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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포커스] ‘이재용의 삼성’ 성장의 열쇠는? - 신수종 사업과 시너지 효과 스마트폰을 사수하라! 

지난 10개월간 이재용 부회장이 보여준 경영 능력은 합격점 이상… 관료적 조직문화 혁신과 조직 장악력 제고가 과제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이재용 폰’으로 알려진 갤럭시S6의 선주문이 2천만 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단 공식 데뷔전은 잘 치렀고, 분위기를 달구는 데는 성공했다. 공격적인 M&A로 그룹 주력사업의 순도와 집중력은 강화됐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이 가야 할 길은 가파르고 험난하다. 그가 과연 ‘이건희의 삼성’을 ‘이재용의 삼성’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2013년 4월 26일 삼성전자 본사 사옥에서 래리 페이지(맨 오른쪽) 구글 CEO와 회동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 부회장의 경영수업은 오래전부터 이뤄졌고, 지금까지의 성과도 합격점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갤럭시S6는 ‘올 뉴 갤럭시(All New Galaxy)’를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스마트폰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개막 하루 전날인 3월 1일 열린 삼성전자 신제품(갤럭시S6·갤럭시S6 엣지) 언팩 행사. 전 세계 6천여 명의 IT 담당 기자와 통신 관계자의 시선이 신종균 IT모바일(IM) 부문 사장에게 쏠렸다.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얼굴엔 약간의 부담과 걱정이 묻어났다. 그러나 하루 뒤 다시 기자 간담회장에 나타난 신 사장은 특유의 여유를 되찾은 표정이었다. 전 세계에서 ‘역대 최고의 스마트폰’이란 호평과 찬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갤럭시S6의 하드웨어를 통해 삼성전자를 신뢰하게 됐고, 소프트웨어에선 삼성전자의 노력을 봤다”며 “갤럭시S6는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삼성전자의 시도”라고 극찬했다.

확실히 갤럭시S6는 겉모습부터 이전과 달랐다.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 기존 갤럭시 시리즈와 달리 테두리는 메탈로, 뒷면은 강화유리로 마감했다. 앞뒤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 그립감을 더했고, 남다른 색상으로 품격을 높였다. 눈만 만족시킨 게 아니다. 5.1인치 쿼드 HD 슈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와 1600만 화소 후면 카메라, 14나노급 64비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로 기존 스마트폰에서 찾을 수 없는 최상의 성능을 구현했다. 배터리를 일체형으로 바꾸면서도 충전 속도를 1.5배 향상시켜 단점을 보완했고, 무선충전 기능도 탑재했다. 처음 도입한 모바일 결제시스템 ‘삼성 페이’에 근거리무선통신(NFC)뿐만 아니라 마그네틱과 바코드 방식까지 호환되도록 했다. 이에 대해 CNN은 “NFC만 가능한 애플 페이와 달리 삼성 페이는 현재 많은 곳에서 쓰는 마그네틱 리더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천당과 지옥 오갔던 2014년 지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참석한 관람객이 3월 2일 삼성전자 전시장에 진열된 ‘갤럭시 S6’의 사진을 찍고 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MWC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 삼성 임원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기쁨이 교차했다. 그럴 만했다. 2012~2013년 삼성전자는 최고의 2년을 보냈다. 한국 기업 최초로 연 매출액 200조원 고지에 올라섰고, 2013년 3분기엔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조원 시대를 열었다. 한국 기업사에 오래도록 남을 대단한 성과였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출시한 갤럭시S5가 흥행에 참패하면서부터다. 한순간 실책의 결과는 뼈아팠다. 프리미엄 모델에선 애플에 밀리기 시작했고, 중저가 모델에선 샤오미·화웨이 등 중국 제조사에 추격을 허용했다.

지난해 4분기엔 4년 만에 시장점유율 1위 자리도 내줬다. 애플의 점유율은 20.4%, 삼성전자는 19.9%였다. 2013년 4분기엔 29.5%로 삼성전자가 압도적 1위였다. 실적에도 금이 갔다. 3분기 매출은 2012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50조원 밑으로 떨어졌고, 영업이익 역시 4조원대로 추락했다. 불과 1년 만에 영업이익의 60%가 날아간 셈이다. 반도체와 가전은 제 몫을 하고 있는 상황. 모든 화살이 IM 부문에 집중됐다. 벼랑 끝에서 사활을 걸고 만든 갤럭시S6가 극찬을 받았으니 환호성이 터져 나올 만했다. 삼성 관계자는 “혼신의 힘을 쏟았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 출시한 아이폰6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터라 부담도 컸다”고 토로했다.

