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노인이 자살하고, 앞집에서는 부부간에 칼부림이 나도 이웃끼리 알지 못하는 도시, 주차 문제로 싸우던 중 동네 주민에게 칼을 휘둘러 이웃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곳.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현실이다. 이웃 간의 정(情)이 무색해진 오늘날, 동네 주민 간에 이름은 물론이고 나이·직업·근황까지 훤하게 꿰는 마을들이 있다. 새해를 맞아 수백 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서울의 집성촌(集姓村)을 찾아가 봤다.
"가만히 좀 있어 봐. 인구조사 중이잖아. 저 파란색 기와지붕 집은 수용 씨네, 우리 아저씨 되는 분이고, 2층 벽돌집은 근섭이네, 내 동생뻘이지.”이마에 주름이 팬 남성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눈 덮인 동네를 바라본다. 담배 한 대를 물더니 새하얀 종이에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씩 써내려간다. 담뱃재가 쌓여갈수록 백지에는 낯선 이름과 숫자가 빼곡히 들어찬다.
전날 밤 내린 눈이 고드름으로 변한 2010년 11월 29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동을 찾았다. 이곳에 있는 양원리는 ‘동래(東萊) 정씨(鄭氏)’들이 600여 년 동안 거주해 온 집성촌으로 행정구역상 망우동에 속한다. 이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정진섭(67) 씨를 만났다. 정씨는 2층 양옥 복도에 의자를 펴놓고 앉아 10분 만에 집성촌에 사는 ‘동래 정씨’들의 이름, 가족 수, 분가 여부등을 뚝딱 적어낸다. 정씨는 “수십 년 동안 부대끼며 살아온 일가친척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지금도 만날 얼굴 보는 사이인데”라며 양원리 ‘동래 정씨’들의 명단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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