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긴급 인터뷰 - “ 北, 후속 숙청작업 필연적 그에 따른 혼란이 있을 듯” 

권영세 주중(駐中) 대사가 말하는 북한의 권력 변동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 중국 언론의 ‘김정은 방중 필요성’ 제기는 한반도 전체 안정화에 무게 ■ 시진핑 국가주석, 위엄을 갖추면서도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느낌 줘 ■ 남한 주도의 통일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던 중국 입장에 변화 기류 느껴 ■ 중국어 못하지만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의 팔로워 55만 명 거느려

▎장성택 처형 이후 한반도 안정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증가한다고 말하는 권영세 주중 한국대사.



북한 조선중앙TV가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체포 장면이 담긴 사진을 전격 공개한 12월 9일 중국 베이징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전날만 해도 온 도시가 희뿌연 미세먼지로 뒤덮여 대기오염지수(API)가 위험 등급인 5급(301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나빴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날 아침 중국의 TV방송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무참하게 끌려나가던 장성택 부위원장의 체포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냈다. 북한 내 권력 변동은 동맹국인 중국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베이징 조양구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도 장 부위원장의 체포 속보 소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권영세 주중 한국대사는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기자에게 “장 부위원장 체포 사진을 인터넷으로 보았느냐”며 말을 건넸다.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그 장면을 확인했던 기자는 “장성택의 측근인사가 중국으로 망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되물었다.

이에 권 대사는 “그건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하지 않았느냐”며 일축했다. 그는 “우리 대사관 지하실에 누구를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났던 모양인데 그런 것은 없다”고 못박았다.

베이징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로 더욱 쇼킹한 뉴스가 날아들었다. 장성택 부위원장이 재판정에서 사형을 언도 받은 즉시 처형됐다는 것이었다. 장성택의 추종 세력이 중국으로 대거 잠입한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12월 16일 국제전화로 권 대사와의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권 대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장성택에 대한 조사가 시기를 두고 이뤄진 만큼 그의 측근들이 미리 소환됐다는 보도도 나온다”면서 “현재 특별히 눈에 띄게 측근들의 망명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2013년 5월 30일 신임장을 받은 권 대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오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당초 <월간중앙>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지냈고, 4·11총선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사무총장을 역임한 권영세 대사의 ‘중국대사 1년’을 취재하고자 했다. 마침 대통령인수위 시절 박근혜 당선인 특사단의 첫 방문지가 중국인데다, 대중(對中) 외교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정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간다. 중국 정부의 분위기는 어떤가?

“장성택의 숙청 때와 처형이 확인된 후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 중국도 숙청 때는 뭐 큰 변화가 있겠느냐 하는 분위기였다. 언론도, 외교부도 그랬다. 그런데 급작스레 처형을 했으니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조심스럽게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 같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얘기는 피한다.”

중국은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하지 않은가?

“새 지도부가 들어선 뒤로 북·중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게 전반적인 반응이다. 북한과 중국은 보통국가의 관계일 뿐 특별한 의미를 지닌 관계가 아니라는 보도가 언론에 나오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상황이 맞는 듯도 같다. 북한에 생기는 변화는 아무래도 북한과의 교류가 많은 중국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겠지만 소상히 연락받거나 꿰뚫어본다고 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국제사회는 장성택 처형방식을 두고 반(反)인권적, 야만적이라며 비판하는데 중국은 어떤가?

“전혀 언급 안 한다. TV에서도 언급이 없다. 외교부 공식 반응이 전부다.”

“지재룡 북한대사 묵묵히 식사만 했다”

장성택이 없는 북한의 대외정책이나 경제개발 노선에 변화가 예상되는데 어떻게 보나?

“장성택 숙청 당시 중국 학자들의 분석을 보면 북한은 1인 지배국가라서 최고권력자에게 변동이 생기면 모를까 2, 3인자의 퇴장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논조였다. 하지만 급박하게 처형된 이후에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며 조심스러워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가 최근 “김정은의 조속한 방중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설을 썼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중국이 과거에는 한반도의 안정을 제1의 목표로 뒀다가 시진핑 주석부터는 한반도 비핵화에 이어 둘째로 중요한 요소로 두고 있다. 여전히 한반도 안정을 굉장히 강조한다. 장성택 숙청 및 처형 이후에도 한반도 안정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반도 안정에는 북한 체제의 안정이 포함된다. 북한 체제의 급변은 중국 국익에 이롭지 않다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5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중국을 찾았다. 당시 중국 지도부가 북핵과 관련한 심각한 경고 메시지를 북한에 보냈다는 관측도 있었다. 김정남을 중국이 보호한다느니, 북한 수뇌부가 통제선을 넘어서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등의 얘기가 오갔다는 관측이 나돌았는데 어떻게 보나?

