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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반(反)포퓰리즘’의 원조 오세훈(전 서울시장)의 격정토로 - “현행 복지 구조에서 증세는 언 발에 오줌 누기”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 증세 반대하는 박근혜 대통령 입장 현시점에서는 수긍 ■ OECD 기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한국 복지 확충해야 ■ 마음이 오만해져 서울시장직 버려… 그때는 인간이 좀 덜 됐었다 ■ 박 대통령, 외교·안보 잘했지만… 경제 어렵고 인재 활용 못해 ■ 당에서 받아줘야 총선 출마, 여권 대선주자는 총선 이후 윤곽 드러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 3년간 인생 전반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갓 봄의 초입에 접어든 서울 여의도 정치권이 무상급식 논쟁으로 후끈 달아오른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경남교육청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 방침에 여야가 각기 찬반 의사를 밝히면서다. 먼저 홍 지사는 3월 9일 “경남도 예산 643억 원을 무상급식 대신 서민자녀 교육 복지에 쓰겠다”며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현장 최고위 회의를 경남에서 개최해 무상급식 전면 중단의 부당성을 알리겠다”며 맞불을 놓았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무상급식 중단 결정과 관련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며 홍 지사를 지원사격했다.

정치권에 번지는 무상급식 논쟁은 3년여 전인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데자뷰와도 같다. 그때는 주인공이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이 장악한 서울시의 의회가 100% 무상급식 조례안을 가결시켰다. 이에 오 시장은 ‘복지 디폴트’를 불러 올 우려가 있다며 이를 주민투표에 부쳤다. 투표율이 개표 요건(33.3%)에 못 미치는 25.7%에 그치자 오 시장은 개표 무산의 책임을 지겠다며 시장직을 던졌다. 무상복지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는 야인으로 물러나 영국·중국·페루·르완다 등 주로 해외로 돌았다.

반(反)포퓰리즘의 물결을 타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돌아왔다. 3월 4일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사장 박관용)’ 조찬 세미나를 필두로 3월 한 달 동안 서울과 지방의 대학 등을 오가며 총 8회에 걸친 공개 강연에 나선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복지 정책에 대한 그의 구상을 중점적으로 밝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오랜 칩거를 깨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오 전 시장을 3월 5일 만났다. 그는 복지 이슈를 비롯한 정치 현안과 시장직 사퇴를 전후로 한 인생의 궤적에 대해 깊은 속내를 내보였다.

‘강연 정치’의 시작인가?

“젊은이들과 만나 일자리 창출, 복지재원 확보 등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또 한국의 국제사회 공헌 및 국가 경쟁력 강화 방안도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 사립대에 국가비전연구원 같은 기관을 세워 나라에 도움이 되는 비전과 정책도 개발할 생각이다. 필요하다면 정치, 공직에도 나설 수 있을 텐데 아직은 계획이 없다.”

“복지 논쟁 넘어 성장동력 확보에 눈 돌릴 때”


▎2011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시민들에게 주민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지난 수년간은 국내에 머물기도 했지만 해외 활동도 많았던 것 같다.

“2011년 서울시장직을 내려 놓은 뒤로 4개국을 방문했다. 영국은 민주주의와 복지 정책의 발상지로 직접 그 실상을 볼 겸해서 찾았다. 그 나라 경제도 어려워지면서 복지 혜택을 줄이거나 철회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푸단대 어학코스에 등록했다. 전 세계에서 온 학생과 4개월 동안 부대끼면서 다양한 관점과 문화를 접할 기회를 얻어 좋았다. 페루와 르완다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 자문단의 일원으로 각각 6개월씩 체류했다. 페루와 르완다 생활상은 틈틈이 개인 블로그에 기록을 올렸다. 간접 체험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생생한 정보와 현장감을 전달해줄 것이다. 특히 르완다에서는 한국에서 파견된 새마을리더해외봉사단의 활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KOICA와 경북도는 새마을운동의 해외 보급에 적극 나선다.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는 진척이 있던가?

