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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의 ‘굿 투 그레이트’(02) 송지오 송지오인터내셔널 회장 - 변치 않는 꿈 

 

권오준 경영전문기자
작은 디자이너하우스에서 시작해 파리와 뉴욕에 잇따라 플래그십 매장을 내며 한국 패션의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송지오 회장을 만났다. 창업 32년의 패션기업 송지오인터내셔널은 세계 무대에서 통할까.

디자이너 브랜드 송지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다섯 가지다.

우선 매출이 크게 신장하고 있다. 두 개의 법인 송지오인터내셔널과 지오송지오의 합산 매출이 2022년 400억원, 2023년 600억원, 2024년 800억원을 기록했다. 경기침체 국면임을 감안하면 큰 폭의 성장세다. 둘째, 해외 매출이 전체의 10%(약 80억원)에 달한다. 아직은 미약한 숫자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은 분명하다. 프랑스 파리의 주요 백화점(프랭탕, 라사마리텐)과 홍콩 하비 니콜스 등에 매장이 있다. 작년 10월에는 파리에 첫 번째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했다. 온라인에서는 명품 플랫폼인 파페치, HBX에 입점했다.

셋째, 최근 여성복 시장에 진출했다. 고객층이 확장되고, 브랜드 인지도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창업자 송지오 회장의 아들인 송재우 대표가 경영 전반을 맡으면서 디자이너하우스에서 패션기업으로 진화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외연을 확장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시점에서 보면 그 ‘쉽지 않은’ 일을 송 대표가 해내고 있다. 다섯째, 창업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송지오 회장의 열정과 일하는 속도가 여전하다. 30여 년간 같은 일을 반복했다면 일관성이 있다는 뜻이다. 일관성을 오랜 기간 유지한다는 것은 “세계적 패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창업 당시의 초심을 여전히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 더 덧붙이면 이른바 ‘한류’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 영화, 가요 등은 모두 패션과도 연관되어 있다. K패션의 바람이 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한국산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등장해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꿈을 좇는 기업 중 하나가 바로 패션 브랜드 ‘송지오’다.

송지오 회장은 패션 브랜드 송지오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송지오에서 출시하는 모든 의류가 송 회장이 그린 그림에서 출발한다. 송지오를 알려면 그의 생각과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추구하는 패션의 세계와 기업가로서의 지향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그는 17세 때 패션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집안의 권유로 공대에 진학했지만 중도에 그만두고 1985년 유학길에 올랐다. 1987년 프랑스 패션학교 에스모드 파리를 졸업하고, 1989년 귀국해 에스모드 파리의 한국 분교인 에스모드 서울에서 교수로 4년간 재직한 뒤, ‘송지오’를 창업했다. 여성복으로 시작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남성복으로 전환했다. 2025년 다시 여성복 시장에 복귀하면서 남성복과 여성복, 양 날개로 날 수 있게 됐다.

회사 측의 도움을 받아 창업 32년 역사를 4개 기간으로 구분해봤다. 1기(1993~2007년)는 서울에서 창업하고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로서 각광받으며 유명 브랜드로 이름을 알린 시기다. 2기(2007~2018년)는 파리 패션위크에 진출하면서 해외 작품 활동에 몰두해 창작에 전념한 시기다. 3기(2018~2024년)는 송지오옴므의 백화점 입점을 시작으로 송지오 컬렉션, 송지오옴므, 지제로, 지오송지오 등의 라인을 갖추며 남성복 브랜드의 국내 외 사업을 확장한 성장기다. 4기(2025년~)는 송지오 여성 컬렉션을 론칭하고 전 세계 주요 국가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며, 종합 럭셔리 패션하우스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도약기다.

4기는 이제 막 시작해 진행 중이다. 새로운 도전이 성공한다면 송 회장이 창업 당시 꿈꿨던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이자 명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국내 남성복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한 송지오를 4가지로 정의해보았는데, 이는 현재까지의 성공 요인이자, 미래를 예측하는 포인트이기도 할 것이다.

