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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사드 배치와 박근혜 외교 딜레마 - ‘눈치 외교’ 접고 ‘갑의 외교’ 지렛대 개발하라 

한반도는 미중 양국의 전략적 요충지 … 정부가 ‘지피지기’하면 양국에서 얻어낼 것 너무도 많아 


▎4월 10일 서울 용산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장관과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대담결과를 발표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드의 한국 내 배치 문제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력을 다시금 시험대 위에 올렸다. 난제는 난제다. ‘딜레마’를 넘어 ‘트릴레마(3중고민)’라는 표현도 나왔다. 북한의 핵도발에 대처하는 일, 한·중관계의 손상을 막는 일, 한·미동맹을 지키는 일 등 3차 방정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낙관론도 있다. 정부와 진보적 시민사회에서 동시에 제기되어 흥미롭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3월 30일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철 모르는 자화자찬’이란 언론의 맹공을 받았지만 바로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도 윤 장관을 지원했다. 청와대 참모진과의 오찬에서 그는 “강대국 사이에 끼었다고 걱정하는데 너무 그럴 필요 없다”면서 “의연하게 여러 가지 정보를 갖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하는 것”이라 말했다. 정부가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풀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자신감이다.

진보적 시민단체 ‘자주국방네트워크’의 이일우 사무국장도 “본격적으로 점화될 사드 협상에서 ‘갑’은 대한민국”이라 단언했다. 한반도는 미·중 양국의 전략적 요충지이므로 정부가 지피지기하면 협상을 통해 양국에서 얻어낼 것이 너무도 많다는 시각이다. 사드외교를 바라보는 제3의 관점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개진한다. 단호한 목소리로 미국과 중국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지렛대를 활용한 ‘갑의 외교’를 당당히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배는 단숨에 뒤집기 어렵다”

“우리는 중국의 우려를 감안하여 사드 배치에 대한 우리 나름대로의 우려와 고려사항 등을 미측에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 중국에도 마찬가지다. 미군의 사드 배치는 결국 북한이라는 부도덕한 정권의 공갈에 대응한 것이라고 한다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주문해야 한다.”

당위론을 떠나 ‘원초적으로’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남한에 사드가 배치됐을 때의 중국 반응이다. 쉽게 말해 과연 어떤 수준의 보복이 이뤄지겠느냐는 것이다. 중국 정부 사이드의 입장은 알 길이 없지만 최근 스인훙 중국 런민대 국제관계 학원장의 발언은 눈길을 끈다. 그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가 한·중간 군사 협력 등의 분야에선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한·중 관계 전반에 엄중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전반적으로는 “한 번의 파도(사드 배치)가 큰 배(한·중 관계 전반)를 단숨에 뒤집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국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현재 중국은 한·미·일 동맹에서 한국을 여전히 가장 약한 고리로 생각한다. 일본과 달리 한국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한 것도 중국의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미·일이 밀착해 태평양 쪽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을 적(敵)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드가 배치됐다고 곧바로 한국에 보복하면 한미일 3국내에 상시 잠복하고 있는 ‘중국 위협론’을 부추길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개인적 친분 역시 한·중 관계에 완충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적어도 “설령 사드를 배치하더라도 중국과 ‘기술적인 협상’을 통해 극단적인 갈등은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중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대목은 ‘고성능 X-밴드 레이더’다. 사드는 탐지 거리가 1천㎞ 전후인 X-밴드 레이더 TPY-2의 지원을 받는다. 미·중관계와 미사일방어체계(MD)에 관한 한 중국 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우리창 런민대 부교수가 최근 <교도통신>에 토로한 ‘중국의 고민’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은) 요격 미사일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면서 “문제는 사드가 중국까지 폭넓게 커버할 수 있는 고성능 X-밴드 레이더와 일체가 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X-밴드 레이더는 일본에도 배치돼 있지만 한국은 너무 가깝다”는 것이 우리창 교수가 지적한 중국의 우려다. 그의 다음 발언이 귀를 더 솔깃하게 하지만, 아쉽게도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카드로 보인다.

“중국이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을 경우, 진짜 탄두와 가짜 탄두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도가 높고, 중국과 미국의 전략 밸런스를 붕괴시킬 우려도 있다. 따라서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X-밴드 레이더가 아닌, 한국이 이미 보유중인 이스라엘제 레이더와 조합하는 방식이면 중국의 우려는 해소된다.”

