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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기다리는 德將 리더십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쾌거 일구며 한국축구의 미래 짊어질 지도자로 우뚝… 최고 지도자로 입신하기까지 그는 어떤 콘텐트와 자질을 연마해왔나 

기영노



‘만사홍통’ 언제부터인가 축구계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축구계에서 홍명보가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홍명보는 한국 축구계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4개 대회 연속 출전기록을 갖고 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약관 스무 살 나이에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수비수이면서도 스페인전과 미국전에서 통쾌한 장거리 슛을 2골이나 성공시켰다.

홍명보는 미국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계에서 자신의 비중을 높였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홍명보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대회였다. 한국은 멕시코와 첫 경기에서 1대 3으로 역전패를 당했고, 네덜란드와 두 번째 경기에서 0대 5로 참패했다.두 경기에서 8골을 허용하기까지는 대표팀의 최후방 수비수인 홍명보의 플레이에도 잘못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네덜란드전 직후에 했던 “감독의 전술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이 기자들에게 포착돼 파문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그 말은 조별예선 연패로 비난에 시달리던 차범근 당시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고, 차 감독은 월드컵 축구 사상 처음으로 대회 도중 해임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후 선수 홍명보의 말에 힘이 실린 또 한번의 ‘사건’이 있었다. 2002 한일월드컵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 한국은 박지성 선수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1대 0으로 이겨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16강을 확정지었다.

선수시절부터 예정된 지도자의 길

축제 분위기의 라커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직접 라커룸을 찾았다. 이때 홍명보 선수가 주장으로 김 대통령에게 중대한 건의를 했다.“대통령님! 16강 진출 선물로 우리 선수들에게 병역면제혜택을 고려해 주십시오.” 홍명보 선수가 축구계 고위층과 사전교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홍 선수의 깜짝 제의에 김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것을 약속했고,


결국 대표 선수들은 병역면제 혜택을 받았다.

당시 홍명보 자신은 이미 병역 문제를 해결해놓은 상태였다. 후배들을 위해 대통령에게 읍소한 것이다.2002 한일월드컵은 홍명보가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골을 성공시킴으로서 불멸의 기록인 4강에 올랐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오르는 데 홍명보가 스페인에 피니시블로를 날린 셈이어서 그 후 국내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홍명보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더구나 홍명보는 그 대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브론즈상’을 받아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을 능가하는 위치에 올랐다. 홍명보는 일본 프로축구 벨마레 히라츠카 팀에서 외국 선수임에도 주장을 맡아 리더십을 과시했고, 선수시절의 마지막을 미국 프로축구 LA 갤럭시팀에서 보내, 일어와 함께 영어까지 구사하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면모까지 갖추게 됐다.

홍명보는 선수생활을 끝내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딕 아드보카드 감독 밑에서 코치로 참여하면서 지도자수업을 쌓았다. 아드보카드 감독 밑에 홍명보 코치를 둠으로써 그의 카리스마를 활용해보자는 의미였다. 결과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본선에서도 나름대로 선전해 홍명보의 코치 발탁은 성공한 셈이 됐다.이후 홍명보는 2009년 2월, 이집트에서 벌어진 20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 선수권대회에 8강에 오르면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했다.

홍명보는 각 소속 팀은 물론 국가대표 팀에서도 이회택(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김호(1994년 미국월드컵), 차범근(1998년 프랑스월드컵), 거스 히딩크(2002년 한일월드컵) 감독으로부터 그들의 장·단점을 분석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냈다. 그 사이 그는 축구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었고,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 자선축구대회를 개최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전·현 국가대표 선수들이 총망라되는 ‘자선 축구대회’는 홍명보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행사였다. ‘만사홍통’이라는 별명은 이때 붙여졌다.홍명보 감독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한 선수경력과 과묵한 성격 그리고 해박한 축구이론이 한국 축구역사를 바꿔놓는 ‘올림픽 동메달’을 가능케 했다. 그렇다면 올림픽 동메달의 신화를 창조한 ‘홍명보식 지도력’은 어떤 것일까?

