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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 청산도 섬 아낙들이 밭에서 봄을 캔다 

 

글·사진 주기중 기자
막걸리 한 잔에 봄동 한 잎 뚝 잘라 쌈장에 찍어 먹고 나니 나그네 입 안에 봄 맛이 고였더라

▎청산도 신흥리, 진산리 일대.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다랭이논과 구들장논에 봄볕이 쏟아진다.




▎청산도 들녁은 벌써 봄이다. 보리밭과 마늘밭이 푸르름을 더해간다.
청산도. 완도에서 뱃길로 19.2㎞, 다도해 최남단에 떠 있는 보석 같은 섬이다. 이름처럼 하늘도, 땅도, 바다도 푸르다. 영동지방에 때늦은 폭설을 뿌린 겨울이 심통을 부리지만 청산도는 이미 봄을 품었다.


3 영화 ‘서편제’ 촬영지에서 한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4 양지바른 곳에는 꽃마리가 수줍은 듯 보랏빛 얼굴을 내밀었다. 5 섬의 아낙들이 줄지어 봄동을 캐고 있다. 봄동은 무공해 청정 채소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서 투명한 봄빛이 내린다. ‘슬로시티’답게 느리게 걷는 맛이 제격인 섬이다. 길 이름도 예쁘다. 미항길, 사랑길, 고인돌길, 낭길, 범바위길, 용길, 구들장길, 다랭이길, 돌담길, 들국화길, 해맞이길, 단풍길, 노을길, 미로길…. 나지막한 지붕들 사이로 건성건성 쌓아놓은 듯한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어민들이 해변에서 다시마를 캐고 있다. 다시마는 전복의 먹이로도 사용된다.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리며 산자락에 걸쳐져 있는 다랭이 논에 보리가 푸른빛을 더해간다. 밭에는 접시처럼 잎을 벌린 봄동의 노란 고갱이가 입맛을 돋운다. 겨우내 눈과 비, 차가운 해풍을 견딘 봄동은 청정 무공해 채소다. 겨울에는 벌레가 없어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이다. 봄동을 수확하며 떠들어 대는 할머니들의 걸쭉한 사투리가 정겹다. 나그네에게 막걸리 한 사발과 봄동 한 잎을 뚝 잘라 쌈장에 찍어서 건네준다. 사각거리며 씹히는 봄 맛이 그만이다.


▎‘봄의 전령사’ 동백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범바위에 오르니 옥빛 바다가 펼쳐진다. 다시마 양식장에 색색이 떠있는 부표가 구슬을 꿰놓은 듯 바다를 수놓는다. 배를 탄 어민들은 부표 사이를 오가며 부지런한 손길을 놀린다. 다랭이 논과는 달리 전복 양식장은 각진 빨간색 부표로 반듯하게 잘라진 모습이다. 청정해역에서 자란 다시마를 먹고 자라는 전복은 얼마나 맛있고 몸에 좋을까. 물이 빠지자 섬 아낙들이 바닷가에서 해초를 딴다. 뭍에서 산나물을 캐는 모습이 연상된다.

청산도는 유채꽃이 피고 축제가 열리는 4월이 제격이란다. 하지만 축제 때는 사람에 너무 많이 몰려 청산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오히려 반감될지도 모른다. 봄을 맞는 땅의 기운이 느껴지는 2, 3월도 좋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뭍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그 배에 실려 봄이 뭍에 오른다.

201403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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