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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대통령의 대북정책 브레인은 누구? - 김기춘·김관진 실장이 ‘투톱’ 

류길재 통일부장관 나 홀로 행보에 이병기 국정원장 지원 사격… NSC 멤버들 역할 줄고 “대북정책 결정자는 대통령”이란 말도 나와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기간 중 ‘지하벙커’로 불리는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무회의를 연달아 주재했다.
크리스마스 징검다리 연휴가 한창이던 지난 12월 27일 오후. 류길재 통일부장관의 휴대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반 스마트폰과 같지만 대화 내용이 해킹당하거나 감청되지 않게끔 특수 장치가 내장된 보안 업무폰이었다. 짤막한 통화내용에도 불구하고 류 장관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말씀하시던 내용대로 한번 추진해보세요”라는 말을 던진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철통 보안을 위해 류 장관의 최측근 핵심 간부 몇몇이 불려왔다. 류 장관이 정부측 부위원장을 맡은 통일준비위원회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리고 48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같은 달 29일 오전 10시30분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 3층 브리핑룸에 류 장관이 들어섰다. 긴급 기자회견이 있으니 참석해달라는 전갈을 받은 정종욱 통일준비위 민간측 부위원장 등 몇몇 인사는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었다. 정례브리핑을 위해 참석했던 출입기자들은 ‘장관이 긴급발표를 할 것’이란 엠바고성 전갈에 촉각을 곤두 세웠다.

류 장관은 상기된 표정으로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분단 70주년이 되는 새해에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통일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내년 1월 중 대화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는 골자였다. 류 장관의 회견이 시작되던 시각, 판문점 남북연락관 채널을 통해서 제안 관련 전화통지문이 북한에 전달되고 있었다.

통일부 핵심관계자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대북 제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진언한 류 장관에게 박 대통령이 재가를 해준 것”이라고 귀띔했다. 일부 대북·안보 부처에서는 류 장관을 향해 ‘조율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대통령에게 꺼낸 것’이라며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대통령이 결국 힘을 실어줬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아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통일준비위 명의로 대북 제의를 하기로 결정한 것도 류 장관이라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사례에도 불구하고 류길재 통일부장관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움직이는 최고의 ‘키플레이어’라고 선뜻 꼽는 시각은 많지 않아 보인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윤병세 외교장관 등 외교안보 라인에 대통령 신임이 두터운 ‘박근혜의 사람들’이 포진한 때문이다. 여기에 맏형 격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대북·외교안보 정책에 상당한 입김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대석 낙마와 대북 안보라인 인사


▎지난 12월 통일준비위원회 제 3차 회의 행사장에 입장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류길재 통일부장관(오른쪽). 통일준비위 부위원장이기도 한 류 장관은 지난해 말 통준위의 남북 대화 제의를 주도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인 데다 정무직 장관 특유의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부각되지 않음으로써 류 장관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현실이다. 과거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아 대북정책의 주요 사안에 결정권을 행사하던 실세 통일장관과 비교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좌우하는 핵심참모가 누구냐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통일부장관이나 드러난 외교·안보라인 외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외교안보 라인의 현주소를 파악하자면 꼭 2년 전으로 돌아가 상황을 복기해볼 대목이 있다. 바로 최대석(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외교·안보·통일 분과 인수위원의 낙마사태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북정책 브레인’으로 꼽히던 최 교수는 인수위원 임명 1주일 만인 2013년 1월 12일 사의를 표명했고, 박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인수위는 이튿날 이 같은 사실을 언론에 공식 발표했다. 인수위 고위인사들뿐 아니라 정권 내부에서도 최 교수의 낙마 배경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는 없었고 사퇴 배경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않은 채 대북 비밀접촉을 시도하다 문제가 됐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왔다. 5·24 제재조치 해제 등을 포함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대북 접근을 강조하던 최 교수가 대북 접촉을 통한 정지작업을 벌이는 게 문제 있다고 판단한 국가정보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줄거리였다. 최 교수는 최근에도 “비밀접촉 등은 언론의 오보”라면서도 구체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최 교수는 박 대통령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의 주요 멤버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청사진을 그린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부친이 공화당 4선 의원을 지낸 고(故) 최재구 씨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는 점 때문에 박 대통령과 대를 잇는 인연을 맺어왔다.