첫째 독자성이다. 남달라야 한다. 송지오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 남다르기만 해선 안되고 소비자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얻은 공감이 강한 브랜드 신뢰로 튼실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둘째, 독자성을 빛나게 해줄 디자인 역량이다. 제조기업으로 치면 R&D력이자 제품력이다. 송지오의 패션은 아방가르드하다는 평을 듣는 만큼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계속 내놓아야 한다. 셋째, 리더의 강인한 집념이다. 원하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진하는 집념은 모든 기업의 중요한 성공 조건이다. 넷째, 경영 역량이다. 경영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최고치로 발휘하도록 하여 시장에서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확산해나가는 일이다.

1. 송지오의 독자성 | “ 남의 길에 합류하지 않고 우리만의 길을 간다.”


▎2024FW 워너브라더스 ‘DC 콜렉션’ / 사진:송지오인터내셔널
송지오 패션을 정의하는 키워드는 아트패션, 아방가르드, 컨템퍼러리다. 여기에 ‘조선 도령’, ‘블랙’, ‘동양의 아름다움’ 등 다양한 콘셉트가 스며들어 있다. 이런 경향과 콘셉트가 확실히 독보적인가, 독자성이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는가, 이 일관성이 시대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필립 코틀러는 말했다. “최고의 기업은 고객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팬을 창조한다.” 우리가 잘 아는 루이뷔통이나 아르마니, 구찌 등은 모두 확실한 팬덤을 보유했다. 송지오 룩 또한 한국 남성복 시장에서 일정 규모의 팬덤이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팬덤이 글로벌로 확산될 때 세계적 브랜드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팬덤은 그 브랜드만의 독자성에서 기인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이 있듯 독자성은 다른 사람이 걷지 않는 길을 걸을 때 생겨난다. 때론 비바람을 이겨내면서, 그 길을 오랜 기간 걸어야 한다. 송 회장은 “우리는 남의 길에 합류하지 않고 우리만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오가 지향하는 패션은 ‘아트(Art)패션’이다. ‘아트’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을 뜻한다. 그에게 ‘소비자가 송지오패션의 이미지를 어떻게 상상하기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아트패션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브랜드이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에 영감이 될 수 있는 강한 인상을 주는 예술적인 이미지, 또는 가장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디자인을 하는 아방가르드한 이미지로 기억되길 원한다”고 답했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프랑스어로, 근대 이전의 전투에서 가장 앞 열을 맡는 부대인 전위대를 뜻하는 군대 용어였다. 패션에서는 옷에 대한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깨는 디자인의 옷을 의미한다. 아주 전위적이고 급진적이지만 일반 룩에 적용했을 경우 ‘아방가르드 스타일’로 통용된다. 인터뷰 중 사무실을 방문한 모델이자 영화배우인 배정남씨에게 송지오패션의 특징을 물었더니 그 또한 단번에 “(아방가르드의 일종인) 해체주의”라고 말했다.

아방가르드 스타일을 전략적으로 지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창의적이고 독보적이며 예술적인 디자인을 계속해서 선보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지향과 실행은 영역이 다르다. 아방가르드 스타일은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가능하다. 창의성은 퍼스트 무버의 산물이다. 인터뷰에서 찾은 창의성의 뿌리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부모이거나 누군가의 자식이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 역시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보낸 기억이 영감을 주는 우물이 되었다.

송지오룩의 콘셉트는 ‘조선의 도령’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도령은 큰 뜻을 세워 기량을 연마하고, 훌륭한 인품을 지녀야 하며, 세련된 복장을 갖추고 있다. 서구에 프린스(Prince)가 있다면 한국엔 도령이 있다. 그는 평소 “아트패션에 동양적 아름다움을 접목하겠다”고 누누이 말해왔는데, 조선의 도령 이미지가 바로 동양적 아름다움과 닿아 있다. 그가 말하는 도령은 어머니와 함께한 기억 속에서도 아른거린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께서 꼭 안아주시며 “우리 도련님 오셨네” 하며 반겨주셨다. 그 따뜻함이 도령 콘셉트에 내재돼 있다. 어머니의 한복 치마폭에 안길 때 느낀 푸근함과 다정한 목소리를 그는 디자인으로 되살려내고자 한다.

