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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마라토너의 발 

맨발 달리기와 앞발 착지가 오래달리기의 기본… 신발산업이 인간의 발을 퇴화시킨다 

백우진 월간중앙 전문기자 [cobalt@joongang.co.kr]

▎케냐 들판을 달리는 사람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신화가 된 마라토너 에밀 자토페크(1922~2000)의 말이다. 원시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걸으면서 진화했다고 한다. 자토페크의 ‘선언’은 이 지배적인 학설에 맞섰다. 2004년 자토페크의 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세계적인 과학 매거진 <네이처>의 표지에 실린 ‘본 투 런(Born to run)’이란 논문이다. 이 논문은 원시 인류가 원래 달리도록 태어났고, 달리면서 더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을 이론적인 토대로 삼은 책이 <본 투 런>이다. 2009년 이 책이 나오면서 맨발 달리기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맨발로 달리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그러나 한번 달려본 사람은 열성적인 예찬자가 된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기원, 잘 달리는 법, 발의 운동역학과 건강, 그리고 신발산업에도 직결된 주제다. 2004년 마라톤에 입문해 풀코스를 15회 완주한 본지 기자가 맨발 달리기의 원리를 본격 탐구했다.

마라톤 마니아에게 세상 사람은 둘로 나뉜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이제 마라토너의 세계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신발을 신고 달리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맨발로 달리는 그룹이다.

맨발 마라토너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맨발 달리기가 시작된 미국에서도 숫자가 아직 수천 명에 머문다. 신발을 벗고 뛰는 사람들의 모임인 ‘베어풋 러너스 소사이어티(Barefoot Runners Society)’는 미국에서 2009년 11월에 발족했다. 발족 당시 680명으로 출발한 이 모임의 회원 수는 1년 뒤에 1345명으로 증가했다. 이 모임의 타마라 게르켄 회장은 “(9월 6일) 현재 회원이 3303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뉴욕 마라톤에는 모두 4만3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 가운데 맨발 러너가 몇 명이었는지는 집계되지 않았다. 그러나 맨발 러너의 수는 세 자리를 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 마라톤에 앞서 10월에 열린 제1회 뉴욕시티 맨발 달리기 대회 참석자의 수가 약 300명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일반인 마라토너 가운데 맨발 주자는 더 드물다. 간혹 맨발로 하프 코스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인물이 화제가 되지만, 일회성 관심에 그친다. 국내에는 현재 맨발 달리기 관련 모임이나 조직을 찾지 못했다.

맨발 달리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다. <러너스 월드> 같은 전문 월간지는 물론이고 <뉴욕타임스> 같은 종합 일간지에서도 맨발 달리기의 장단점을 짚어주는 기사를 종종 다룬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우리 몸은 맨발로 뛰도록 만들어졌나?(Are We Built to Run Barefoot?)’ 제하에 맨발 달리기와 신발 달리기를 비교했다.

맨발 달리기가 쟁점이 된 첫째 이유는 ‘발 벗고 뛰는’ 마라토너의 열정이다. 마라톤은 충성도가 높은 운동이다. 한번 빠진 사람은 놓아주지 않는다. 맨발 달리기는 중독성이 훨씬 더 강하다. 맨발로 지면을 박차며 달리는 쾌감을 한번 맛본 사람은 다시 신발을 신으려 하지 않는다. 신발을 내팽개친 러너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맨발 달리기를 전파하려고 열을 올린다. 달리기 예찬자가 “달리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말한다면, 맨발 달리기 열성파는 “맨발로 달리면 당신과 세상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타라후마라족의 샌들.

맨발의 마라토너들은 신발을 벗고 달리면 부상이 줄고 힘이 덜 든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런 실질적인 효험 외에 더 본질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맨발 달리기는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온 이래 터득한 생존 방법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우리 몸은 그저 달리기가 아닌 맨발로 달리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은 맨발로 달릴 때 자연 속의 한 개체인 자신을 만난다는 다소 철학적인 깨우침까지 제시한다.