이런 최 교수의 낙마는 대북·외교안보 라인 인사 틀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게 했다. 누가 보더라도 통일부장관은 ‘떼어 논 당상(堂上)’이라 여겼던 그의 자리에 공백이 생긴 때문이다. 류길재 통일부장관에게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를 ‘최대석의 대타’라는 인식에서 찾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최 교수의 몰락에 따른 최대 수혜자가 류 장관이란 인식이다. 이런 부담은 박근혜 정부의 장수 장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류 장관을 괴롭혀왔다.

대북정책 추진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의 역할론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한미동맹이나 중국·일본과의 외교정책뿐 아니라 대북 현안에 있어서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윤 장관이 최대석 교수와 함께 대북정책 골격이라 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밑그림을 그린 것은 물론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입안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히는 윤 장관은 1976년 외무고시(10회)에 합격해 유엔 참사관, 외무부 북미1과장, 주미 공사, 외교통상부 차관보 등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NSC 정책조정실장을 거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맡았다. 퇴임 후 서강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를 지내면서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인맥과 끈이 닿았다는 전언이다. 당시 외교안보 분야 조언을 해주며 인연을 맺던 윤 장관은 2010년 말 박 대통령의 정책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회원으로 참여 하면서 박근혜 캠프에 진입했다.

예전만 못한 외교장관 영향력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양대 축을 이룬다는 분석이다.
새벽까지 마라톤회의를 이어갈 정도로 타고난 워크홀릭으로 소문나면서 집권 이후 박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게 외교부 안팎의 대체적 평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 장관이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한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최근 들어서는 거의 갖지 못한 채 간접보고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부는 항상 북핵이나 대북 관련 유엔 외교 등을 내세워 북한 이슈의 ‘외교화’를 시도하지만 윤 장관 체제에서 별다른 힘을 받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대북부처 인사는 “윤 장관이 정권 실세 A씨를 거쳐 대통령에게 외교 현안을 보고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만큼 윤 장관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순수 외교현안 추진 외에 대북문제로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가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도 상대적으로 힘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대북안보정책을 주도하는 모양새로 청와대 진용이 짜여 있다. 여기에 주 수석이 외교관 시절 미국이나 중국 등 외교현안에서 핵심 보직이 아닌 프랑스 주재 대사 등 구주지역 전문가로 자리 잡았던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통일준비위원회의 민간 측 부위원장인 정종욱 인천대 석좌교수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드레스덴 선언’ 같은 구체적인 이행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중책을 맡았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집권 기간 힘을 싣게 될 통일준비 작업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종욱 역할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준비위를 중심으로 통일의 비전과 방향에 대해 국민이 마음과 뜻을 모으고 평화 통일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준위 조직이 집권 3년차 리더십의 중요한 중심축을 이룰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 부위원장은 김영삼 정부 첫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1차 북핵 위기와 첫 남북정상회담 추진(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 북·미 제네바 핵 합의 같은 매머드급 대북·안보 현안을 겪었다. 1차 북핵 위기 때 강경대응을 주장했고, 주중대사 시절인 1997년 2월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사건을 처리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통준위에 적지 않은 힘이 실리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대북정책 결정이나 추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통준위가 당국과 민간을 결합한 형태의 조직이란 측면에서 청와대와 통일부의 영향력 아래 움직일 수밖에 없으리란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박사는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추진력은 확보했지만 당국 대화와 대북 인도적 지원 같은 핵심 사안은 아무래도 당국이 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통준위의 경우 통일헌장 제정이나 통일에 대비한 중장기 과제 같은 민간 차원의 아이템에 집중하는 상황이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정종욱 부위원장의 경우 통일헌장의 문안작업 등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와 대북부처 핵심 당국자들 사이에선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힘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국회 정보위 참석 같은 필수적인 동선 외에 외부 노출을 삼간 채 정보기관장으로서의 얼굴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 원장이 정보기관은 드러내지 않고 활동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우리 회사와 관련한 어떤 내용도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통일부과 국정원의 ‘2인3각’


▎1. 1월 6일 경기도 오산 미공군기지를 방문해 장병들과 만난 윤병세 외교부장관(오른쪽).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운데)가 장병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2.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병기 국정원장(오른쪽).
박근혜 정부 2기 외교안보라인에 해당하는 현 진용은 조각 당시보다 대북정책에 있어 유연해진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엔 이병기 국정원장 기용이 한몫했다는 진단이다. 군 출신으로 강성으로 분류되던 남재준 전 국정원장 대신 외교관 출신인 이병기 원장이 포진한 것이다. 대북 및 외교안보 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NSC 상임위 참석 멤버 가운데 이 원장과, 윤병세 외교부장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 등 4명이 외교관 출신인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또한 윤병세 장관(외시 10회)의 외교부 선배인 이병기(외시 8회) 원장이 진입함으로써 국정원이 대북정책 관련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평가도 있다.