송지오를 상징하는 컬러인 블랙도 마찬가지다. 블랙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컬러다. 모든 컬러를 흡수하는데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적절한 색으로 알려져 있다. 블랙은 밤하늘이다. 캄캄할수록 별을 더 빛나게 해준다. 작년 초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2024 가을 겨울 컬렉션’의 주제도 '밤도둑(NIGHT THIEVES)'이었다. 이 컬렉션은 밤도둑과 같은 반영웅적 주인공을 송지오 고유의 동양적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그는 “블랙은 내 마음속의 깊은 어둠을 밝혀주는 색”이라고 말했다. 그의 ‘블랙 예찬’을 더 들어보자.


▎2025SS 디즈니 'THE SIMPSONS' 콜렉션 / 사진:송지오인터내셔널
“블랙은 모든 걸 감싸안아요. 아주 따뜻한 색이죠. 모든 색을 흡수할 수 있고, 모든 색을 빛나게 해줍니다.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은 깊은 어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블랙에는 서정성이 있어요. 그림을 그릴 때, 옷을 만들고 색감을 정할 때 여러 컬러를 사용하기 좋아해요. 실제로 그림도 굉장히 화려하게 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블랙이야말로 현대 남성 스타일을 표현하는 데 아주 잘 어울리는 컬러라고 생각합니다. 블랙은 굉장히 집중적이고 집약적이며 어떤 스타일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유용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디자이너들은 금색이나 빨간색 같은 화려한 색감을 즐겨 사용합니다만, 한국 단색화 같은 느낌, 온화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 블랙만큼 유효한 컬러가 없습니다.”

이 블랙의 출처를 찾는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도 보인다. 송 회장은 장손 집안에서 자랐다. 집에서 모든 제례를 지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으셨다. 외출이나 행사에 참석할 때도 검은색 두루마기에 하얀 실크 술이 달린 스카프를 착용하셨다. 그는 “쇼를 준비할 때마다 기억 속 아버지의 두루마기와 스카프를 차용한다”며 그의 감정선에 자리 잡고 있는 추억을 떠올렸다.

도령 이미지와 블랙이라는 컬러는 아방가르드 스타일로 꽃을 피우며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는 데 성공한다.

“아방가르드는 아주 진보적이고 디자이너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장르예요. 단순한 라인만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테크닉과 디테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을 블랙으로 더 강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색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아방가르드의 힘이 좀 떨어지는 느낌인데, 블랙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송 회장의 디자인 철학을 파악할 수 있는 또 다른 용어는 컨템퍼러리다. 컨템퍼러리는 ‘동시대의’라는 의미이다. 업계에서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흐름이 담긴 실용적이고 개성 있는 브랜드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제품으로 만들어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이 필요한데, 동시대의 정서를 담지 않고서는 시장에서 상품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 또한 같은 생각이다.

“옷에 시대상과 문화, 감성을 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시장에서 대중을 상대로 옷을 팔면서 시대 흐름을 간과해선 곤란합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건 그 시대에 맞는 송지오만의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멋있고 행복해지는 옷을 입고 싶다는 사람의 기본 감성은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2. 32년간 식지 않은 열정 | “초심을 잃지 않고 끝없이 도전하겠다.”


▎2024년 11월 개점한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
모든 기업의 성공은 리더의 인내와 집념에서 시작된다.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고 훌륭한 조직문화를 갖췄으며 시장을 주도하는 전략을 구사하더라도 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이를 결단코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 없이 원하는 바를 얻기란 버거운 일이다. 역으로 뛰어난 가치, 조직, 전략 없이는 강인한 집념도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인내와 집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견디는 힘이다. 견디는 힘을 키우려면 대의명분과 재무성과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송 회장의 대의명분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파리 유학 시절부터 그런 꿈을 꿨다. 그는 “파리에서 패션 공부를 하던 젊은 시절부터 내 이름을 건 매장을 내는 게 꿈이었다”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를 만드는 일에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다짐을 3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지금도 하고 있다”고 단단한 어투로 말했다.