현재 중국은 미국, 러시아와 달리 평상시는 핵탄두와 미사일을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임전태세로는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창 교수는 “현재 핵탄두 보유 수량은 300개 미만으로 지금 수준에서 충분하다고 생각되지만, 미국의 미사일 방위의 정밀도가 높아지면 얘기는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X-밴드 레이더를 포함한 사드가 한국에 배치될 경우, 중국도 핵전력을 증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 정부가 ‘중국 설득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4월 10일 한민구-애슈턴 카터 한미 국방장관에서는 사드 배치 문제가 공식화되지 않았다. 카터 장관은 “전 세계 그 누구와도 아직까지 사드 배치에 대한 논의를 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점을 천명했다. 외교적으로 중국을 의식한 측면도 있지만 결국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대다수의 국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이미 내부적으로 깊숙한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수년 전부터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나면 오바마 대통령이 미사일 방어(MD)에 대한 상호 연계성, 연동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그런 배경을 상기하면 사드 문제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돈 문제가 걸려 있는 사안이라 양측 모두 입조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돈 문제가 걸려 있는 사안이다”


▎사거리 1만1200㎞로 미국 동부지역의 타격이 가능한 중국의 둥펑-31A 전략핵미사일. 중국은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미국과 중국의 핵전력 밸런스가 무너질 것으로 판단한다.
11월 9일 카터 장관이 방한하면서 사드 배치 논의를 둘러싼 양국간 줄다리기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이 감지된다. 국방부는 사드 논의가 공식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카터 장관은 방한 이전부터 공론화의 사전정지 작업을 벌여왔다. 지난 3월 12일 주한미군사령부가 사드 배치 후보지 물색 사실을 시인한 것도 사전정지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미군사령부는 경기도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와 강원도 원주 등의 부지를 사드 배치 장소로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KN-08’을 실전 배치했으며 여기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를 소형화하는데 성공했다는 빌 고트니 미국 북부사령관의 ‘폭탄 발언’도 ‘바람잡기’로 볼 여지가 많다. 2012년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에 처음 등장한 KN-08은 그간 ‘위장용 모형설’이 제기되는 등 저평가돼 왔다. 그런데 이 미사일이 실전 배치되었고, 소형 핵탄두까지 장착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미군 관계자가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KN-08은 최대 사거리가 1만20천로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무기다. KN-08이 배치되었다면 미국은 대북한 전략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이 핵보유국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트니 사령관의 발언은 사드를 배치하기 위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과장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 것이다.

이처럼 양국 정부간 샅바 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배경에는 국제정치학과 ‘머니 게임(money game)’이라는 두 가지 변수가 자리 잡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구축한다는 데 한 치의 틈도 없이 의견일치를 본다해도, ‘정치와 돈’이 얽힌 문제에서는 미묘한 신경전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통찰해야 할 한·미동맹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 고위인사들의 잇단 발언에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초조감이 감지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등과 연계해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사드 배치 문제를 결론지으려는 것이 미국정부의 바람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의 반대 등을 구실로 삼아 골치 아픈 사드 문제의 공론화를 최대한 미루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용 문제는 진짜 민감하다. 정확하게 문서로 된 조항은 없지만 한·미간에는 ‘원인제공자 비용부담’ 원칙이 관례화돼 있다. 먼저 요청하는 쪽이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되는 구조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체결한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이 대표적이다.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게 된 것도 한국이 먼저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2008년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김장수 주중 대사도 당시 “한국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 문제를 먼저 제기하는 바람에 용산기지 이전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먼저 말하는 자가 지갑을 연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FTA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한국의 대중국 교역량은 미국, 일본과의 교역량을 합친 볼륨보다 더 커졌다.
협상의 일반원리, 수요·공급 법칙을 적용해도 먼저 관심을 보이는 쪽이 불리하다. 수요자가 관심을 많이 보이면 공급자는 값을 올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드 1개 포대 배치 비용은 구성요소의 조합에 따라 1조∼2조 원에 달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말을 많이 할수록 사드 문제는 비용 측면에서 불리해진다”면서 “도입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낼수록 미국은 더욱 비싼 가격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 특히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의 찬성입장 천명이 ‘성급하고 섣부르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 찬성하더라도 집권당 지도부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것이 현 청와대 참모, 외교부의 입장이다. 시기와 속도를 조절해야 하고, 비용 분담 문제에 직면해 협상력을 최대한 키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동아시아 정책의 주요 포스트를 역임했던 한 전직 외교부 관리는 “정부 내에서는 진작부터 사드가 결국은 한국에 배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먼저 나서서 사드 문제를 매듭짓지 않은 것 자체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반발과 미국 정부의 배치 비용 분담 요구를 동시에 막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의 사드 배치 주장으로 전략적 모호성의 약발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 이 전직 관리의 걱정이다.

