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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한 아티스트③] 한국판 ‘벨 에포크(belle époque·아름다운 시대)’의 여왕 김희선 

“언제나 톡톡 튀고 싶어요” 

글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22년간 대한민국 톱스타의 신화(神話)를 써온 김희선, 신세대·X세대의 주자에서 결혼·출산 후 심연의 시선을 가진 명배우로 거듭나기까지

▎김희선은 2007년 결혼 후 6년간 연예계 생활을 중단했지만 인기는 변함없었다. 언제나 드라마 캐스팅 1순위였다. 중국 등 해외에서도 인기 높은 원조 ‘한류’스타다.
1990년대 김희선이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순간 한국방송연예사에는 ‘김희선’이라는 고유의 챕터가 생겨났다. ‘아프로디테’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완벽한 미모와 시대를 앞선 당돌한 성격을 가진 이 전무후무한 스타의 출현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세상에….” 청량한 햇살이 쏟아지던 5월말 강남의 한 카페에서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김희선을 실제로 보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배우 김희선과의 인터뷰를 앞둔 기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무려 데뷔한지 22년째다. 장기간 톱스타 자리에서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그를 두고 갖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어놓았던 전성기 시절인 90년대 후반 당시의 심정이라든지 아이를 낳고 난 후 달라진 가치관이라든지 시대와 시대를 잇는 궁금증들이 복잡다단하게 떠다녔다. 손가락 관절에 초조함을 담아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뽑고 있노라니 어느새 김희선이 나타났다.

괜한 기우였다. 그를 마주하고나니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이 입 안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 있어요?” 질문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실현하는 절세 미모를 코앞에 두고 제대로 된 인터뷰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머저리 같은 미소를 지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탓이다.

최근 그가 사랑받는 여주인공 역할을 마다하고 드라마 <앵그리맘>출연을 결정했을 때 몇몇 연예계 관계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희선은 이 작품에서 난생 처음 액션에 도전했다고 한다. 극중에서 그는 딸을 위해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교 폭력과 싸우고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채 담도 넘는다. 결국 주변의 기우를 불식시키며 인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아냈다.

교복을 입고 촬영해야 했어요. 부담되지 않았나요?

“부담됐죠. 내일모레가 사십(세)인데 교복입고 액션도 해야 하고. ‘이거 찍으면 한 3년간 이민가야겠다’(웃음) 그런 생각도 했죠. 하지만 저도 이제 아이를 낳고 정말 애 엄마가 됐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다른 건 모르겠지만 딸 가진 엄마 마음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해보겠습니다’고 말했어요.”

20년 만에 교복 입게 된 사연


▎드라마 <앵그리맘>의 최 PD는 “교복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으면서 모성애도 표현해야 하는데 그걸 해낼 배우가 김희선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설정과 달리 학교폭력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작품이라면서요?

“연출 의도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전 사실 연출자가 아니니까 혹시라도 말을 잘못하면 작품에도 피해가 갈까 봐 염려돼요. 잠시만요.”

“어떻게 감독님만큼 대답하겠느냐”며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산책 중이었다는 <앵그리맘>의 최병길 PD는 그의 전화를 받고는 인터뷰 장소로 왔다. 킥보드를 타고 왔단다. 어쩐지 희한한 광경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김희선과 퍽이나 잘 어울렸다.

김희선은 “음악 앨범도 내신 범상치 않고 천재적인 분”이라며 최 PD를 소개했다. “작품에 대해선 제가 말씀 드리기보다 감독님이 훨씬 영양가 있는 말을 해주실 수…(최 PD를 쳐다보며) 있냐?” 그는 감독의 어깨를 툭 치며 “동갑 친구에요. 액면가는 이 친구가 더 들어 보이지만…. 나보다 오빠 같죠?(박수 치며)”라고 말했다. 금새 밝고 경쾌한 기운이 가득해졌다.

삼고초려 끝에 김희선을 캐스팅했다는 최 PD는 “교복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으면서 모성애도 표현해야 하는데 그걸 해낼 배우가 김희선밖에 없었다”며 “섭외하려고 한 달간 매달렸다”고 말했다.