특이한 점은 이병기 원장이 류길재 통일부장관을 응원한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는 “NSC 멤버들 사이에 대북현안을 놓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거나 통일부가 핀치에 몰렸을 때 이병기 원장이 유연한 절충안으로 류 장관의 손을 들어줄 때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대북문제에서 강경책을 지지한다는 통설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다른 당국자는 “대체로 강성 기류인 NSC 멤버들 사이에서 통상 소수의견을 내는 입장이던 류길재 장관으로서는 이병기 원장의 지원사격에서 힘을 얻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무진에선 청와대와 통일부의 몇몇 인사가 대북정책의 최일선을 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홍용표 통일비서관은 지난해 10월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일행의 인천방문 때 김관진 안보실장을 비롯한 8명의 남한측 대표에 포함돼 대북정책 실무책임자의 면모를 발휘했다. 앞서 지난해 2월 김규현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이 수석대표로 나선 판문점 남북 고위접촉의 차석대표를 맡아 대북협상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시작으로 한양대 정외과 교수 등을 거쳤고, 지난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외교안보분야 발기인으로 참여해 인연을 맺었다. 인수위의 외교·국방·통일 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찌감치 현 정부의 대북안보라인 핵심인물 후보로 낙점됐다.

통일부에선 천해성 정책실장이 꼽힌다. 천 실장은 지난해 2월 NSC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임명됐다가 며칠 만에 통일부로 복귀하는 해프닝을 겪었지만, 남북회담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말 정책실장을 다시 맡아 건재함을 보여줬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비서관실에서 근무하며 첫 남북정상회담 준비 작업을 맡았고,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현 정부까지 요직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류길재 통일장관의 당국대화 재가동과 통일준비 드라이브에서 브레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관측이다.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 ‘통일대박’을 위시한 대북관련 이슈를 챙기고, 핵심 참모들이 드라이브를 거는 상황에서 실무 정책간부들의 영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과 관련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집권 초기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 같은 안보위기를 추스르고,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했다며 평가하는 시각과 함께 남북관계 해결 의지와 전략이 부족하다는 냉소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통일대박’을 화두로 제시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현실은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 단절됐던 남북 당국대화와 민간교류의 흐름을 다시 이어놓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화하지 못한 결과다. 5·24대북제재 조치를 남북관계 경색의 주요인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와 함께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남측 대화 파트너 고르는 법


▎1월 1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사에서 시민들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남북 화해협력과 교류 분위기에 익숙해진 쪽에서는 ‘대화는 선(善), 단절은 악(惡)’이란 논리가 자리 잡은 것도 정부로선 부담이다. 정부 당국자는 “5·24조치의 원인이 된 북한의 천안함 폭침 등 김정은 정권의 도발에 대한 문제를 풀지 않고서 없던 일처럼 넘어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당국대화를 포함한 남북관계의 진전과 이를 통한 지역 안정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할 수밖에 없으리란 지적에 힘이 실린다. 무엇보다 집권 3년차 초반인 올 상반기에 정상회담을 통한 돌파구를 열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복원 시기를 놓칠 것이란 우려다. 이른바 대북접근의 골든타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북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부처와 당국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시급하다는 얘기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당국 대화나 교류 협력의 남측 상대를 고를 때 얼마나 힘이 실려 있는 인물이나조직인지를 면밀히 따져 결정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 이 후 북한 대남전략가들이 청와대 안보실과의 직접대화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란 것이다. 이 당국자는 “가장 효율적인 당국대화 창구인 통일부와 북한 통일전선부와의 이른바 ‘통-통 라인’ 가동에 주력하려면 우리 스스로 통일부를 대북 주무부처로 자리매김하고 힘을 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형으로 대북정책의 모든 걸 챙기고 지시하는 형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단기적으로 정책 추진에 힘이 실리는 건 분명하지만 상황변화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기 어렵고, 협상에 나선 당국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상당수 전문가나 당국자들이 “대통령이지 누구냐”라고 반문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투톱 시스템이 대통령의 의중을 좇아 지시하고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NSC 멤버들이 내린 결론이 대통령에게 보고돼 실행되는 모양새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NSC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대북 부처 당국자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입술만 쳐다보는 대북접근 방식으로는 절대로 정책목표에 다가갈 수 없다”고 말했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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