맨발 달리기가 문제가 되는 다른 이유는 신발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래 달리는 데 신발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로울 뿐이고 건강하게 오래 달리려면 맨발로 땅을 디뎌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신발업체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신발업체는 그래서 대개 맨발 달리기의 위험을 경고하는 입장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유행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 맨발로 달릴 때와 비슷한 착지 조건을 제공하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본 투 런, 우리 몸은 달리도록 설계됐다

세계적으로 맨발 달리기 바람을 일으킨 인물은 크리스토퍼 맥두걸이다. 기자이자 작가인 맥두걸은 전설로 듣던 멕시코의 달리는 부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책 <본 투 런(Born to Run)>을 썼다.


▎울트라 마라토너 스콧 주렉(왼쪽)이 타라후마라족 주자와 달리고 있다.
타라후마라 부족은 멕시코 북부 험준한 산악지대인 코퍼 캐니언에 산다. 현재 인구는 약 6만 명으로 추산된다. 타라후마라족은 오래달리기에서 말을 능가하고, 사슴이 기진해 쓰러질 때까지 쫓아 잡는다는 전설의 주인공이었다. 타라후마라족은 스스로 ‘라라무리’, 즉 ‘달리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달리기를 즐기고 잘 달리는 능력을 자랑스러워하며 한번 달리면 48시간, 240km를 주파한다고 알려졌다. 타라후마라족은 42.195km를 뛰는 마라톤 대회도 출전했다는데, 결승점을 지난 그들의 반응은 “애걔, 오래 달린다더니, 고작 이걸로 끝난 거야?”라는 식이었다.

타라후마라족의 오래달리기 실력은 1990년대 중반에 실증됐다. 대회는 미국의 리드빌 울트라 마라톤이었다. 공식 이름이 ‘리드빌 트레일(Leadville Trail) 100’인 이 대회는 록키 산맥을 오르내리며 100마일(160km)을 달리는 시합이다. 콜로라도 주 리드빌 인근에서 열린다. 출발 후 30시간 내에 결승점에 들어와야 완주로 인정된다. 대개 참가자 중 절반 미만이 완주에 성공한다.

1992년 리드빌 트레일 100에는 290명이 출전했다. 타라후마라족 다섯 명이 처음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모두 완주를 못했다. 대회라는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엔 1, 2위와 5위를 차지했다. 1994년에도 후안이라는 이름의 타라후마라 남자가 17시간 30분에 완주하며 우승했다. 이전 기록을 25분 단축한 신기록이었다. 타라후마라족은 이 대회에서 우승 외에도 4, 5, 7, 10, 11위를 차지했다(달리기의 달인 타라후마라족도 이후엔 점차 전문적으로 훈련한 선수에게 밀린다. 현재 리드빌 트레일 100의 최고 기록은 매트 카펜터가 2005년에 세운 15시간 42분이다).

맥두걸이 주목한 부분은 타라후마라족의 발과 신발이었다. 타라후마라족은 그 먼 거리를 맨발로, 신는다고 해도 폐타이어 밑창과 가죽끈으로 직접 만든 샌들을 걸치고 뛰었다. 맥두걸이 신발을 벗어 던진 이유다. 그는 마라톤을 즐겼지만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햄스트링이 찢어지고 발목을 삐고 발바닥에도 탈이 났다. 그는 맨발로 달리면서 부상에서 벗어났다. 맥두걸은 “맨발로 달리는 순간 달리는 방법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발밑에 쿠션을 많이 넣으면 성큼성큼 뛰게 되고, 그러면 허리 아래쪽이 비틀리고 격렬하게 움직인다. 맨발로 달릴 때는 자세가 곧게 된다. 허리를 곧게 펴게 된다.”

맥두걸의 책 제목 <본 투 런>은 <네이처>가 2004년 11월 18일자 표지에 붙인 문구에서 따왔다. <네이처>가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논문은 ‘오래달리기와 인간의 진화(Endurance running and the evolution of Homo)’. 이 논문은 유타대학 생물학 교수인 데니스 브램블과 하버드대학에서 연구하는 인류학자 대니얼 리버먼이 공동 작성했다.