10대 어린 친구들이랑 연기하니 어땠어요?

“좋죠. 젊은 기운도 받고 요즘 감각도 배우고.”

같이 출연한 신인배우 리지와 바로에 대해 알았나요? 아이돌 그룹 멤버라면서요.

“네! (큰 목소리로) 저 B1A4 알아요!” B1A4는 바로가 소속된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몰랐잖아”라고 하는 최 PD의 말에 김희선은 “당신이 몰랐잖아. B1A4가 왜 B1A4인지 이번에 알았으면서”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맞은편에 앉은 기자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혈액형 B형 1명, A형 4명이래. 그래서 B1A4야. 몰랐지? 내가 낫다. 노래 알아? 난 알아.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좋은 날 ~’”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잠시 잊었던 기자를 다시 쳐다보고는 “기자님도 모르죠? 이 노래”라며 웃어 보였다. 당황스러웠으나 그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연하 배우와 연기했는데 러브라인이 없었어요. 아쉽진 않았어요?

“아니요. 10여 년을 러브라인만 했는데. 아유. 이젠 새로운 거 해봐야죠. 지겨워, 러브라인.”

교복을 입고 연기하려니 살짝 민망하진 않았어요?

“민망하죠. 요즘 교복이 좀 짧습니까? 촬영 때 입었던 치마를 보여드려 볼까요. 한번 입어보실래요?(웃음) 얼마나 민망한데요. 교복을 입고 액션도 해야 하잖아요. 담 넘고 4m 위에서 점프해야 하고. 그런데 다행히 액션도 처음이고 교복도 처음인데. 천재적인 연출력으로 잘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옆에 최 PD를 쳐다보며) 자, 훈훈한 마무리.”

그동안 연기했던 배역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한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선 <앵그리맘>의 ‘강자’가 제일 비슷해요. 실제로 저와 성격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간다던가.”

학생시절에도 괄괄하고 그랬어요?

“어휴, 얌전했죠.”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애들 많이 때렸고요.(웃음) 어릴 때는 다 그러지 않아요? 속상하면 먼저 때리고 보는 거지. ‘야 너 잠깐만 나랑 얘기해보자’ 이게 안되지 않아요?”(웃음)

농담인지 진심인지 구분이 안가요.

“솔직히 방송 일을 하던 시기라 학교에서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성격은 강자처럼 털털했죠.”

되게 털털해 보이는데 평소에는 어떻게 하고 다녀요?

“기복이 심해요. 안 꾸밀 때는 3일 내내 같은 옷에 세수도 안 하다가 한 번 나갈 때는 풀 메이크업에 머리도 하고 옷도 좀 튀게 입을 때도 있고요. 그렇게 하면 기분전환이 돼요. 이것도 성격인가 봐요.”

학생시절 특별한 추억은 없나요?

“너무 일찍 데뷔해서 학교를 자주 못 가 말씀드릴 게 없네요. 어떡하지?(웃음) 선생님들이 많이 봐줘서 애들이 싫어하는 부류였죠.”

데뷔를 중학교 3학년 때 했죠? 과거엔 10대가 데뷔하는 일이 드물었잖아요.

“방송 MC 맡았을 때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어요.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서 나이 상으로는 중학교 3학년이었죠. 그때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MC를 했어요. 진짜 대학 1학년이 됐을 때는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을 찍었고요.”

결혼 후에도 캐스팅 1순위 ‘비결’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이듯’ 톱스타 김희선은 지난 22년간 변치 않는 미모를 자랑해왔다.
톡톡 튀고 재미있는 성격으로 유명했잖아요. 지금도 여전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저보고 다 톡톡 튄다 그래요. 내숭을 못 떨어서 그런가? 저도 ‘(조신한 목소리로)팬들의 사랑으로 이제까지 활동할 수 있었고’ 이럴 수 있죠. 그런데 제가 그러면 기자님들도 별로 기사 쓸 게 없을 거예요.”

