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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특별기획 | '영광과 좌절' 국가대표로 산다는 것 - 찬란하게 빛나지만 땀과 눈물로 얼룩진 명예 태극마크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바라보며 지옥훈련 견뎌낸 청춘들… 그들도 불투명한 미래에 울고, 환호받는 스타 탄생을 꿈꾼다 

이은경 월간중앙 기자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는 총 831명의 선수가 대한민국 대표로 나선다. 남자 454명, 여자 377명이다. 최고령인 47세의 승마 대표 전재식부터 최연소인 13세 중학생 요트 대표 김다정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선수가 태릉선수촌과 진천선수촌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바라보며 오랜 기간 땀을 흘렸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어떤 꿈을 꾸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들여다봤다.

2007년 겨울 태릉선수촌 운동장. 유도 대표팀 선수들의 새벽 훈련. 매서운 추위 때문에 선수들의 새벽 훈련. 매서운 추위 때문에 선수들의 몸에서 안개같은 김이 피어나고 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유도 대표 김원진. 남자 60㎏급의 대표로 뽑힌 그는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나간다. 올해 그의 나이 스물둘이다.

태릉선수촌에서 김원진의 하루는 새벽 6시 훈련으로 시작한다. 1시간 30분 동안 트랙을 달리는 유산소운동을 하고, 때로는 파트너와 짝을 이뤄 추가 체력훈련도 한다. 늦여름에는 그나마 새벽 훈련도 할 만하지만, 한겨울 유도 대표팀의 새벽 훈련은 말 그대로 ‘지옥 훈련’이다. 해가 뜨기 전 컴컴한 운동장을 뛰는 선수들 몸에서 김이 펄펄 난다.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은 아침식사 시간이다. 그리고 9시부터 점심식사 전까지 본격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점심식사 후 오후 3시까지는 휴식 시간. 보통 선수들은 고단한 오전 훈련에 지쳐서 곯아떨어진다.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도복을 입고 체육관에서 실전 훈련을 한다. 실제 경기1주일 전까지는 별도의 야간훈련도 소화한다.

짧게는 하루 6시간, 길게는 9시간 이상 구슬땀을 흘리는 이 스케줄은 국가대표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패턴이다. 태극마크. 그것은 과연 이 젊은 선수들에게 무엇일까.

831명의 대표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기까지는 831가지의 사연이 있다. 유도 대표 김원진은 훈련 파트너에서 당당히 대표 선수로 발돋움한 경우다. 그는 지난 2011년 유도 대표 최민호의 훈련 파트너로 뽑혀서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김원진이 매트 위에서 그림자 역할을 했던 대상 최민호는 현재 김원진을 지도하는 유도대표팀 코치다.

김원진은 “태극마크라는 건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꾸는 꿈이다. 나도 2012년 런던올림픽 때 런던에 갔지만, 그저 훈련 파트너로 갔기 때문에 뭔가 기분이 착잡했다. 지금은 대표가 됐으니 꿈을 이룬 셈”이라고 했다.

젊은 선수들은 태극마크가 설렘이자 기쁨, 자랑거리라고 솔직 담백하게 정의한다.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에게 ‘나에게 태극마크란 이런 것이다’를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존심”(골키퍼 이창우), “제2의 심장”(레프트윙 심재복), “운동을 시작할 때 잡았던 최종 목표”(라이트윙 유동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톡톡 튀는 세대답게 “간지(젊은 세대들이 ‘폼난다’는 뜻으로 쓰는 은어)”라는 답도 나왔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훈련에 열중인 역도 대표 사재혁. / 사진·중앙포토
태극마크는 제2의 심장이죠!

베테랑 선수들은 좀 더 진지하다. 35세의 축구 대표 이동국이 최근 2년여 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남긴 말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이동국에게 “이제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가 된 것 아니냐”고 했다. 이동국은 “대표팀은 은퇴하고 싶다고 해서 은퇴하는 자리가 아니라, 끝까지 갈망하는 자리다. 누구나 국가대표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농구 대표팀의 35세 맏형 김주성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마친 후에 더 이상은 대표팀과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기회가 왔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아니라 5회 연속 아시안게임 대표가 된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여자펜싱 대표팀의 남현희는 지난해 5월 딸을 출산하고 두 달 만에 나선 대표선발전에서 인천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혔다. 남현희는 “대표로 선발될 줄은 나도 몰랐다. 뽑히고 나서 ‘펜싱 대표가 내 길인가 보다’ 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출산 직후에도 이를 악물고 선발전에 임했을 정도로 태극마크가 간절했기에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한다.

