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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보고] 위험수위 넘은 일본인의 혐한(嫌韓) 의식 

“정상외교 복원이 혐한류 해소의 출발점 ”  

김경철 일본 코단샤( 講談社) 뉴스잡지 부문 서울통신원
‘잃어버린 20년’이 가져다준 자신감의 상실과 국가적 고립감에 따른 패배감과 열등감이 원인… ‘복합골절상태’ 한일관계 치유하는 근원적 처방 나와야
일본인의 마음에 여유 대신 반발심이 자리 잡았다. 시야는 좁아지고 포용력도 사라졌다. 자신감 상실과 고립감이 이웃 나라에 대한 혐오감으로 전화했다. 그러나 혐한과 반일은 동전의 양면인 측면이 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해결의 실마리다.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위한 양국민의 진정한 노력이 절실하다.


▎2010년 8월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 앞에서 한 우익단체 회원이 “한국병합 100년을 맞아 국민의 의사와 무관한 간 나오토 총리의 부적절한 사죄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든 채 시위를 벌였다
2013년은 한류열풍의 시발점이 된 <겨울연가>가 일본의 국영방송국인 NHK에서 방송을 시작한지 꼭 10년째가 되는 해였다. 일본 내 한류관련 기업들은 한류 1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였으며, 배용준·윤은혜 등 한류 톱스타를 초청한 화려한 시상식이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 시상식을 둘러싸고 도쿄도에 사는 야마모토 씨 부부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자.

아내 “왜 일본 TV에서 한국사람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을 중계하는 거지?”

남편 “….”

아내 “식탁 위에 304호가 가져온 과자가 있어요.”

남편 “304호? 어제 이사 온?”

아내 “네, 맞아요. 근데 그 집 자이니치(在日=재일한국인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인가 봐요. 아줌마 이름이 김상(金さん)이래요. 그러고 보니 그 집 차가 현대던데…. 역시 한국차 타는 사람은 일본사람이 아닌가 봐요.”

남편 “말이 좀 심하잖아.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인데 그렇게 말하는 건 실례야.”

아내 “뭐가 심해요? 당신은 왜 한국사람 편을 들어요? TV도 그렇고, 신문도 그렇고 한국, 한국! 지겨워죽겠어!”

남편 “당신 요즘 왜 그래? 소프트뱅크 사장(손정의 씨)이 자이니치니까 휴대폰을 바꾸라고 하질 않나, 탤런트 누가 자이니치니까 그 드라마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하질 않나, 이상한 말만 하는데 뭐가 문제야?”

아내 “그들이 얼마나 우리 일본에 폐를 끼치는지 알아요? 인터넷 보면 다 나와요! 요즘엔 신문도 TV도 한국 눈치만 보고….다 쓰레기에요. 오직 인터넷만 진실을 말하고 있다니까요!”