만일 한국에 문화적 번영을 상징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시대가 있었다면 김희선이 걸어오는 순간 시작됐을 것이다. 신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자 엑스(X)세대를 이끈 그가 걸치는 옷, 액세서리마다 품절사태가 일어났고 덩달아 국내 시장도 들썩였다. 결혼 후 6년간 연예계 생활을 중단했지만 인기는 변함없었다. 언제나 드라마 캐스팅 1순위였다. 중국 등 해외에서도 그를 앞다퉈 찾았다. 아이를 낳고도 연하의 배우와 멜로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여배우였으며,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이듯 변치 않은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더 그러했다.

이제 애 엄마잖아요. 외모적으로 부담되는 부분은 없나요?

“이번 작품에선 특히 더 부담됐죠. 띠 동갑 넘는 거의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애들이랑 같이 교복입고 한 앵글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신경 쓰이는데요.”

동안으로 보이기 위해 특별한 관리를 받기도 했나요?

“관리를 안 하는 게 관리에요. 저는 가만히 누워 있는 걸 못해요.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을 마셔요.”

술?(웃음) 몸매 관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네.”

일관성 있네요. 예전에 인터뷰 때도 관리 안 한다고 그랬던 게 생각나요.

“이제는 ‘쟤는 프로의식도 없는 건지 운동도 안하고 나이 드는데 준비성도 없고’ 이렇게 욕을 먹더라고요. 그런데 안 하는 건 안 한다고 해야지. 지금 와서 욕 먹는다고 ‘운동 꾸준히 하고 있죠. 요가도 하고요’ 이럴 순 없잖아요. 안 하는데. 대신에 술을 조금 더 자주 마셨어요. 발효주가 피부에 좋아요.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어요. 막걸리.”

좋죠. 특히 막걸리는 흔들지 말고 위에 투명한 걸 마셔야….

“이분, 술 좀 하실 줄 아네.”

어쨌든 술을 즐기면 미모를 유지할 수 있단 얘기죠?

“그리고 성형을 안 하면 돼요. ‘아니다. 욕먹어, 하지마. 이러고 나중에 나 성형할 수도 있잖아(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여하튼 저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 편이에요. 뭐는 못 먹고 뭐도 참아야 하고, 이게 다 스트레스잖아요. 스트레스 받으면 얼굴에 나온다니까.”

나중에 딸이 음주를 시작하면 말리지 않을 건가요?

“그럼요. 한국 사회에서는 못 마시는 것보다 마시는 게 좋더라고요.”

희선 씨는 주량이 어떻게 돼요?

“먹기 싫은 사람이랑 먹으면 금방 취하고요.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랑 있으면 좀 오래가요. 소주 빼고는 다 마셔요. 샴페인, 와인, 사케, 막걸리 윗부분, 안흔든.”(웃음)

촬영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많았죠. 밤새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그냥 밤샐까요? 어차피 인터뷰 거의 다 해가는데 한잔 어때요?”(웃음)

노트북으로 타자를 쳐가며 그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 와중이었다. 불쑥 하얀 손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그였다. “노트북이 벽이 돼서 우리 사이를 막아.(노트북을 가리키며)얘가 안 좋아. 물론 저를 보면서 글을 쓰시지만 원래 우리는 넘기는 수첩을 썼던 세대잖아요.” 그의 말이 일리가 있어 수첩을 꺼내 들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러브라인은 이제 지겨워요”


▎딸 ‘연아’ 이야기를 꺼내자 묘한 안정감이 김희선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딸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극중에서 열여섯 살 차 연하남에게 간접적인 구애를 받았는데 어떤 느낌이었어요?

“징그럽죠. 얘기잖아요. 게다가 딸내미 친구가 그러는데. 실제로 그러면 혼나야죠.”

대부분의 시청자가 16세 연하 배우 지수 씨와의 러브라인을 응원했어요

“극중에서 연하남하고 잘 어울린다 그러면 ‘김희선 아직 징그러울 정도로 늙진 않았구나’, ‘나, 아직 살아있구나’ 이렇게 혼자 대견해 하기도 하죠. 그런데 저도 이제 컸잖아요. 그런 걸 고집한다기보다 이제 그냥 내려놓는 시기랄까.”

현실에서 한참 어린 친구한테 구애를 받아본 적은 없었어요?