현재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무성 대표, 나경원 국회 외통위원장, 정병국, 조해진 의원 등 대다수 비박계는 사드 한국 배치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한기호, 송영근 등 군 출신 의원들은 미국 요구대로 수조 원대의 천문학적 비용을 분담하더라도 반드시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무사령관 출신 송영근 의원은 “주요국(중국)에서 싫어한다는 핑계를 대는 건 자기부정”이라면서 “미국 돈으로 갖다 놓으면 제일 좋지만 나눠 내자고 해도 따져봐야 하고 최대 2조원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침 없이 공개하고 있다. 윤상현 특보, 이정현, 홍문종 의원 등 친박핵심들은 비박계의 사드 배치 밀어 붙이기를 강력 비판한다. 단순히 외교안보적 차원을 넘어선 모종의 정파적 복선이 깔린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까지 보내고 있다. 윤상현 특보의 발언은 현재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경청의 가치가 있다.

“사드의 유용성과 효력의 극대화 방안 등에 대한 검토가 우선 필요하다. 이는 매우 정밀한 군사전략적 판단을 요하기 때문에 고도의 전문적 군사 지식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 단편적인 지식이나 일방적 논리로 의견을 모아나갈 사안이 아니다. 정치권이 나서서 갑론을박을 이어갈수록 주변국들은 그런 논란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자기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가지게 되고, 그럴수록 우리 정부의 주도권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외교·경제·정치 등 비군사적으로도 매우 복잡한 요소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드 배치 문제가 현안으로 급격히 부각한 것은 지난해 말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이 체결되면서부터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북한위협론을 내세운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의 일환’이라고 의심하게 된 모멘텀이기도 했다. 중국은 미국이 한국 정부가 스스로 결정해서 사드 배치를 요청하길 바라고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사드문제 해결의 외교적 해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복합적 상호의존성’의 시대인 지금은 한·미와 한·중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어렵지만 양쪽을 만족시키는 결정을 해야 한다. 빨리 6자회담 프로세스에 돌입해 사드 배치의 명분을 약화시켜야 한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어려울 때 최종단계에서 검토할 문제다. 사드 배치 문제를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 기술적 고려보다 외교 전략적 고려 앞세워야


▎1. 3월 31일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가운데). 윤 장관은 바로 전날 사드와 AIIB 가입 문제로 인한 외교 난맥상이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오른쪽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 2. 4월 1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의원들과 의견을 나눈 유승민 원내대표.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러나 “사드보다 6자회담!” 구호보다 더 한 구두선(口頭禪)은 없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 딜레마가 좀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야당을 포함한 국내 진보세력 전체,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 이전 6자회담 정상화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두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은 마치 소 닭 보듯 6자 회담에 소극적이다. 미국 국무부는 4월 10일 브리핑을 통해 6자회담의 본질과 재개 원칙을 거듭 분명히 했다. “한반도 비핵화가 목적이고, 북한의 관련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6자회담의 목적이 대화 자체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소속 관리도 지난 4월 1일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를 통해 “비핵화를 전제로 한 어떤 협상에도 북한은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북한 관리는 또 “비핵화는 더 이상 협상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며 “북한의 비핵화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된 뒤에나 고려해볼 문제”라고까지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요청을 받는다고 해도 북한 정부는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담이 재개될 경우 어떤 조건을 주고받을 것인지조차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재의 평양 분위기”라고도 했다.

박근혜 외교의 딜레마는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미·러 갈등 속에서도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한·미·일 안보협력에 발맞추면서도 일본 우경화를 경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의 집합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승리 70년’기념식에 중국 정부가 남·북한 정상을 모두 초청한 것이 주목을 받는다. 러시아에서 불발된 남북 정상회담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대외 여건 상 양측 정상 공히 중국 방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적어도 조우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양자회담만 고집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파 출신으로 국제사회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를 활용할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김정은이 러시아와 중국 행사에 모두 방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특히 중국과의 소원해진 관계회복에 나서야 하는 북한 입장에선 중국의 이번 초청을 어떻게든 적극 살려나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북·중 정상회담의 무대도 항일전쟁 승리 기념식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만 김정은이 북·중 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몸값 높이기 전략 차원에서 양자회담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이 변수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 행사의 경우 국제무대 데뷔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베이징에선 실질적인 목표를 달성하려고 들 것”이라며 “이 경우 우리 대통령과의 조우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정상회담이 되려면 사전 실무적인 의제 조율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사드배치 문제를 국가의 장기적인 외교목표 관철과 결합시킬 것을 조언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것이 통일대박론이다. 통일대박론의 실현을 위해서는 일단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 급변사태의 수습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협력 없이는 하나도 얻을 수 없는 전략 목표다. 군사기술적 고려보다 외교 전략적 고려를 앞세워 풀어나가야 한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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