“당시 북한 비핵화 필요성에 대해 중국이 강조한 건 맞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보호하고 어쩌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말 그대로 괴담 수준이 아닌가 한다. 북한은 유엔에 가입했으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국가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이뤄지는 대화 내용에 대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장성택 없는 북한이 중국에 더 이롭다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

“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긴 어렵다. 한 가지 얘기할 수 있는 건 북·중 관계에서 장성택이 유일한 창구는 아니라는 점이다. 장성택 실각 및 처형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실제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는 역시 두고 봐야 한다. 아직은 모든 상황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이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2월 11일 조어대에서 개최한 신년 리셉션에 지재룡 북한 대사도 참석했다는데, 만났나?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여서 간단한 인사만 나눴다. 북한 상황이 예사롭지 않으니까 지재룡 대사께서 조심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다.”

지 대사 자리로 직접 찾아 갔나?

“내가 가서 지재룡 대사에게 부임한 뒤 따로 못했다고 상견례 겸 인사를 건넸다. 편한 시기에 다시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사하고 악수는 했는데 다시 보기 바란다는 얘기에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위로의 말을 건넸나?

“(그런 자리에서) 위로하거나 그럴 수가 있겠나? 새로 부임했다며 손을 내미니까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악수에 응했다. 말을 자제하더라.”

지 대사가 다른 대사들과 잘 어울렸나?

“뭔가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인사하러 갔을때, 다른 대사들과 대화를 한다든지 이런 모습이 아니고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북·중 관계에서 큰 틀의 변화는 없겠나?

“장성택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 체체 특성상 2인자가 그렇다 해서 큰 변화는 없다는 시각이 첫째다. 둘째는 장성택의 위치를 볼 때 공백이 생겨 다시 메우는 과정에서 약간의 혼란을 있을 것이다. 특히 장성택의 숙청과 처형의 이유가 일종의 북한 체제 내부의 반역 내지는 국가전복을 의도한 내용이라면 일정한 정도의 후속적인 숙청 작업이 필연적일 것이고 그에 따른 혼란이 있을거라는 시각도 있다. 지금은 조심스럽게 전자보다는 후자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결국 장성택 측근들을 손본다는 말인가?

“단순한 숙청으로 끝났을 때는 후속 숙청작업은 별로 없고 큰 변화도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면, 숙청 이후 처형까지 시키고 처형 이유에 반역죄까지 집어넣자 후속 숙청작업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시각이 늘어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처형 이후에 북한에서 김정은이 바로 큰 행사를 열고, 공로자들을 표창도 하고 이런 것을 보면 나름대로 체제 안정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논리적으로는 후속 숙청작업의 가능성도 있고, 현상적으로는 체제 안정을 꾀하려는 모습이어서 어떤 방향으로 구체적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6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당시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는 권 대사(왼쪽 셋째).



북 대사에 핵 포기 간곡하게 설득할 것

북한 대사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그분이 본국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북한이 주민들을 제대로 먹여 살리는 정상국가로 거듭나고 경제발전을 꾀하는 데 핵은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싶다.”

2008년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가동돼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중국은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 조속한 재개를 원한다. 한국에도 6자회담이라는 틀은 북한 비핵화에 가장 유용한 틀이다. 가장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유일한 틀이다. 하지만 회담을 성급하게 추진했다가 비핵화에 이르지 못한 채로 다시 끝을 맺는다면 6자회담의 유용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비핵화는 물 건너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번 6자회담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신속하게 추진하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급하다고 우물가에서 숭늉을 내놓을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떻게 하면 준비를 잘하느냐를 놓고 중국은 물론, 미국·러시아·일본과도 긴밀하게 협의 중이다. 주중대사관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회담 준비를 잘하고자 한다.”

