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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 죽음을 향한 질주? 철로 위의 ‘고독사’ 

 

백승아 월간중앙 기자
최근 1년 새 지하철 기관사 4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료 기관사들은 지하철 내 잦은 사상 사고와 1인 승무의 부담이 집단적 공황증세를 부른다고 주장한다.

▎각종 안전사고의 부담을 혼자서 떠안아야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은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에 노출될 위험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1년 새에 잇따라 발생한 기관사들의 자살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장, 본부장, 운전팀장 어느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개인의 개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 저는 도시철도 기관사로 1995년 입사한 17년 차 기관사이며, 6호선에서만 12년째 근무하는 연봉 5천 만원의 배부른 정규직입니다. 하지만 오늘이 6호선 근무 마지막 날입니다. (…) ○○○ 사장님, ○○○ 총괄차장님, ○○○ 본부장님! 기관사들 좀 그만 죽이세요.”

지난해 4월 6일 오후 지하철 6호선 월곡역. 한 남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승강장과 열차 내부에 울려퍼졌다. 일순 시끌벅적하던 주위에 침묵이 감돌았다. 남성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승객들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울음 섞인 음성의 주인공은 열차 맨 앞칸에서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였다. 3월 12일 왕십리역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고(故) 이재민 기관사에 대한 사측의 산재처리가 차일 피일 미뤄지자 이에 부당함을 느낀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20일 넘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고, 기관사의 죽음을 무책임하게 바라만보고 있는 사측의 행태를 토로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방송은 5분 동안이나 지속됐다. 그 탓에 열차 운행이 한동안 지연됐지만, 거기에 항의하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이날 트위터 상에는 그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물 어린 호소도 기관사들의 자살행렬은 막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11일 박모(48) 씨가 지하철 선로에 뛰어든 데 이어 그로부터 6월 23일 최모(46) 씨가 자신의 집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올 들어 1월 19일에는, 6호선을 운행하던 황선웅(40) 기관사가 “출근을 하러 간다”고 가족들에게 인사를 남긴 뒤 자신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최근 1년 새에 4명의 기관사가 차례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특히 이번 황선웅 기관사의 선택은 사측은 물론 동료 기관사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황씨는 평소 기관사를 자신의 ‘천직’이라 말할 만큼 본인의 업무에 누구보다 만족감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6호선 기관사로만 15년을 일해온 그는 25만㎞를 달리는 동안 단 한번의 사고도 내지 않은 공로를 인정받아 운행 표창까지 받은 ‘베테랑 기관사’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천직을 버리고, 돌연 세상을 등졌으니 가족이나 동료들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 아내와 9살, 5살, 생후 7개월 된 아이들을 남겨두고서 말이다. 그가 숨진 1월 19일은 마침 첫째 아이의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공황장애’에 떠는 기관사들

황씨의 유족과 노조측은 그의 자살이 평소 그가 앓아온 공황장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운전하던 열차 문틈에 한 여성 승객의 핸드백이 끼인 사고가 발생한 뒤부터 황씨의 건강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는 것이다. 사람을 기피하거나 휴대폰을 수시로 열어보는 등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것은 물론 누구보다 열차 타는 것을 즐겼던 그가 그 이후부터는 “회사 가는 게 너무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서울 수색승무관리소에서 일한 동료 기관사는 사고 전과 사고 후의 황씨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기억한다. “평소 성실하고, 가정적이기로 유명했던 사람이 그날 이후로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됐어요. 나중에는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등의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도 힘들어 할 정도였죠.”

그 사고 이후 황 기관사는 병원에서 ‘스트레스성 장애진단’을 받고, 최근까지 병원을 다니며 신경안정제 등의 약물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공황장애’였다.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으로, 일반적으로 극도의 공포심을 동반한다.

