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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 | 마이클 람브라우 ‘아리랑 인스티튜트’ 서울지부장 

“아리랑은 한국을 보여주는 창(窓), 한반도 평화 위해 일하고 싶어” 

사진 전민규 기자
한국에서 민간 네트워크 만들어 평화운동 벌이는 북한 연구가…할아버지가 6·25전쟁 참전한 군인 집안 출신, 남북문제에 관심 많아

▎‘아리랑 인스티튜트’라는 민간 네트워크를 만들어 한반도 평화운동을 벌이는 마이클 람브라우 씨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3대째 군인 집안 출신이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김정란 명창이 한(恨)의 가락인 아리랑을 토해내자 빙 둘러서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주한미군 병사로 근무한 뒤 한국에서 유학 중인 벽안의 청년이 남북통일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민간 모임을 만들고, 한국 문화를 대외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벌인다. 그는 한반도 통일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

지난 6월 19일 저녁, 서울 삼청동에 자리한 아담한 문화 공간 ‘새김아트 스튜디오’에는 아리랑의 애절한 가락이 울려 퍼졌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경기소리’의 권위자인 김정란 명창이 한(恨)의 가락을 토해내자 그를 빙 둘러섰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무형문화재 57호인 묵계월 선생에게 사사해 30년 동안 소리꾼으로 살아온 남은혜 명창(공주 아리랑보존회회장)이 나와 ‘북간도 아리랑’을 절절하게 토해내자 50여 명의 참석자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참석자 대부분은 미국·프랑스·러시아·일본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30~50대들이었다. 이들은 아리랑을 귀로만 듣지 않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한국 특유의 한의 정서를 느끼려고 애썼다. 이 문화행사의 주최자는 마이클 람브라우(Michael Lammbrau·30) 씨로 한국에 유학 중인 북한 연구가다. 그를 붙들어 놓고 아리랑 인스티튜트릍 통해 한국 사랑을 펼치는 내력을 들어봤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인터뷰에 응했다.

아리랑에 대해 관심이 각별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리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이고 한반도를 보여주는 창(窓)이다. 유네스코가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오늘 북간도아리랑을 들려준 남은혜 명창은 2012년 우즈베키스탄공화국에서 개최된 아리랑축제와 2013년에 우즈베키스탄·아르메니아·조지아에서 개최된 ‘한국·실크로드 아리랑국제페스티벌’에 참여해 인기를 독차지한 명창이다.

러시아 동포사회의 고려인 1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면서 겪은 혹독한 고난을 아리랑으로 표현한 ‘치르치크아리랑’은 고려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아리랑의 ‘창조적 계승’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저는 오늘 김정란·남은혜 명창의 아리랑 노래가 여기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리랑 인스티튜트라는 단체는 어떻게 만들었나?

“2012년에 고려대 국제대학원 북한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는데, 주변 분들이 저한테 한반도에 관심이 많으니 계속 한국에 남아 공부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음! 그래, 그럼 한국에서 10년만 더 살아보자’고 생각했다.(웃음)

유학생 중에서 한국을 좋아하고 한반도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기왕이면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를 위해 의미 있는 단체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인스티튜트를 만든다면 문화·예술·음악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제가 아리랑에 관심도 많았고, 또 아리랑은 남과 북이 다 통할 수 있는, 한반도를 포괄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교류와 평화를 이루는 단체의 이름으로 정하게 됐다.”

젊은 외국인들 중심의 평화 네트워크

어떤 활동을 하는지 소개해달라.

“우리는 남북한 등 동아시아 국가 간의 인식과 이해를 넓히는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하고 싶다. 사람들과 유대를 강화하고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교육·문화교류에 힘쓰는 비영리·비정치단체라고 보면 된다. 지난 2월에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범했고, 본부는 미국 버지니아에 두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을 통한 외교’가 우리의 모토다. 쉽게 말해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인적, 문화적 교류를 확대해가는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

제가 서울지부장을 맡고 있고,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다이앤 리가 홍보와 이벤트 이사로 일을 돕고 있다. 회원들 중에는 저처럼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유학이나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 많다. 우리는 아리랑을 통해서 교류의 폭을 넓혀가면서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 그래서 한반도의 통일된 미래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란 쉽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외국 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리 단체는 남북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회원으로 가입하는 데 제한은 없지만 북한과 관련된 이슈라서 일반 사회단체와 달리 조금 예민하긴 하다. 모임에 참가하는 회원들은 필요한 경우 이름이나 신분은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신뢰를 형성하고 신뢰가 모이면 통일의 희망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처럼 서로 만나서 한반도의 미래와 안보, 평화를 직접 얘기하면 신뢰가 생기게 되고 그러면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를 위한 비전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리랑 인스티튜트는 올해 2월 28일에 서울 이태원에서 출범했다. 출범 뒤 첫 행사로 4월 9일에 동아시아 관련 연구단체인 ‘아시아 인스티튜트’와 공동으로 ‘한반도 통일의 안보 함의’라는 주제로 브라이언 포트 주한미군사령부 안보관계관 등을 초청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5월에는 회원들이 한반도의 희망을 염원하며 새터민들과 함께 외국인 축구대회에 참가했다. 미국·동유럽·동아시아 국민들로 구성된 서울 셀틱(Celtic) 축구팀과 새터민들이 모여 만든 단일 축구팀으로 울산에서 열린 축구대회에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 같은 민간외교를 통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신뢰구축의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아리랑 문화행사는 어떻게 준비했나?

“저와 다이앤 리 등 아리랑 인스티튜트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적인 느낌이 강한 예술가들을 수소문해서 초청하고 함께 준비할 사람들을 모았다. 오늘 모임 장소를 제공한 고암 정병렬 작가는 독창적인 ‘새김아트’를 창시한 전각예술가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전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한 분이다.

