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뒤안길 위에서 불러보는 이름 겨울이여! 

여행 겨울배웅·봄맞이 국내여행 


‘하늘길’이라고 불리는 강원도 정선 화절령.

강원도 정선
눈꽃 꺾는 화절령… 느림의 미학으로 걷노라면 동화 같은 풍경 펼쳐져

글·사진■이우석 스포츠서울 여행전문기자

지난 겨울은 너무 길었다. 도시 골목길을 돌아 어느새 다가와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는 경제 한파처럼 매정하게만 느껴질 뿐, 하얀 겨울의 낭만도 이렇다 할 추억거리 하나 없이 지나버리고 만다.

겨울 같지도 않은 도시의 회색겨울, 빌딩숲 히터바람 앞에서 그렇게 두 달을 숨어 지냈다. 이제 이렇게 떠나 보내고 나면 다시 열 달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계절이기에 속으로 아쉬움만 삭일 수는 없다.

설도 지나고 어느덧 봄을 기다리는 때. 따스한 봄 마중을 그리워하기에 앞서 그렇게 쌀쌀맞게 지나가버린 겨울이 너무 야속한 까닭에 다시금 ‘진짜 겨울’을 만나보고 싶다.

떠나는 계절을 잡을 수는 없지만 낯설고 눈부신 풍경을 가슴과 머릿속에 담아올 수는 있다. 새하얀 눈꽃이 아직 남아있는 진짜 겨울을 배웅(?)할 수 있는 강원도 정선 땅으로 지금 떠나야 하는 이유다.

진짜 겨울은 하얗다. 도시에서는 눈이 내린다고 해도 금세 시커먼 ‘계절쓰레기’로 둔갑해 버리지만, 진짜 겨울의 눈과 얼음은 그렇지 않다. 온통 순백색 동화를 눈앞에 펼쳐놓는다. 지우개처럼 쓱쓱 지워내기라도 한 듯, 회색겨울에 대한 오해의 잔상을 말끔히 지워내는 정선의 늦겨울은 어쩌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의 노란색보다 더 따뜻함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정선에서 만나는 진짜 겨울

아리랑과 된장의 고장. 첩첩 깊은 산촌, 인생의 ‘막장’이라고 불릴 만큼 고된 채탄 일을 하러 온 탄부들이 모여 살아 한 많은 탄광지역으로 유명했다. 세월이 사내아이 수염 자랄 때만큼 흘러 번쩍번쩍한 카지노로 변신해 제2의 노다지를 꿈꾸는 이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겨울이 끝나가는 춘삼월까지 정선 땅에는 겨울의 뒤안길이 펼쳐진다. 위도상으로는 속초·고성이나 대관령보다 많이 내려왔지만, 워낙 산 깊은 고원지대여서 남도에 산수유 가득할 때도 눈꽃 피어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 ‘하늘길’이라고 불리는 화절령(花折嶺)이 있다. 누구나 이 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가득 피어난 야생화[花]를 나도 몰래 꺾으며[折] 지나게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일명 ‘꽃꺾이길’로 통하는 화절령은 겨울철에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원래 눈이 많아 세 번 가면 꼭 한 번은 나뭇가지에 펑펑 내려앉은 설화를 실컷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등산화에 아이젠· 설피까지 챙겨 신고 나서야 하는 고된 겨울 등반길은 아니다.

꼬불꼬불 운탄로(석탄을 나르던 도로)가 거미줄처럼 잘 갖춰져 있는 덕분이다. 사실 이 때문에 매서운 겨울철에도 백두대간의 한복판에서 안전하게 ‘눈꽃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화절령으로 가려면 우선 하이원리조트로 향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부터 진짜 겨울이 펼쳐진다.

매립지 주차장부터는 화절령을 거쳐 하이원호텔에 이르는 10㎞ 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상당히 긴 코스로, 이때는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밤새 눈이 내리면 꽤나 깊게 빠지기 때문이다. 대신 가족 단위로 떠나온 여행이라면 매립지 주차장에서 도롱이연못에 이르는 30분짜리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너무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또 평탄하지만도 않은 이 길은 ‘오르는 즐거움’과 ‘쉬어가는 여유’를 동시에 던져준다.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미끄러지지 않게 하늘길을 오르는 즐거움은 ‘너무 빨리 움직이는 세상’에서 온 이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선물로 준다. 5~10분쯤 걷다 익숙해질 즈음에야 비로소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넘어질세라 발 밑만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얀 바늘처럼 빽빽이 서있는 낙엽송은 그야말로 ‘달력’이다. 팀 버튼의 영화 속 장면처럼 환상적인 겨울 숲이 여행자를 온통 둘러싸고 있음을 느낀다. 왕가의 보석세공 같은 설화(雪花)가 이리저리 중첩되며 멀리 숲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감히 고급 사진기로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장관이다.


