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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가 설계한 도시, “낯선 풍경에 취하다!” 

고귀한 화가들의 나라 스페인… “자연을 은유하는 건축물들에 감탄”
소설가가 추억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세계기행 

글■백가흠 소설가
여행은 언제나 망설임을 동반한다. 한정된 시간, 풍족하지 않은 통장 잔고…. 그래도 기어이 떠남을 준비한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이국의 하늘로 떠나가는 상상을 한다. 여행의 일부는 준비하는 마음에 있는 것임을, 나는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알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가 설계한 이 성당은 1882년부터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우디의 묘도 이곳에 있다.

스페인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레코·벨라스케스·고야·피카소·달리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화가의 그림 앞에 직접 서고 싶은 바람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품어온 오랜 꿈이었다.

아버지의 낡은 화첩을 펼쳐보며 나는 발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스페인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모른 채 막연한 상상을 하고는 했다. 처음에 그것은 동경이나 감탄에 겨운 바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 그림들이 왜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집에 똑같은 사이즈로 나열돼 있는 그림들은 개성 없이 내 머릿속에 남겨졌다. 결국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 책에서만 봤던 그림을 다시 접해보고서야 역사가 왜 그들을 천재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은 조급해졌고, 결국 짐을 꾸려 스페인 화가들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바르셀로나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스페인에 가려면 감수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다.

공항에서 대기한 시간까지 합치면 19시간이나 걸렸으니 기세 좋았던 설렘도 금세 녹초가 되고 말았다. 숙소는 바르셀로나의 한국 민박집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초행이기도 해서 하루이틀 머무르며 여행정보를 얻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가격과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봤던 것에 비해 민박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겨우 찾은 민박집에 실망한 일행은 한국 사람은 이래서 안 된다는 둥, 이 먼 곳까지 와서 동족을 등쳐먹고 산다는 둥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숙소를 알아봤던 나는 머쓱해졌지만 일행의 불만은 일리 있는 말이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미리 송금한 숙박비가 만만찮음에 속이 쓰려 아껴 먹으려고 싸왔던 소주부터 꺼내 마셨다. 어떻게 된 것이 여행의 맨 처음은 꼭 속는 느낌이 든다. 천성 의심이 많은 내 탓임에도 때마다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불미스러운 경우에 처하고는 한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가면. 다채로운 색상이 눈에 띈다.
일어나자마자 짐을 꾸리고는 나갈 테니 예약한 돈을 돌려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민박집 입장에서는 완강하게 예약한 날의 숙박비를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사람이어서 한국사람들의 생떼를 알아본 것일까? 민박집에서 크게 양보해 숙박비의 반을 내주었다. 아침 일찍 큼지막한 트렁크를 끌고 한국 민박집에서 나왔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아무도 고마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여유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마음을 닫는 꼴이었다. 나와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보고서야 지금 내가 스페인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겨울이었지만 하늘은 높고 날씨는 청명했으며 볕은 따뜻했다. 한국의 완연한 가을 분위기였다. 이른 아침부터 노인들은 광장으로 나와 한가로이 볕을 쬐고 있었다.

“와, 그런데 저것은 뭐예요?”

우리가 동시에 바라본 것은 스페인이 배출한 불세출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이었다. 그때 본 성당의 첫 인상은 마치 하늘에서부터 인간세상을 향해 흘러내리는 성모마리아의 피눈물이 성당 외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은 괴이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에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카사밀라는 1895년 바르셀로나 신도시계획 당시에 세워진 연립주택으로, 역시 가우디가 설계했다. 내부에는 현대적 설비를 모두 갖추고 있다.
모양이 기이하게 생겼는데, 꼭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일할 때 쓰는 거대한 안전모 같아 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윗부분에는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색깔도 진한 녹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가 씌어 있었고, 왕관 모양 마크도 그려져 있었다.

거리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쓰임이 중요한 것일 텐데,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파밀리아 성당을 바라보던 일행이 하나둘 그 기이한 물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갖가지 추측이 쏟아졌다. 대피소라는 사람도 있고, 제설 기구일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논쟁 중인 우리 일행을 향해 노파 한 분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구멍 속으로 빈 포도주 병을 하나씩 차례차례 집어넣었다.