유남규 탁구 대표팀 감독은 “난 열다섯 살이던 1983년에 처음으로 대표가 됐다. 선수·코치·감독으로서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한 지 벌써 30년이다. 그런데 아직도 경기장에서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나올 때가 있다. 태극마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냥 내 ‘분신’이다”고 했다.

여자핸드볼 ‘우생순’의 주인공인 임오경 SBS 해설위원은“나에게 태극마크는 ‘얼굴’이자 ‘자부심’이다. 선수 생활을 끝낸 지금까지도 ‘내가 국가대표인데, 행동을 똑바로 해야지’라고 긴장하게 되는 그 무엇이다”라고 했다.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출전하는 종목이 하나 있다. 바로 크리켓이다. 크리켓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됐는데, 당시 한국은 참가선수를 내지 않았다.




2013년 겨울 태릉선수촌 필승관에서 훈련 중인 유도 대표팀 선수들. / 사진·중앙포토
생업도 포기할 만큼 간절한 ‘그 무엇’

크리켓은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주로 영 연방국가에서 인기가 높다. 반면 한국에서는 생소한 종목이다. 배트로 공을 쳐서 멀리 보내는 건 야구와 비슷하지만, 점수를 내는 법이나 이닝이 종료되는 등의 세부규정은 전혀 다르다.

크리켓대표팀의 볼러(야구의 투수와 비슷한 포지션) 김경수는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크리켓대표선수로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선다. 그는 “이번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크리켓대표팀에 들어갔다고 했다. 김경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운동 선수가 되는 걸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그래서 대학 전공을 체육교육과로 하는 것으로 어찌 보면 타협하고 살았다. 대학 졸업후 체육 선생님을 하고 있었는데, 크리켓대표선수를 뽑는다는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대표가 됐다. 그 과정에서 교직은 그만뒀다”고 했다.

한국에는 크리켓 전용구장이 없다. 인천아시안게임을 위해서 처음으로 크리켓구장을 짓긴 했지만, 대표팀이 마음껏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표팀은 인천 인근의 운동장을 전전하면서 훈련한다.

김경식은 태극마크의 꿈을 이룬 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혔다. 크리켓대표선수로서 그가 얻는 수입은 한 달에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훈련수당이 전부다. 김경수는 “일단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다는 목표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영화 ‘국가대표’의 모티브가 됐던 스키점프 대표팀 선수들도 처음에 이런 과정을 거쳤다. 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프리스타일스키 등 한국에서 불모지인 종목에서 한국 대표가된 ‘개척자’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럭비 대표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번 대회 목표는 ‘1승’이다. 한국 여자럭비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처음으로 7인제 부문에 참가했다. 성적은 6전 전패. 6경기에서 15득점을 하고 무려 239실점했다.

여자럭비 대표팀은 말 그대로 외인 구단이다. 육상·핸드볼·태권도 등 다른 종목에서 뛰던 선수들이 모였다. 핸드볼선수 출신 황수진은 본격적으로 럭비를 시작한 지 고작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주장 서미지는 “우리 팀이 사실상의 외인구단이라고 해도 경기를 할 때는 모두가 하나가 된다는 게 럭비의 매력”이라고 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가장 큰 대회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다. 이 두 개의 대회에서 대표로 뽑히는 건 대표선수로서의 자부심이다. 그러나 그만큼 성적에 대한 중압감이 크고, 훈련은 극도로 고통스럽다.

레슬링 대표팀은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악명 높은 ‘사점(死點·dead point)훈련’을 했다. 무시무시한 이름의 이 훈련은 안한봉 레슬링 대표팀 감독이 고안해낸 체력 훈련으로, 서킷트레이닝(여러 종류의 운동을 쉼 없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레슬링 선수들은 이 훈련을 할 때면 35㎏짜리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찬 채 개구리뜀을 뛰며 운동장을 돌다가 휴식도 없이 곧바로 장애물을 넘고, 이어서 가슴을 밀면서 기어서 다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장애물 구보와 ‘패시브(레슬링에서 소극적인 공격을 할 때 받는 벌칙)’ 자세를 반복하는 훈련을 하다가 다시 체육관에서 대형 타이어를 드는 훈련을 한다. ‘사점 훈련’은 안한봉 감독이 고안한 100여 종류의 체력 훈련 중 몇 가지를 그때그때 다르게 선택해 휴식 없이 반복한다.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는 듯한 선수가 있으면 당장 코칭스태프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지옥훈련이다. 안 감독은 “일반인들이 매일 이 훈련을 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무시무시한 ‘사점 훈련’


레슬링대표 김현우가 2012년 런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6㎏급에서 금메달을 따고 환호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레슬링은 태릉선수촌 안에서도 훈련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태릉선수촌에서는 전 종목 선수가 모여서 태릉선수촌 뒤편의 불암산 4.5㎞를 뛰어 올라가는 ‘불암산 크로스컨트리’를 종종 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상징적인 체력훈련이다. 불암산 크로스컨트리 때마다 레슬링 선수들이 상위권을 휩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직전에 축구대표팀의 박지성이 레슬링 선수를 제치고 전체 2위를 하는 바람에 레슬링 대표팀이 외박을 취소하고 추가 훈련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만큼 레슬링 대표팀은 한국 대표선수단 중에서도 최고로 체력이 강인하다는 걸 자부심으로 삼고 있다.

