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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생명예찬’⑤] 사랑과 필요가 하나되는 기쁨 - 왜 내리사랑은 치사랑보다 강렬한가? 

자식을 잘 보살피는 것은 모든 생명체가 공유한 특질… 조상을 거슬러올라가길 거듭하면 뭇 생명은 공동의 조상을 만난다 

글 복거일
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아무리 커도 자식에 대한 사랑에 비길 수 없다. 이미 생물적 임무를 끝낸 부모보다 자식에게 쓸 자원이 더 요긴하다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자식을 위해 만난(萬難)을 감수하고, 부모에게는 사무친 미안함을 품는다. 내리사랑이 치사랑에 앞설 수밖에 없는, 생명 보존의 유전학적 진실을 보여준다.
어버이날이 가까워져 길거리에서 카네이션 송이를 보면, 그리움과 아쉬움이 가슴을 채운다. 나는 부모님께 카네이션 송이를 드린 적이 없다. “우리 세대에선 다 그랬다”는 변명이 이내 나오지만, 부모님 모습을 떠올리는 마음은 아릿하기만 하다. 딸아이가 꽃을 들고 들어올 때마다 환해지는 안식구 얼굴이 겹친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까마득하다./ 저승으로 떠난 지 갑년(甲年)이 지났는데도/ 기별이라곤/ 그제나 이제나 그때 그 나이/ 말 없는 사진 한 장뿐./ 아들의 아들 나이보다/ 젊은 아버지,/ 저승에서나마 환갑상은 받으셨는지./ 아들 없이 누가 있어/ 상을 차려 주었는지./ 추석 대보름 아버지 제삿날/ 밤하늘 바라보며 하염없어라./ 인생칠십고래(人生七十古來)에/ 아버지 잃은 여덟 살 아들과/ 서른여섯 아버지의/ 빛바랜 사진을 번갈아 보며/ 하염없어라./ 하염없어라.

일찍 여읜 아버지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김형영의 시 ‘하염없어라’를 읊으면, “부모님께 환갑상을 차려드릴 수 있었던 나는 행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에 따스하게 번진다. 오래 살면, 모두 효자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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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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