜨려 결국 고립감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이미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친구나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한 사람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이미 고립되어 있는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고 응원해주는 AI 페르소나에 강하게 의존하게 될 수 있다. 그 의존에 대한 우려는 이미 미국에서 몇몇 사건에서 드러나 현실이 되었다.

기계에도 권리를?

세계적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다양한 출처에서 전달되는 정보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에 대한 경각심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신뢰감을 주는 외모와 목소리를 지닌 디지털 휴먼이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들을 전달할 때 과연 사람들은 그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을까? 또 사진처럼 생생한 디지털 휴먼과 자주 교류해 제법 두터운 친분을 쌓았는데 그 디지털 휴먼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나에게 응답을 하지 않게 되면(예: 페르소나 서비스나 멤버십 종료) 그 심리적인 박탈감을 감내할 수 있을까?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지털 휴먼 서비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격이 책정될 텐데 적절한 가격대는 얼마일까? 디지털 휴먼의 퀄리티(예: 탑재된 AI의 속도와 정확성, 디지털 휴먼의 화질)가 곧 사회적으로 부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부자들은 훨씬 더 생동감 있고 소통 능력이 좋아 다방면으로 도움이 되는 디지털 휴먼 비서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투박하고 실수가 잦은 디지털 휴먼 비서를 갖게 되고, 이런 현상이 사회에 만연하면서 메타버스 내에서 누군가 소유한 디지털 휴먼의 생김새만으로 상대방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처럼 생기고 말하고 행동하는 디지털 휴먼에도 인권(人權)이 적용될까?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인용되는 ‘Computers as Social Actors(CASA)’ 패러다임에 따르면, 기계가 감정이나 자아 같은 인간의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로봇이나 컴퓨터 같은 기계와의 교류 중에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하는 듯한 작은 신호들을 마주하게 되면(예: 기계가 사람처럼 생겼거나 사람의 언어를 사용) 무의식적으로 기계를 사람처럼 대하게 된다는 이론적 접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는 기계에는 인권이 적용될 수 있고, 비슷한 수준의 도덕적 잣대로 기계를 판단하게 되는 걸까? 거짓말하는 인간은 나쁜데, 기계가 거짓말을 하면 그 기계의 잘못인가,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의 잘못인가? 혹은 그 기계를 소유한 조직이나 회사의 잘못인가?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한 생성형 AI가 일상생활에 빠르게 스며들면서 과거에는 공상과학소설에나 등장할 법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더욱 현실적인 이슈들로 다가오고 있다.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 등 사회과학자들이 기계의 권리를 걱정하고 있다는 게 얼핏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의외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학습에서는 전이(한 상황에서 학습한 지식과 능력이 다른 상황에서 적용되는 것; transfer)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메타버스에서 사람과 흡사한 디지털 휴먼을 대하는 방식이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쉽게 전이할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에서 기계를 보호해줄 법적·윤리적·도덕적 장치의 필요성이 좀 더 명확해진다. 사람의 형상을 한 기계에 폭언과 폭력을 스스럼없이 가하는 사람들은 기계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제도들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런 기술들이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발전해서 쫓아가기 버거워진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단순히 느낌이 아니다. 실제 세계적인 성장률은 이제 기하급수를 넘어선 초기하급수적(super exponential growth)인 속도에 이르렀다.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지식 생산과 배포의 자동화와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생산직에 종사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보다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지식노동자들의 노동 안정성이 크게 불안정해질 전망이다. 최근 학회에서 한 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현재 내 직업이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타자를 쳐야 하는 일이라면 지식노동자이고, 빠른 시일 내에 AI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일각에서는 높은 기본소득(universal income)으로 중산층 정도의 소득을 보장해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학벌이 높은 편인 지식노동자에게는 수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인정 욕구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누락된 소득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실제로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폭력과 혼란을 통해 이끌어내려는 테러리스트들은 학벌이 좋은 중산층인 경우가 많다는 데이터가 기본소득 제안의 한계를 보여준다. 물론 이런 산업혁명이 반드시 일자리의 소멸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멸되는 일자리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새로운 분야들이 생성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내기 때문에 사실 AI가 대체하기 힘든 생산직이나 기술직을 고려해서 미래를 대비한다는 말은 우스갯소리쯤으로 여겨도 될 듯싶다. 그보다 메타버스, 그 안에서 맞닥뜨릴 디지털 휴먼, 메타버스 세계의 원동력이 될 AI 기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공부하고, 이해하고 있어야 이런 기술들이 일상적인 생활에 녹아들 때 필요할 새로운 분야들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503호 (202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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