초중고의 국정교과서에도 작품이 수록돼 있고, 힐러리 클린턴·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등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우리 단체에서는 SNS가 핵심이다. 저와 오바마 대통령이 SNS로 연결되는 데는 여섯 단계만 거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소통하고 세미나와 행사에서 만나 의견을 교환한다.

그런 방식으로 북한과 러시아까지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 사람들도 이런 뜻을 일으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모임에 초청해 전시회를 부탁한 정일 작가도 다이앤 리가 인터넷으로 보고 마음에 들어서 연락해서 알게 됐다.”


▎민간 차원에서 남북교류와 통일에 보탬이 되겠다고 만들어진 아리랑 인스티튜트의 뜻에 찬동해 전시회를 연 중견 화가 정일. 그는 자연에서 찾은 알파벳 형상의 사진문자를 조합하는 시각적인 조형어법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을에는 북한 자전거여행 행사 계획

이날 행사에는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하는 중견 화가 정일(49)의 전시회도 함께 열려 참석자들에게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환기시키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자연에서 찾은 알파벳 형상의 사진문자를 조합하는 시각적인 조형어법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견작가다.

주로 전쟁·폭력·가난·기근·환경재난·원자력사고·테러 등 자연과의 공존을 해치는 부조화의 모습들을 다큐 형식의 이미지로 재구성해 우리 자신의 이기심과 상처를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2012년 ‘공존, 자연으로부터 온 메시지’ 전시회를 서울과 광주, 일본 요코하마에서 잇따라 개최한 정 작가는 지난해에는 경기도 연천에서 대한민국 민통선예술제 ‘함께 아리랑’ 전에 참여했는데, 이를 계기로 아리랑 인스티튜트를 알게 됐다고 한다.

정일 작가는 “아리랑 인스티튜트는 남과 북 당국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남북교류와 통일에 보탬이 되겠다고 만들어진 작은 NGO”라며 “인적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이벤트나 파티를 열고 남·북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서로 정보를 나누는 모임이 의미 있게 생각돼 전시회 초청에 응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시 마이클 람브라우에게 물었다.

올가을에도 뜻 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외국인들의 자전거 모임인 ‘한강 라이더 클럽’과 함께 2박 3일간 ‘아리랑 자전거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15명씩 구성된 두 팀이 지도상의 반대편인 경기도 연천과 부산에서 각각 출발해 경북의 문경새재에서 같이 만나 문화축제와 아리랑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행사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북한의 평양과 개성도 방문할 예정이다. 2012년부터 유럽이나 미국, 중국 사람들도 관광비자로 북한에 갈 수 있게 됐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본다.

추석 연휴 기간인 9월 5~10일에 진행하는 국제 자전거여행 프로그램의 하나인데, 100여 명이 참여한다. 평양에서 시작해 개성을 거쳐 DMZ에 도착하는 여정으로 참가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한반도를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리랑 특별공연 등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다. 세미나와 다양한 네트워크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이고 출판물도 발행할 예정이다. 우리가 만든 인적 네트워크가 한반도의 통일을 향한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모임에 새터민 가정도 초청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됐나?

“새터민들과의 만남이나 교류는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분들을 통해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터민들이 우리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차별의식을 갖고 대한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과 북한 사람이 자주 만나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새터민 열두 분을 모셨다. 물론 그분들을 위한 보안유지는 철저히 한다.

우리는 새터민들과 여행도 하고, 축구도 같이 즐긴다. 서울에 사는 새터민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몇 달 전에 ‘영어카페’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새터민이니셔티브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강사팀이 5주간 실시간으로 하는 온라인 영어교육프로그램이다. 일대일 수업으로 하기 때문에 효과가 좋다.”

자발적 봉사와 후원으로 운영

단체를 출범시킨 이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몇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회원들의 자원봉사와 단체의 후원으로 단체를 꾸려간다. 다행히 좋은 분들의 격려와 도움이 있어서 좋은 모임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모임을 하면 할수록 후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은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모임이라서 개인 대 개인이 대화하고, 합의하고. 신뢰를 쌓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두 번 만나서 신뢰가 쌓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처럼 자주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웃음)

이날 모임에는 멀리 미국에서 참석한 아리랑 인스티튜트 명예회장 조세프 박을 비롯해 50여 명의 외국인과 새터민들이 참석해 서로를 알아가며 교류 기회를 갖는 시간을 가졌다. 조세프 박 명예회장은 람브라우에 대해 “외국인들이 교류를 통해 한국을 더 알게 하고, 만나게 하는 일을 마이클 람브라우가 열심히 하고 있어 미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마이클 람브라우는 북한의 원문자료 등을 데이터화해 북한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연구가 전공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한국 내 외국인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와 구호활동을 하는 의료봉사단체인 라파엘 클리닉과 공동으로 워크숍을 열고 데이터분석 연구방법에 대한 강의를 해주고 있단다. 특별한 한국 사랑을 보여주는 그의 내력이 궁금해졌다.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군인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도 대령으로 은퇴했고, 저도 자원 입대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늘 한국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 얘기를 들려줬는데, 그때부터 한국에 관심이 생긴 것 같다. 미국 국방부에서 2년 동안 근무한 뒤에 2008년에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다. 동두천과 평택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6자회담 참가국들이 대화와 교류, 협력을 강화해서 비무장지대가 사라지고 부산에서 서울, 서울에서 평양, 러시아에서 유럽까지 이어지는 철도의 부활로 실크로드 시대가 도래해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저의 꿈이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꿈이 이뤄지지 않는다.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같은 여러 가지 모임과 행사를 열고 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201408호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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