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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심리학] 부하 직원은 괴로워! 오감(五感) 괴롭히는 진상상사 백태( 百態) 

“키우던 강아지 죽었다고 문상 오라고 하네요” 

김종태 월간중앙 인턴기자
잔소리로 청각 괴롭히는 상사부터 추행과 폭행 통한 촉각 공격까지 ··· 전문가들 “상사와 부하는 적이 아닌 동지, 서로 마음 터야 공생한다”

직원들을 괴롭히기로 유명한 한 상사가 문상(問喪) 오라고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더니 영정사진에 치와와종(種)의 개 사진이 놓여 있었다.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하는데, 상주로 앉아 있는 상사가 눈물을 쏟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절을 올렸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되며 인터넷까지 뜨겁게 달군 사연이다. 네티즌들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슬픈 현실’이라며 공감을 나타냈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렵게 들어간 회사이지만 인간 대접은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만큼이나 껄끄러울 때가 많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은 직장인 796명을 대상으로 ‘사내 갑을관계 존재 여부’를 주제로 조사했는데 그 결과 놀랍게도 직장인 92.5%는 자신을 ‘을에 가깝다’고 답했다고 한다. 모두가 자신 스스로를 약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속칭 갑을관계 속에서 표출되는 직장상사에 대한 불만은 기본적인 인간의 오감 즉, 청각·후각·시각·미각·촉각이 공격당하면서 비롯된다. 오감 피해에 따른 직장상사를 행태를 유형별로 나눠봤다.

달팽이관에 가해지는 고통 ··· 후각을 괴롭히기도


5감각 중 직장상사로 인해 가장 많이 고통받는 부분은 청각이다. 상사의 잔소리로 시작해 독설·무시에 이어 성희롱까지, 부하들의 귀는 괴롭기만 하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 때문에 상사가 입을 여는 순간부터 긴장한다.

“밥값은 제대로 하겠냐” “아는 게 뭐냐”는 등 귀를 거슬리는 독설이 난무한다. 회사원 이정희(27·여) 씨는 “업무과정에서 실수가 있다면 혼나야 맞지만 비꼬거나 다그치는 건 참을 수가 없다”며 “자존심이 구겨지고 나면 일을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심지어 폭언에 이어 욕설을 하기도 한다. 말 끝마다 ‘XX’를 붙여서 이야기하면서도 친근감의 표시라고 말한다”고 덧붙인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직장 상사의 언행 또한 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몇 시간씩 이어지는 자신의 경험담과 자랑은 듣는 이를 지치게 만든다. 김수철 변호사는 같은 사무소에 일하는 대표에 대해 이야기할 때 혀를 내두른다.

“매일 대표님이 시간 날 때 나를 앉혀두고 ‘내가 경험해보니깐 말이야’로 시작해 ‘한 번 생각해봐’로 이야기를 마치는 일장 연설을 1~2시간씩 이어나간다고 말한다. 대표가 뛰어난 것은 알겠는데 매일 자신의 말을 똑같이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여성을 ‘타깃’으로 삼는 성추행에 가까운 말들도 언어폭력이다. “뱃살이 나와 보인다” “얼굴에 뭐가 붙었다. 지난밤 남자랑 뒹굴고 온 것 아니냐”는 등의 폭언은 듣는 이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다.

출산휴가를 다녀온 이미숙(28·가명) 씨는 이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도 들었다. 부장이 출산휴가를 조금 더 다녀와야겠다고 말하며 “젖 크기를 보니 젖을 아직 다 못 빼고 온 거 같은데”라며 배시시 웃었다. 이씨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화가 나지만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들은 그 부장의 말들은 이씨에게는 잊지 못할 상처다. 배려 없는 생리현상의 표출로 부하의 후각을 괴롭히는 상사도 존재한다. 직장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이런 직장 상사들의 생리현상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예상외로 많다.

종류도 다양한 ‘못 볼꼴’, 몸 상하게 하는 ‘먹거리’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던 케이블TV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김동식 대리(김대명 분)가 직장상사에게 불려가 꾸지람을 듣고 있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미생>은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얻었다.
물류업체에서 일하는 김영미(30·가명) 대리는 과장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칸막이도 없어서 그야말로 불가항력적이라고 했다. “과장이 정말 온 종일 트림하면 그날 점심을 뭐 먹었는지 다 알 정도다. 방귀는 얼마나 자주 뀌는지 일하다가 절로 헛구역질을 한 적도 있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김 대리는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정말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에 동기한테 달려가서 말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는데 동기는 재미있어 하며 웃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남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상사의 그런 행동이 김씨에게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서럽고 치욕감을 안겨주는 행동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못 볼 꼴’을 봐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각적으로 공격하는 상사의 모습이다.

회사원 김철호(29·가명) 씨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상사 때문에 눈앞에서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술만 취하면 각종 트집을 잡으면서 괴롭힌다. 얼마 전 김씨는 상사가 집어 던진 마이크에 머리를 맞았다. 회식이 끝나고 새벽 2시에 노래방에 갔다가 상사가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직원들이 호응을 안 한다며 갑자기 마이크를 집어던진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다음 곡을 부를 때 팀원 모두 춤추고 노래를 불렀더니, 돌아가신 아버지 애창곡인데 아버지를 욕되게 했다고 얼차려를 줬다.

