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치 포커스 | 통진당 해체의 뇌관 찾기 - 이석기 보위하려다 전멸한 진보정당 10년 영욕사 

스스로에게 발목 잡힌 통진당의 특수한 운용 원리… ‘남측 수령’이자 ‘제왕’을 버릴 수 없었다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 개표방송을 지켜보는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전신) 중앙당사의 선거상황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당직자와 당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얼굴은 더욱더 밝아졌다.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 정당 득표율 13.1%. 이 놀라운 결과 앞에 당직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올렸다.

5·16 이후 43년 만에 진보정당 최초 10석 원내진출로 제3당이 되는 순간. 민노당의 정치적 대약진에 언론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국민의 새로운 대안정치’, ‘새로 쓴 한국현대정치사’ 등의 제목을 단 보도가 이어지며 진보정당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모아졌다. “국민을 배신하지 않는 최초의 정당이 되겠다”는 심상정 당선자의 소회와 권영길 대표의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을 실현하겠다”는 자신만만한 포부가 이어졌다. 2012년 통진당은 실제로 역대 최다인 13석을 얻어 원내 제3당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14년 12월 22일 사정은 180도 달라졌다. 민노당의 후신인 통진당이 헌재의 결정으로 해산의 운명을 맞은 것이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에 따른 비상원탁회의’에서 “당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무릎을 끓고 사죄의 큰절을 했다.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은 회한과 분노가 교차하는 듯했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502호 (2015.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