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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그림을 읽다] 화폭에 담긴 모성애(母性愛) - 강인함과 자애로움의 상징을 찬미하다 

미켈란젤로에서 콜비츠까지 피에타 속에 깃든 어머니의 위대함 

우리의 모성 교육 중 가장 위험한 부분은 바로 ‘모성의 위대함’만 가르칠 뿐 ‘모성의 위험’에 대해 함구한다는 점이다.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일인지, 엄마의 책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를 가르치느라 정작 엄마가 되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가르치는 데는 소홀한 것이다. 모성의 빛만 강조한 채모성의 그림자를 숨기는 교육. 이 미심쩍은 교육방식 때문에 엄마들은 정작 아기가 태어났을 때 ‘왜 생각 만큼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은가’를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엄마들이 진정한 모성을 느끼는 순간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가 아니라 아기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또는 아기와 엄마 사이에 끊을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할 때다. ‘엄마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성애 또한 다른 모든 관계처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모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성은 부딪히고, 아파하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싹튼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와 아기를 그린 그림은 언제나 내게 ‘모성의 다채로운 모순’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무조건 감동적이기보다는 아주 조금씩 오랫동안 말을 걸어오는 그림들이었다. ‘엄마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는 것은 곧 생명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나란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것과 맞먹는 무게로 다가왔다. 위대한 화가들은 저마다 모성의 테마에 천착하는 시기가 있다. 미켈란젤로는 평생 ‘죽은 예수를 안은 성모’를 그린 ‘피에타’라는 주제에 천착했으며, 르네상스의 정점을 보여주는 라파엘로의 걸작들은 대부분 성모 마리아를 그린 것이다. 피카소와 고흐 같은 위대한 화가들뿐 아니라 헨리 무어나 자코메티 같은 조각가도 하나같이 ‘어머니의 도상’을 깊게 연구했다. 내게 감동을 주는 작품들은 모성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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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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