강한 집념을 알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송지오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때 TV홈쇼핑에서 제품을 팔았다. 여성용 팬츠를 100만 장 이상 팔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남성복도 한 시즌에 5만 벌 정도 판매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돈을 쓸어 모았지만, 어느 순간에 홈쇼핑 판매를 접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채널 간 무한 저가경쟁에 휘말렸다간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창업 당시의 초심을 잃어버릴까 덜컥 겁이 났거든요.”

기업 역사가 32년인데 우여곡절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때는 파산 직전까지 갔다. 어느 정도 힘들었는가를 묻자 “어느 날 아내가 통장에 2만6500원밖에 없다고 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고 되돌아봤다. 당시 한 대기업이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자’며 협업을 요청해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자마자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접으면서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다. 허망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큰 결단을 내렸다. 여성복을 접고 좀 더 자신 있는 남성복으로 전환했다. 그때가 1999년이다. 그 결정은 전화위복이 됐다. “작은 매장에서 트렌디한 캐주얼 남성복을 팔기 시작했는데 3주간 손님이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한 젊은이가 방문했고, 그 젊은이가 고객을 데려오고, 데려온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지금의 송지오가 32년간 이어온 비결 중 하나가 바로 파산 직전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여성복에서 남성복으로 전환한 결단이다. 그는 “여성복은 남성복보다 더 창의적 디자인이 필요해서 매력적이고 디자인하는 즐거움이 있다”면서도 “다만 제가 스커트를 입고 자라지는 않았다. 사실 남성복에 대한 자신감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남성복으로 전환하면서 2006년에는 숙원이었던 파리 패션위크에 참가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올초 맨즈 패션위크에 여성복도 함께 선보였다.

송 회장의 하루는 단순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회사에 출근한다. 하루 종일 집무실 한쪽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3월 중순 인터뷰를 위해 들른 그의 작업실에는 여성복 스케치 수십 장이 펼쳐져 있었다. 2018년 아들인 송재우 대표에게 경영을 맡긴 뒤엔 오롯이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검은 펜으로 의상 스케치를 하고, 색깔을 입히고, 실제 옷으로 만드는 이 과정을 창업 후 32년째 이어오고 있다.

아들인 송재우 대표는 몇 년 전 포브스코리아 인터뷰에서 송 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초심을 잃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오랜 기간 지켜본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음 시즌을 생각하며 고민해왔습니다. 혹여 이번 시즌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책하며 디자인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한결같이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송지오는 남들과 다른 ‘우리만의 것’을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6개월마다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인다. 그는 “마치 작은 영화를 만드는 일과 같다”면서 “컬렉션의 첫 룩을 그릴 때가 되면 일상에서 접하는 음악, 미술, 영화, 사진 등이 자연스레 결합되어 새로운 콘셉트를 구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콘셉트를 잡고 난 뒤에 “현대적인 예술과 개념들을 결합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든다”고 들려줬다.


창의적 사고는 교과서 밖에서 하는 생각이다. 때론 논리가 아닌 비논리에서 영감이 떠오른다.

“너무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크기만큼 창의적인 영감이 떠오른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이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인데 과연 아방가르드 패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장르 안에서 상상합니다. 상상을 그림으로 옮기고 옷을 만들어 패션쇼로 표현하는 삶을 살죠. 그 쇼가 디자이너의 삶이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30여 년간 창작의 고통에 시달렸다면 지치지 않았을까. 또는 ‘이 정도 했으면 됐지’ 하는 안주의 마음도 없지 않을 듯하다. 그는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으려면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순수한 시절에 가졌던 꿈을 잃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가장 싫다”고 했다 “누가 나이 들었다고 대우해주는 것도 싫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아주 치열하게 일을 해왔어요. 외환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자금력은 부족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옷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내가 일하는 양은 젊은 시절과 비교해도 결코 줄지 않았어요. 다행인 점은 지금 그리는 그림들이 몇 해 전보다 좀 나아 보인다는 겁니다. 이런 평이 위안이 됩니다.”

그는 아트패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이자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의 리더다. 아트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이지만 비즈니스의 본질은 돈을 버는 행위다. 이 둘을 균형 있게 조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돈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제가 돈을 버는 이유는 제가 원하는 아트패션을 추구하기 위해서죠. 저는 숫자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들어서 가치에 투자할 수 있어 즐거운 사람입니다. 비즈니스가 잘되게 하려고 여러 전략을 수립해서 브랜드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돈을 많이 버는 것까지 상상하지 않습니다.”