지난해 3월과 6월에 자살한 기관사들도 황씨와 비슷한 정신 불안 증세를 보인 것으로 확인된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들에 앞서 2003년 8월 자살한 기관사 서모(36) 씨와 임모(35) 씨 역시 공황장애 증세를 호소했다. 이들이 공황장애 등의 정신불안증세를 보이게 된 데에도 운행 중 겪은 ‘사고’가 발단이 됐다. 김태훈 도시철도공사노동조합 승무본부장은 “이제껏 숨진 기관사 모두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끼임 사고 등의 경미한 사고부터 사상사고까지 한 번이라도 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들은 다음 운행시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늘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 열차가 출발하게 되면 그 이후의 상황을 기관사는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열차를 출발하기 전에는 늘 불안한 생각을 하죠.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 말입니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홀로 달려야 하는데서 오는 외로움은 기본이고, 열차를 정해진 시간에 정차하고 출발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기관사는 항상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요. 언제 비상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말예요.”

실제 열차 운행 중에 사고를 체험한 기관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2007년 9월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정신보건 임시 건강진단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경험에 관한 설문 응답자 827명 중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한 기관사는 32%에 해당하는 265명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자신의 실수나 기계 문제로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기관사도 31.2%나 됐다.


같은 해 가톨릭대성모병원이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961명 중 836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임시건강진단을 한 결과 기관사의 공황장애 유병률은 일반인의 무려 7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흥준 고려대 노동연구소 연구위원은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기관사들은 일반인에 비해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기관사들의 업무가 실제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1인 승무제’라는 힘겨운 ‘멍에’

문제는 이러한 사실이 조사를 통해 드러났음에도 사측이 정작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는 모든 책임을 기관사 한 명에게 묻는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만난 기관사들은 사고 자체가 가져다주는 트라우마도 크지만,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불안증세를 가중시킨다고 설명했다.

기관사 유명진(가명·42) 씨는 “사상 사고를 경험한 동료 중에는 마치 기관사를 가해자처럼 몰아가는 회사의 태도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가령 기관사가 철로 위로 뛰어든 승객을 치어 사상사고를 냈을 경우에도 사측은 기관사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문책하고, 기관사의 자질을 운운하면서 ‘승무 부적합자’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달리는 열차를 향해 뛰어드는 승객을 어떤 수로 피하겠어요? 어떻게 보면 기관사도 피해자죠. 한데 회사는 모든 책임을 기관사 1명에게 묻는 거예요. 실적을 깎으면서 말입니다.”

기관사들에 따르면 사상사고가 발생하면 기관사는 5분 안에 사고를 수습해야 한다고 한다. 승객이 열차에 깔려 사망했을 시에도, 시신을 수습하는 건 해당 기관사의 몫이다. 수습 후에도 열차운행에 차질이 없도록 곧바로 열차를 운전해야 한다. 해당 기관사는 주어진 운행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휴식을 취하고, 본부에 사고 경위를 보고할 수 있다.

사상사고가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관사들에게 주어지는 휴식 일수는 달랑 3일뿐이라고 한다. 한 산업의학과 전문의는 “시신이 찢긴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도 곧바로 운전을 계속해야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면서 “이러한 부담감이 기관사들의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지하철은 서울메트로가 1~4호선을, 서울도시철도공사가 5~8호선을 운영한다. 한데 공교롭게도 이제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관사들은 모두 5~8호선을 운행하는 도시철도공사 소속이다. 유독 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들이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도시철도공사가 시행 중인 ‘1인 승무제도’를 지목한다. 한인임 한국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기관사 1명이 열차의 운행부터 민원처리, 사고의 위험성까지 모두 떠안아야 하는 ‘1인 승무제’는 기관사에게 큰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1인 승무제도는 자동화시스템을 이용해 기관사 1명이 열차의 운행을 책임지는 제도로, 인력비 절감 등의 차원에서 일부 철도노선과 도시철도공사 지하철 5~8호선에 도입되었다.