중년층과 주부층에까지 파고든 혐한


▎한때 도쿄 긴자의 건물벽을 장식했던 한류 스타들의 홍보용 사진.(왼쪽) 한류 스타를 맞기 위해 공항에 몰려든 소녀 팬들.(오른쪽) 이명박 정부 말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본 내 한류는 과거의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야마모토 씨 가정의 부부싸움은 물론 가상의 에피소드지만, 여기서 언급된 야마모토 부인의 발언은 ‘넷우익’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넷우익(ネット右翼)이란 사이버 상에서 과격하고 배외주의적인 차별발언을 일삼는 인터넷 유저를 일컫는 말이다. 넷우익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출판한 일본의 문화평론가 후루야 츠네히라는 “넷우익의 공통된 주장을 세 가지만 든다면 혐한·혐중 발언, 재일한국인 비하발언, 반 매스미디어적 발언”이라고 설명한다. 2014년의 한 IT기업의 조사에 의하면 넷우익의 주요 활동사이트로 알려진 ‘2채널’과 ‘야후 뉴스’, ‘마토메 사이트(まとめサイト: 한국뉴스를 모아놓은 사이트)’의 접속자는 연령별로는 40대가 가장 많고, 여성의 비율도 30∼40%나 된다고 한다. 과거 소수 젊은이의 배출구로만 여겨졌던 넷우익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인터넷 환경을 통해서 중년층과 주부층에게까지 파고든 것이다. 이들은 2012년 무렵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세를 불려 현실세계로 뛰쳐나왔다.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매주 혐한 시위가 벌어지고 대형 서점에는 혐한 관련 서적이 즐비하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2012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한일관계와 혐한 기류는 한국에 대한 일본국민의 시각을 크게 악화시켰다. 2014년 10월 일본의 내각부가 발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인의 66.4%가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하여 1978년부터 본 조사가 시행된 이래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서 일본국민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최근 들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4년 5월, 일본의 <요미우리신문>과 우리나라의 <한국일보>가 매년 한일 양국에서 공동으로 실시하고 있는 양국관계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대답이 73%로 전년의 55%에 비해 18%나 급등했는데, 이 역시 최근 들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일본 내의 반한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조사다. 그 여파는 당연히 일본 내 한류 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 KBS미디어에서 드라마, 음악프로 등 콘텐트 수출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의 한류 동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13년도 하반기부터 일본시장이 급격히 나빠졌다. 업계에서는 올해 초에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다. 한류드라마의 일본 수출단가도 급격히 떨어졌다. 현재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편당 수출가는 평균 2∼3만 달러 수준으로, 2012년에 비교하면 5배 이상 떨어졌다. 과거에는 일본시장이 해외마켓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70∼80%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중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드라마 기획단계에서부터 중국에 초점을 맞춰 출연자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일본 우경화가 반한 기류 조성에 일조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발간한 <2014년 한류백서>에는 2014년 1∼2월 전 세계 11개국의 한류 콘텐트 이용자 440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일본인 응답자 400명 중 50%가 앞으로 한류의 지속 기간을 묻는 질문에 “이미 끝났다”고 대답했으며 대부분 응답자(85.8%)가 4년 이내에 한류가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다. 일본 응답자들은 한류 침체의 원인으로 일본의 우경화가 진행되며 반한 기류가 조성된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원조 한류드라마인 <겨울연가>는 2003년 NHK 위성에서 첫 방송을 탔다. 2004년에는 지상파 방송을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돼 최종회 시청률 20.4%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일본 방송계에 한류 드라마 붐을 일으켰다. 당시 장기 불황에 고민하던 일본 방송가는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시청률을 얻는 한국 드라마를 앞다퉈 사들이며 드라마에 의한 한류 붐을 촉발시켰다. 그 후 한류는 급격히 진화되면서 드라마뿐 아니라 K-팝,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일본 대중문화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공중파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일본 드라마에 한국배우가 주요 출연진으로 등장했으며, 음악프로그램에서는 K-팝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러나 “나온 말뚝은 망치질을 당한다(出る杭は打たれる)”라는 일본 속담이 증명하듯 너무 잘나가는 한류에 대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2011년의 이른바 ‘후지TV데모’가 그 발단이었다. 후지TV가 편향(한류 관련 편성이 많고 음악프로 등에 한류스타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주장)되어 있다는 것이 데모의 이유였는데, ‘행동하는 보수’라는 이름으로 여러 극우 단체가 결합해 만든 ‘후지TV 항의데모 실행위원회’가 조직적으로 항의운동을 전개해나갔다. 그들은 한 달에 한번 꼴로 방송국 앞에 모여 데모를 벌였다. 이들은 한류스타 김태희 주연의 후지TV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의 주요 스폰서였던 화장품회사 카오(花王) 본사로도 몰려가 후지TV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데모를 했다.

