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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의 일본 속 우리 고대사⑥ - 일본 생활문화의 뿌리 하타(秦) 가문의 정체 

벼농사와 길쌈, 금속·도예·목공기술까지 전수… 일본 왕실의 교토 천도자금 대기도 

홍윤기 왕인학회장, 한일천손문화연구소장
하타 씨족은 일본 선주민에게 벼농사뿐 아니라 온갖 필수 생활양식까지 전수했다. 하타 가문이 세운 교토 후시미이나리 대사의 신라 농신은 이 고장뿐 아니라 전 일본의 벼농사를 지켜주는 최고의 신령이 됐다. 경북 울진의 호족 출신인 이들이 없었더라면 고대 일본의 생활문화는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8세기 초 어느 해 가을, 큰 풍년이 들자 야마시로(山城: 오늘날의 교토 지역) 고장의 으뜸가는 신라인 부농 하타노이로코(秦伊呂具)는 기쁨에 넘쳤다. 그는 모두 조상님의 은덕으로 여겨 ‘조상님과 하늘에 감사의 제사를 올리자’고 결심하고 하인들에게 햇곡식으로 신주(神酒)를 빚고 흰 떡을 만들도록 했다. 하인들이 떡을 해오자 하타노이로코는 하늘로 휙 던져 올렸다. 8~10세기에 씌어진 에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해 놓았다(일본 왕실문서 등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하늘을 향해 떡을 휙 던지더니 그 떡을 향해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 화살에 맞은 떡은 한순간 하얀 ‘백조’로 변신해 날갯짓하더니 산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자리에서는 불쑥 벼 이삭이 솟아났다. 하타노이로코는 몹시 두려워하며 땅에 엎드려 벼 이삭이 솟아난 자리를 향해 깊이 머리를 숙였다. 하타노이로코는 이곳 후카쿠사(深草) 터전의 후시미(伏見) 이나리(稻荷)산에 농신(農神)의 신주를 모시는 이나리 사당을 세웠다.”

하타노이로코가 세운 후시미이나리다이샤(伏見稻荷大社, 교토시 후시미구 후카 쿠사 68)는 오늘날까지도 일본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사당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일본 각지를 돌아보면 어느 곳에서나 흔히 마주치는 사당이 다름아닌 이나리 진자(稻荷神社)다. 2008년 간행된 에 따르면 현재 일본 각지에는 “이나리 대사를 총본궁으로 한 이나리 신사 4만여 곳”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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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호 (20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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