두 학자는 “호모 속을 다른 속과 구별하는 기준이 바로 오래달리기”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 교수는 “오래달리기는 호모 속이 현생 인류의 몸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전까지는 달리기를 인류의 진화와 연관 지은 연구가 거의 없었다. 달리기는 걷는 능력이 향상되면서 얻게 된 부산물로만 여겨졌다. 기존 연구는 인류가 달리면서 특별히 성취한 무엇이 없다고 봤다. 인류가 경주에서 이길 만한 네발 동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류는 원숭이보다 잘 달리게 됐지만 그 능력은 별 쓸모가 없었다는 게 기존 연구의 결론이었다.

여기서 잠깐 인류 진화의 계통도를 복습하고 넘어가자.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호모 속(Homo 屬)에 포함된다. 호모 속은 약 200만 년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

속 다음 분류 항목은 종(種)이다. 호모 속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 갈라졌다. 이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의 조상이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종으로 분류되다가 1950년대 이후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亞種)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졌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을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레시스로,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다시 명명하게 됐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최근에 하나 추가됐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면역유전학 연구팀은 현생 인류에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레시스의 유전자가 다양하게 분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호모 네안데르탈레시스는 멸종했다. 따라서 현생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레시스 등의 혼혈로 이뤄졌다고 추론된다.

두 학자는 인류는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오래달리기에는 능하며, 지속적으로 뛰는 데에는 다른 영장류는 물론이고 네발 동물보다 더 뛰어나다는 데 주목했다. 이들은 다른 연구 결과를 인용해 “사람이 매우 긴 거리에서는 간혹 말을 앞지르기도 한다”고 예를 들었다.

실제로 말과 사람의 경주에서 사람이 이긴 사례가 있다. 영국 웨일스의 한 마을에서 여인숙 주인과 여우 사냥꾼이 말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빠른지 논쟁이 붙었다. 여인숙 주인은 매우 긴 거리를 놓고 경주를 벌이면 사람이 이긴다고 주장했다. 말싸움이 경주로 이어졌다. 웨일스 지방에서는 1980년 이후 매년 ‘사람 대 말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기수를 태운 말과 사람으로 이뤄진 참가자들은 숲을 지나 산등성이 돌길을 넘어 황무지와 여울을 가로지르는 22마일(약 35km) 레이스를 벌인다. 사람팀은 말팀에 연전연패했다. 그러나 마침내 2004년에 처음으로 사람이 말을 앞질러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학자는 달리기가 걷기의 부산물이라는 기존 이론에 맞섰다. 걷다가 보니 달리게 됐다면 늦어도 440만 년 이전에 습관적으로 걷기 시작한 오스트랄로피테신의 후손에서도 달리는 종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신의 후예는 뛰지 않고 걷기만 했다.

달리는 종은 호모 속에서만 나타났다. 그리고 호모 속은 기존 영장류와 다른 신체 구조와 특질을 갖고 태어났다. 두 학자는 “화석을 살펴보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빌리스에서부터 달리는 데 도움이 될 신체를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걷기가 아니라 뛰기에 적합한 26가지 신체 부위

호모 속의 신체에서 걷는 데는 딱히 필요 없지만 오래달리기에 적합한 부분이 26가지나 있다고 두 학자는 주장했다. 우선 털이 빠지고 땀샘이 발달했다. 오래 달려서 체온이 올라가면 땀이 피부를 타고 흐르면서 몸을 식힌다. 반면 네발 동물은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사람만큼 오래 달리지 못한다.

달릴 때 착지 충격은 걷기보다 훨씬 크다. 달리기 착지는 몸무게의 2~3배 충격을 준다. 호모 속의 골격을 보면 척추와 엉덩이, 다리 관절의 직경이 크다. 상하 충격을 완화하는 데 적합한 구조다. 반면 상체의 관절에서는 이런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

원숭이와 오스트랄로피테신은 머리와 목이 어깨와 함께 움직인다. 이와 달리 초기 인류는 머리와 목이 어깨와 몸통으로부터 분리됐다. 그래서 달릴 때 몸통은 회전하지만 머리는 앞을 향하게 됐다. 또 사람은 두개골 뒷부분과 흉추를 연결하는 인대가 있어 달릴 때 충격을 흡수하게 한다.