“새마을운동은 한국이 자랑할 만한 보배다. 일각에서는 실패작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르완다 무심바 마을에서는 20대 젊은 한국 여성이 현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쌀농사 전파에 구슬땀을 흘린다. 새마을봉사단으로 개도국에 나간 청년 대부분이 농촌 속으로 들어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한다. 상하수도나 전기 등 기본적인 생활 편의시설도 없는 곳에서 빈대와 벼룩에 물리면서 1년 이상 버틴다는 건 신념과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르완다는 동족상잔, 철권 통치, 빈곤 탈출 노력 등에서 1950~60년대의 한국과 닮았다는 지적도 있던데.

“인구 1천만 명 남짓한 이 나라가 1994년 다수 종족과 소수 종족간 내전으로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수도 키갈리의 밀 콜린스 호텔은 난민들을 학살로부터 필사적으로 보호해 나중에 ‘르완다판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소수종족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종족 간 차별 언행을 금하고, 치안을 확립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IT·교육·관광 등 인프라 구축과 경제개발에 올인하는 게 과거의 한국을 떠올리게 했다.”

안에서 보았던 대한민국과 밖에서 본 대한민국은 어떻게 달랐나?

“와서 보니 우리가 벌어놓은 것을 쓰는 방법, 즉 복지를 둘러싸고 국력을 소모하고 있더라.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을 놓고 증세 논쟁이 불붙고, 연말정산 같은 파동을 초래했다. 참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보편-선별 복지 논쟁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더 나은 복지를 위한 미래 성장동력 연구·개발에 나서야 하는데 말이다. 복지는 돈이다. 돈이 나올 곳은 뻔한데 용처를 다투니 변죽만 울리고 논의는 겉돈다. 국내적 관점에 매몰되면 항상 이런 식으로 꼬인다.”

새 접근법을 염두에 둔 듯하다.

“이제는 시야를 외부로 넓혔으면 한다. 해외에서 우리 경제 파이(pie)를 키워 국내 복지재원을 충당하면 어떨까? 한국은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가브랜드가 저평가된다. 몇몇 나라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이다. 동일한 물건도 브랜드 파워가 약하면 제 값을 못 받는다. 무역대국 대한민국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개선하는 게 바로 지속가능한 복지 재원을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나라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파이를 키우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

실행방안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각종 연구 자료에 나와 있듯이 한국은 돈은 잘 버는 데 국제사회 기여도는 낮은 나라로 인식된다. 내가 가서 본 중남미 시장은 요즘 산업화·도시화가 한창이다. 아프리카 또한 경제개발에 목말라 한다. 압축성장을 일군 한국의 고급 은퇴 인력과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개도국에 많이 나갔으면 한다. 개도국은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습득해서 좋고 우리 은퇴자들은 경제성장의 경험과 정보를 현지에서 활용하기에 윈(win)-윈(win)에 안성맞춤이다. 청년들도 국내에서 자기소개서 수백 장을 쓰는 정성과 노력을 해외 활동에 쏟는다면 취업과 창업 등에서 훨씬 큰 기회를 갖게 된다. 1960~70년대 한국은 해외시장에서 노동력을 팔았지만 이제는 기술과 아이디어 등 정신 노동을 팔 수 있다. 한국 정부가 KOICA 등을 통해 국제협력단원들을 수천, 수만 명 단위로 해외로 파견한다면 한국 이미지 개선과 국제사회 기여도 제고도 가능해진다. 이들이 해외 정보 인프라가 되고, 국내 기업 현지 진출의 디딤돌 역할도 한다. 국제사회 공헌과 일자리 창출, 복지재원 확보를 동시에 도모하는 방법론으로 제안 하고자 한다.”

“부유층과 빈곤층에 동일한 지원은 복지 아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투표율 미달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가 무산되자 시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파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있는 파이를 알뜰하게 배분하는 일도 시급한 듯하다. 선거 때마다 복지 공약이 남발되면서 정책의 일관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요즘의 정치권 아닌가?

“지름길은 없다. 국민들이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 밖에는. 야당은 무상급식을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선전했지만 3년 만에 국민이 그 실체를 간파해버렸다. 급식에 돈을 퍼붓다 보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원어민 교사는 줄어들었고, 전기료 낼 돈도 없어 냉·난방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유층과 빈곤층에 똑같이 나눠주는 건 바람직한 복지가 아니다.”

복지 재원은 어떻게 확보하는 게 바람직한가?