공정했다▶선수 선발에 오직 실력 우선

홍명보 감독이 기성용 등 15명과 와일드카드 3명(정성룡·김창수·박주영)을 포함해서 18명의 올림픽 축구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을 때 축구계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축구지도자들의 성향에 따라 몇 명은 바뀔 수 있지만, 누가 봐도 공정한 선발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월드컵 축구 대표는 23명, 올림픽 축구 대표는 18명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개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뽑을 때 1~2명 심지어 2~3명 정도는 베스트 멤버에서 약간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포함되는 경우가 있었다.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대표에 뽑힌 선수조차도 사기가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런던올림픽을 위해 3년여 동안 크고 작은 대회 출전, 평가전, 훈련 등을 통해 국내 축구계에서 선발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들을 모았다. 홍명보는 선수 선발뿐만 아니라 ‘베스트 11 선정’, 교체멤버까지 이름이 아니라 실력과 그날의 컨디션을 본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11년 11월 27일 런던올림픽 A조 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경기에는 마침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경기를 마치고 4명의 국가대표선수가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홍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 가운데

중앙수비수 홍정호만 스타팅 멤버에 기용했을 뿐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 ‘독도 사건’으로 더 유명해진 박종우는 “선수들이 그때 국가대표 출신 선수 가운데 홍정호만 기용하는 것을 보고 홍 감독님이 국가대표 출신이라 해서 무조건 선호하는 게 아니라 실력과 당일 컨디션을 보고 스타팅 멤버를 정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런던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국내 축구계에서 선발할 수 있는 최고 멤버였다. 만약 다른 감독이 선발했더라도 한두 명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치밀했다▶몇 수 앞을 내다보는 용의주도함

홍명보는 2009년,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당시축구계에서는 프로팀은 물론 아마추어팀 감독을 맡은 경력도 없는 그가 제대로 팀을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호를 달았다.그러나 홍 감독은 20세 이하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8강에 올라 녹록지 않은 지도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는 23세 이하 팀이아니라 21세 이하 팀으로 꾸렸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이 아니라 2012년 런던올림픽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 팀보다 평균연령이 두 살이나 적은 팀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었다. 동메달에 그쳤다. 이란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처음에 1대 3으로 끌려가다가 4대 3으로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뒀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치자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최종목표인 홍 감독은 갖가지 비난에 귀를 막았다.

홍 감독의 축구는 수비수 출신답게 수비를 안정시킨후 공격을 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축구가 그동안 큰 대회에서 실패한 것은 골 결정력 등 공격력 열세도 무시할 수없지만, 수비의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먼저 수비 조직력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그래서 홍명보 팀에는 미드필더나 공격수보다는 수비 자원이 풍부했다.런던올림픽 직전에 중앙수비수 홍정호 선수가 부상을 당해 이정수 선수를 와일드카드로 해서 공백을 메우려했으나 소속팀 반대로 황석호 선수를 발탁했다. 올림픽본선에서는 김창수가 부상당했을 때 오재석 등을 투입해 전력누수가 별로 없었던 것이 잘 증명해준다.

홍 감독은 런던올림픽에서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이 어려우리란 것을 감지했다. 브라질과의 실력차가 문제가아니라, 국제 축구계의 흐름 즉 멕시코가 결승전에 올라간 마당에 국제축구연맹(FIFA)이 한국 대 멕시코의 결승전보다는 브라질 대 멕시코의 결승전을 바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브라질전에서에서 박종우와 박주영을 스타팅 멤버에서 뺀 이유다. 두 선수 모두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 매우 중요한 선수들이었다. 후반 중반에 박주영을 교체 투입시킨 것은 경기 감각을 이어가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브라질 전에서 먼저 2골을 내주자 구자철을 빼고 정우영을 투입했다.

