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문화탐방] 문명과 원시가 공존하는 ‘미완(美完)’ 도시 

‘세계의 지붕’, 해발고도 1281m에 위치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만나다 

글·사진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네팔은 문명과 원시가 공존한다. 도시의 도도함도 시골의 청초함도 아닌 카트만두의 ‘애매함’에 매료되기 쉽다. 카트만두 근교의 박타푸르의 한 주택가.
‘애매함.’ 네팔의 첫인상은 그랬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일까. 민주화의 과도기에 있기 때문일까.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카트만두 도심은 도로와 인도 구분이 거의 없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 옆을 지나는 청년.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공항에 내렸을 때부터 어수선함이 느껴졌다. 착륙한 비행기에서 공항청사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마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입국심사부터 수화물을 찾는 데까지는 꼬박 2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공항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

아, 저 엄청난 인파는 어디서 쏟아져 나온 거지? 거리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 입이 쩍 벌어졌다. 네팔 전체 인구 3천만 명 중 400만 명이 수도인 카트만두에 밀집해서 산다. 15년 전과 비교해서 무려 8배로 늘어난 수치다.

트리부반 국제공항은 또 히말라야 관광의 입구로 세계 산악인들의 출입때문에 붐빈다. 카트만두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의 관문인 네팔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카트만두는 해발고도 1281m에 위치해 있는데 물론 사면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였다. 10세기 무렵에 건설된 도시로 추정되지만 정치·문화의 중심지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말라 왕조 때부터라고 한다.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해 있으며 시가지에는 행정청, 옛 왕궁, 대학이 있고 곳곳에 불교와 힌두교의 사원들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탄의 더르바르 광장.
카트만두의 교통은 뒤죽박죽 그 자체다. 소설가 고(故) 박완서 씨가 ‘선진국의 폐차장’이라고 묘사한 그 현장이다. 아예 차선이 없는 도로에는 자동차·오토바이·자전거·사람·개·소 등이 뒤엉켜져 다닌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교통경찰이 혼잡한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신호등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무용지물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륜차 ‘툭툭’을 비롯해 8인승, 15인승 승합차는 내부를 개조해 시내버스로 활용하고 있었다. 당장 폐차장으로 보내도 아깝지 않아 보이는 차량에 스무 명이 넘는 승객을 태우고도 차는 잘도 굴러 간다.

시내 곳곳이 공사 중이라 노면이 울퉁불퉁해진 탓에 차량은 심하게 덜컹댔고 금세 멀미가 났다. 거기에다 귀를 찢을 듯한 경적소리, 매캐한 연기로 시야가 뿌예지더니 결국 눈과 목이 따가웠다.

네팔의 공식명칭은 네팔연방민주공화국. 239년간의 왕정이 종식된 지 7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2001년 6월 네팔 왕실은 카트만두 왕궁에서 당시 비렌드라 국왕과 왕비 등 일가족 10여 명이 총기 난사로 살해당하며 소멸의 과정을 겪었다.

2008년 네팔은 민주화를 맞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험난해 보인다. ‘세계 최빈국’의 딱지도 떼지 못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99달러(세계 168위)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의 87%가 힌두교도이지만 네팔에는 126개 소수민족과 123개의 언어가 공존한다. 언어와 인종의 전시장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정신이 빠져나갈 듯한 혼잡함에 혀를 내두르기엔 아직 이르다. 카트만두에서 흥미로운 일 중 하나는 시장에서의 흥정이다. 정찰제 개념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다. 만나는 상인에 따라, 파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물건 가격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이다.

부르는 게 값, 흥정하라!