달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아킬레스건과 발의 아치다. 오스트랄로피테신은 이 둘을 갖추지 못했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은 달릴 때 착지 충격을 완화한다. 나아가 몸이 땅에 부딪히는 힘을 스프링처럼 다시 몸에 되돌려준다. 이대택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는 “사람이 달리는 동안 발이 땅에 닿을 때는 몸에 저장된 일정량의 기계 에너지가 땅에 전달된다”며 “이렇게 땅에 전달된 에너지는 모두 소실되지 않고 아킬레스건과 장심을 통해 되돌아온다”고 설명한다. 발의 아치와 아킬레스건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캥거루가 통통 튀면서 근육을 덜 쓰고도 멀리 뛰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리버먼과 브램블은 논문에서 “인체의 이 두 스프링은 걸을 때엔 상대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지만 달릴 때면 신진대사 비용의 약 50%를 절감해준다”는 연구 결과를 전한다.


발의 아치는 뼈와 인대로 이뤄진다. 인대는 뼈와 뼈를 연결하는 조직이다. 건(腱)은 근육을 뼈에 붙이는 결합조직으로 ‘힘줄’로도 불린다. 근육은 수축해 힘을 내는 반면 인대와 건은 수축하지는 않고 늘어나는 힘에 저항하는 성질을 갖는다. 누르면 반발하는 스프링이 아니라 잡아당기면 다시 원상으로 돌아가는 스프링처럼 작동한다. 인대와 건은 늘리면 다시 수축하는 고무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킬레스건은 인체에서 가장 크고 강한 힘줄이다. 해부학에서는 종골건(踵骨腱)이라고 한다. 발 뒤꿈치뼈에 붙어 있고 장딴지근육으로 연결된다. 달릴 때 발 앞부분으로 착지하면 장딴지에 있는 비복근과 비목어근이 수축하면서 아킬레스건을 강하게 잡아당긴다. 당겨졌던 아킬레스건이 수축하면서 발은 땅을 치고 나가는 동작을 취하게 된다. 걸을 때는 달릴 때만큼 아킬레스건이 당겨지지 않고, 따라서 아킬레스건은 충격 흡수나 반발의 역할을 별로 하지 않는다.

사람은 왜 달리게 됐나

초기 인류는 오래 뛰게 됐다. 초기 인류가 자연에서 선택돼 현생 인류로 이어진 연유는 지속적 달리기가 생존에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리버먼과 브램블은 단백질을 섭취하기에 유리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들은 “지속적인 달리기는 초기 인류가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 잡거나 아니면 투척물을 던지기에 가까운 거리까지 사냥감을 추격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직접 사냥을 하지 않더라도 달리기를 통해 청소동물로서 단백질을 확보했으리라고 추측했다. 하늘에 독수리가 나는 모습을 보고 동물 시체의 위치를 짐작해 달려가면, 고기는 거의 맛보지 못하더라도 뼈 속에 남은 뇌와 골수는 섭취했을 거라는 말이다.

그렇게 힘들여 달리는 대신 창이나 활을 쓰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가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쏜 것은 달리기를 시작한 지 짧아도 수십만 년 뒤였다. 창은 20만 년 전에, 활은 2만 년 전에 발명됐다. 초기 인류는 기껏해야 돌을 깨뜨려 날을 세운 구석기를 손에 들고 사냥에 나섰다. 구석기로 사냥하려면 자신보다 빠른 동물이 지칠 때까지 추격전을 펴야 했다.

오래달리기와 단백질 섭취의 가설은 인류가 석기를 활용한 시기에 비추어볼 때에도 설득력을 지닌다. 최근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인류가 구석기를 활용한 시기가 176만 년 전으로 앞당겨졌다. 이전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석기는 160만 년 전에 제작됐다. 초기 인류는 구석기로 사냥해 고기를 먹거나, 사체의 두개골과 뼈를 돌도끼로 깨뜨려 그 속의 영양분을 섭취했다.

전문가들은 초기 인류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면서 뇌가 커졌다고 말한다. 인류의 뇌는 비슷한 포유류의 뇌에 비해 일곱 배가 될 때까지 자랐다. 성능도 좋아졌다. 몸무게에서 뇌가 차지하는 비중은 침팬지나 사람이나 2%로 비슷하다. 하지만 침팬지 뇌에는 몸이 쓰는 에너지의 9%가 들어가는 반면 사람 뇌에는 20%가 투입된다.