역대 정부에서 베이징은 남북 비밀접촉 장소로 많이 활용됐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밀사가 와서 북측과 교섭을 하곤 했는데 신뢰에서는 권 대사도 남 못지 않은데.

“박 대통령은 그런 식의 밀사를 이용하는 대북교섭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만약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 생겨도 현직 대사로서 중국에 주재하는 입장에서 나서는 모양새는 좀 부담스럽지 않겠나. 제3의 인물이 와서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박 대통령이 권 대사에게 지시를 한다면?

“아직까지 그런 상황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이나 원외 지구당 위원장 시절(19대 총선 낙선)이나 기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각종 현안에 자기 의견을 솔직히 개진하는 등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보수당인 새누리당 정치인치고는 소신이 분명하고 그만큼 위험도 감수하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평소 정치행보로 봐서는 중국에서 좀 ‘튀는’ 대사가 될 수도 있겠다.

“과거 국내에서 정치할 때의 모습대로 하기에는 부담스런 면이 있다. 여기서는 룰을 존중하면서 일해야 한다.”

6개월간의 대사 업무에 과거 정치적 커리어가 도움이 됐나?

“그렇다. 한중 관계처럼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자면 단순히 외교부에서만 일한 공무원이 외교 채널만 가지고 활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처럼 정치를 하면서 정치권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과 친분을 쌓은 대사는 그걸 외교활동에 자산으로 활용 가능하다. 중국도 그걸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해주기를 기대하면서 나를 대하는 듯하다. 물론 각계 인맥 등 정치적 자산이 있다는 것과 그걸 100% 활용하는 건 별개 문제다. 활용도에서는 아직 미진하며, 좀 더 기여를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이 권 대사에게 바라는 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나 같은 경우 중국 외교부 인사만 만나는 게 아니라 정부 부처의 다양한 사람을 두루 접한다. 중국 공산당 관계자와도 대화한다. 중국 파트너 중에는 우리 외교부를 거쳐 해당 부처로 연결되는 방식보다는 나를 통해 해당 부처로 직행하는 걸 선호하는 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정당, 정치인과의 가교 역할도 가능하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미중 수교 전 주중 미국대표부 대표를 지낸 적이 있는데 개인 간의 친분이 외교관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했다. 나도 공감한다.”

중국 관계는 고도의 정치적 관점에서 대처해

확실히 발이 넓고 힘 있는 대사가 유리하겠다.

“직업 외교관은 중국이 어떤 섭외를 부탁해올 경우 한국 외교부 등 공식 채널을 통해 국내 기관, 정당, 국회와 연결하게 된다. 나야 뭐 한국의 여러 정당 관계자와도 연결되고, 현 정부 출범에도 아주 작지만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외교부에서 성장한 외교관들은 나보다 훨씬 잘하는 분야가 많겠지만 다양한 국내 연결망에서는 내가 더 강점이 있다고 본다. 정치인 출신 외교관은 그게 자산 아닌가?”

그런데 지금까지 중국발 황사로 고통을 받았는데 이제는 미세먼지가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중국 정부는 대책을 강구하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심각한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중국 정부가 대기 환경을 개선하는데 앞으로 60조 원(한화 기준) 가까운 예산을 투입한다고 한다. 이를 포함해 전체 환경개선 작업에 600조 원을 쏟아붓는다고 한다.”

아직 중국말이 서툴다고 들었다. 말이 통해야 친구도 사귀는 것 아닌가? 특히 관계가 중시되는 중국 같으면….

“그 점이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중간에 통역이 있으면 관계는 거의 공식화되고 만다. 정치인 중에서 중국말을 하는 이가 있다면 아주 완벽한 외교관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요즘 해본다. 내가 대사로 발탁된 건 국내정치인 중에 중국말 잘하고 그런 능력을 갖춘 이가 없다는 말이 되나?(웃음) 그런 면에서 박 대통령께서 중국말은 포기하더라도 다른 부분을 고려해서 나를 임명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굳이 따진다면 ‘낙하산 대사’ 아닌가?