(왼쪽부터)하얀 바늘처럼 빽빽히 들어찬 눈숲을 헤치고 가다보면 이렇게 탁 트인 신비스러운 공간이 나타나곤 한다. 화절령은 원래 눈이 많아 세 번 가면 한 번은 이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곧 떠날 겨울과 함께한 마지막 배웅

폐부로 스며드는 차갑고 맑은 공기는 ‘덤’이다. 주식·부동산·대출이자·주택부금 등으로 채워졌던 답답한 머릿속을 말끔히 씻어낸 듯하다. 자동차 배기가스 냄새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길은 그리 길지 않아 곧 도롱이연으로 안내한다. 지하 폐탄광 때문에 생겨난 공간이 침하한 후, 그 위에 물이 고여 생긴 둘레 100m의 도롱이연은 경북 청송의 주산지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여행사진작가와 네티즌 사이에 ‘비밀의 못’으로 알려진 곳. 작업을 위해 베어낸 폐목이 물에 잠긴 풍경이 몽환적이다. 시원한 여름에 우거진 신록도 멋지고, 붉은 홍엽이 그득 쌓인 가을 연못의 서정적 분위기도 좋았지만, 꽝꽝 얼어붙은 연못 주변에 하얀 숲이 겹겹이 둘러싼 풍경도 무척 아름답다. 특히 좁은 진입로가 유행가 가사마냥 ‘아주 그냥 죽여준다’.

아침햇살이라도 스며들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지다. 흔히 풍경을 보고 ‘근사하다’ ‘멋지다’ ‘환상적이다’ 등 온갖 미사여구가 단 한마디 ‘외국 같다’는 말로 통하는 것이 현실이라지만, 이곳은 ‘외국’이 아닌 ‘선계(仙界)’ 같다. 길게 가로로 뻗은 하얀 가지와 고슬고슬 눈을 얹은 키 작은 나뭇잎, 쑥 그 안으로 들어서면 요정이라도 튀어나와 반겨줄 것만 같은 하얀 숲을 뒤통수에 두고 나오기가 아쉽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봄소식 전하는 꽃도 싫고, 아지랑이도 반갑지 않다. 과꽃을 좋아했던 동요 속 어떤 누이처럼 무아지경 속 눈꽃밭에서 아주 살고 싶다. 내친 김에 커다란 설경을 한눈에 담고 싶은 욕심이 난다면 산에 오르는 것도 추천한다. 곤돌라를 타고 백운산 정상까지 오르면 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라면 파도처럼 첩첩 겹친 하얀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어 좋다. 이곳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고안해냈을 법한 외양의 회전식 레스토랑 ‘탑오브더탑’이 있어 360도 회전하는 파노라마 풍경 속에서 식사까지 즐길 수 있다. 극락 같던 풍경이 눈 앞에 있어도 올랐으면 내려와야 하게 마련. 화절령 하늘길에서 만났던 우리의 겨울은 이렇게 사라지고 만다. 저 멀리 백두대간 병풍 같은 산 뒤로 봄이 다가오고 있다.

.
○ 주변 둘러볼 만한 곳 - 귀경길에 만나는 38번 국도는 갈라져 한편은 서울로, 다른 한 끝은 동해바다로 향한다. 삼척 가는 길 중간에 준경묘(濬慶墓)가 있다. 삼척에 있지만 가히 ‘삼척(?)동자’도 모를 만큼 산속 깊숙이 숨은 이곳은 태조의 5대조 할아버지 이양무 장군을 모신 곳. 붉고 곧은 껍질이 적토마에 비견될 만큼 늠름한 위용을 과시하는 금강소나무들로 빼곡한 숲이 에워싸고 있다. 호리병 목처럼 긴 오솔길로 이어진 숲은 넓어지며 비로소 단아한 설경을 선사한다.

○ 잘 곳 - 고한읍과 사북읍에는 하이원리조트(1588-7789)를 비롯해 리조트·모텔 등 다양한 규모와 시설의 숙소가 있다. 412번 지방도로를 타면 노나무재 사북 방향 길가에 분위기 아늑한 펜션이 드문드문 나온다. 저렴한 숙소를 찾자면 정선 읍내나 태백 시내에서 찾는 편이 더 낫다.