“있었죠. 한참 어리진 않았고.(웃음) ‘연아 어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연아 어머니’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죠.”

요즘은 연하남이 대세잖아요

“저 어릴 때만 해도 드라마에서 연상연하 커플이 나오면 ‘이래도 돼?’ 그런 반응이었어요. 90년대 중반에 연하남과의 사랑을 다룬 영화 <정사>가 나왔을 때도 파격적이라는 평이 줄을 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연하남 못 만나면 능력 없는 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런 게 참 좋은 것 같아요.(웃음) 사실 나이를 떠나서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고 애틋하게 바라보면 좋잖아요.”

10대 소녀보다 더 10대 같았다. 대답마다 ‘까르르’ 내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종횡무진 감성의 기복이 반복되다가도 딸 ‘연아’ 이야기를 꺼내자 묘한 안정감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스신화의 ‘님프(nymph)’마냥 시종일관 유쾌한 기운을 뿜어내던 그가 어느새 심연의 눈빛을 띈 채 딸에 대해 엄마로서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현실에선 톱스타 아닌 ‘연아 엄마’


▎드라마 <요조숙녀>의 한 장면. 유명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해서 화제가 된 이 작품에서 김희선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미모의 스튜어디스 역을 맡아 관심을 모았다.
딸 키우는 엄마로서 불안한 건 없나요? 이를테면 딸이 귀 뚫고 화장하고 다니면 어떨 거 같아요?

“귀는 저도 뚫었는데요 뭘. 딸은 제가 뚫어주려고요. 다만 짧은 교복치마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교복 업체에서 너무 예쁘게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요. 미성년 성추행 사건도 많은데, 사실 의상부터 그런 여지를 주면 안 되잖아요. 촬영하면서 감독님한테도 ‘교복 너무 짧다. 정말 미쳤어’ 이랬어요. 요즘 고등학교 책상에 가림막이 있대요. 선생님들이 교단에 섰을 때 아이들이 공부하다 보면 다리에 힘이 풀릴 수도 있고 그러면 속옷이 다 보여요. 현장에 가보니 가림막이 실제로 있더라고요.”

딸 연아(7)는 과외를 몇 개나 하고 있어요?

“몇 개 하고 있어요.(웃음) 피아노는 손 근육 발달에 좋다고 해서 하는 거고. 운동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체육관에도 보내긴 해요. 또 요즘엔 영어가 중요하잖아요. 중국어도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중국어, 영어를 배우게 하니까 중국어 성조에 영어발음이 같이 들어가더라고요. 모국어도 아직 완성이 안됐는데 한국어·영어·중국어를 하니까 서클(Circle)을 ‘써어~크을~’이라고 발음하는 거에요.(웃음) ‘아, 이게 역효과구나’싶어서 최근에 중국어 학원은 관두게 했어요.”

특별한 교육관이 있나요? 시간 날 때마다 자녀와 여행을 한다든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도와주려고는 해요. 미술학원에서 검은색 도화지를 주고는 너희들이 느낀 걸 말하라고 해요. 그럼 어떤 아이들은 ‘무서워요. 깜깜해요’라고 하는데 또 어떤 아이는 ‘오페라 시작하기 전이에요. 불이 꺼져 있어요’라고 말해요. 파란색을 보면 ‘하늘이에요’가 아니라 ‘수영장 파란 물에서 수영을 하고 있어요’라고 답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상상력을 이용해서 얘기하는 친구가 있다는 거에요. 결국 무조건 앉아서 사교육을 하는 것보다 잠시 미뤄두더라도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여행이나 취미생활을 함께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희선 씨 어머님의 교육관은 어땠나요?