홍 감독의 예상대로 심판들은 전반 14분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브라질 수비수가 지동원의 머리를 걷어찼는데도 페널티킥을 주지 않았고, 후반 3분경 김보경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명백하게 발 태클에 걸려 넘어졌을 때도 주심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BBC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출신 가스 크룩의 기고를 통해 올림픽이 끝난 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16개 팀 축구선수 가운데 베스트 11’을 뽑으면서 아시아 선수 가운데 김보경만 오른쪽 미드필더로 뽑았다. 가스 크룩은 김보경이 브라질전에서 페널티킥을 얻었더라면 경기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홍 감독이 일본전에 대비해서 준비한 박주영과 구자철은 각각 결승골과 쐐기골을 터트렸고, 박종우는 미드필드에서 일본이 자랑하는 패싱게임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했다.이상윤 천안일화 여자축구단 감독은 홍 감독의 치밀함을 이렇게 설명했다.“그는 바둑으로 치면 몇 수를 내다보는 고수다. 현역 시절에 스피드는 없었지만 상대 공격수의 플레이를 미리 예측하고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명스위퍼 소리를 들은 것이다. 감독으로서도 선수 선발, 훈련, 대회




의리감▶두 차례나 국가대표 감독 요구 물리쳐

사실 의리는 축구세계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가치 있는 덕목이다.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 원정월드컵 최초로 16강을 이룬 허정무 감독이 사퇴하자 대한축구협회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감독 1순위로 홍 감독을 내정해 놓고 접촉에 나섰다.홍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 감독 제의를 거절하자, 대한축구협회 모 간부는 ‘삼고초려’ 전략을 썼다. 그러나 그때마다 홍 감독의 대답은 똑같았다. “내가


월드컵 대표 감독으로 가면 우리 선수(올림픽 대표)와 약속을 어기게 된다.나는 런던올림픽에 우리 선수들과 함께 간다.”

몇 년 전, 모 프로축구 팀과 계약한 감독이 올림픽 대표 감독으로 부르자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인 불과 17일 만에 소속 팀과 선수들을 배반(?)하고 떠났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홍 감독은 올림픽 대표선수들과 런던까지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축구계의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인 월드컵 축구대표팀 감독을 마다한 것이다.

이후 조광래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와의 갈등으로 물러난 후에도 홍 감독은 맘만 먹으면 조 감독이 물러나 무주공산이 된 월드컵 후임 감독이 될 것이 확실했지만, 그때도 월드컵 대표팀 감독 자리를 고사했다. 역시 선수들과 함께 런던올림픽까지 가겠다는 약속이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 주장 구자철이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 멤버에서 탈락해 실의에 빠지자 가장 먼저 손길을 내민 것도 홍 감독이었다. 구자철은친구 기성용이 월드컵 대표팀에서도 주축선수로 자리를 잡았고, 자신은 생애 최초 월드컵 본선무대에 설 자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축구라는 말조차입에 올리기 싫었다. 홍 감독은 “너는 우리나라 최고 선수가 될 수 있다, 나와 함께 아시안게임(2010 광저우)에 가자”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구자철은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주장으로 팀을 잘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쐐기 골을 터트려 홍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런던올림픽을 2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2012년 6월 13일 신문로 대한축구협회 사무실. 그날 박주영 선수의 기자회견은 감동적이었다.당시 박주영은 ‘모나코 10년 영주권’으로 병역 기피설이 나도는 등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홍 감독은 박주영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와서 “만약 주영이가 군에 안 가면 내가 대신 가겠다”며 그를 감쌌다. 감독이 이쯤 나오면 선수는 그야말로 목숨 바쳐 뛰게 마련이다.