이수미(31·가명) 씨의 경험담은 더 황당하다. 이씨는 여성 종업원들이 있는 술집에도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차장·부장급의 상사들이 여성 종업원들에게 어깨에 슬그머니 손을 올리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신경이 쓰이잖아요. 마치 제가 어울리지 않은 곳에 온 것처럼 불편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더라고요.” 이씨는 “상사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기에 그곳에 데리고 갔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 후로 이씨는 그 상사들을 마주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못 볼꼴’은 메신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박지은(25·여·가명) 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회사의 팀장으로부터 야한 동영상과 사진 수십 장을 휴대폰 SNS로 받은 것이다.

“‘친구에게 보낼 것을 저한테 잘못 보냈다’고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좋은 자료 보내줬으니 한턱 쏴라’라고 웃으며 말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먹거리’도 때로는 크나큰 폭력이 될 수 있다. 부하직원들로서는 끼니 하나 때우는 것조차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미각을 괴롭히다 못해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철호(31) 씨는 ‘먹거리’로 인해 죽을 뻔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부장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밀가루 음식을 강권했다. 결국 이씨는 두드러기가 심해지고 호흡이 가빠져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됐다. 이씨는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못 먹는 음식을 억지로 받아먹어야 하는 현실이 더 처량하게 다가왔다”며 고개를 떨궜다.

직장인의 ‘먹거리’에 술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정보통신(IT)업계의 영업부 신입사원 김정원 씨는 술이 깨기가 무섭게 술을 들이키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점심시간 소주 1병을 시작으로 저녁시간에 추가로 1병, 회식에서 2~3병 등 상사의 권주(勸酒)에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기만 하다.

김씨는 “다음날 아침이라도 같이 먹는 날에는 해장술로 다시 1병을 마시게 되는 등 온종일 입에 술 향기를 머금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6개월 사이 체중이 7~8㎏가량 불면서 지방간·고혈압 등 질병도 생겼다.

‘진상’과 ‘범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물리성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뉴스를 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직장 상사들의 폭력은 존재한다.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군대식 문화와 폭행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최진영(30·가명) 씨는 얼마 전 병원에 다녀왔다. “차장이 던진 펜과 파일에 얼굴을 맞아 상처가 생겼어요. 긁히면서 피가 났어요.” 문제의 차장은 다른 팀으로 옮겨졌지만 최씨는 복도에서 상사를 만나면 순간 가슴이 철렁해진다.

단순 폭력이나 폭행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추행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직장 내 은밀한 곳에서는 여전히 성추행·성폭행이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혹시 내 직장상사도 발목에 발찌 하나 차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상상을 한번쯤은 하게 된다. 요즘에는 남자 직원을 대상으로 한 여자상사의 성추행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김호영(30·가명) 씨는 몇 년 전 사건을 ‘크리스마스이브의 악몽’이라고 표현했다. 여자상사에 여자직원들이 압도적으로 많던 조직에서 ‘청일점’이던 그는 업무가 밀려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등이 차례로 꺼졌다. 그가 두리번거리는 사이 어두운 곳에서 등장한 상사는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오늘 함께 있자.” 그가 당황한 사이 상사는 그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김씨가 완강히 거절하자 상사는 불쾌해하며 인사고과까지 운운했다. 김씨는 그런 성추행을 당하는 것이 성적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물론 남자로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직장상사와 부하의 갈등관계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운영실이 직장에 들어간 신입사원의 입사 전후 1년간의 병원 이용 행태를 추적해봤다. 그 결과 취직 전에 비해 입사 뒤에 더 자주 병원을 찾았고 그만큼 진료비 지출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입사 전에는 1년에 100명 중 77명꼴로 병원을 찾았다면 신입사원은 100명 중 82명꼴로 병원을 찾은 것이다.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조사 결과 입사 전후 급격히 늘어난 증상 등을 살펴보면 위장 등 소화 분야 장기 관련 질병에 집중되는데 이는 스트레스에 민감한 부분이다. 신입 직원들이 새로운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업무가 바빠 생활이 불규칙해지면서 위염이나 소화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며 “또 잦은 회식과 과음·폭식·흡연도 위염 등의 원인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상사들은 왜 부하직원들 공격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상사의 심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직원을 위협하고 폭언하고 질책하는 상사는 사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라며 “너는 나보다 못하다는 내면의식이 발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의식적으로 괴롭히기보다 무의식에 존재하던 감정이 표출되는 것이다.

상사와 부하를 위한 제도적 소통창구 필요


심 교수는 이어 “소수 의견에 잘 휘둘리는 사람일수록 상사가 되면 소수의 의견에 의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돼 직원들을 괴롭게 한다”며 “개인마다 인격에는 결함이 있지만 권력이 있는 상사가 되면서 인격이 도드라지게 된다. 시스템을 통해 진솔한 피드백이 오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왕자가 누워 있는 백설공주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납품, 내일까지다.’ 백설공주는 갑자기 눈을 떴습니다. 한 술 더 떠 왕자는 말했습니다. ‘아, 그리고 죽어 있던 동안은 월급 안 나온다.’ 그 말을 들은 백설공주는 정말로 죽어버렸습니다.”

요즘 일본의 ‘사축(社畜) 동화’가 화제다. ‘회사가 기르는 가축’이란 뜻의 ‘사축’은 어렵고 불합리한 직장의 회사원들의 비애를 백설공주 같은 동화에 담아 각색해서 내놓은 것이다. 힘없는 부하직원의 모습을 절실히 보여준다.

우종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학 교수는 “회사를 이직한다고 해서 예전보다 상사와의 관계가 나으리란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상사에 대한 마음의 방어망을 펴야 한다”며 “더욱이 상사와 직원이 서로 적으로 인식할 게 아니라 애정과 관심으로 여기고 서로를 맞춰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한다.

- 김종태 월간중앙 인턴기자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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