○ 먹을 거리 - 눈길에서 하루 종일 벌벌 떨다 내려오면 속이 다 시렵다. 이럴 때는 따끈한 생태찌개가 절로 당기게 마련이다. 칼칼한 고춧가루 육수에 동해에서 직송한 탱글탱글한 생태살을 듬뿍 집어넣었다. 미리 말하면 곤이는 더 넣어준다. 보글보글 끓는 생태찌개는 바싹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누글누글하게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몇 달이 더 지나고 나면 이 맛을 느낄 수 없다. 역시 생태찌개는 추울 때가 제 맛이다. 정선 고한읍 토박이식당(033-591-7729)이 유명하다.

고한읍 낙원회관(033-591-1700)은 한우 쇠고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 특히 살치살·처마살 등 특수부위가 일품이다. 고기를 구워먹고 마지막으로 즐기는 된장소면을 맛보면 장독대라도 훔쳐가고 싶을 지경이다. 된장소면은 갓 삶아낸 국수사리를 유명한 정선된장으로 끓여낸 구수한 된장찌개에 말아준다.


경상북도 봉화
깊은 산중의 늦겨울… 넛재 넘어 금강송 만나는 길

글·사진■박경일 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넛재 너머 태백 쪽 풍경. 이 근방의 백천계곡은 천연기념물인 열목어가 사는 청정지역이다.
밤 사이 수은주가 영하 15도 근처까지 내려갔다. 새파랗게 날이 선 바람이 창을 흔들고 지나간다. 잘 마른 장작을 새로 넣은 주철난로가 벌겋게 달궈졌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 들어가는 소리. 난로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는 하얀 김을 푹푹 뿜고 있다.

뿌옇게 성에가 낀 창을 옷소매로 쓱쓱 문질러 닦는다. 경북 봉화 현동에서 강원도 태백을 잇는 31번 국도가 청옥산을 굽이굽이 넘어가는 넛재(896m). 눈발이 간간히 흩날리던 지난 밤, 그 고갯길 곁의 아늑한 민박집 ‘송림정(松林停)’에 들었다.

민박집 주변에는 ‘송림’(松林)이라는 이름 그대로 붉은 수피의 금강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있고, 슬레이트 추녀에는 어른 키보다 더 큰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다.

주철난로 앞에서 이제 막 배달된 이틀 전 신문을 읽던 민박집 주인은 “날이 추워서인지 벌써 며칠째 손님이 끊겼다”고 했다. 겨울의 끝자락에 굳이 봉화의 깊은 산중을 찾아간 까닭은, 이제 곧 떠날 겨울을 정면으로 배웅하기 위한 것이다. 겨울의 끝에서 모두 그 뒤에 올 봄을 기다리지만, 때로는 겨울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떠나 보내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안락한 도회지의 아파트 거실에서, 혹은 고층빌딩의 훈훈한 사무실에서 어찌 웅웅거리며 겨울 산을 떠도는 겨울 바람소리나, 코끝으로 드는 싸한 겨울나무 냄새를 느껴볼 수나 있었을까? 낙동정맥 깊은 산중의 늦겨울. 그 속에 들면 깨끗하게 헹궈낸 ‘맑은 정신’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게 바로 겨울이 가져다주는 매력이 아닐까?

겨울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을 찾아 나선다. 그곳이 바로 경북 봉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청옥산의 고갯길 ‘넛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봉화에서 태백을 넘어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대낮에도 노루가 튀어나왔다는 노루재를 간신히 넘어선 뒤 숨돌릴 틈도 없이 대관령보다 더 높은 넛재를 넘어야 했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노루재에서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그러던 것이 2001년 노루재의 산허리에 터널이 뚫렸다. 노루재는 터널에 길의 이름을 내주고 수명을 다해 사라졌다. 그러나 넛재는 지금도 여전히 성성한 고갯길로 살아남아 있다.

옛 자취 흐려진 곳… 아름드리 침엽수 숲

넛재는 청옥산(1,277m)을 넘는 고개다. 청옥산이라면 대부분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에 있는 청옥산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곳 봉화에도 청옥산이 있다. 청옥산을 넘는 고갯길 넛재라는 이름은 ‘느긋하다’ 혹은 ‘느리다’는 말에서 나왔다. 이름대로 목탄차가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느릿느릿 넘어가던 고갯길이었던 것이다. 본래 이름은 ‘늦재’였던 듯싶은데, 억센 경상도 사투리 탓에 ‘넛재’가 됐다.

원래 이 고갯길은 강원도 태백 사람들이 내륙에서 으뜸이던 춘양장을 다니던 길이었다. 옛 고갯길은 지금의 포장도로에서 사뭇 떨어진 산중의 타랭이골과 강시골을 넘나들었다는데, 지금은 옛 길의 자취가 흐리다. 대신 말끔히 포장된 31번 국도가 놓였다. 길에는 제법 오가는 차량들로 분주하다.