진짜 한숨 돌린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삼성그룹을 총지휘하고 있다. 사실상 이 회장의 복귀가 어렵다고 볼 때 앞으로 국내 1위 그룹을 이끌어갈 이 부회장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갤럭시 S6는 이 부회장 체제가 갖춰진 후 처음으로 나온 신제품이다. 삼성그룹의 중심은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중심은 스마트폰이다. 만약 갤럭시S6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면 이는 곧장 그에 대한 평가절하로 연결됐을 터다. 한창 ‘이재용의 삼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신뢰에 금이 가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 부회장은 갤럭시S6의 개발 과정부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연말 정기 인사에서 IM 부문 임원을 물갈이한 게 시작이었다. 신 사장은 유임됐지만 마케팅·개발·디자인 관련 임원 상당수가 옷을 벗었다. 갤럭시 성공 신화의 주역인 이돈주 마케팅 담당 사장까지 물러났다. 이와 함께 직접 진두지휘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임원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한다. 3월 4일 미국 출장을 마치고 입국하면서 기자들을 만난 그는 “갤럭시S6에 대한 시장 반응이 매우 좋다”는 질문에 “팔아봐야 아는 것”이라고 조심스레 답했다. 하지만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의 초기 판매량이 5000만대 이상일 것이란 전망치가 나왔다는 소식을 알려주자 “정말 그런 분석이 나왔나요?”라며 반색했다. 신 사장 역시 MWC에서 “갤럭시S6를 ‘이재용 폰’이라 불러도 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웃으며 “부회장께 직접 물어보시는 게 낫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닉네임을 붙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10개월 새 M&A 8건… 삼성이 달라졌다


▎신종균 삼성전자 IM부문 사장이 지난 3월 1일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신제품인 갤럭시S6의 강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부회장의 첫 출발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회장이 쓰러지면서 갑작스레 이뤄진 경영 승계라 기대보단 우려가 컸다. 가뜩이나 그룹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긍정적이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삼성그룹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이 부회장의 탓이 아닐 테지만 타이밍이 그랬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방어를 위해 내놓은 갤럭시S5마저 외면을 받았다. 그룹의 리더 삼성전자가 흔들리는데 둘째, 셋째는 더 흔들렸다. 삼성SDI·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 등 IT계열사는 삼성전자 실적 악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삼성중공업·삼성물산 등 나머지 제조계열사도 깊은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삼성생명·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의 사정이 그나마 나았지만 맏형의 부진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었다. 쓰러지기 전 이 회장은 부진한 계열사를 일일이 챙기면서 위기 경영에 박차를 가했고, 조직에 특유의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임직원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런 이 회장이 갑자기 자리를 비웠으니 “아버지만큼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 부호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회장은 워낙 이룬 게 많은 경영자였다. 그가 그룹을 지휘하기 시작한 1987년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약 10조원 정도였지만 2013년 매출액은 무려 334조원에 달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삼성을 아시아 변방의 작은 내수 기업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시킨 것도 그였다. 이 부회장 스스로도 아버지의 후광이 부담스러웠을 터다. 그룹 안팎에서 “조직 장악력과 리더십이 약하다”는 지적도 자주 나왔다.


▎MWC에 차려진 삼성 갤럭시S6 체험관에서 세계 각국의 취재진과 정보기술 업계 인사들이 새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개월 간 이 부회장이 보여준 경영 능력은 합격점을 줄 만하다. 굵직굵직한 현안을 연이어 건드리면서도 큰 잡음이 없었다. 준비는 치밀했고, 일 처리는 깔끔했다. 불과 반년 만에 핵심 계열사인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를 유가증권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시켰다. 비록 무산됐지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도 추진했다. 가장 화끈했던 건 모두를 놀라게 한 한화와의 인수합병(M&A) 발표였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1월 삼성종합화학, 삼성테크윈 등 화학·방산 관련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거래대금만 2조원에 달하는 빅딜이었다. 4~5월쯤 한화가 삼성에 삼성탈레스 인수 의사를 타진하자 삼성은 아예 삼성탈레스의 모회사인 삼성테크윈 계열사 지분(32.4%)을 인수해줄 것을 역으로 제안했다. 계열사 간 복잡한 지분구조 때문에 판이 커졌지만 이 부회장의 결정은 과감했다. 비주력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IT와 전자, 미래 신수종 사업 등에 전력을 집중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비쳤다.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상장으로 향후 상속에 대비한 실탄을 마련한 게 눈에 띈다. 이 부회장은 삼성SDS 지분 11.25%, 제일모직 지분 23.24%를 보유 중이다. 두 회사의 상장 이전 1조원대였던 그의 주식 가치는 8조원대로 급상승했다.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제일모직 지분은 보유해야겠지만 삼성SDS 지분은 언제든지 현금 전환이 가능하다. 삼성SDS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60% 이상이다. 이 부회장의 지분을 팔아도 경영권 유지엔 지장이 없다는 의미다. 이 돈은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등 핵심 계열사의 지분 상속에 활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7년 만에 자사주를 매입하며 힘을 보탰다. 워낙 계열사 지분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삼성이 어떤 시나리오를 따를지 지켜봐야겠지만 확실히 승계를 위한 발판은 마련했다는 평가다. 제조의 핵심 삼성전자와 금융의 핵심 삼성생명을 이 부회장이 모두 품을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그 사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맡을 것이 유력해 보였던 화학 부문은 한화에 넘겼다. 후계체제부터 사업구도까지 조금씩 이재용의 색깔을 입혀가고 있다는 의미다.