▎네팔인들은 관광수입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어 수공예품, 장신구 등의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이 많다. 네팔 전통악기를 판매하는 상인(오른쪽).
대부분 생계를 관광수입에 의존하는 네팔인들은 수작업을 거친 공예품·그림·장신구·스카프 등을 내다판다. 네팔의 최대 쇼핑거리인 ‘타멜’에서도 흥정의 재미는 쏠쏠했다. 먼저 높은 가격을 부른 상인을 당황하게 할 만큼 낮은 가격으로 ‘에누리’를 시작해야 한다.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네팔인들은 ‘생계용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 “하우 머치 이즈 잇(얼마냐)?” “서티 달러(30달러).” “노! 파이브(5달러).” “노노노~! 투웬티(20달러)!”, “텐(10달러)!” 실랑이를 벌이다 여행객이 안 산다고 손을 저으면 대부분의 상인은 쫓아온다. 여행객이 지갑을 열 때까지 달라붙는다. 결국 아쉬운 쪽이 지는 척한다. 저렴한 가격에 거래가 성사됐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30달러짜리를 10달러에 샀다고 좋아하다가 바로 옆에서 첫 흥정을 8달러부터 시작하는 상인을 발견하고는 ‘억’ 하고 뒷목을 잡는 일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1963년 카스트제도 폐지 법령이 제정됐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신분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네팔인 대부분이 힌두교도이어서일까. 그들은 운명에 대해 순종적이고 또 신앙적이다. 자신들의 삶을 원망하기보다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인생관을 지녔다.

네팔은 빈부격차가 심하긴 해도 서로 어울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상류층이 모인다는 거리에도 노숙인과 앵벌이들이 가득하다. 시간이 멈춘 듯 원시의 삶을 살아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잔뜩 멋을 내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문화유산 곳곳에 중세 왕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서울 청담동’에 비유되는 왕궁 거리(더르바르 마르그)에서는 짝퉁 명품브랜드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자동차에는 차량 가격의 250%에 해당하는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극소수 상류층만이 구입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KFC 등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네팔에서는 ‘레스토랑’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도어맨까지 둔다. 햄버거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다.

한편 하루에 1달러 미만을 버는 극빈층은 27%에 달한다.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도 많다. 네팔의 주식은 ‘달밧’으로 인도의 ‘탈리’와 비슷하다. 한국의 시금치와 비슷한 ‘싹’, 네팔식 김치인 ‘어짤’을 주로 먹는다. 콩으로 만든 스프는 짠맛이 강하다. 네팔의 쌀은 점성(粘性)이 없어 소화가 빠르다. 좀 과하게 먹었다 싶어도 금세 허기가 진다.

고기는 이들에게 고급식품이다. 돼지고기는 1㎏에 8달러, 닭고기는 6달러 정도라고 하니, 한 달 평균 임금이 150달러에 불과한 네팔에서는 보통 때는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인프라 부족 원시적인 문명 곳곳에


▎1. 네팔의 문맹률은 인도보다 높은 40%다. 동네 꼬마들은 관광객이 주머니 속에서 과자건 초콜릿이건 뭐라도 꺼내줄 것을 눈치채고 재빠르게 쫓아온다. / 2.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인 스와얌부나트. 순례객들은 시계방향으로 걸으며 불교경전이 새겨진 원통형의 마니차를 돌린다. 한 바퀴를 모두 돌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
카트만두엔 학교 수가 430개에 이를 정도로 시민들의 교육열이 높지만 문맹률은 인도보다 더 높은 40%에 이른다. 학교를 다녀야 할 소년·소녀가장들도 적지 않다. 동네 꼬마들은 관광객이 주머니 속에서 과자건 초콜릿이건 뭐라도 꺼내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눈을 마주치면 때가 가득한 손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한다. 열 살 무렵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이도 많다. 관광지 입구에서 솜사탕을 파는 소년에게 나이를 묻자 “텐, 투(열두 살)”라며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1개에 50루피(500원 정도)인 솜사탕 뭉치를 들고 다니며 반나절 이상 걸어 다닌다고 했다. 솜사탕에서는 네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난다. 몇 입 떼어 먹었더니 탈이 난 듯 ‘꾸르륵’ 신호가 오는 것 같다.