이 후지TV 데모는 수천 명의 인원이 참가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시위였으며 인터넷으로 2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당시는 한류 열풍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들 혐한파의 소동은 후지TV나 카오의 담당자로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한류에 대한 반감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모 지상파 채널에서 해외 콘텐트 수입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류가 일본의 중년여성에게 열병처럼 번지면서 그 반동으로 한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중년 남성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시청자 중에는 한류 드라마에 빠진 아내가 자신과 이혼하고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싶어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은 사람도 있었다. 이른바 한류 콘텐트에 대한 항의는 2011년 후지TV 데모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 드라마를 방송하면 시청을 보이콧하겠다는 전화가 하루에 100통 이상 걸려왔으며 스폰서들도 한국 드라마 광고를 중단하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는 협박이 커졌다고 이야기한다. 성화에 못 이겨 한국 드라마 시간대의 광고를 중단한 대기업도 생겼다. 결국 우리 방송사도 한류드라마가 예전처럼 시청률을 내지 못하고 광고주 섭외도 어렵게 되면서 한국드라마 시간대를 폐지하게 됐다.”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일본 최대 보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회원들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열린 A급 전범 등 합사자 추도 집회에서 기미가요를 부르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지한파 지식인인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는 지난해 11월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청으로 이뤄진 ‘일본의 혐한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라는 특별 강연을 통해 혐한과 한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류팬들은 2003년 이후에 배우 배용준을 이상화하고 ‘욘사마는 순수하고 고귀한 심성을 가진 분, 그 욘사마를 낳은 한국 사람들도 틀림없이 순수하고 고귀한 심성을 가졌을 것’이라는 신념을 품고 있었다. 나는 <겨울연가> 팬들의 진지함에 최대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중 일부가 배타적으로 되어가는 것을 우려하게 됐다. 2005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후 한일관계가 금이 간 것에 대해서 배용준 팬의 일부 급진파는 ‘고이즈미가 나쁘다. 배용준은 한일 우호를 주장하고 있고 훌륭하다. 우리는 배용준을 따른다. 우리야말로 진정한 한일우호 촉진파’라고 주장했다. 이런 완고한 심정은 마치 1960∼70년대에 북한을 찬양했던 전후 지식인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국 또는 북한을 일방적으로, 일말의 오점도 없는 순진무구한 존재로 설정하고 그 인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인을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규탄한다. 이것이 2000년대 중반의 한류를 둘러싼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등장한 혐한이 바로 이 한류팬들의 도전적인 배타성에 대한 대항적 성격을 가졌던 것은 명백하다.”

오구라 교수의 분석처럼 한류는 일본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전후 일본인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켰지만, 한국과 한국인을 절대선으로 추앙하는 일부 한류 팬의 독선, 그리고 일본 문화계에 만연했던 한류에 대한 선망과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자학의 분위기가 오히려 반작용을 불렀다. 한류에 대한 맹목적 숭배가 한류와의 정반대의 시선으로 한국을 왜곡 폄하하는 혐한의 대두를 낳았다는 분석은 일본 사회에서 정석처럼 받아들여 진다.

혐한은 역사적으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백강전투(660년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의 구원병과 백제의 부흥군이 합세하여 나당연합군과 벌였던 전투)가 그 기원이란 견해도 있다. 일본 식민통치 시대에는 한국은 열등한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일본사회를 지배했던 적도 있으며, 1923년 관동대지진 후에 재일 한국인이 수천 명이나 학살된 사건은 혐한이 부른 참극이었다. 이처럼 뿌리 깊은 역사가 존재하지만 혐한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산케이신문> 등의 우익 매체에 의해서다. 그리고 혐한이 집단화되어 하나의 ‘하위문화’로 일본 사회에 대두하기 시작한 것은 2002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그 계기로 볼 수 있다.

혐한 서적에 눈 돌리는 일본 출판계


▎일본 도쿄 긴자의 한 대형서점에서 한 여성이 혐한류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에 무관심했던 일본 매스컴은 한국이 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 확정되자 한국에 대해 관심을 집중했다. TV에서는 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 한국을 알리는 정보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각종 신문과 잡지에서도 앞다퉈 한국 특집을 기획했다. 그 덕분에 한국에 대해 무관심했던 일본의 젊은이들이 월드컵을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됐다.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을 제대로 알자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그 후 한류 붐의 토양이 됐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한편에서는 일부 일본인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싹트기 시작했다. 한국의 축구팬들이 일본 경기에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나 당시 보급이 시작된 한국신문들의 일본어판 등을 통해 한국내의 반일감정을 접하면서 인터넷상에서는 한국에 대한 날조된 정보와 근거 없는 비난이 난무했다.

2005년 고이즈미-노무현 정권 아래서 독도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재점화되면서 인터넷상의 혐한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2채널’의 한글판, 극동 아시아판 등의 여러 게시판과 야후 게시판 등을 통해서 넷우익들에 의한 혐한적 발언과 창작물이 쏟아져 나왔으며 넷상에서 연재되던 웹툰이 <만화 혐한류(マンガ嫌韓流)>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둘러싼 한국인의 반일감정과 한국인의 애국심을 과장되고 왜곡된 시선으로 조롱한 이 만화는 발매 전 예약판매만으로 아마존 저팬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이 광고를 거절했다고 폭로한 출판사의 노이즈 마켓팅(이 소동에 대하여 <아사히신문> 담당자는 광고문의 자체가 없었다고 부정함)은 혐한파의 결집을 유도했다. <만화 혐한류>는 2009년까지 총 4권의 속편이 출판되어 2015년 4월 현재 100만 부의 판매를 올렸으며,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출판계가 혐한 서적에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권 말기인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깜짝 방문과 일왕의 사과요구 발언 등은 한일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한류붐도 급격히 냉각됐다. 한류 전도사임을 자처하던 일본 연예인과 유명인이 한 순간에 입을 다물었고, 지상파 방송에서 한류 드라마가 자취를 감춰버렸으며 K-팝 스타의 방송 출연이 전멸했다.