“아이 얘기 나오니까 말이 길어지는데. 실은 집에서 아이에게 좀 스트레스를 주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칭찬만 받고 자랐거든요. 그림을 이렇게 막 그렸는데 엄마가 ‘너무 잘한다. 희선아, 넌 최고다’ 그러시는 거에요. 그런데 막상 사회에 딱 나와보니 촬영 NG가 나면 감독님들이 그렇게 혼내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잘했다고 했는데 왜 이러지?’ 이게 반복되니까 어떨 때에는 사회에 나가기가 싫어지고 상처받고 그랬어요. 그래서 연아가 버릇이 안 좋고 그러면 많이 혼내요. 존댓말도 꼬박꼬박 시키는 편이고. 그림 같은 거 요상하게 그리면 ‘넌 무슨 그림을 이렇게 그렸니?’ 하고.(웃음) 집에서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고 나가면 사회에 잘 적응하지 않을까요?”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힘들지 않나요?

“작품 끝나고 일 없으면 백수에요. 그래서 제가 학부모 사이에서 반장이에요. ‘오지랖 엄마’죠. 최근에는 딸 친구들 30여 명을 데리고 뮤지컬 <난타>를 보러 갔어요. 그거 아세요? 십 몇 년 만에 난타공연 하시는 송승환 선생님한테 전화했어요. 티켓값 30% 깎으려고.(웃음) 예전에 극중에서 저희 고모부로 나오셨거든요. 엄마가 되면 그렇게 되나 봐요. 딸내미 티켓값 좀 깎아보겠다고 ‘단체로 가면 좀 싸게 되나요? 선생님’ 이러고 전화드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할인해주셨나요?

“다 해주시죠. 연아 친구들이랑 배우들이랑 사진 찍게 해주시고. 인형도 나눠주시고. 제가 아이 태어나서 인맥을 이렇게 활용한 적이 처음인 것 같아요.”

연아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겠어요

"요즘에는 <앵그리맘> 본 친구들이 ‘연아 엄마다’하니까 ‘어, 우리 엄마를 내 친구들이 아네?’ 이렇게 좋아는 해요."

"수동적인 역할은 싫어"


▎김희선은 90년대 신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걸치는 옷, 액세서리마다 품절사태가 일어났고 덩달아 국내 시장도 들썩였다.
이번 작품에서 학교 왕따 문제를 다뤘잖아요

“놀랬어요. 아이들이 괴롭히는 버전이 점점 업그레이드가 되는 거예요. 영리하다는 게 아니라 영악하다고 해야 하나? 요즘 우리 아이들이 아이다운 맛이 없어서 아쉬워요. 한국 사회에 아이들만의 세계가 부족해서 피치 못하게 어른을 닮아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미안하죠.”

아이 한 명 더 낳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혼자가 요즘 편하더라고요. 뉴스 보면 부모 재산 갖고 형제들이 남 되고 이런 거 보면 혼자가 나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 욕심도 있고요. 아들의 든든함 같은 것도 느껴보고 싶고 그래요.”

딸이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바라는 건 없어요. 장래희망을 물어보고는 잘 들어주긴 해요. 연아는 수의사가 되고 싶대요. 그런데 그저께 제가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와 화보촬영을 했는데 그걸 보더니 꿈이 디자이너로 바뀌더라고요. ‘잉글랜드(영국)’에 가서 ‘퀸(여왕)’한테 상을 받고 싶대요. 디자이너 상을요. 제가 턱도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어요.”(웃음)

엄마가 되고 나서 표정이 편안해진 것 같아 보여요.

아녜요. 더 불안하죠. 원래 나만 조심하면 되는데 이제는 ‘아이는 잘 있을까?’ 가족 걱정도 되고. 앉으나 서나 ‘밥은 먹었을까?’ 신경 쓰여요.”

가족이 있어서 안정된 느낌은 있을 것 같은데.

“가족이 큰 도움은 안 되던데.”(웃음)

이전 인터뷰 보니 원래 현모양처가 원래 꿈이었잖아요. 이루셨어요?

“그냥 꿈이더라고요.(웃음) 악처가 되더라고요.”

한참 전성기를 누리다가 결혼하고 살짝 인기가 주춤했어요.

“결혼하고 6년을 쉬었어요. 쉬면서 ‘또 이런 삶이 있구나’ 깨달았지, 후회할 틈이 없었어요. 일단은 애기를 낳고 키우면서 너무 힘들었고. 애기를 처음 낳아봤잖아요.(웃음) 그래도 아이 키우는 일은 누구나 다 겪는 거고 저만 겪는 거 아니니 물 흐르는 대로 받아들이고 지냈어요.”