“(웃음) 그건 아니다. 대사나 외교관은 국제정치를, 정치인은 국내정치로 나눠지는 듯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외교는 국내정치의 확장이다. 통용되는 논리가 유사하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외교를 일선에서 해본 일이 없어 새 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한다는 생각은 안 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당혹스런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막상 부임하고 보니까 주중 한국대사라는 업무가 외교 하나로만 수렴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정무적인 판단, 경제적인 고려도 중요시된다. 중국 관계는 관료가 일정한 패턴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 보다는 고도의 정치적 관점에서 대처할 때도 있다. 미국도 주요 국가 파견 대사에 비외교관 출신 인사를 앉히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주일 미국 대사가 전직 대통령의 딸이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가 11월 오바마 행정부의 신임 주일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11월 사임한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 또한 직업 외교관이 아닌 워싱턴 주 하원의원·워싱턴 주지사·미 상무장관을 지냈다. 두 케이스 모두 정치적 임명으로 봐야 한다.”

일본 정부는 케네디 대사를 극진하게 예우했다. 일본 도착 나흘 만에 일왕에게 신임장을 제정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단독 면담 시간을 가졌다. 타국 대사가 일본 총리를 면담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런 면에서 권 대사 또한 특별 대우를 받았다. 신임장 제정과 동시에 시진핑 국가주석과 20분 가까이 단독 면담을 했다. 권 대사는 “중국에서 대개의 신임장 제정은 시진핑 주석과 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번에는 따로 만나 양국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3선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외교·안보분야를 접했을 것 아닌가?

“평소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아 소관 상임위인 국회 외교통일 위원회에 오래 몸담기도 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남북관계 개선도 필요하다. 내가 작은 역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권영세 대사는 박근혜 대통령 자서전을 읽는 중국인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공무원들 박 대통령 자서전에 깊은 감명

권 대사는 2010년 12월 독일 통일 전문가인 클레이 클레멘스 미 윌리엄앤메리대 교수의 <서독 기민/기사당의 동방정책―고뇌하는 현실주의자>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독일에 파견 근무를 나간 적이 있다. 당시는 독일 통일 직후라 한반도의 통일도 마치 코앞에 와 있는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권 대사는 그때 우리가 너무 많이 나갔다고 반성했다. 그 후 북한 핵문제가 터지고 남북관계에서도 악재가 잇따르면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급선무가 됐다. 통일을 추구하되 과정을 매끄럽게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하던 차에 클레멘스 교수의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떤 점에 이끌렸길래 번역까지 하게 됐나?

“통일 전 동·서독의 관계를 보수정당이 어떻게 고민했는가를 잘 분석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직접 번역에 들어갔다. 기원전 431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기록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저자 투키디데스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반복되는 장면이 나타난다고 했다.

오늘의 기록이 내일을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동서독이 걸어온 길은 우리가 평화를 관리하고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참고가 될 것이다. 2008년부터 시작한 번역이 1년 6개월 정도면 족하리라 봤는데 실제로는 2년 가까이 걸렸다. 나로서는 무척 고된 작업이었다. 번역을 마친 뒤에 든 생각이 앞으로 내가 책을 쓰면 썼지 절대 번역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웃음)

박 대통령은 어떻게 권 대사가 평소 남북관계에 천착했다는 걸 알았나?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기 전부터 내가 개인적으로 남북문제 관심이 있고, 책도 번역해서 낸 사실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점이 대사 발탁에 영향을 주지 않았겠나.”

부임 전 박 대통령은 어떤 당부를 했나?

“아직도 (당부의 말씀이) 생생하다. 대통령께서는 이걸 하라, 저걸 하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다. 그저 뭉뚱 그려 말씀하실 뿐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면에서 매우 각별한 이웃이므로 가서 열심히 해서 한중 관계 발전에 역할을 잘해주기 바란다고 하셨다.”

구체적 언질을 주지 않은 만큼 그 함의를 깨치느라 생각이 많았을 수도 있겠는데.

“만약 혼자서 모든 현안을 결정하고 규정해야 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쉽게 풀렸다. 2013년 6월 4일 주중대사로 부임하고 20여 일 뒤인 6월 27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박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등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진행됐다.

이번 공동성명은 정치·경제·안보·문화에 이르기까지 양국 관계의 미래 청사진을 담았다. 양국의 모든 관계자가 동원돼 협력에 관한 장전을 만든 것이다. 나는 그 공동성명에 기반한 소임을 수행하면서 양국 관계의 발전 속도를 끌어올린 방안을 추가적으로 고민하면 되므로 다소 수월한 입장이 됐다.”