연 20%씩 쑥쑥 크는 사물인터넷 시장


▎생활 속 사물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인 사물인터넷. 최근 전 세계 IT업계의 주요 화두로, 삼성도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다
삼성의 미래를 가늠할 만한 유의미한 변화도 관측됐다. 공격적인 M&A가 그 신호다. 삼성은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갖췄지만 M&A에 적극적인 기업은 아니었다. 2007~2010년 3년 동안 M&A는 딱 3건밖에 없었다. 2011년부터 조금씩 늘기 시작했지만 연 3~4건에 그쳤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경영을 주도하면서 확실히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불과 10개월 만에 8개 기업을 사들였다. 2014년 5월 비디오 관련 응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인 미국 셀비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에어컨 유통업체 콰이어트사이드,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 업체 프린터온 등을 연이어 흡수했다. 해가 바뀌고는 한 달에 한 건씩 굵직한 M&A를 발표하고 있다. 1월엔 브라질 프린팅 솔루션 업체 심프레스, 2월엔 모바일 결제 업체 루프페이를 인수했다. MWC 기간엔 새 식구를 맞으러 미국에 갔다. 삼성전자는 3월 4일 미국 발광다이오드(LED) 상업용 디스플레이 업체인 예스코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했다. 미래 먹거리에 도움이 되는 회사라면 과감히 투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전 임원은 “신사업을 개척하려면 규모가 작더라도 특허를 가졌거나 기술력이 있는 기업을 인수해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판단”이라며 “최근 꽤 많은 임원이 세계 곳곳을 돌며 인수 대상을 적극적으로 물색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인수 뉴스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탄도 든든하다. 현재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약 60조원(현금화 쉬운 단기금융상품 포함)에 달한다. 2010년 22조원 수준이었는데 4년 만에 3배로 늘었다. ‘올해 삼성이 깜짝 놀랄 초대형 M&A를 발표할 것’이란 예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여유가 있다고 막 사들이는 건 아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확실한 방향이 보인다. 첫 번째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다. 사물인터넷은 생활 속 사물들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자동차나 냉장고 등이 하나하나의 컴퓨터 역할을 한다고 보면 쉽다. 이 사물들이 사람의 제어에 따라 스스로 정보를 주고받는 게 핵심이다. 최근 IT업계 주요 화두 중 하난데 MWC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것도 사물인터넷 관련 제품과 솔루션이었다. 말만 하면 자동으로 핸들을 조작하는 자동차, 공이 닿는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하는 테니스 라켓,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해 날씨와 도로 여건, 장애물 등을 알려주는 자전거 등이 대표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연구단계에 머물렀던 사물인터넷은 이제 확실한 시장을 형성하며 쑥쑥 커 나가고 있다. 2013년 2030억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사물인터넷 시장은 매년 20% 이상 성장해 2022년이 되면 1조2천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세계적인 IT기술력을 갖춘 삼성으로선 구미가 당길 만하다. 이 부회장이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스마트홈이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생활 가전제품을 스마트폰·웨어러블 기기 등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한 솔루션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IM부문 무선사업부 소속 소프트웨어 인력 500여 명을 소비자가전(CE)부문으로 전환 배치했다. 스마트홈을 시작으로 삼성전자는 통신·건설·에너지·보안 등 각 분야 기업이 동참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 생태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사물인터넷 플랫폼 업체 스마트싱스를 인수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1천 개 이상의 기기와 8천 개 이상의 앱을 지원하는 스마트 싱스의 플랫폼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이다. 삼성 관계자는 “더 많은 협력사와 기기에 이 플랫폼이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대로 판을 키워보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로 읽힌다.

