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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 친박 원로그룹 ‘7인회’ 멤버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 “북한 진정성 보이려면 핵포기 선행해야”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오상민 기자
■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김정은 신년사에 우리가 들뜰 이유 없다 ■ 한국과 국제사회가 공조해 북한 인권문제 더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 실상과 이유를 떠나 청와대 문건파동이 불거진 건 아주 유감스런 일 ■ 어렵고 힘들어도 임기 5년간 박 대통령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일관성’에 기초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 원로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이른바 ‘7인회’의 멤버였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물망에 올랐고, 최근까지도 그의 하마평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최근 들어 김기춘 비서실장의 유임에 힘이 실리면서 발탁설은 잦아졌지만 그는 빈번히 ‘차기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언급된다.

제주 출신인 그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1962년 설립된 정수장학회 1기 출신이자,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기춘 실장도 ‘7인회’ 멤버이면서 상청회 회장을 역임해 현 부의장과 거의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현 수석부의장은 좀처럼 개별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편이었다.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남북 관계가 최근 해빙 또는 대화 무드로 접어드는 중이다.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해 말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안한 데 이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명하면서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대외 발언을 자제하던 현 수석부의장도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최근의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북한이 대화의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핵 포기부터 선행돼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핵 포기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한국과 국제사회가 공조해 북한 인권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도 목청을 높였다. 인터뷰는 1월 9일 서울 중구 장충동 민주평통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정상회담 전제조건은 우리가 다는 것”

2015년 들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분위기가 대화 쪽으로 급격하게 기우는 것 같다.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와 북한 인권 개선, 개혁개방에 기여할 수 있다면 당연히 진행해야 한다. 남북이 합의하고, 실천 가능한 작은 일부터 성과를 내서 신뢰를 쌓다 보면 정상회담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접어들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그간의 남북 합의를 밥 먹듯 파기하고 최소한의 신뢰도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상회담으로 달려가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북에서 먼저 정상회담 분위기를 띄우고 나오는데.

“우리가 김정은의 신년사에 들뜰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본다. 내용을 보면 아주 의례적이고 상투적이다. 전제도 많이 달려 있다. 이런 이런 조건이 되면 고위당국자 회담도 할 수 있다는 식이다. 거기에 뭐 흥분하는가. 하려면 우리가 조건을 달아야 한다.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하면 원하는 것 다 들어줄 수 있다고. 이게 우리 정부 입장이다.”

김정은 신년사에는 핵 포기와 관련한 언급이 없었다.

“가장 핵심적인 게 핵이다. 우리뿐 아니라 강대국 모두가 가장 크게 보는 사안이 핵문제다. 그걸 접어두고 무슨 얘기를 하자는 말인지 모르겠다.”

북에서 핵 포기 등의 전향적인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입장은 그런 것 아닌가? 정부 입장은 적어도 북핵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게 폐기하는 것이고 미국 정부도 그게 전제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북핵 문제를 이대로 둔 상태로 회담을 한다고 해서 어떤 의미와 진전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에 전제조건은 없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해결 안 되면 평화통일을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대화로 문제를 풀자면 열린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김정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 표명의 배경을 무엇이라 보는가?

“어떻게든 현 상황을 벗어나 보겠다는 계산일 거다.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국제형사재판정에 서야할지 모르는 위기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때는 황병서 등 고위급 인사 3인을 전격 파견한 바 있다.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요란한 행차였다. 이후 북한은 황병서 등이 북한으로 돌아간 직후 유엔에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반대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그 근거의 하나로 이 같은 ‘남북대화 노력’을 제시했다. 북한 실세들의 인천 ‘깜짝방문’이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황병서 등이 인천에서 고위급 회담을 입에 올려 놓고 이런저런 핑계로 응하지 않은 것도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궁지를 벗어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박 대통령도 1월 6일 국무회의에서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남측이 제안한 남북 당국간 회담에 우선적으로 응할 것을 요청했다.