넛재는 느릿느릿 넘어야 진면목이 보이는 고개다. 속도를 줄이며 보아야 할 것은 단연 금강송이다. 이 길에는 온통 금강송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드리 금강송이 하늘을 가릴 듯 도열해 시원하게 둥치를 세우고 있는 낙엽송과 키재기를 한다. 넛재를 넘는 와중에 길 이쪽 저쪽으로 임도(임산물을 나르기 위하여 산림 속에 닦아 놓은 길)를 만난다.


낙동강 상류를 따라 승부역 가는 길. 육송정에서 물길을 따라 석포 방면으로 접어드는

임도로 드는 길에는 소나무며 전나무, 낙엽송 등 침엽수의 잔가지가 우수수 떨어져있다. 침엽수들이 서로 햇볕을 많이 보기 위해 경쟁하듯 가지를 위쪽으로 뻗어내면서, 아래쪽의 가지들을 스스로 떨궈낸 탓이다.

이렇게 수직으로 뻗어 올린 침엽수림 사이로 난 임도를 걸으면, 청량한 기운이 절로 느껴진다. 넛재에서는 겨울이 더디 간다. 입춘이 지난 뒤에도 이쪽은 아직 한겨울이다.

올해는 유독 이쪽에 눈이 내리지 않아 눈 구경을 하기 어렵지만, 예년에는 고갯길에서 제설작업을 하면서 밀어낸 눈이 허리춤까지 올라왔다. 고갯길 이쪽 저쪽으로 나있는 임도에 들어서면 겨우내 내린 눈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기도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간혹 고라니나 멧돼지의 발자국만 찍혀있는 산길이 지천이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이 내려주면, 다시 이런 순백의 경치를 빚어낼 터다. 넛재를 내려서면 타랭이골 깊숙이 들어선 청옥산휴양림이 있다. 여기저기 휴양림을 다녀본 이들이라면, 누구든 ‘최고의 숲’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곳이다.

면적도 135ha로 전국에서 가장 넓다. 휴양림 관리동에서 숲 속의 집으로 이어지는 1km의 소로는 겨울 숲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산책로다. 수령 100년 이상 된 잣나무와 소나무, 낙엽송이 도열한 이 길에 들면 정신까지 맑게 헹구어지는 느낌이다.

봉화에서 넛재를 다 넘어 태백 쪽으로 향하면 백천계곡으로 드는 사잇길을 만난다. 백천계곡은 천연기념물인 열목어가 사는 청정지역이라고 해서 최근 들어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계곡을 따라 꽝꽝 언 얼음장 아래로 돌돌 계곡물이 흐르고, 그 얼음장 아래 어디쯤에선가 열목어가 겨울을 나고 있을 터다.

다른 계절이야 맑은 계곡물 소리를 따라가는 길이겠지만, 겨울에는 늘어선 금강송의 향기를 맡으며 가는 길이다. 넛재에서 태백 쪽으로 내려서자마자 삼거리쯤에는 육송정이 있다. 조선시대 경복궁 창건 당시 이곳에는 아름드리 금강송 여섯 그루가 서있었는데, 이 나무를 베어다 경복궁의 기둥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육송정에서 물길을 따라 석포 방면으로 접어들면, 이 길이 바로 영동선의 오지 기차역인 승부역으로 가는 길이다. 승부역은 `기차로 갈 수 있을 뿐, ‘차로는 닿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승부역이 오지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차로 가서 닿을 수 있다.

낙동강 물길을 따라 첩첩산중 승부역으로 가는 길


(왼쪽부터)넛재를 내려서면 타랭이골 깊숙이 있는 청옥산휴양림을 발견하게 된다. 겨울숲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산책로로 유명하다, 승부역으로 향하는 영동선 기차. 사실 승부역에 이렇다 할 볼거리는 없다.
석포에서 7km쯤 달려가 만나는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는 승부역. 사실 이렇다 할 볼 거리는 없다. 홀로 역을 지키던 열차운용원도 “눈 내린 직후라면 모를까, 뭐 내세울 것이 없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영암선 개통 기념비’나 역 건너편에 세트장처럼 지어놓은 집 한 채 정도가 볼거리의 전부다.

‘오지’라는 이름만으로 눈꽃열차를 타고 관광객들이 승부역을 찾아오지만, 정작 승부역보다 석포에서 승부역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이 열 배쯤 아름답다. 늦은 겨울여행. 시린 강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며 산촌마을의 외딴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 오르는 모습과, 배추밭 고랑을 따라 정갈한 눈이 쌓인 고즈넉한 풍경을 보고 돌아온다면 겨울이 이렇게 가더라도 그다지 아쉬움은 없으리라.

200902호 (2009.02.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