1인 승무제 아래서 기관사 한 사람이 떠안아야 할 업무는 많을 수밖에 없다. CCTV로 열차 내부 상황을 살피는 것은 물론 승객의 민원이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해야 하고, 정확한 시간에 정차하고 출발하고 문을 열었다 닫는 일 등 열차가 운행되는 동안 챙겨야 할 사항이 만만치 않다.

특히 사고가 나면 이를 수습하고 책임지는 일까지도 기관사의 몫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길게는 8칸이나 되는 열차를 기관사 혼자서 책임져야 하니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루 평균 5~8호선을 이용한 승객들은 273만2997명. 이들을 수송하는 도시철도공사 기관사는 900명으로, 즉 도시철도공사 기관사들은 한 명당 3000명이 넘는 승객을 책임진다.

1인 승무제는 사고를 유발시킬 확률이 높다. 2006년 당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현 국토해양부) 소속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감에서 “1인 승무는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말하며 1인 승무제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인




‘수동운전’이 노동강도 높인다

기관사들의 업무 부담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시철도공사가 시행하는 수동운전도 기관사들을 옥죄는 요인이 된다. 본래 1인 승무제 아래에서는 자동운전을 하는 게 원칙이지만, 도시철도공사는 3년 전부터 1인 승무제 체제 아래서도 ‘수동운전’을 실시하고 있다.

자동운전을 고집하는 기관사에 한해서는 자동운전을 허용한다는 방침이지만, 말만 자율일 뿐 거의 반강제적이어서 아주 소수의 기관사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기관사들이 수동운전을 한다고 기관사들은 증언한다.

김태훈 승무본부장은 “1인 승무에 수동운전을 하면 노동 강도가 배가된다”면서 “지난해 3월 숨진 고 이재민 기관사나 얼마 전 숨진 고 황선웅 기관사도 평소 ‘수동운전’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사측은 수동운전의 도입 배경을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부 기관사의 설명이 다르다.

사측이 수동운전을 고집하는 이유는 “조직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국토해양부와 행정안전부는 물론 서울시의회가 수 차례 “수동운전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음에도 수동운전을 요구하는 건 수동운전이 그만큼 기관사 개인의 실적을 매기기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노조측은 설명한다.

현재 도시철도공사는 기관사의 근무방식을 9조 5교대 방식을 택하고 있다. 9개 조로 나눠 PL이라 불리는 소장을 두고, 조별로 열차정리업무 및 운용 실적을 관리한다. 기관사들의 사고 경력 등의 개인 실적도 조별 점수로 합산된다. 기관사들끼리의 경쟁구도를 형성해 효율적으로 조직을 관리하겠다는 계산이다. 정흥준 연구위원은 “조별 관리시스템은 경영자 입장에선 관리가 용이하지만, 개별 기관사들에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관사의 업무특성상 본인이 열차를 타지 못하게 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열차를 타야 열차 운행이 원활히 유지된다. 즉 기관사가 아프거나, 비상상황이 벌어지면 이를 대체할 기관사가 필요한 셈이다. 한데 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대기 기관사가 부족한 탓에 병가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다.

2010년 도시철도공사 소속별 정원 및 운전시간 조사에 따르면 기관사들의 하루 평균 운행 시간은 4시간42분으로, 노동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비상시 대체인력이 없어 아프거나, 사고가 났을 때에도 해당 기관사들은 운행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상식적으로는 열차 운행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운행을 떠맡아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실제 지난해 3월 한 사무소에서는 대기 기관사가 부족해 암 수술을 하루 앞둔 기관사마저 본선운전에 투입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부상을 당한 기관사가 운전에 투입된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관사는 “3년 전에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한 기관사와 팔이 부러진 기관사를 한동안 함께 운전하도록 했다”면서 “그게 도시철도공사 최초의 ‘2인 승무제’였다”고 설명했다.