“나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희망통장’ 정책을 도입했다. 형편이 어려운 시민이 저축하는 금액에 비례해 서울시와 기업이 도와서 자립의 발판을 마련해주자는 취지였다. 복지는 본인이 최소한의 자구 노력을 보일 때 주어져야 한다. 보편적인 복지가 주어지면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 또 나라가 감당하지 못하는 복지 재원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공백을 채워야 한다. 선진국은 자발적 기부와 복지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복지를 뒷 받침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돈 많이 가진 걸 죄악시하며, 이를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걸 당연시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런 식의 ‘로빈 후드’가 정의를 실현한다고 나서면 누가 부자가 되려 노력하겠나? 우리의 바람직한 가치 체계를 스스로 폄하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복지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는 박근혜 대통령이 반대해 수면 아래로 들어간 상태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증세를 한다고 복지 재원문제가 다 해결되진 않는다. 어렵게 증세해본들 무상급식 같은 아이템 하나만 뚝 떨어지면 그 돈은 다 날아가게 된다. 물론 ‘증세가 배신’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은 좀 지나친 레토릭이다. 그렇지만 본질은 증세를 하는 게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를 효율적이고 바람직하게 조정한 다음 꼭 필요하다면 증세를 논의하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부유층에게도 주어지는 무상급식과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제공되는 무상보육을 그대로 두고 증세하자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접근 방식이다.”

오 전 시장은 인터뷰 전날인 3월 4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사장 박관용) 초청으로 조찬 강연을 했다. 그 자리에서 증세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스탠스가 당분간 옳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의지는 현 시스템과 재원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노력해보겠다는 것”이라며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그 스탠스가 맞다”고 덧붙였다.

이날 조찬 강연에서 오 전 시장은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려는 듯했다. 이를테면 자신을 복지 축소론자로 보는 세간의 시선을 들 수 있다. 그는 서울시장 재임 당시 전체 예산의 18% 선이던 복지 재원을 29% 선으로 10%포인트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그는 2010년 당시 국내 한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신선한 사고와 행동’, ‘부유층 우선정책에 동조’ 등의 이미지로 국민에게 각인되는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 전 시장은 <월간중앙> 인터뷰에서도 “나도 복지가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정색을 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훨씬 못 미치므로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복지도 재원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여건이 허용하는 선에서 최대한 알뜰하게 지출하는 방법론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철수, 박원순이 등장할지 누가 알았겠나?”


▎한국국제협력단 중장기 자문단의 일원으로 르완다에 6개월간 체류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현지 아이들과 어울려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반(反)포퓰리즘의 아이콘으로 기대를 모으는 오 전 시장이지만 2011년에는 시장직 사퇴 이후 한순간 나락의 길로 떨어졌다. 여야 모두로부터 협공을 받았다. 야당은 무상 복지를 반대했다고 해서, 같은 편인 여당은 서울시장직을 내던졌다는 이유에서 그를 공격했다.

그 뒤의 사태는 오 전 시장조차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10월 26일) 일정이 확정되자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출마 의사를 슬쩍 피력한 것만으로도 50% 안팎의 지지가 쏟아졌다. 그런 그가 지지율 5%에 불과하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시장 후보직으로 선뜻 양보하면서 인기가 다시 한 번 상한가를 쳤고, 박원순 이사도 사실상 승리를 예약했다. 어떻게 손써 볼 방도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당시 한나라당은 사단의 원인을 제공한 오 전 시장에게 원망의 눈총을 보냈다. 그가 시장직 사퇴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사태로까지 번지진 않았으리라는 인식이 여권 전반에 팽배했던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나?

“(시장직 사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굉장히 잘못된 것이었다. 거듭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

당시 무상급식안을 주민투표에 붙일 만큼 절박했나?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 조례안을 단독 처리한 데 이어, 내가 거부권을 행사하자 재의결하고 공포해버렸다. 민주당은 여세를 몰아 3무1반(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시리즈를 앞세워 이듬해 총선과 대선을 치른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가면 국가 성장동력이 고갈될 건 자명한 이치였다. 빈부격차 해소는 물론, 국민통합에도 바람직한 길이 아니라고 믿었다.”

서울시 의회와 타협과 절충을 더 모색했어야 하지 않았나?