3. 송재우 대표의 존재감 | “이체동심”


▎2025 SS 우먼 컬렉션. / 사진:송지오인터내셔널
기업이 오래도록 번영하려면 기존의 강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새로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나가야 한다. 송지오의 경우 지난 30년간 유지해온 강점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현대화하는 것이 앞으로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다. 그 역할을 아들인 송재우 대표가 해내고 있다.

송지오 디자인의 뿌리가 부모님이라면, 아들은 그의 뜻을 꽃피우는 존재다. 2018년 아들은 회사 CEO를 맡아 혁신을 주도하면서 송지오가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기업형 브랜드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송지오의 본질은 ‘아트패션 기업’이다. 2018년 이전까지 송지오는 ‘아트패션’에 무게중심을 뒀다. 2018년 이후 ‘아트패션’을 더욱 현대적인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디자이너 브랜드 ‘송지오’, 하이엔드 컨템퍼러리 남성복 브랜드 ‘송지오옴므’, 젊은 층을 목표한 컨템퍼러리 아트 브랜드 ‘지제로’, 중가의 컨템퍼러리 캐주얼 브랜드 ‘지오송지오’로 라인을 구분해 다양한 타깃을 맞춤형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

고객 접점을 늘리기 위해 2018년 한자리수에 불과했던 국내외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몰은 2025년 2월 기준 117개로 늘렸다. 특히 해외 유명 백화점에 직매장을 오픈하면서 글로벌화의 초석을 다졌다.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2020년에 디즈니, 2021년엔 팀 버튼과 손을 잡았다.

무엇보다 창업자 아버지와 후계자 아들의 호흡이 아주 좋다는 점은 송지오의 미래를 밝게 한다. 송 대표에 대한 송 회장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그는 “송 대표가 주말에도 쉬지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젊은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며 “유치원 다닐 때부터 송지오의 옷만 입고 자랐기에 누구보다 송지오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송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았다.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악사뱅크 유럽, HSBC 프랑스, 언스트&영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물었을 때도 돌아온 답은 아들이었다. “저는 정말 행복하다, 이런 감정을 갖고 살아오지는 못했어요. 전력을 다해 준비한 컬렉션을 발표하는 쇼를 마치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면 굉장히 행복해야 하는데, 제가 너무 치열하게 살아왔고, 주변에 챙길 사람도 적지 않았기에 마냥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위통에 시달릴 정도로 긴장이 되는 거죠. 그런데 최근 여러 번 ‘참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어요. 아들이 아트디렉터로 주관한 쇼를 마치고 마지막에 무대에 등장해서 인사하는 모습을 보는데 행복감이 마구 몰려오는 겁니다.”


▎‘송지오’를 움직이는 사람들. 좌측부터 총괄 사업본부장 김준호 상무, 송지오 회장, 송재우 대표, 디자인실 김현욱 이사. / 사진:송지오인터내셔널
송 대표 또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절대적이다. 송 대표에게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이체동심(異體同心)’라는 짧은 답을 보내왔다. 몸은 각각이나 마음은 하나라는 뜻이다.

아들(후계자)을 신뢰하는 아버지(창업주),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의 모습은 자주 보기 힘든 장면이다.

송지오의 과제는 세계적 브랜드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근본 전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도 “아트패션을 추구하는 브랜드이기에 브랜드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창의적이고 독보적이며 예술적인 디자인을 계속해서 선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숫자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하우스디자인 브랜드는 디자인의 창작과 제품의 제조 과정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일반 기업형 브랜드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매출이 100억원에서 1000억원이 되고 1000억원이 1조원이 되어도, 모든 것이 정해진 시스템이라는 틀 안에서 돌아가는 기업형 브랜드처럼 운영하면 디자이너 브랜드의 진정성을 유지할 수 없고 또 우리가 목표하는 명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상품과 디자인의 근본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시대 흐름에 맞는 유연한 비즈니스 전략을 펼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권오준 경영전문기자 kwon.ojune@joins.com _ 사진 최영재 기자

202504호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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