중국 정부 지도부와 중국인들은 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최고지도자가 되기 전에도 만났던 적이 있다. 당시 공유했던 우호적인 감정과 교류는 상호 신뢰 증진의 기초가 됐다. 나아가 박 대통령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애정, 시 주석에 대한 한국인들의 호감이 양국 관계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박 대통령의 자서전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게 그 증거다. 특히 중국 공무원 중에는 박 대통령의 자서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이들이 많았다.”

양국 지도자 간 첫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2005년 7월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저장성(浙江省) 당서기였던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표인 박 대통령과 굉장히 우호적인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지방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시 주석을 환대했고, 시 주석도 새마을운동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피력했다.

이후 시 주석의 요청에 따라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 관련 서적 등 자료를 중국에 보내준 일화도 있다. 2013년 6월 27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시 주석은 당시 두 사람이 식사를 함께한 서울 여의도 63빌딩 내 중식점 상호까지 정확하게 언급하면서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중대사 중 SNS 팔로워 수 단연 최고

박 대통령은 중국에서 실로 인기가 높다는 전언이다. 현지의 언론이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국어로 연설을 할 만큼 훌륭한 중국어 실력을 갖췄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친중’ 인물로 중국인들에게 인식된다. 게다가 지금의 한중 관계의 온도 또한 매우 높다. 한국은 국제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과 밀접한 협력을 유지한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중국과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게다가 양친을 비운의 암살사건으로 여읜 박 대통령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절 중국철학 공부를 통해 몸과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는 사실이 국빈방문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점도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기도 하다. 때마침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박 대통령은 ‘한국의 꿈’을 주창한다.

시 주석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미국을 견제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중국몽이라는 슬로건에 담았다. 박 대통령도 방중 과정에서 “국민 행복을 지향하는 시 주석의 중국의 꿈과 국민행복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의 한국의 꿈(韓國夢)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말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가까이서 본 시 주석은 어떤 사람인가? 한중 정상회담 당시 TV에 비친 모습은 진지하게 경청한다는 느낌을 줬는데.

“원래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굉장한 호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는 장점이 있는 지도자로 와닿았다. 신임장 제정, 박 대통령 국빈방문, 강창희 국회의장 방중 등 3회에 걸쳐 시 주석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위엄을 갖추면서도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니까 피상적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이 시간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배려한다는 감정이 생기게 한다고 할까. 특히 박 대통령과의 만남은 첫 만남을 아주 소상하게 기억할 정도로 서로 호감을 가졌기에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기존질서에 순응하겠다는 권 대사지만 온라인에서는 대중과 호흡해 온 정치인의 기질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저는 아내와 함께 무티엔위 장성(만리장성의 하나)을 다녀왔습니다. 지난여름 빠다링 장성을 다녀온 후 두 번째로 가보는 장성인데, 다시 봐도 역시 대단한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2013년 9월 25일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微博)에 권 대사가 올린 글이다. 9월 11일 ‘주중 한국대사 권영세’라는 이름으로 웨이보 계정에 등록한 이래 12월 16일 현재 팔로워 수가 55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호응도가 높다. 중국 주재 외교사절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인기를 끈다고 주중 한국대사관이 주장했다. 한국대사관은 “주중 대사 중에서 SNS 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면서 “그나마 웨이보를 통해 활발한 소통을 하는 주중 이탈리아대사를 팔로워 수에서 압도한다”고 밝혔다.

정치인 시절의 그를 따르던 국내 팔로워가 2만 명 안팎에 그쳤음을 고려하면 비약적인 변화다. 아직 중국어가 서툴러 누군가 번역을 해줘야 하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일환으로 SNS 세계에도 두 팔을 걷고 뛰어든다.

팔로워 중에는 “한국 배우 이민호 때문에 당신을 팔로잉하게 됐다”, “대사님 본인이 쓴 웨이보가 아니었구나!”와 같은 애교 섞인 글에서부터 양국의 우호증진을 바라는 제법 진지한 댓글도 달린다. “한국 친구와 인간적인 우정만을 쌓을 뿐이지 정치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정 자체가 따뜻함과 조화의 정치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상호 존중과 우애는 가장 표준적인 정치이며 상호협력은 정치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항목입니다.