올림픽 본선에서 박주영은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선제골,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결승골을 터트렸다. 특히 일본전에서 나온 결승골은 하프라인 넘자마자 볼을 잡아 일본 수비수 4명을 제치고 터트린 ‘한국 축구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이었다.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홍 감독의 의리는 수평적 리더십의 산물이다. 평소 팀 전체가 에이스, 가족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직관력▶탁월한 국제감각, 세계 축구계의 흐름 읽어

홍명보 감독은 런던올림픽에서 영국전을 치르면서 직관적으로 깨달았다.FIFA가 런던올림픽에서 영국·브라질 등 축구 명가들의 메달 다툼을 바란다는 것을 말이다. 2002 한일월드컵 때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세계 축구계 분위기는 한국과 터키가 4강에 올랐지만 ‘기적’은 거기까지고,결승전은 결국 유럽과 남미 축구의 맹주 독일과 브라질이 갖게 되리라는 설이 나돌았었는데, 그대로 됐다. 심판들은 보통 페널티킥으로 장난을 한다.프리킥으로도 골을 만드는 경우가 있지만, 페널티킥을 허용하면 거의 8할은골을 넣거나 허용한다. 그래서 프리킥은 공정하게 보고 결정적인 페널티킥은 불공정하게 보는 것이다.

홍 감독은 심판이 영국과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두 차례나 주는 것을 보고 설사 이기더라도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영국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브라질을 만나게 되는데, 심판들이 브라질전을 공평하게 볼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영국전에서도 정성룡 골키퍼가 2개의 페널티 킥 가운데 한 개를 막아 승부를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가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브라질전에서 전반전 지동원, 후반전 김보경 등이 2개의 페널티 킥을 얻지 못한 것까지 홍 감독은 영국과 브라질과의 2연전에서 4골을 손해봐야했다. 하석주 전남드래곤스 감독은 “홍 감독이 4번의 월드컵 출전, 국내 프로축구와 일본과 미국 프로축구 선수 경험 그리고 외국 축구서적과 빅클럽팀들의 축구 비디오를 보면서 꾸준히 노력해 세계적인 축구 흐름을 놓치지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용병술▶상대팀의 허를 찌르는 선수 기용

축구 감독은 선수 선발, 훈련, 스타팅 멤버 구성, 교체선수 활용 등을 통해서 지도력이 드러난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2012년 2월 22일 오만에서 벌어진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5차전에서 홈팀 오만을 3대 0으로 꺾음으로써 런던행을 확정지었다.홍명보 감독은 오만과 5차전을 앞두고 남태희를 선발했다. 그때 남태희는 프랑스 발랑시엔 팀에서 카타르 레퀴야 팀으로 막 이적을 마친 상태였다. 그는 2009년 홍명보호에 잠시 승선한 적은 있었지만, 올림픽호에는 부름을 받지 못하던 차였다. 그런데 홍 감독은 남태희를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시키자마자 선발로 오만과의 경기에 내보낸 것이다.

남태희는 홍 감독의 발탁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경기시작 1분이 채 되지 않아 기선을 제압하는 선제골을 터트렸다. 홍 감독은 1대 0으로 불안하게 앞서던 후반 20분경,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잘 뛰고 있는 남태희를 빼고 백성동을 투입했다. 그런데 이번엔 백성동이 들어간지 7분 만에 사고를 쳤다. 백성동이 후반 27분경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을 터트린 것이다.




홍 감독의 선견지명은 올림픽 본선에서도 나타났다.런던올림픽 영국과의 8강전. 홍 감독은 멕시코·스위스·가봉과의 3경기에서 보이지 않았던 지동원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동원은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 팀에서 벤치신세를 면치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홍 감독은 지동원을 선발로 내세우면서 “영국에서 1년 동안 있으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해서 마음의 상처가 컷을 것이다. 오늘 영국인들 앞에서 네 기량을 마음껏 펼쳐봐라”고 말했다.

그날 경기는 한국축구로서도 사상 처음 ‘올림픽 4강’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지만, 축구 종주국 영국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런던올림픽 성패의 명운이 걸린 한판승부였다. 한국과의 8강전을 갖기 전에 영국 언론들은 한국 팀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이긴다고 보고 4강에서 만날 브라질전을 염려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영국의 피어스 감독은 “한국 팀이 까다롭게 축구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는 선수는 없다”고 얕보는 듯한 발언을 했다. 프리미어리그에 몸담은 박주영(아스널)·지동원(선덜랜드)을 아예 깔아뭉갠 것이다.