2차전지와 바이오 부문에 대규모 투자


‘삼성 페이’에서 엿볼 수 있듯 ‘핀테크’ 사업 진출 의지도 강하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인 핀테크는 모바일 결제 및 송금, 자산관리 등 새로운 형태의 금융기술을 뜻한다. 활용 범위가 매우 넓지만 삼성이 가장 주목하는 건 모바일 결제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에 ‘구글 월렛’이 아닌 자체 모바일 결제 솔루션 ‘삼성 페이’를 탑재했다. 안드로이드(구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인 동시에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가진 모바일 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의지다. 미국 시장조사기업 가트너는 글로벌 모바일 결제 시장규모가 올해 4311억 달러에서 2017년 7210억 달러로 커질 것이라 전망한다.

이 부회장의 핀테크 구상은 올 들어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월 18일 루프페이 인수를 발표했다. 루프페이는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특허 기술을 가진 회사다. 교통카드처럼 일반 카드결제기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진다. 이 기술은 2주 뒤 발표한 갤럭시S6에 그대로 적용됐다. 이번 MWC에서 삼성 페이가 호평을 받은 것도 이 기술 덕분이었다. 애플 페이나 구글 월렛은 NFC만 지원한다. NFC는 10㎝ 이내의 거리에서 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인데 이를 이용해 결제를 하려면 NFC 방식을 지원하는 전용기기가 필요하다. 점차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 부회장은 2월 24일 방한한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를 만났다. 여러 주제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하는데 주 내용은 핀테크였을 가능성이 크다. 페이팔은 세계 최대 전자결제 시스템회사다. 2002년 회사를 이베이에 매각하며 현장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는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릴 만큼 모바일 결제와 빅데이터 등 환경 변화에 밝다. 3월 초 미국 출장 중에는 캘리포니아 먼로파크에서 열린 ‘비즈니스 카운슬’ 포럼에 참석해 주요 카드사 CEO와 만나 삼성 페이에 관한 포괄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IT 이외의 영역에선 2차전지와 바이오 분야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했다.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전기자동차용 배터리(2차전지),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다. 이 5대 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운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에도 2차전지를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가 없었고, 태양광은 사실상 철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묶인 LED 역시 방향을 새로 설정해야 할 처지다. 2차전지와 바이오에서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분야는 삼성전자 외의 계열사가 중심이다. 삼성SDI가 맡고 있는 리튬이온 2차전지는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전동공구 등 소형 전지 분야 세계 1위인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를 BMW·폭스바겐·아우디 등 독일 3대 완성차 업체에 모두 납품한다. 어느 정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이 부회장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삼성SDI는 2월 오스트리아 자동차 부품사 마그나 슈타이어의 전기차 배터리팩 사업 부문을 인수하기로 했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회사다. 삼성SDI로서는 팩 수주에 따른 물량 증가와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스마트폰 못 지키면 사물인터넷·핀테크 무용지물


바이오 사업은 2011년 삼성전자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이 출자해 설립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도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국적 제약사인 BMS·로슈·머크 등과 바이오시밀러(생물체를 이용한 복제약) 위탁생산(CMO)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천 송도에 짓고 있는 15만ℓ 규모의 제 2공장이 완공되면 세계 3위권의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된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3월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자사 바이오시밀러 ‘SB4’의 판매 허가를 신청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1월 유럽의약국(EMA)에도 판매 허가를 신청했는데 국내에서 삼성이 시장에 내놓은 첫 바이오시밀러다. SB4는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의 복제약으로 지난해 전 세계에서 9조원 이상 팔렸다. 2011년 인수한 메디슨(현 삼성메디슨)을 중심으로 한 의료기기 사업 역시 적극적인 M&A로 속도를 끌어올릴 전망이다. GE·필립스·지멘스 등 의료기기 메이저 기업들이 성장해온 방식이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기업에서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 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큰 줄기도 관측된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은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스마트폰과 가전이다. B2C는 B2B에 비해 실적 변동성이 크다. 지난해 3분기 스마트폰 부진으로 추락을 경험했던 이 부회장으로서는 이대로는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삼성이 최근 인수한 9개 기업은 대부분 B2B업체다. 주로 기업에 특정 기술이나 솔루션을 제공하거나 유통망을 관리하는 회사였다. 당장 B2C를 탈피하자는 의미라기보다는 B2B에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하자는 구상인 듯하다.