의료시설·전기 등의 인프라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전기가 나간다. 호텔이건 식당이건 갑자기 불이 꺼졌다 커지는 게 다반사였다. 한 식당 화장실에 갔다가 전구가 없어 핸드폰 조명을 켜고 볼일을 본 적도 있다. 길거리에 조명이 부족해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 그 대신에 하늘의 별은 비할 데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반짝거린다.

위생적인 환경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 일행이 묵었던 호텔에서는 흙물로 샤워를 했을 정도다. 사람들은 흙먼지가 날리는 길바닥 위에서 조리음식을 팔거나 차량이 지나다니는 도로변에 버젓이 빨래를 넌다. 새로 빤 옷은 금세 더러워지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네팔인들은 또 물을 길어 마시는 편인데, 많은 양의 중금속이 함유돼 있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는 외국인이 마시면 ‘반드시’ 배탈이 나니 절대 마시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20세기 초 서양 여행자들은 카트만두를 ‘사원의 도시’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8곳 중 7곳이 카트만두 밸리 내에 있기 때문이다. 카트만두 서쪽에 위치한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385개의 가파른 언덕을 오른 뒤에야 만날 수 있었다.

황금빛 첨탑이 하늘을 향해 봉긋 솟아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흰색 불탑 ‘순다라’.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다. 곳곳에 야생 원숭이가 서식해 ‘멍키 템플’이라고도 불린다. 승려와 순례객들은 시계방향으로 걸으며 불교경전이 새겨진 원통형의 마니차를 돌린다. 한 바퀴를 돌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한다.

이곳에 오르는 묘미 중 하나는 탁 트인 시야로 카트만두 시가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냥갑들처럼 규모가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다. 미끈한 고층빌딩 하나 안 보인다. 언뜻 볼품없어 보이지만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고색창연한 풍경에서 오랜 것들의 정취가 느껴진다.

죽음을 대하는 두 얼굴


▎1. 힌두교 최대 성지인 파슈파티나트 사원. 10여 개의 화장터가 모여 있다. / 2. 몸을 씻기는 장례의식 옆에서 끌채를 끌며 동전을 줍는 소년가장들도 눈에 띈다.
삶과 죽음의 흐릿한 경계에서 넋을 놓은 적도 있다. 힌두교 최대성지인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네팔의 힌두문화를 대표한다. 카트만두를 가로지르는 바그마띠 강변에 자리잡은 이곳은 인도의 갠지스강 지류와 연결돼 있어 힌두교 신자들에게는 ‘성스러운 강(Holy River)’이라 불린다.

하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들어선 사원에서 마주한 건 쓰레기와 악취가 진동하는 강물이었다. 반대편으로는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역한 냄새를 느꼈다. 사체를 태우고 있는 화장터였다. 힌두교 의식으로 강물에서 몸을 씻기고 화장을 진행한 뒤 남은 물은 바그마띠강으로 흘려 보낸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은 망자를 추모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을 치른다. 내세가 있다고 믿는 힌두교인들의 깊은 신앙이 얼굴에 묻어 나왔다. 하지만 이별 앞에서 어찌 사람이 담대할 수 있으랴. 아버지의 몸을 씻기는 와중에 부인과 딸로 보이는 여인은 부둥켜안고 몸을 떨며 오열했다. 아버지의 얼굴에 불을 붙이는 의식에서는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켜보는 이들도 눈물을 쏟으며 슬픔을 힘겹게 나눴다.

그 와중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눈에 띄었다. 울지 않는 소년들이다. 아이들은 강물 안을 헤집으면서 끌채 같은 것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장례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던진 동전이나 반지를 줍기 위해서다. 부모를 잃거나 부모가 병들어 일할 수 없는 가난한 소년·소녀가장들이란다. 코앞에 닥친 생계 앞에서 이 아이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광경이 아니었다.

네팔의 민주주의는 미완이다. 새 헌법 제정을 앞두고 4년간 지루한 싸움을 이어간다. 지난 1월 22일 헌법초안을 통과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야권인 마오주의공산당(CPN-M)의 반대로 안건에 상정되지도 못했다. 정부형태와 사법제도 등을 놓고 이견만 팽팽히 맞서 있다.