요즘도 원시 부족은 끈기 있게 달려서 사냥하지 않을까? 타라후마라족은 산악지대로 삶의 터전을 옮긴 탓에 전설을 재현하지 못하게 됐지만,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어딘가에서는 200만 년 전의 사냥 기술을 유지하는 부족이 있지 않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루이스 리벤버그는 추격 사냥을 경험했다. 그는 칼라하리 사막 부시맨과 함께 생활하면서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까지 사냥감을 쫓은 끝에 쓰러뜨리는 사냥을 목격했다. 리벤버그는 그 체험을 2001년에 낸 책 <트래킹의 예술:과학의 기원(The Art of Tracking:The Origin of Science)>에 담았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칼라하리 사막 부시맨이 얼룩영양(kudu)을 8시간 쫓은 끝에 사냥에 성공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일부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추격 사냥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초식동물인 사냥감은 대개 무리를 이룬다. 추격당하는 사냥감은 어떻게든 다시 무리 속에 들어가려고 한다. 무리 속으로 도망가 묻히면 사냥꾼의 눈을 따돌릴 수 있다. 포식자가 새로 한 놈을 정해 쫓다가는 사냥감보다 먼저 지쳐 쓰러진다.

추격 사냥에서 중요한 일은 사냥감이 무리에 다시 섞이지 못하게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여럿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또 서로 긴밀히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추격하던 개체가 수풀에 들어갔을 때엔 발자취를 보고 흔적을 찾아 사냥감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숨었는지 추론해야 한다. 사냥에 성공한 다음에는 돌도끼로 고기를 잘라 나눠 들고 거주지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부족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먹었으리라. 고기를 한껏 먹으면서, 그날 영양을 어떻게 추격했는지,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웠는지, 다음 사냥에서는 어떤 작전을 쓸지 이야기를 나누었으리라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초기 인류는 지능과 의사소통 능력을 키웠으리라 짐작된다(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불과 언어를 사용했으리라고 본다).


요즘 달리기는 발을 덜 써

수십만 년 동안 진화를 거친 현생 인류는 달리기에 적합한 몸으로 태어난다. ‘달리기에 적합한 26가지’는 ‘옵션’이 아니라 기본 사양이다. 그러나 좋은 설비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소용없다. 달리도록 타고났지만 대다수가 잘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발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발은 공학의 걸작이자 예술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두 발은 52개의 뼈로 이뤄져 있다. 우리 몸 전체 뼈 206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214개의 인대가 뼈를 지탱하고, 38개의 근육이 발을 움직인다.

발이 공학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달릴 때 몸무게의 최고 세 배에 이르는 충격을 흡수하면서 추진력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발이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한다는 얘기는 곧 아치와 아킬레스건을 쓴다는 말이다.

아치와 아킬레스건을 십분 활용하려면 발볼부터 착지해야 한다. 발볼이 닿아야 아치가 충격을 완충하며 탄력을 몸에 되돌려준다. 또 발볼부터 닿아야 장딴지근육 수축과 아킬레스건 신장(伸張)이 일어나면서 완충과 탄력 효과를 많이 거둘 수 있다.

맨발로 달리면 자연스럽게 발볼부터 디디게 된다. 뒤꿈치부터 착지하면 충격이 커서 오래 뛰지 못한다. 맨발 달리기 마니아들은 맨발로 달려 발볼로 착지하면 힘이 덜 든다는 연구 결과를 자주 거론한다. 대니얼 리버먼 하버드대학 교수 연구팀이 실험한 결과다. 뒤꿈치를 먼저 디디고 발 앞으로 넘어갈 때 몸은 두 차례에 나눠 충격을 받는다(그림 참조). 앞 충격은 뒤의 충격에 비해 매우 짧다. 뒤꿈치부터 디디면 몸이 순간 출렁거린 다음 본격적인 착지 충격을 받는다. 앞으로 추진력을 얻기에 불리하다. 반면 앞발 착지에서는 일시적인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출신 엘리트 마라토너는 상당수가 앞발로 착지한다. 마라톤 마니아로 해외 마라톤 전문 여행사인 ‘여행춘추’의 정동창 대표는 “아프리카 선수들을 유심히 보면 앞발부터 디딘다”고 말했다. 마라톤 국가대표로 달렸고 현재 마라톤동호회를 지도하는 한재호 감독은 “아프리카 선수는 어릴 때부터 맨발로 달려 이미 발이 단련된 데다 체중이 가볍고 근육의 탄력이 좋아 앞발 착지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한 감독은 “훈련 정도, 체중, 발의 탄력, 도로 상태 등 고려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어떤 방식이 좋은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하이힐 신고 달리기 대회가 열린다. 하이힐을 신으면 달릴 때는 물론 걸을 때도 앞발 착지를 해야 한다. 그러면 하이힐 걷기와 달리기는 발을 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이힐은 발을 건강하게 하기보다는 망가뜨리는 요인이 된다. 맨발로 달릴 때 앞발 착지가 발을 강하게 하는 건, 아치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힐을 신고 걷거나 달리면 하이힐의 뒤축이 높게 발을 받치기 때문에 아치가 쓰일 겨를이 없다. 아치가 약해지기 쉽다. 하이힐은 발의 아치 외에도 아킬레스건을 약하게 한다고 나타났다.