“당시 시의회 의석 70%를 야당이 차지했다. 여당 소속인 나는 사실상 식물시장과 다를 바 없었고.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된 이래 1년 동안 서울시의회에 쏟았던 무수한 타협의 노력과 시도가 무색해졌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볼 때 무상시리즈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가져 오기에 모든 가치를 걸고서라도 막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추진해 온 서울시의 정책 추진도 중요했지만 국가적 불행을 막는 게 더 화급했던 시점이었다.”

시장직 사퇴 후 소속 정당으로부터도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그 뒤로 여러 가지 일이 어그러져서 많은 분이 안타까워하고 실망도 했다. 서울시장 자리를 건 것은 나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시장직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상급식을 반대한 판단이 옳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시장직 사퇴를 왜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나를 시장으로 뽑아준 서울 유권자들의 의사는 분명 존중받아야 했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게 잘못이라고 느낀 시점은 언제부터인가?

“후임 박원순 시장이 모든 정책을 백지로 돌리고 폄하하는 일들이 벌어지면서다. 내가 애써 추진해온 서울시 정책들이 박 시장 취임 후 아무런 고민의 흔적도 없이 뒤집히는 걸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시장직 사퇴를 크게 후회하기 시작 했다. 무상급식과 같은 포퓰리즘 반대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시장직 사퇴라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게 아니었다는 뒤늦은 자각이 일었다. 주요 정책을 폐기하겠다던 박 시장의 서울시가 나중엔 내가 만든 정책을 다시 추진하기도 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만 해도 당초 한푼의 예산도 안 주려던 시장을 (같은 편인) 시의회가 말려 절반의 예산을 책정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완공을 봤다. 이런 과정 자체가 얼마나 큰 낭비인가?”

“서울 변모의 출발점은 MB의 청계천 복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재임시절 건립에 심혈을 기울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야경. 그는 ‘디자인 서울’ 상징물의 하나로 이 조형물을 꼽는다.
시장직 중도 하차가 몰고 올 후폭풍을 전혀 예상치 못했단 말인가?

“그때 그런 판단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갑자기 안철수, 박원순이 등장할지 누가 알았겠나? 앞으로 닥칠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당시 여권 일각에서는 오 전 시장의 사퇴와 안철수 교수의 부상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기도 했다.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터질 운명이었던 ‘안철수 폭탄’의 뇌관을 오 전 시장이 좀 더 일찍 건드려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이듬해 총선과 대선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박근혜 당시 의원이 오 전 시장 덕분에 ‘안철수 예방주사’를 맞았다는 논리다.

만약 시장직을 사퇴하지 않았고, 안철수 현상이 더 늦게 발현됐다면 새누리당이 무방비 상태로 정권을 넘겨줄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그게 옳은 분석이라 어떻게 내 입으로 얘기하겠나? 유구무언이다.”

주민투표를 전후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메시지가 온 건 없었나?

“전혀 없었다. 아마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있을 때 내가 시장직을 사퇴했을 것이다. 모든 게 며칠 새 순식간에 이뤄졌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인 2005년 8월 오 전 시장은 강원택 당시 숭실대 교수(현 서울대),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 학자 7명과 더불어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국가별 성공과 실패 사례 분석을 통해 한국의 진로를 모색하는 연구서였다. 오 전 시장은 이 책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정권에는 임기가 있지만 정책에는 임기가 없는 법이다. 4~5년의 임기 중에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평가될 업적을 자신의 이름으로 남기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아니라 의미도 없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진정으로 위대한 업적이 선임자들의 피땀으로 일군 토대를 벗어나 역사의 연속선 밖에서 이뤄진 적이 있었던가?”

오 전 시장은 나아가 이렇게도 강조했다. “당대의 오해와 곡해를 참아가면서 10년, 20년 후 또는 사후에나 알아줄 성과를 위해 여론과 맞서는 지도자가 없이 진정으로 위대하고 강한 나라는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 이미 자신의 선택을 암시한 것 아닌가?

“포퓰리즘을 경계하자는 뜻이었다. 국민이 원하는 일만 하는 정치 지도자는 필요없다. 비전을 제시하고 앞날에 도움이 될 무엇을 찾고 밀고 나가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그때그때 눈치를 봐서 시류만 좇는 정치인만 있다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나 자신마저 남들처럼 처신한다면 부작용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국민이 얼마나 허탈해할까를 염두에 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시장직 사퇴 또한 포퓰리즘에 저항하는 격렬한 몸부림 아니었나? 그 선택을 후회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

“내 나름대로 책임감의 발로였다. 무상급식 조례안을 주민투표에 부친 것은 반(反)포퓰리즘의 가치를 지키려는 행위로서 분명히 옳고 그걸 후회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뒤 시장직을 버린 점을 후회한다는 것이다.”