레슬링을 비롯해서 유도, 복싱, 핸드볼 등은 훈련 많이 하기로 악명이 높다. 선수촌 용어로 ‘하루 네 탕’, 즉 새벽-오전-오후-야간 훈련까지 하루 네 차례 훈련을 밥 먹듯이 하는 종목이다. 남자 핸드볼 대표팀의 유동근은 “네 탕 훈련을 하는 날은 너무 힘들어서 밥도 잘 안 들어간다”고 했다.

유도·레슬링·복싱 등 격투 종목은 훈련도 힘들지만 ‘계체’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운 종목으로 꼽힌다. 이 종목은 경기 3~4일 전에 선수 몸무게를 재야 한다. 한국이 격투종목에서 강한 이유는 지독한 계체 훈련을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 격투종목 대표선수들은 자신의 체급보다 평소 체중이 4~5㎏, 많게는 8~9㎏ 정도 더 나간다. 이 체중을 계체일에 맞춰 단기간에 빼서 체급에 맞췄다가 경기일까지 다시 회복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을 하면서도 며칠간 음식은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계체일에는 몇 그램이라도 몸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체중계에 서기 직전까지 침을 뱉어낸다. 서양 선수들은 이렇게까지 독하게 몸무게를 줄였다가 늘렸다가 하는 경우가 적다. 대신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내면 자신의 체급 경쟁자보다 체중이 더 나가는 상태에서 경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을 더 쓸 수 있다. 왕기춘이나 김재범 등 유도 선수들은 계체 과정에 대해 “지옥을 보고 오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육체적인 고통 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 역시 크다. 세계 최강의 이미지가 굳어진 한국 양궁의 경우 태극마크를 다는 과정 자체가 스트레스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의 경우 선발전을 다섯 차례나 치른다. 5차 선발전까지 이어지는 장기 레이스에서 정신력이 약하고 끈기가 없는 선수들은 일찌감치 나가떨어진다. 세계랭킹 1위가 선발전 도중에 탈락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인천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는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양궁 2관왕 기보배가 탈락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양궁 대표팀에는 남자 4명, 여자 4명이 뽑혔다. 남자양궁팀의 막내 구본찬은 “5차 선발전까지 거쳐서 난생처음 대표선수가 됐을 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고 했다.

구본찬은 일단 국가대표에만 뽑히면 단체전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단체전에는 남녀 각 3명씩이 나간다. 구본찬은 “4명 중 누가 단체전 멤버가 될지는 시합일 임박해서 정해진다.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도 피 말리는 생존경쟁은 끝이 아니더라”고 했다.



시대가 변했다. 고민도 달라졌다


인천아시안게임 양궁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8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목동야구장에서 소음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 양궁은 당연히 금메달’이라는 인식 때문에 양궁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코칭스태프는 해병대 훈련부터 관중의 함성 속에서 활을 쏘는 야구장 훈련등 각종 특별 훈련을 고안해서 선수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양궁대표팀을 맡았던 문형철 감독은 올림픽을 준비하던 도중 극도의 스트레스 탓에 갑상샘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양궁대표팀은 2009년 이후로 전담 심리치료 전문가를 두고 있다.

올해 2월 소치동계올림픽을 마친 후 은퇴한 전 피겨 대표 김연아는 지난 8월 한 패션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대표를 그만두고 현재 직업이 없으니까 스트레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금메달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감이 클수록, 해당 대표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요즘 국가대표 선수들의 솔직한 꿈은 ‘인기를 얻고 응원을 많이 받고 싶다’, ‘스타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스포츠가 낳은 최고의 스타 김연아(피겨)는 이런 면에서 선수들의 롤모델이다.

크리켓대표 김경식은 “한국에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하다는 게 참 힘들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든 건 무관심이다. 사람들이 ‘한국에 크리켓대표팀이 있다’는 것조차 전혀 모른다는 현실이 힘들다. 오히려 인도나 일본 같은 데 전지훈련을 가면 현지 언론사에서 찾아와서 ‘한국에도 크리켓팀 이 생겼느냐’며 관심을 보이고 취재를 해가는데, 한국에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게 정말 힘들다”고 했다.