달리기 대회에 나가보면 중상급 주자일수록 중간발 이상 착지를 많이 한다. 그러나 이론서에서는 대부분 뒤꿈치 착지를 권한다. 기자가 참고한 책 중에서는 일본러닝학회가 펴낸 <건강달리기>만 앞발 착지의 장점을 소개했다. 이 책의 필자는 “장거리든 단거리든 좋은 주법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은 앞발 착지로 풀코스 기록을 15분 단축했다고 소개했다.

주법의 정석을 뒤꿈치 착지로 바꾼 요인은 현대인의 건강 상태와 주로(走路), 그리고 신발이다. 달리기는 고사하고 걷기도 충분히 하지 않아 과체중이면서 발이 약한 현대인에게 앞발 착지는 무리다. 운동이 부족하면 발의 아치가 약해지고 제구실을 못하게 된다. 김진수 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교수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발 인대의 유연성과 탄력이 떨어져 아치가 주저앉는다”고 설명한다.


▎아베베 비킬라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했다.

또 흙길이나 풀밭이 아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길에서 달리는 현대인은 신발을 신지 않으면 관절을 상하기 십상이다. 이런 현대인을 위해 신발회사는 러닝화의 밑창을 두툼하게 만들었다. 러닝화는 대개 뒷굽이 앞보다 1cm 이상 두껍게 덧대져 나온다. 이런 러닝화를 신고 달리면서 앞발 착지를 하기는 좀 불편하다.

뒤축이 두꺼운 러닝화의 더 큰 문제는 아치와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활용하는 데 제약을 준다는 점이다. 두 스프링이 잘 작동하도록 하려면 앞발로 착지하자마자 뒤꿈치를 땅에 닿는 동작으로 넘어가야 한다. 신발의 뒤축이 두꺼우면 앞발로 착지하더라도 다음 동작이 충실히 이뤄지지 않는다. 앞발 달리기의 효과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

안 신은 듯한 러닝화를 만들면 되지!

맨발 달리기 하면 떠올리는 걱정이 유리나 금속 조각에 발바닥을 다칠 위험이다. 달리기 이력이 붙어 군살은 빠지고 근육과 인대의 탄력이 강해져 맨발로 뛸 수 있게 된 사람도 대개 발바닥은 약하다.

신발 제조업체들은 신발을 벗고 싶어 하면서도 이를 주저하는 일반인 마라토너를 겨냥한 제품을 속속 출시했다. 맨발에 가까운 신발은 ‘미니멀리스트 슈즈’로 불린다. 이 틈새시장에 먼저 진입한 회사가 비브람이다. 비브람은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신발 밑창 회사로, 2005년에 발가락양말 같은 신발 ‘파이브 핑거스’를 출시했다. 파이브 핑거스는 원래는 요트 레이서가 착용하도록 제작됐다. 요트 레이서가 갑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면서도 맨발 느낌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비브람은 요트와 카약, 카누 등 수상 스포츠에서 달리기로 시장을 넓혀갔다.