“남북 간에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등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북한의 변화를 위해 과연 정상회담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도 지극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 남북한은 1972년부터 2012년까지 40년 동안 총 606회의 회담에서 모두 224건을 합의했다. 그러나 남북 합의는 북한에 의해 대부분 휴지조각이 돼버렸다. 밥 먹듯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과 대화, 합의와 파기에 이은 도발의 행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남북간 대화 기조에 대한 미국의 시선과 기류는 어떠한가?

“국내 언론에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정상회담 등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지만 미국은 연초부터 대북 제재조치를 강화했다. 북한 김정은이 등장하는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영화사 해킹을 사이버 테러로 규정했다. 미국은 비례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했고 현재 북한은 인터넷망 완전 붕괴로 구석기 시대로 회귀하는 고통을 겪었다. 미국의 대북 제재가 남북대화에 영향을 준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 인권·핵·테러 등에 대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게 우리와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북한 국제 관행 수용하는 등 변화 오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들과의 통일대화에 참석해 현경대 수석부의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현 수석부의장은 자신의 발언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평통은 대통령에 대한 자문기구일뿐 통일정책의 집행기구도, 산하기구도 아니라는 것이다.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자문·건의하는 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과 통일부장관의 얘기가 다를 수 있다고 했다. 현 수석부의장은 “지금 내가 얘기하는 것도 평통의 의견이며, 핵심 자문위원들의 생각도 대체로 비슷하다”면서 “그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박 대통령은 취임 1년도 안 돼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과 두 차례 이상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한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는 다섯 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리고 지난해 독일 드레스덴 평화통일 구상 선언과 8·15 경축사 등을 통해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통일 위한 우리의 진정성 있는 접근에 호응할 것을 촉구해왔다.

북한은 2013년 초 개성공단 문을 걸어 잠근 뒤 우리가 근로자를 철수시키자 자기 손으로 공단을 정상화하고 개성공단의 국제화에도 동의했다. 또 3년 4개월 만에 이산가족상봉에 합의했다. 북한이 극구 반대하는 한미 군사훈련 기간 중에 상봉이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인천아시안게임 선수단 참가 비용 19만1682달러(약 2억 원)를 사상 처음 지불했다. 선수단은 물론 여자응원단 숙식비와 그들을 실어온 배의 기름까지 얻어간 북한이 국제적 관행을 처음 수용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원칙’과 ‘일관성’에 기초한 ‘신뢰프로세스’가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평통은 남북관계와 통일에 어떤 기능을 하는가?

“통일에 대한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게 첫째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통일에 대한 민족적 의지와 역량을 결집하는 일도 주요 역할이다. 이런 의지를 모아 대통령에게 통일 방향을 자문하고 건의하는 게 헌법에 정해진 우리의 책무다.”

민주평통은 지난해 12월 운영·상임위 합동회의에서 북한 인권 회복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한반도 통일과 북한 인권 개선에 국제사회의 동참을 호소했다. 박 대통령의 촉구에 이어 유엔 총회 제3위원회와 본회의도 압도적인 찬성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민주평통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은 민주평통 의장인 박 대통령의 인권 원칙을 확고히 지지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당당하게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국내 일각에는 북한을 잘못 건드려 전면전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가 그동안 이룩한 성취조차도 물거품이 되어버리니까 현 상황을 유지하자는 관점도 있다고 본다. 우리가 설령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해 어떠한 도전에 직면한다고 해도 그걸 극복할 생각을 해야 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은 결코 정의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상당한 고심 끝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생각한다.”

‘김정은 이름 빼주면 인권조사관 방북 수락’ 제안도


▎2013년 현경대 수석부의장 아들 결혼식에는 친박 원로 인사도 많이 참석했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운데)와 김용갑 전 의원(왼쪽 둘째)은 현 수석부의장(오른쪽)과 함께 박 대통령의 자문그룹인 ‘7인회’ 멤버로 꼽혔다
수석부의장 본인도 평소 북한 인권 문제 쟁점화에 앞장섰다. 어떤 소신과 신념에 따른 것인가?