대사님께서 중국 정치의 부단한 발전에 대해 형제의 우애와 같은 무형적인 지지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대사님과 같은 외국 인사들의 긍정적 영향력을 매우 중시합니다.” 권 대사는 2013년 11월 몇몇 웨이보 사용자를 대사관저에 초청해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연예인도 아닌 외교사절에게 50만 명이 넘는 팔로워가 붙은 배경을 어떻게 이해하나?

“이 또한 한중 관계의 긍정적 발전의 산물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다 보니 한국 대사의 말 한마디에도 관심을 갖는 것 아닐까. 국가 간에는 뜻하지 않는 갈등 현안이 돌출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대사가 직접 사이버 공간에 뛰어들어 한국 입장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우호 여론 확산에도 도움이 된다. 중국 정부도 사이버상의 여론에 신경을 많이 쓴다.”


▎2013년 10월 개천철에 즈음해 열린 주중 한국대사관 국경일 리셉션에 참석한 중국인 여성과 사진촬영에 응한 권 대사.



주중 한국대사관이 공공외교 가장 앞서

한국 정부도 그렇고 권 대사도 마찬가지로 공공외교에 부쩍 몰입하는 듯하다.

“특히 우리 외교부가 강조를 많이 한다. 중국대사관이 공공외교에서 가장 앞선다는 말도 듣는다. 아마도 내가 정치인 출신이라서 주변의 평판, 평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일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항상 표와 여론을 의식하지 않나?”(웃음)

대사관저를 중국인들에게 개방했다고 들었다.

“대사관저가 3천 평이 넘는데 우리 부부가 거주하는 공간을 그리 크지 않다. 나머지 대부분이 행사용 공간인데 문을 닫는 일이 흔했다. 공간을 놀리는 건 낭비다. 10월 18일부터 5일 동안 관저개방 행사를 겸한 미술전시회(The Sounds of Korea)를 열었다. 누구든 신분증만 있으면 한국 유명 미술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12월에는 한국에 유학한 중국인 150여 명을 관저로 초청해 ‘한국유학 중국인 우호의 밤’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덕분에 집사람이 바빠졌다.”

이런 공공외교 이외에도 권 대사는 부임 후 한중 공공기관을 상대로 두루 찾아다녔다. 권 대사는 부임 6개월여 동안 중국 언론과 20회가 넘는 인터뷰를 가졌다. 같은 기간 중국 내 6개 지방 성(省) 9개 도시(시안·은천·지난·칭다오·옌타이·장춘·선양·광저우 등)를 방문했다. 이동거리가 1만6990㎞에 달한다고 중국대사관은 밝혔다. 나아가 베이징 주재 한국정부유관기관 간담회를 열어 긴밀한 업무협조를 꾀하기도 했다.

11월 12일 열린 간담회에는 대한무역진흥공사·한국관광공사·한국LH공사·한국무역보험공사 등 14개 정부유관기관이 모였다. 권 대사는 “대사관과 공적 성격을 가진 기관들간의 업무협조가 중요하다”면서 “중복을 피하고 시너지를 도모하기 위해 향후 상호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을 활성화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대사관이 주관하는 정부유관기관 간담회는 처음인가?

“그 전에 열렸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중국에는 우리나라 정부의 주요 기관이 거의 다 진출해 있다. 그런데도 기관별로 똑같은 일을 중복 수행하는 일이 잦다. 이를테면 중국 경제 동향을 분석하는 데 한국 경제 부처와 한국은행이 각기 따로 같은 일을 하는 식이다. 불필요한 중복 업무를 없애고자 간담회를 열었다.”

대사직을 수행하면서 예기치 않는 돌발 상황에 곤혹스러운 때가 있었다면?

“아무래도 최근 중국이 방공식별구역(CADIZ)을 갑작스레 선포한 일이다.(2013년 11월 23일 중국은 일방적으로 이어도 상공을 중국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했다) 한국을 주요 상대로 하는 선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중 간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올라 걱정이 많았다. 이제 이 문제도 양국 간에 잘 풀어나가고 있다.”