뉴발란스는 8월 말 ‘미니머스’ 시리즈를 출시하고 “맨발에 가까운 기능을 강조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뉴발란스는 “전 세계 맨발 주자를 조사한 결과 맨발로 달릴 때는 주로 발가락이나 발의 중간 부분을 땅에 딛고 뒤꿈치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이런 습성을 반영해 지난 4년 동안 개발한 제품이 미니머스 시리즈라고 밝혔다. 미니머스 시리즈는 신발 앞부분과 뒤꿈치의 높이 차이를 줄여 최대한 맨발에 가까운 착용감을 제공한다고 이 회사는 설명했다.

맨발 달리기의 본질은 자연스러운 앞발 착지다. 모든 신발이 앞발 착지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맨발 주자를 관찰한 뉴발란스의 신제품 설명을 참고하자. 뉴발란스는 “맨발에 가까운 착용감을 제공하려고 신발 앞부분과 뒤꿈치의 높이 차이를 줄였다”고 밝혔다. 앞발 착지를 하겠다며 모든 신발을 버릴 필요는 없다. 뒤꿈치 부분이 너무 높지 않은 신발을 신으면 된다.

기자는 이를 참고해 중·고등학생이 학교에서 신는 합성수지 소재 실내화를 달리기 연습 신발로 택했다. 이 신발은 뒷부분 밑창 두께가 앞부분과 같다. 8월 15일 이후에는 주로 실내화를 신고 달리기 훈련에 임했다. 일주일에 50km 정도 달렸다. 트레드 밀에선 다소 뻑뻑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스팔트 주로를 달리는 데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었다. 발 인대와 종아리근육을 꾸준히 단련하면 올가을 마라톤에서 실내화를 신고 앞발 착지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 듯하다.

발은 제2의 심장이다

맨발 달리기와 앞발 착지가 좋은 이유는 잘 달릴 수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맨발 달리기와 앞발 착지는, 두꺼운 신발을 신고 뒤꿈치로 디디는 주법과 비교할 때 발을 더 제대로 쓴다. 발을 잘 움직이면 같은 시간을 달려도 운동 효과가 더 높다.

맨발 달리기와 앞발 착지의 효과는 발 마사지에 있다고 본다. 발을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발에는 30억 개의 모세혈관이 분포한다. 이는 우리 몸 전체 모세혈관의 60%를 차지한다. 김진수 을지병원 교수는 “발은 혈액순환 측면에서 펌프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심장이 뿜어낸 혈액이 다리를 거쳐 내려오면 발의 모세혈관이 이를 다시 되돌려준다. 발 마사지는 이 과정을 원활하게 한다. 맨발 달리기도 발바닥 지압 효과를 낸다.


조웅래 선양 회장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맨발 달리기 마니아다. 조 회장은 “맨발로 달린 다음엔 종아리와 발바닥의 혈액순환이 좋아지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맨발로 달리면 숙면을 취하게 되고, 여성은 피부가 고와진다”고 덧붙였다.

조 회장은 마라톤을 즐기다 맨발 달리기로 빠져들었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8회 완주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맨발로 걷고 달리기의 효과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고 대전 계족산에서 매년 맨발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계족산 순환로는 13km 거리의 흙길이다. 조 회장은 이 순환로를 “세 바퀴까지 맨발로 달려봤다”고 밝혔다.

기자가 체험한 결과, 맨발이 아니더라도 앞발로 디디며 달리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숙면 효과가 나타났다. 기자는 불면증은 아니지만 잠이 잘 들지 않는 가벼운 수면 장애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트레드 밀에서 앞발 착지로 달린 날은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미국의 맨발 달리기 예찬자들은 우리가 맨발로 돌아가는 것을 ‘재진화(再進化·re-evoluton)’라고 표현한다.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온 뒤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쳐 직립 주행에 성공했다.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리는 능력을 갖춘 종은 지적으로 다른 모든 종을 능가하는 성취를 보이며 번성해 현생 인류를 낳았다. 인류가 발을 두꺼운 신발로 감싼 시기는 지난 수십 년에 불과하다. 두꺼운 신발의 시대는 이전 수백만 년과 비교하면 찰나일 뿐이다.

맨발 마라토너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소수파에 머무를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가 앞으로 걸어갈 긴 시간을 놓고 보면, 그 상당 기간도 순간일 수 있다.

201110호 (20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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