“미국은 2004년, 일본은 비록 납북자 문제가 포함된 내용이지만 200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2013년 유엔총회 결의에 따라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 인권을 조사한 보고서를 지난해 2월 공개했다. 남아프리카의 보츠나와는 반(反)인도적 범죄를 이유로 수교 40년 만에 북한과의 단교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아프리카 난민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주민이 굶주리는 실상에 경악한 것이다. 땅 덩어리는 우리보다 다섯 배 크지만 인구는 200만 명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나라로부터 국교를 단절당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정작 통일 당사자인 우리만 의도적인지, 무감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국회에서도 10년째 북한인권법이 잠자고 있다. 너무 부끄럽다. 북한 인권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자신이자 형제자매의 일이다. 마이클 커비 전(前)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것도 이런 활동의 일환이다.”

북한 인권에 관한 얘기가 오갔나?

“지난해 4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민주평통 호주협의회에 초청된 커비 전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은 호주 대법관 출신이다. 그가 ‘법관으로서 35년 동안 법정에서 심정적 동요를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북한 인권 증언을 듣고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더라. 그는 생후 2개월인 남자 아이가 15세 누나의 품에서 굶어 죽었다는 워싱턴 탈북자의 증언, 중국 장애인 남성과 결혼한 탈북 여성이 공안에 적발되지 않으려고 자식을 익사시켰다는 증언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의 자위적인 핵 억제력을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기도가 실현될 수 없게 되자 비열한 인권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난했는데.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그만큼 뼈아프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유엔의 인권결의안이 매년 채택되고 유럽의 인권 개선 요구가 거세지자 2009년 북한 헌법에 인권보호 조항을 추가했다. 지난해엔 유엔 총회 인권결의안 채택이 임박하자 리수용 외상이 15년 만에 총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엔 주재 북한 외교관들은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찾아와 ‘김정은 이름만 빼주면 인권조사관의 북한 방문을 수락하겠다’고 했고, 거의 동시에 요덕수용소의 정치범들을 만탑산수용소로 빼돌리는 위장을 시작했다. 인권을 거론하면 북한을 자극한다지만 그건 한 줌도 안되는 권력층을 말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와 우리가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할수록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나아지면 나아졌지 결코 후퇴하진 않는다.”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면 할수록 남북간 대화는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남북대화가 단절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한국은 과거에 북한 인권을 제기하면 남북관계가악화된다는 주장에 이끌려 유엔 북한인 권결의안 투표에 기권하기까지 했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자 동포애의 최소한의 발현이다. 사람이 굶주리고 고문당하고 죽어가는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도 ‘북핵문제와 북한 인권문제는 평화롭고 행복한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우리 대북정책의 핵심 아젠다’라고 하지 않았나. 북한의 반발이 두려워 이 문제들에 대해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의지다. 인권 문제가 대북정책의 주요 기조로 자리 잡은 이상, 향후 북한과 인권 대화를 기본으로 가져가면서 기타 남북 협력 사안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5·24 제재 남한이 일방적 해제할 수 없어”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5·24 대북 제재조치를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5·24 제재는 북한의 천안한 폭침 도발로 정부가 취한 대북조치다. 이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전향적인 조치나 북한의 책임 있는 행동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북이 만나서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로, 시간이 흐르고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우리가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김정은의 집권 3년 동안 북한은 도발과 유화책을 번갈아가며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집권 3년을 어떻게 평가 하는가?

“북한은 3대 세습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핵 개발과 폐쇄적인 수령 독재 체제에 변화가 없다. 오히려 핵 개발을 더욱 노골화하고 장성택 처형에서 알 수 있듯이 1인 지배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중이다. 김정은은 인민군 장성들의 계급장을 제멋대로 뗐다 붙였다 하는 방식으로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장정남 전 인민무력부장은 1년 사이 중장→상장→대장→상장→대장→상장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과연 북한군 장성들이 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또한 20대의 어린 여동생 김여정이 노동당 비서 직책으로 권좌에 등장했다. 우리 사회로 치면 사회 초년병들이 국가를 다스리는 상황이다.”