239년간 위용을 떨쳤던 네팔 왕실은 21세기에 들어 소멸했다. 2006년 4월 가넨드라 국왕이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해 권력을 내려놓고 2008년 5월 역사적인 제헌의회가 열리며 왕정체제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봄이 오기엔 아직 이른 걸까. 네팔은 높은 실업률과 물가상승, 정치경험 부족 등으로 내홍을 겪는다. 민족 간 정당 간의 첨예한 갈등도 극에 달한다. 마침 더르바르 광장에서는 집회가 한창이었다. 군중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자는 격앙된 어조로 열변을 토했다. 사람들은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벽에 붙어있는 신문을 읽는 남성들의 모습도 매우 진지했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위용과 만나다


▎네팔의 정치체계는 아직 ‘미완’의 민주주의다. 2008년 민주화를 맞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카스트제도의 ‘신분의식’과 새 헌법제정의 실패로 난항을 겪고 있다. 카트만두 시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민주화의 벽’.
생활공간의 일부로 불리는 더르바르 광장은 ‘궁정’이란 뜻이다. 관광객과 노점상들로 늘 북적이는 이곳은 어느 날부터 민주화를 외치는 정치적 광장이 됐다. 정부의 허술한 문화재 관리로 지저분하게 방치된 곳이 많다. 문화유산 주변으로 비둘기 떼며 병든 개들이 자리를 차지해 있었고 오물도 가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간이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왕들이 경쟁하듯 곳곳에 지은 화려한 궁전들 계단마다 카트만두 시민들은 저마다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면 ‘만지지 말라’,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게 다반사인데, 이곳은 공원처럼 운영된다.

그래도 역시 네팔하면 히말라야 아닌가. 경비행기로 상공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만날 수 있었다. 비행 탑승부터 영 쉽지 않았다.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밤잠을 설치고 새벽 5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건만 짙은 안개 때문에 비행은 계속 미뤄졌다.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날씨 운’은 50%라 슬슬 애가 탔다. 4시간을 기다린 끝에 올라탄 16인승 경비행기에서 마주한 히말라야. 구름 위를 뚫고 오른 비행기 창문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기내 영국·네팔·중국·한국 등 각국 언어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안나프루나에서 직접 느끼는 들숨날숨의 그것과 비교는 안 되겠지만 그 와중에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새하얀 설산은 시야에 단 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산맥의 위용을 자랑했다. 웅장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기운에 압도당하는 듯했다. “Look(저기 봐)!” 기내가 다시 한번 술렁였다. 사람들은 한쪽 창으로 우르르 몰렸다. 기다란 산맥에서 홀로 설연이 피어오르는 세계 최고의 봉우리, 에베레스트였다.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어떻게 한낱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카트만두는 작품이 완성되지 않은 원석 같다. 5년 새 무서운 속도로 현대화를 향해 도약하는 중이지만, 여전히 미완의 존재다. ‘한 번 다녀오면 다시 가고 싶은 곳’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짧은 기간에 이 작은 나라를 온전히 알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상한 욕심이 생긴다. 네팔은 히말라야 봉우리의 원형만큼이나 이 모습 그대로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나라도 아니고, 내가 살 곳도 아닌데 네팔의 문명이 마음을 흔든다. 덜 발전하고, 덜 깨끗하고, 덜 세련된 이곳을 추천하겠느냐고 물어오면, 두 엄지손가락을 들겠다. 도시의 도도함도 시골의 청초함도 아닌 그 ‘애매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연애 경험이 부족한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거칠고 수줍은 매력이랄까. 이런 비유가 맞을진 모르겠다. 카트만두는 미완(未完)이 아니라 미완(美完)이었다.

- 글·사진 박지현 월간중앙 기자


▎상공에서 찍은 히말라야. 기다랗게 이어진 히말라야 설산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201504호 (2015.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