한류의 퇴조와 더불어 2013년부터 일본의 서점가에는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혐한 출판물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의 출판물 도매업체인 ‘도한’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신서(新書) 논픽션 부문에서 <매한론>이 1위를, <한국인에 의한 치한론(恥韓論: 저자가 신시아 리라고 하는 필명의 한국인 치과의사라고 함)>이 7위를 차지했다. <매한론>은 2015년까지 30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리고 있으며 <한국인에 의한 치한론> 역시 20만 부가 팔렸다. 최근에는 재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헤이트 스피치’로 악명 높은 재특회(재일외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의 리더 사쿠라이 마코토가 2014년 9월에 출판한 <대혐한시대(大嫌韓時代)>가 7만 부 판매를 넘어서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현재의 혐한 서적 붐을 촉발한 것은 <매한론>의 저자인 전 지지통신 서울특파원 무로타니 타츠미(室谷克實)가 2013년 4월에 신쵸샤에서 출판한 <악한론>이다. 신쵸샤(新潮社)는 이 책의 출판배경으로 “수년 전까지 ‘한국을 배우자’는 내용의 책이 많았지만 이 책은 그 안티테제라는 측면에서 시도됐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불황 속에서 12만 부나 팔린 <악한론>의 성공 이후, 일본 출판계는 본격적으로 혐한 서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혐한을 부추긴 매체 중엔 주간지를 중심으로 하는 남성잡지가 있다. “한국이 좋고 일본은 나쁘다”는 주장을 펼치는 여성 한류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일본의 중년남성들이 혐한 기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일본 남성잡지가 주로 다루는 혐한 기사의 대부분은 한국 정계 이야기, 더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집중포화다. 일본의 대표적인 남성지 <프라이데이(FRIDAY)> 편집부의 사카모토(坂本) 기자는 일본 잡지의 ‘박근혜 때리기 열풍’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아베 정권을 비판해도 팔리지 않는다. 과거 민주당 정권 때는 ‘오자와는 바보다’, ‘간 나오토는 어리석다’라는 등의 정권 비판 기사가 독자의 인기를 끌었는데, 아베 정권 하에서는 정권을 비판하면 반응이 시큰둥하다. 일본의 주간지나 TV에서는 언제나 집중 공격할 ‘악인’을 필요로 하는데 국내에서 그 대상을 상실한 상황에서 때마침 강력한 반일인사로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포착되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고자질 외교’나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 과거사 발언 등 일본 매스컴이 공격하기 쉬운 풍부한 화제거리를 매주 제공해주고 있다. 데스크의 편집회의에서는 ‘아베 때리기는 별 반응이 없으니 이번 호도 박근혜 때리기로 가자! 뭐 좋은 기사 없어?’라는 말이 종종 나올 정도다.” 일본의 잡지사와 출판계는 상업적인 계산으로 혐한을 부추겼으며 혐한이라는 장르는 한류와 자리를 바꿔 어느덧 일본 출판계의 광맥으로 자리 잡았다.

혐한을 주도하는 넷우익의 급증은 사회, 교육, 경제적인 양극화가 심화되는 ‘격차사회’가 낳은 병폐라 할 수 있다. 2000년을 전후로, 당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일컬어지던 장기불황으로 인해 1억 총중류(1억 명의 전 일본인이 중류층)를 자부하던 일본의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돼갔다. 구조조정으로 중년의 샐러리맨들이 자리를 잃었고, 청년층은 취업난에 허덕였으며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프리터’와 워킹푸어가 급증했다.