G2로 불리는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데, 어떻게 보나?

“과거의 미소 대결구도와 지금의 미·중 관계는 성격이 판이하다. 미국과 소련은 경제교류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자기 진영의 몸집을 불리고자 극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미·중 관계는 경제적·인적 교류가 엄청나고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어 반드시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양국의 갈등이 첨예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국가 간의 문제는 다층적인 요소를 안고 있어 한국이 꼭 힘든 기로에 서게 된다고는 볼 수 없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경제·문화·안보에서 약간 긴장할 수도, 특히 문화적으로는 충돌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무조건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건 아니다. 한국도 경제적 위상이 있고, 외교력도 가졌기에 미·중 갈등의 해법을 제시하는 기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의 관계가 과거보다 진일보하고 발전케 하는 촉진자 역할도 가능해졌다.”

대사로 부임할 당시 중국 내 탈북자 문제 해결을 강조했는데 진척이 있었나?

“탈북자 문제는 북한이 있어 중국도 민감하게 여긴다. 이 문제는 여기서 세세하게 말할 사안이 아니지만 개략적으로 얘기하자면 중국이 탈북자 처리 기준으로 삼는 3대 원칙(국제법, 국내법, 인도주의)에 한중 간 업그레이드된 신뢰관계를 추가해달라고 중국 관료들에게 요청했다.”

중국으로서는 호응하기 어려운 요청 아닌가?

“궁극적으로 탈북자 처리에 있어 한중 관계를 고려하도록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남한 주도의 통일을 중국이 용인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 현지의 기류는?

“이 역시 굉장히 민감한 주제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우선 중국은 한반도 통일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지지한다. 오래전에는 남한 주도의 통일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면 거기서 좀 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남한 주도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일부 중국 학계의 주장을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해석하는 건 좀 이른 게 아닐까 한다.”

권 대사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전 유출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그는 민주당이 정략적 목적에서 사실관계를 왜곡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화록 유출 의혹 사건으로 대사직을 수행하는데 불편함은 없는가? 중국 외교관리들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해야 하는 그런 번거로움 같은 것 말이다.

“설명이 필요하다기보다는…, 대화록 유출 관련 논란은 내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말이 녹취되고 유출되면서 시작됐다. 그 녹취록을 들어보면 남북정상회담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록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전해들었을 뿐이지 직접 본 게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오는 데도 그 점은 싹 무시해버리고 소위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 계획)을 내가 준비했다고 야당은 말한다.

이것도 들어보면 컨틴전시 플랜으로나 가능할 얘기지 그걸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를 한 건데 크게 왜곡하고 있다. 심지어 조작까지 해서 공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거리낄 게 없으므로 일하는 데 크게 방해되는 것도 없다. 다만 나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한중 외교 현안을 다루는 주중 대사의 역할에 다 투입해야 하는데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국내 일에 투입할 수 밖에 없는 점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녹취록 조작해서 공세 펴는 정치인에게 분노 느껴

예컨대 검찰에 제출할 서면답변 작성 같은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걸 말하나?

“그렇다. 나도 정치를 해온 사람이지만 정치를 비열하게는 안 했으면 좋겠다. 진보주의자라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분일 텐데 비밀녹취록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또 그 내용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왜곡하고 심지어는 일부분에 대해서는 자기네가 조작을 해서 정치 공방에 이용하는 건 우리 정치에서 사라져야 한다. 정치를 해온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낀다고 해야 할까, 그런 상황이다.

주중 대사로 일하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일을 든다면?

“앞서 언급했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그에 따른 한중간 긴밀한 협력 관계 구축이 첫째다. 둘째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원만한 체결과 경제교류 확대다. 셋째는 문화적 교류를 한 단계 격상했으면 한다. 한중 관계의 발전 추세로 봐서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들이다.”

그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중 관계를 잘 자란 식물에 비유했다. 외교관계는 과정의 연속으로 매듭 지어지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하는 예가 더 많다. “우리가 늘 보는 식물이지만, 어느새 부쩍 큰 것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시들어 있을 수도 있다. 나 또한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임기를 마치고 이임할 때 어느새 훌쩍 자란 식물의 모습을 보듯 한중 관계가 숙성됐음을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201401호 (2013.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