전임시장으로서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 행정을 어떻게 평가하겠나?

“현 시장에 대한 평가는 일체 노코멘트하겠다. 남이 한 일까지 평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

서울시장 재임 당시 ‘디자인 서울’을 표방했다. 시장직 사퇴 후 지난 3년여 동안 디자인적 측면에서의 서울시는 어떻게 변모해 있던가?

“내가 공들인 ‘디자인 서울’은 디자인이라는 유형적 용기 속에 우리의 문화를 담아 세계에 우리의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 하면 파리, 영국 하면 런던, 미국 하면 뉴욕이 그 나라를 대변하는 것처럼 서울도 한국을 대표하자면 세련되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갖춰야 한다. 유네스코와 협의해 선정한 ‘소울 오브 아시아(Soul of Asia)’라는 서울시 로고는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유형화한 결과물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한강의 세빛둥둥섬 등 서울의 상징물이 ‘디자인 서울’의 성공을 대변한다. 서울 변모의 출발점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이다. 이후 내가 추진한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를 후임 시장이 이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의 서울은 과거 상태에 머물러 있다.”

꽤 오랜 시간 해외에 머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성찰의 계기가 됐나?

“페루 리마시 당국은 나를 배려한다고 시장실 가까운 곳에 작은 독방 하나를 내주었다. 시정 자문이란 게 늘 일이 있는 게 아니라서 시간도 남아 돌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적막했지만 보약 같은 기회였다. 내 인생 전반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했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상념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찾아온 기회였다.”

“외골수, 범생이 기질 이제 거추장스러워”


▎오세훈 전 시장은 40대 중반에 서울시장직을 맡아 동료 정치인들로부터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사람의 의식이 바뀌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혹시 그 과정에서 자신의 구성요소 중 달라진 게 있는가?

“나는 정치 입문 전 변호사로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내 노력 이상의 과분한 사랑을 대중으로부터 받았다. 공인의 책임감이랄까, 빚을 졌다는 생각에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정치 참여도 결심했다. 그 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다. 늘 시간에 쫓겨 허덕였다. 해외에 머물면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반성도 많았다. 바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전까지 나는 효율성, 실용성에 중점을 둔 사람이었다. 앞으로는 효율성은 좀 접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다가가는 사람으로 살자는 자각에 이르렀다.”

내면의 변화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목표지향적으로만 쫓기듯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서울시장직을 버린 것도 이런 성향과 일맥상통했던 것이다. 좀 더 겸손하고, 더 큰 책임감을 가졌다면 시장이라는 자리를 걸었을까? 아니다. 배려가 부족했다. 무상급식의 부당성을 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집착을 떨쳐내지 못하고 시장직을 사퇴해버렸던 것이다. 안중에 목표만 있었기에 나중에 후회할 결정을 내리게 됐던 것이다. 마음가짐이 오만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인간이 좀 덜 됐던 것이다.”

새로운 걸 채우자면 뭔가를 덜어내야 한다. 뭘 버리고 왔나?

“지나친 ‘범생이(모범생을 낮춰 부르는 말)’ 기질이다. 좀 거추장스러워 버리기로 했다.”

오 전 시장에게 그런 기질이 있었나? 세련된 외모라 그런 이미지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시에서 나와 집에 있는데 집사람이 그러더라. ‘당신은 반(半)정치인, 반(半)행정인인데 시장 재임시절 정치는 안 하고 일에만 너무 매달리는 것 같다. 기껏 행정 전문가에 불과했다.’ 가뜩이나 시장을 관두고 대상포진, 디스크 등으로 한 달 이상을 앓았다. 위장병도 겹쳐 심신이 처참하게 망가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집사람의 속도 문드러졌을 것이다. 그 말 끝에 집 사람이 ‘당신은 정치는 손톱만큼도 안 하고, 미친 듯 일만 했지… 의원들 만나서 사귀고 어울리는 걸 못 봤어’라고 안타까운 눈길로 타박을 주더라. 나도 후회막급이었다. 내가 만약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직(職)을 거는 무리수를 뒀겠나? 정말 고지식할 정도로 범생이로만 지냈다는 회한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오 전 시장은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애를 먹었다고 돌이키기도 했다. 초박빙으로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 즈음해 여당 의원들이 그에게 다소 뜨악하고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 전 시장은 “당시 의원들이 내게 무시당했다고 여긴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일 잘하면서 관계도 매끄럽게 가져가는 감각은 키우지 못했다는 말인가?

