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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땐 파주, 고종땐 평양 왕들은 왜 서울을 옮기려 했을까? 

파주, 병란으로 피폐한 민심 전환 … 평양은 러일전쟁 우려해 고관들이 찬성
프리즘 | 왕조시대의 ‘천도’ 이야기 

글 신명호 부경대 교수 [smh@pknu.ac.kr]
세종시를 둘러싼 여야 혹은 여여 간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이미 참여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서울 천도는 위헌판정을 받은 상태지만, 세종시를 만들되 그 성격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왕조시대에는 수도 서울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있었을까? 들여다보니 오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고구려와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시대에는 3경(三京)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고구려 후기, 수도 평양성을 포함해 이전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 만주지역 소재)과 새로 설치한 한성(漢城, 황해도 지역 소재)을 합하여 3경이라고 불렀다. 고려 후기에는 수도 개경을 포함하여 서경(西京, 평양)과 남경(南京, 한양)을 합해 3경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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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호 (20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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