출산우울증 같은 것도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매번 얘기하는 거지만 이렇게 기자님과 감독님하고 얘기할 수 있는 지금 이 자리가 정말 좋아요. 감사하고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내가 신나고 재미있어야 해요. 캐릭터가 아무리 좋고 작품성이 있어도 지루한 건 못하겠어요. 좋은 역할이라고 해도 가만히 앉아서 울기만하고 수동적인 심심한 역할은 싫잖아요.”

오랫동안 영화를 찍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나요?

“90년대 영화판은 관객 수에 의존하던 때였어요. 영화시장이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요. 신인 때부터 너무 큰 역할을 얻었고 흥행실패를 하면 고스란히 그 몫이 저한테 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 상처도 많았어요. 지금은 사실 흥행 안돼도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해외에서 상도 받고 재개봉도 되고. 너무나 많은 콘텐트가 생겼잖아요. 그래도 아직까진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 선뜻 도전을 못하게 돼요.”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의 연기는 평단에서 극찬을 받았잖아요. 정말 좋았어요. 그 영화.

“기억해주셔서 고마워요. 어떡해. 나 눈물 날 것 같아.”

청소년 시절 TV를 켜면 김희선이 출연한 드라마가 마치 가족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 <웨딩드레스>의 신세대 대학생, <세상끝까지>의 순수한 여인, <토마토>의 당차고 씩씩한 커리어우먼 등 언제나 예쁜 얼굴, 총명한 눈동자, 경쾌한 웃음소리가 그 시절을 채웠다. 별볼일 없는 중학생 소녀였던 나는 이리도 변해버렸는데 인터뷰이로 만난 김희선은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의 완벽한 ‘김희선’의 자태로 화창하게 웃고 있어 경이로웠다.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연기해줘서 고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지금 소름 돋았어요. 너무도 듣고 싶었던 말이었어요”라고 답했다. 오랜만에 웃음기 없는 얼굴을 띈 그의 대답에 배우에 대한 깊은 열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경쾌함 이면에 진지함을 기자의 역량 부족으로 충분히 읽어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언제나 솔직하고 싶은 그녀


▎대중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솔직한 모습을 과감히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살면서 가치관이나 성격이 변하는 계기가 있을 텐데 기억 나는 일화가 있나요?

“이 일을 하면서 조금 더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뀐 것 같아요. 어떤 계기를 말하기 보다는 차라리 이 일을 오래하고 싶어하는 친구들한테 경험담을 얘기해주고 싶어요. 포장하고 꾸민 건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오래 사랑받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다 보여주는 거에요. 제가 예능에 나와서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술 마신다’고 하면 욕을 먹었어요. ‘여배우가 어떻게 술 마신다는 이야기를 하느냐’며 많이 혼났죠. ‘네가 여배우 망신 다 시킨다’고요. 지금 그러면 털털하고 성격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듣잖아요. 그래서 괜히 자기 주량을 늘리는 친구들도 생겼고요. 돌이켜보면 언제나 제 모습을 다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전보다 변한 게 있을 텐데.

“오히려 더 솔직해진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쉬워요. 살아가기에.”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사실 저에 대해 고정된 수식어가 예전에는 참 싫었는데. 그거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싶어요. 그 때의 김희선을 쭉 가져가고 싶어요. 톡톡 튀는 그런 이미지로 쭉 갔으면 좋겠어요.”

배우가 되지 않았으면 뭘 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술에 관련된 직업이지 않았을까요? 바(bar)를 하던가 밥집을 하고 있었겠죠.(웃음) <앵그리맘>의 강자처럼 껍데기 장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인터뷰 내내 코미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는 기분이었다. 겉잡을 수 없는 파도가 몰아치다가도 어느새 고요히 잠잠해져 버린 바다의 심연을 바라보는 것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청량했고 때로는 비장했다. 그래서 ‘조물주의 대자연은 신비롭다’고 하는가 보다. 그가 빚어낸 김희선이 여전히 아름답듯이.

- 글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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