“씁쓸하죠. 수술을 앞둔 환자까지 운전을 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기관사의 운전은 곧 승객들의 안전으로 이어지는 건데, 그러다가 사고가 나면 또 기관사 책임이니 아무리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기관사들이 ‘힘들다’ 말을 못하는 겁니다.”

기관사들은 1인 승무제나 수동운전 등의 열악한 업무환경을 시정해 달라고 오랫동안 사측에 제기해왔다. 사측은 2명의 기관사 자살사건이 일어난 뒤 2003년 산업안전공단과 함께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실태를 조사했고, 2007년 가톨릭대성모병원에 의뢰해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임시건강진단을 실시했다. 961명의 기관사 중 836명을 검진한 결과 71명의 기관사가 우울증·강박장애·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공황장애·불안장애 등으로 고통 받고 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처우 개선 위한 대책마련 시급

‘형식적인 조사’에 그쳤을 뿐 근본적인 대책 마련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2007년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 판정을 받은 71명 중 일부 기관사는 2010년 서울시의 퇴출제도시행에 따라 ‘업무부적격자’로 분류돼 서비스단으로 인사발령이 나는 불이익을 겪었다. ‘직무재교육’이란 이름으로 실시됐지만 사실상의 퇴출프로그램으로 당시 승무 부적격자로 분류된 기관사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정신질환을 겪는 기관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이들을 부적격자로 낙인 찍어 퇴출시킨 셈이다. 당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아 사측은 퇴출됐던 기관사들은 8개월 만에 복귀시켰지만, 이 일을 계기로 기관사들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해 3명의 기관사가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사측은 지난해 7월 ‘최적근무위원회’를 꾸려 기관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온 ‘1인 승무제’ 및 기관사들의 정신건강 문제 개선방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또다시 지난 1월 19일 또 한 명의 기관사가 목숨을 끊는 사고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기관사들의 열악한 업무 개선을 위한 대책을 서둘러서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한인임 한국노동환경연구소 연구원은 “업무특성상 상시 긴장된 근무환경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와 비슷한 시스템을 가진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이 노선에 따라 1인 승무제와 2인 승무제를 함께 운용하는데, 1인 승무제를 실시할 경우 자동운전과 사령실 직접방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와 같이 기관사 1인이 열차 내 방송부터 승객의 민원처리, 운행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환경이 아닌 기관사는 오로지 열차 운행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민원처리와 방송, 열차 모니터링도 사령실에서 담당하며 승강장에는 승객들의 안전을 점검하고, 사고가 나더라도 수습을 돕는 역무원이 상주한다. 한인임 연구원은 “2인 승무제가 가장 안전하지만 부득이하게 1인 승무제를 고집해야 한다면, 일본과 같은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예방프로그램 및 복지가 잘돼 있는 유럽의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유럽의 경우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직업의학 전문의 및 심리상담사가 상주하면서 정기적인 정신건강진단을 하며, 비용 역시 사측이 부담한다. 한 연구원은 “우리나라도 문제가 생길 때만 임시방편적으로 조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을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사고 가능성을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2월 7일 도시철도공사는 고 황선웅 기관사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유족에게 보상하기로 합의했다. 20일 동안 미뤄졌던 장례도 치러졌다. 오은섭 도시철도공사노조 승무본부 사무국장은 “사측과 합의가 이뤄져 다행”이라면서 “사측도 문제를 인식하고 기관사들의 처우 개선을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관사들 사이에는 회의감이 여전히 팽배해 있는 듯하다.

2003년과 2007년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근본 대책으로 이어지지 않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기관사 처우개선 및 공황장애 재발방지를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이를 추진 중이다. 기관사 처우개선 노사 특별위원회 합의서에는 기관사의 건강권 확보 방안, 근로조건 개선 방안, 작업환경 개선 방안 등이 담겼다. 기관사들의 뿌리깊은 불신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합의 내용이 반드시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201304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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