“오세훈은 목표를 세우면 사람이 미친다. 2006년 서울시장에 처음 당선될 무렵 나는 40대 중반이었다. 정열적인 에너지로 펄펄 일할 나이다. 당시 주변에서는 ‘여당 의원들도 자주 만나 내 편으로 만들라’는 귀띔해왔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서울시정만으로도 벅찬 마당에 의원들과 어울려 정치할 마음이 없었다. 일은 참 열심히 했다. 서울시에서 같이 일한 공무원 중에는 ‘오 시장 시절 원도 한도 없이 일했다’는 이가 많다. 어쩌다 의원들을 만나서도 ‘디자인 서울’ 등 서울시 일에 대한 설명에 열을 올릴 뿐이었다. 이 모든 게 그 ‘범생이’ 기질의 발로라고 이해된다. 한 가지 가치에만 빠져드는 외골수 기질 말이다. 서울시장 사퇴 이후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도 반성의 일환이다. 과거 목표를 설정하면 이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자는 주의였다면 이제는 화해와 공존, 배려를 존중하게 됐다. 매사에 ‘과연 이게 유일한 가치인가’를 곱씹어보게 된다.”

“박 대통령 지지율 빠질 때가 돼서 하락”

새누리당 당원 신분인데 내년 총선에 출마하나?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당에서 받아들여 줘야 하지 않겠나. 당내에 (나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고 들었다. 여러 정치 변수에 의해 결정되기에 지금 말할 계제가 아니다.”

야당 강세 지역에 오 전 시장을 투입하자는 요청이 온다면?

“(웃음) 지금 추측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한국 정치는 6개월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루하루가 다른 게 정치다. 나는 큰 틀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원칙과 마음가짐으로 임하고자 한다.”

박근혜 정부의 2년을 평가한다면?

“나는 정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하는 편이다.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가급적 긍정적으로 보려는 사람이다. 박 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것은 사실이다. 남북관계도 정권 출범 초기 북한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나왔다. 개성공단이 일시 폐쇄되는가 하면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은 남북이 조금은 삐그덕거리기는 해도 대화 무드가 익어간다. 외교와 안보를 상당히 잘 관리해왔다.”

실망스러운 대목으로는 뭐가 있나?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그다지 높은 점수를 못 준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졌듯 위기 대처능력에서는 국민이 우려한다. 경제 정책 또한 후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정권 초 창조경제를 들고 나왔는데 불행히도 창조경제가 어떻게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하는 쪽보다 못 하는 쪽이 더 많다. 지금 살림이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서도 거시경제 지표는 나을 게 없다. 인재를 넓고 고루 활용하기보다는 한정된 풀에서 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집권 후반기 여당은 선거에서 언제나 불리하게 마련인가?

“반환점을 돌아선 정권에겐 심판론이 따르고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이 더 두드러지는 건 일반적이다. 대통령도 이때가 되면 기대감이 반영된 지지율이 빠지면서 오로지 평가에 의한 지지율만 남는다. 당연히 낮아진다. 늘 현직 대통령은 비판의 대상이고 평가의 대상이다. 대통령의 지지율도 빠질 때가 돼서 빠지는 것이다.”

새누리당 후계구도가 안 보인다. 2월 말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19대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의 3명 지지율 합계(45%)가 여권 3명 지지율 합계(24%)를 압도한다. 여권의 차기주자는 언제쯤 윤곽을 드러낼까?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이 아니기에 조심스럽기는 하다. 내년 총선을 치르면서 한번 정리가 되지 않겠나. 국민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또 다른 정치적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내년 총선 이후의 대선 주자 예측이 정확하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가 끝난 것도 아니고 총선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영향을 줄 것이다.”

- 정리·전형우 인턴기자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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