장기적으로 삼성이 무게를 싣는 사물인터넷·핀테크·2차전지 등은 모두 기업 간 협업체계가 중요한 사업이다. 지금도 기업 간 이합집산이 치열한데 다른 기업을 고객이자 파트너로 만들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앱 ‘오피스365’를 기본 탑재했다. ‘오피스365’는 워드·엑셀 파일 등을 확인하고, 편집할 수 있도록 한 업무용 앱이다. 상당수의 직장인이 하루에 한 번쯤은 열어본다. 특허 분쟁을 했던 MS와의 대립을 끝내고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갤럭시S6를 기업용 스마트폰으로 대량 판매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아직까진 우려와 달리 ‘이재용의 삼성’이 비교적 순항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일단 그룹을 지탱하는 삼성전자가 제 몫을 해줘야 한다. 삼성전자는 그룹 영업이익의 75%, 매출액 약 47%를 차지한다. 그룹에서 가장 독보적인 수익의 원천인 동시에 상징성도 크다. 그러려면 신수종 사업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마트폰을 지켜내야 한다. 이 부회장이 힘을 싣는 사물인터넷이나 스마트홈 등은 스마트폰이 기반이다. 핀테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MWC에서 가상의 영상이 실제처럼 펼쳐지는 삼성전자의 가상현실 헤드셋 ‘기어VR’가 화제를 모았는데 이 역시 스마트폰을 기기에 끼워 사용한다. 차량이든 전자제품이든 사물인터넷이 활성화돼도 결국 손에 든 스마트폰이 핵심이다. 시스템에서 제어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스마트폰이다.

“사공이 너무 많아서 문제”


▎1. 삼성SDI가 생산한 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삼성은 올해 자동차용 2차전지와 바이오, 의료기기 등 신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2.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배양공정. 후발주자인 삼성이 바이오 분야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결국 갤럭시가 잘 팔려야 한다는 의미다. 2014년 4분기 삼성전자 휴대전화 사업의 수익성은 애플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많이 팔아도 남는 게 별로 없다는 의미다. 갤럭시S6에 퀄컴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AP) 대신 자체 AP를 탑재해 수조 원을 아끼게 됐고, 베트남 등 해외 생산을 적극 활용해 원가경쟁력을 높이고 있지만 앞으로는 스마트폰과 신수종 사업의 시너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직까진 괜찮지만 애플에 밀리고, 화웨이 등 중국 제조업체에 쫓겨 스마트폰 점유율이 현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고민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소프트웨어도 여전히 걱정이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하드웨어에 관한 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삼성은 늘 소프트웨어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 약 10년 전부터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겠다며 상당한 투자를 했지만 매번 잘 안 됐다. 2009년 별도 조직까지 구성하고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쏟아 부어 개발한 자체 소프트웨어 ‘바다’는 애플과 구글 양강 체제에 작은 균열도 내지 못하고 참패했다. 최근 연합군을 만들어 독자 운영체제(타이젠)를 내놨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현재 타이젠은 저가폰에만 탑재한다. 프리미엄급인 갤럭시 시리즈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선 “타이젠이 개방성과 범용성을 갖춘 훌륭한 운영체제지만 두 회사의 견제를 뚫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PC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 일찌감치 시장을 점령한 마이크로소프트(MS)가 후발주자의 무수한 견제에도 그 위상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장기적으로 이 부회장은 이 난제를 풀어내야 한다.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

바이오에 대한 공격적 투자에도 회의적 시선이 있다. 물론 쉬운 사업은 어디에도 없지만 바이오 분야는 특히 진입장벽이 높고, 연구개발(R&D)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바이오시밀러와 의료기기는 다가올 고령 시대에 확실한 부가가치를 담보하는 사업이다. 그러니 너도 나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어쨌든 삼성도 후발주자다. 삼성은 1990년 전후 미국과 일본 기업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도약한 반도체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각오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란 예상에 힘이 실린다. 한 제약 업계 관계자는 “IT·전자가 주력인 삼성이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며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상위권으로 도약하기엔 이미 시장을 점유한 글로벌 기업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백조’를 꿈꾸지만 ‘그냥 오리’ 정도에 머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조직 장악도 과제다. 삼성은 임직원이 40만 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다. 리더로서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여전히 ‘관료적’이란 비판을 받는 조직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창의적인 사업에 도전한다면서 일하는 방식이 창의적이지 않으면 결과는 뻔하다.

일단 공식 데뷔전을 잘 치러낸 그다. 샘모바일 등 해외 IT 전문 매체들은 갤럭시S6의 선주문이 2천만 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의 선주문 물량보다 4~5배가량 많다. 국내 이동통신 3사도 초기 물량 확보 경쟁을 시작했다. 이 부회장의 말대로 팔아봐야 알겠지만 분위기를 달구는 데는 확실히 성공했다. 그는 과연 ‘이건희의 삼성’을 ‘이재용의 삼성’으로 바꿀 수 있을까?

-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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