성적만 잘 낸다고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아마추어 스포츠에서도 실력 이상으로 상품성이 중요한 시대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인라인롤러에서 금메달을 땄던 전 국가대표 우효숙은 금메달을 딴 후 다소 서글픈 인터뷰를 했다. 그는 “주니어 대표 시절 내가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사람들은 얼짱으로 유명한 ‘인라인 요정’ 궉채이만 찾았다. 채이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쏠려서 어린 마음에 참 미웠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과거엔 볼 수 없던 새로운 고민을 하는 선수도 있다. 박태환(수영)·김연아(피겨)·손연재(리듬체조) 등 이른바 ‘선진국형 스포츠’인 개인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스타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갖고 있다는 죄(?)로 자비, 혹은 스폰서 비용으로 해외로 나가서 외국인 전담코치와 훈련했다. 우리 대표팀의 동료들과 보조를 맞춰 훈련하기엔 실력 차가 지나치게 커서 선수촌에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선수촌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개인 훈련을 하려니 열악한 인프라 때문에 훈련장을 찾을 수가 없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종종 연맹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태환의 경우 그나마 있던 후원사마저 올초 계약이 끝나면서 자비로 호주 전지훈련을 하며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했다.

국가대표 선수, 특히 남자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은 병역 혜택이다. 올림픽 1~3위 입상자와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는 현역으로 입대하지 않고도 해당 스포츠 분야에서 2년 이상 활동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간주한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최근 10 년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혜택을 받은 남자 선수는 총 186명이다. 메이저리그의 류현진(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과 추신수(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 금) 등이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은 이후 날개를 달고 미국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특히 프로 종목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은 수십억 원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당근’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불암산 크로스컨트리 훈련.
그들에게 ‘당근’은 무엇인가

직접적으로 돈을 받는 혜택도 있다. 일단 대표팀에 소집돼 훈련하는 기간 동안은 하루 5만 원씩의 훈련수당을 받는다. 또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대회의 메달리스트들은 매달 연금을 받는다. 연금 지급액의 기준은 연금포인트다. 연금포인트는 대회별, 성적별로 다르게 책정돼있다. 특정 선수가 지금까지 거둔 성적을 연금포인트로 바꿔서 합산하면 연금 수령액이 나오는데, 연금포인트 합산점의 점수대 별로 금액이 또 달라지는 등 계산법이 복잡하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재테크나 노후대책을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세대답게 자신의 포인트를 꼼꼼하게 따지고, 선후배들끼리 정보교환 역시 활발하게 한다. 인천아시안게임 여자핸드볼팀의 막내 박새영(골키퍼)은 “이번에 처음 대표팀에 들어왔는데, 언니들이 따로 불러서 연금포인트 계산하는 법을 알려줬다”고 수줍게 웃었다.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두면 뭘 해야 할까’를 걱정하는 건 국가대표 운동선수들도 여느 대한민국 20대 젊은이들과 다를 게 없다. 임오경 SBS 핸드볼 해설위원은 “지금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이 사이버대학에 진학해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건 우리 세대와 많이 다르더라. 사실 우리 때는 여자 선수는 결혼하면 운동 그만두고 살림만 할 거라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메달리스트 연금제도가 국가대표 선수들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건 아니다. 연금포인트를 아무리 많이 받았다고 해도 메달리스트 연금은 최대 월 100만 원(연금포인트 110점 이상)으로 제한돼 있다.

유남규 탁구 대표팀 감독은 “요즘 대표선수들의 경우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이유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사실상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받은 연금이 월 100만 원이었다. 그때는 월 100만 원이 엄청나게 큰 돈이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은 프로선수들과 또 다르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은퇴하고 나면 직업을 찾기가 어렵다.

지도자를 하자니 실업팀이 없고, 체육교사를 하기도 어렵다. 연금 100만 원으로는 그 보상이 되는가? 소위 비인기 종목으로 불리는 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미래가 불투명해서 동기부여가 안 된다. 정말 속상하다”고 했다.

김호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은 ‘혜택을 가능한 골고루 나눠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 제도에서는 병역이나 연금 등 대표선수의 혜택이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낸 극소수에게만 몰린다. ‘잘한 사람만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이다. 모든 국가대표 선수가 골고루 나눌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를 10년 이상한 선수도 연금을 받도록 한다든가, 또 지금처럼 금메달리스트에게만 면제와 다름없는 병역 혜택을 주는게 아니라 국가대표 남자 선수들은 35세 이후에 입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든가 하는 방안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어린 선수들이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갖게 하려면 그걸 강요만 해서는 안 된다. 나라가 그들을 지켜주고 배려 한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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