그럼, 이게 쓰레기통?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은 워낙 유명한 건축물이니 그렇다 쳐도, 재활용 쓰레기통에 압도당하다니….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의 공공시설물 디자인을 보면 이 나라의 미적 수준과 예술의 감수성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물건에도 세심한 정성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똑같은 가치를 지녔음에도 그 모양새는 하늘과 땅 차이인 내 조국의 단조로운 시설물들이 떠올랐다. 옮긴 숙소는 단기 임대아파트였는데 취사도구·냉장고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 여러 사람이 묵기에는 가격도 저렴하고 편리했다. 이후 5일간 이어진 바르셀로나 여행은 이 아파트가 없었다면 ‘한 건 할 수 없는’ 여행이 되어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이 아파트에서 5일간 네 명이 마신 와인이 50여 병이나 되었으니까. 와인에 대해서는 까막눈에 가까웠던 만큼 가장 보편적이고 유명한 리호아(Rioja)·토레스(Torres) 상표가 붙어있으면 닥치는 대로 맛보았다. 가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가격이 너무 착해서 와인 때문에라도 스페인에서 살고 싶어졌다.

반대로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함부로 와인을 마시는 것을 삼가게 되었다. 한국에는 그 싸고 맛있는 와인은 없고, 비싸고 맛없는 와인만 가득하다.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 밤에는 와인에 취하고 낮에는 가우디에 취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바르셀로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도시 전체의 정갈한 조경도 일품이지만 가우디가 그리고자 했던 한 도시의 풍미는 여전히 바르셀로나를 매혹의 도시로 이끌고 있다. 가우디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형태나 질감에서 원재료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는 데 있다. 결국 그것은 자연스러움의 복원 같이 느껴지고는 한다. 바르셀로나 전체에 산재한 그의 작품을 보면 그는 도시 건설에 큰 뜻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 집중적으로 자신의 건축물을 지었던 것일까? 여행의 대부분은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러 가는 것으로 채워졌다. 가는 길목에도 들를 만한 곳이 있으면 잠시 짬을 냈다. 결국 5일간의 바르셀로나 여행은 가우디 여행이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 생활 속에서 더욱 빛났다.

카사밀라 아파트는 공동주택 형태인데, 외관과 내부의 미적 아름다움도 제일이지만 주택의 본질적 효용성이 더욱 빛났다. 마치 연꽃의 잎맥처럼 철근 구조를 이용했는데, 그의 많은 작품에서 자주 그랬듯 건물의 형상과 표면을 통해 산이 많고 해안에 자리 잡은 카탈루냐의 특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벨 에스과르드 별장과 구엘 공원, 콜로냐 구엘 교회는 내부 기둥이 외부 부축벽 없이도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평형구조)했는데, 이 모두는 꼭 봐야 할 것들이다. 이를 보지 않는다면 바르셀로나를 본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 골목길을 걷다보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멋에 넋을 빼앗기고 만다.

“바르셀로나?” 아니, 가우디 여행!

가우디는 평형구조를 나무가 서 있는 것에 빗대어 말했다. 사선으로 미는 힘에 견디도록 설계된 비스듬히 서 있는 기둥, 미는 힘을 거의 받지 않는 얇은 판과 타일로 이루어진 볼트 등은 튼튼한 구조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기학학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것은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는 자연스러운 조경 탓에 도시 전체가 세련된 느낌이다.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는 해변도 일품이다. 오래된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의 굴레를 인위적인 도시계획으로 재탄생시킨 느낌이 들었다. 이런 도시 전체의 분위기와 아름다움은 가우디에 기초하고 있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파우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 가로수가 늘어선 람브라스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멋에 넋을 빼앗기고 만다.

특히 콜럼버스탑에서 바라보는 람브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만의 매혹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준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도시의 매혹에 빠져버린 관광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산호세 시장이다. 각종 과일·생선·채소·고기 등 원형적인 색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광이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바르셀로나는 한 건축가의 위대한 재능과 그것에 기초해 탄생한 도시계획, 호기심과 열정으로 찾아온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유럽에서 가장 독창적인 미를 가진 도시가 됐다. 내가 맛본 최고의 와인, 바르셀로나!


(왼쪽부터)피게레스에 있는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의 건물 외벽. 이곳은 달리가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곳이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 문에 새겨진 문양을 손으로 어루만져 봤다. 시간과 예술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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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호 (200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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