현 수석부의장은 신년 초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자리에서 “통일의 과업은 우리의 희생, 발상의 전환, 그리고 과감한 모험을 걸지 않고는 결단코 이 시대에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의 시점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한반도에 예전과 달리 통일을 위한 분위기가 하나씩 조성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준비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통일도 우리가 준비하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우리 국민과 국가 지도자가 확고히 통일의 결단을 내릴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러한 일관된 의지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전파된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매우 우연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해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지난해 출범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기존의 평통과 기능이 일부 겹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평통은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에게 통일정책을 자문하고 국내외 2만 여 자문위원과 함께 풀뿌리 통일운동을 진행하는 고유 기능을 가진다. 통일준비위원회는 관민이 통일 정책을 포괄해 추진하는 기구로 볼 수 있기에 양자의 성격이 다르다. 기능이 겹친다는 우려는 사실과 다르고, 오히려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법률가로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헌재의 ‘자유민주주의의 존립 자체를 붕괴시키는 행위를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헌재가 1년간의 심리를 거쳤고, 재판관들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 만큼 우리 사회가 그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헌법이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인정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정당은 용인할 수 없고, 통진당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를 남한에까지 확산시키려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로 북한을 추종하며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세력의 준동을 막고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에 온 국민이 하나 되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2013년 5월, 16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한 언론은 인터뷰 기사에서 그를 ‘박 대통령의 막후 조언자’로 소개했다. 그에게 “지금도 막후에서 자문하느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은 민주평통의 의장을 겸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수석부의장은 법에 따라 의장의 여러 가지 행정상의 권한을 대행할 뿐이다. 직함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는 공식적인 관계가 되는 것이다.” 7인회의 일원으로 막후에서 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공식적인 상하관계에서 일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에게는 필요할 때 서면 보고”


▎현경대 수석부의장은 예기치 못한 우연한 사건이 한반도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다고 본다.
대통령께 현안과 관련해 얼마나 자주 자문을 하고 의견을 개진하나?

“필요할 때는 서면으로 말씀을 해드리고…. 보통 그렇게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 물망에도 꾸준히 올랐다. 외부의 이런 시선과 기대에 어떻게 답을 하는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비상근 명예직이다. 내 역량과 적성에 딱 맞는 자리가 여기다. 이 자리를 끝내면 그만둬야 하고…. (평통 수석부의장직을) 마지막으로 모든 걸 바쳐서 일하면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자 한다.”

국가에서 부른다면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웃으면서) 내 나이가 몇인 줄 아느냐?”(올해 76세인 그는 1939년 생으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동갑이다.)

7인회 모임은 더러 하는가?

“7인회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 측근 관련 문건 파동, 항명 파동 등으로 대통령 리더십과 비서실에 흠집이 났다는 평가다. 2012년 대선 당시 자문을 한 입장에서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가?

“나도 보도를 통해서 접하니까 자세히는 모른다. 실상과 이유가 어떻든 그런 문제들이 불거져 나온 건 아주 유감스러운 일이다.”

현 상황에 대한 정권 차원의 해법과 돌파구가 있다면?

“대선 때 고생했던 사람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는 자리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냉장고를 하나 만들어 팔고도 보증기간 5년 동안은 제조회사가 애프터서비스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냐. 대통령을 만들었으면 임기 5년간은 대통령 역할을 잘해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줄 책임이 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왕 만들었으니 대통령이 잘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든 최선을 다해 뒷받침을 하자.’ 박 대통령이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잘된다는 것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나라가 잘된다는 것이니까.”

현 수석부의장의 별명은 ‘현폴레옹’이다. 나폴레옹과 같은 작은 키에도 결단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준 것이다. 1947년 제주 4·3항쟁 와중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돼 이모집에서 자랐다. 제주 오현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로 일하다 11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뒤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3년 5월 평통 수석부의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새누리당 도당 위원장을 지내는 등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1997년 상청회 회장을 맡으면서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던 박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내가 나폴레옹보다는 더 오래 살아서인지 몰라도 아직 우리 민족을 위해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은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통일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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