“일본인이라는 것 외에는 자랑할 게 없다”


▎지난해 1월 서울 종로에서 사쿠라이 노부히데(왼쪽에서 둘째) 교수가 주축이 된 ‘반한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일본우익의 인종차별에 강력 반대한다”는 메모를 귤과 함께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양극화사회의 마케구미(負け組み, 패자)들은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외국인에 대한 과격한 발언을 일삼으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해소했다. 넷 우익들의 집합처로 잘 알려진 ‘2채널’의 창시자 야마모토 이치로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넷우익의 사회적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를 들면 ‘당신의 자랑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직업도 학력도 집안도 별볼일 없다, 일본인이라는 것 외에는 자랑할 게 없다’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자신의 이상은 매우 높지만 현실의 자신은 도저히 거기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우익적인 발언을 하는 커뮤니티 등에 모여서 이목을 끄는 과격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즉 우익적인 발언을 하는 그들의 아이덴티티는 일본인이라는 것 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왜 다수의 일본인이 넷우익에 동조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의 많은 지식인은 혐한의 심리적인 원인이 일본인의 박탈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표적인 친한파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전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일본인이 갖는 최근의 혐한감정에 대하여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구조변화 속에서 일본의 위상이 약화되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고 한국과 중국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내셔널리즘적 경향이 커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언급했던 교토대학 오구라 교수도 한 강연에서 현재처럼 혐한이 고조된 배경에 대해 “무엇보다 일본인의 시야가 좁아지고 포용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총체적인 자신감 상실과 국가적 고립감이 소위 ‘잃어버린 20년’의 기조인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의 패배감과 열등감을 그 원인의 하나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코단샤의 인기 코믹잡지인 <소년매거진(少年マガジン)>의 제작 담당자는 일본인의 박탈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려줬다.

“우리 잡지가 2009년부터 연재한 ‘진격의 거인(進擊の巨人)’이란 만화가 당시에 크게 히트했다. 처음에는 젊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엔 너무 어두운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았지만, 당시의 침체된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예상 외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거인에게 침략당한 작은 왕국이 만화의 배경인데 재미있는 점은 이 작은 왕국을 일본으로 생각한 독자가 많았다. 반면 그들은 자신들의 소왕국을 침략한 거인으로 한국과 중국을 떠올렸다.” 만화 <진격의 거인>은 그 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2015년까지 시리즈 합계 4천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메가 히트작이 됐다.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이끌어온 경제대국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20년간 장기 불황에 허덕이며 급기야 2010년대 들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다. 지금까지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로 생각되어오던 한국 경제도 일본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2012년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본보다 높은 AA-로 상향 조정했으며, 2013년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규모에서 한국이 최초로 일본을 추월했다. 반도체, LCD 등 주요 전자업종은 한국 업체가 일본 업체와 점차 격차를 벌이면서 세계 최고로 올라섰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에는 최악의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면서 일본 국민들 사이에는 ‘일본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좌절감과 두려움이 엄습했고, 한국과 중국의 경제도약은 일본인의 박탈감을 더욱 자극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는 경제적 풍요로 인한 ‘여유’가 사라졌으며, 대신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거듭 촉구하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반발심’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성숙한 일본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최근 도를 넘는 혐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일본 대법원은 2014년 12월 인종 및 국적을 차별하는 ‘재특회’에 대해 1200만 엔의 배상 책임을 명령했고, 일본의 시민사회와 지식인도 ‘헤이트 스피치’ 규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출판계에서도 작년 4월 ‘헤이트 스피치와 배외주의에 가담하지 않은 출판관계자 모임’을 발족시켜 범람하는 혐한 서적에 대한 위험성을 적극 홍보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말부터 준쿠도 등의 대형서점에서는 <반(反) 헤이트 서적> 코너를 상설하는 등, 자체적인 정화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유엔인권위로부터 ‘헤이트 스피치는 인권침해’라는 경고를 받은 일본 정부도 최근 세계여론을 의식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덧붙여 일본의 혐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도 보다 성숙한 일본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이 반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혐한한다”는 논리는 일본의 혐한파, 넷우익의 논리라는 점을 일단 감안해야 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무엇보다 양국 간에 정상외교를 복원해 해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문화·경제교류도 되살아 날 수 있고, 혐한류의 완화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은 소위 ‘복합골절 상태’라고 표현되는 ‘관계의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수교 50년을 맞는 올해 개선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한일 양국 국민은 박근혜·아베 두 정상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김경철 - 숙명여대 경영학과, 일본 죠치대학(上智大) 대학원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도쿄신문(東京新聞) 서울지국 기자, 일본 ‘epcoott’ 영화사 한국주재원을 역임했다. 현재는 일본 코단샤(講談社) 뉴스잡지 부문 서울 통신원. 저서로는 <한국드라마의 비밀> <서울소나타> 등이 있다.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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