지동원은 자신을 선발로 기용한 홍명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쳤다. 박주영과 수시로 위치를 바꾸며 영국 수비진을 공략했다. 후방에서 동료들이 강한 압박으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어 공격을 풀어나가기 수월했다. 지동원은 전반 14분 페널티아크 중앙에서 날카로운 왼발 터닝 슈팅으로 그날 경기의 첫 번째 유효 슈팅을 기록하는 등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다. 운명의 전반 29분, 지동원은 축구 종가의 자부심에 흠집을 내는 멋진 선제골을 터뜨리며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을 정적에 휩싸이게 했다. 한준희 KBS축구 해설위원은 영국전 지동원의 선발 기용을 ‘신의 한 수’였다고 극찬했다.

박태하 FC서울 수석코치도 “홍 감독이 20세 이하 대표, 올림픽 축구대표 팀을 맡는다고 했을 때 국내 축구인들은 ‘온실 속의 화초’가 얼마나 버티는가 보자는 분위기였다”면서 “그러나 20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대회 8강,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로 홍 감독의 지도력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가 승승장구 행운 불렀다

흔히 올림픽 메달은 ‘기칠운삼’이라고 한다. 실력과 함께 반드시 운이 따라주어야 메달을 딸 수 있다는 얘기다. 홍 감독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남자 유도 81kg급에서 금메달을 딴 김재범 선수의 어록을 들려줬다.“김재범 선수가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죽기살기로 했더니 은메달을 땄지만,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죽기로 해서 금메달을 땄다고 한다. 우리도 일본과의 경기에서 죽자. 죽기로 뛰자.”홍 감독의 올림픽 동메달에는 선수들의 정신무장도 작용했지만 운도 따랐다. 그는 영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무승부’를 염두에 뒀다.

토너먼트 경기에서 무승부라는 것은 승부차기를 의미한다. 홍 감독은 영국과의 경기에서 정성룡 골키퍼 대신 승부차기에 강한 이범영 골키퍼 투입시기를 계산하고 있었다. 만약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면 연장 후반 5분 전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성룡 골키퍼가 후반 9분께 영국 팀의 미카 리처드와 강하게 충돌하며 부상을 입고 말았다. 홍 감독은 정성룡 골키퍼를 이범영 골키퍼로 교체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이범영은 승부차기에서 영국 팀 스터리지의 킥을 막아 한국 팀을 준결승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범영 골키퍼는 브라질전에서 3골을 허용했다. 두 번째 골은 어쩔 수 없는 골이라고 하더라도 첫 번째와 세 번째 골은 위치 선정만 좋았다면 막을 수도 있는골이었다.홍 감독으로서는 왼쪽 어깨를 다친 정성룡 선수가 절실했는데, 정성룡은 마지막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홍 감독을 위해 다친 지사흘 만에 부활한 것이다. 정성룡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수차례 위기를 막아내며 무실점 방어를 했다.

홍명보 감독 밑에서 런던올림픽 축구대표 팀 수석코치를 지낸 서정원 FC서울 수석코치는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조 편성에서 카타르·사우디·오만과 한 조가 되었을 때 각 매스컴에서는 중동팀과 한조가 돼서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홍 감독은 일본과 중동팀에는 강한 자신의 행운을 굳게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홍 감독의 운은 ‘올림픽 동메달’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최강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삼고초려’ 끝에 국가대표 축구팀을 맡으면서 “나의 임무는 브라질 월드컵 본선진출까지”라고 못박았다.

국가대표 축구팀을 월드컵 본선까지만 이끌어 놓고 자신의 고향(전북 현대)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이 끝나고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되면, 홍명보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대표 감독 1순위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그가 ‘만사홍통’이란 말을 듣는 까닭은 실력과 함께 운이 따라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 감독에게 계속해서 운이 따르는 것은 그만큼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할 때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정신적·전략적 준비를 거듭했던 것이다

201209호 (201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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