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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터뷰]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40여 년 농정경험 살려 ‘글로벌 농촌’ 개척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1971년 농림부사무관으로 시작해 농업정책 외길 걸어온 농정전문가… 합리성과 효율 내세워 공사 체질개선 주력, 성장동력 찾아 해외사업에도 박차

6년 만의 대풍(大豊)을 만난 농촌이지만 좀처럼 생기가 돌지 않는다. 쌀은 남아도는데 처분할 곳이 없으니 곳간을 채운 쌀가마가 짐이 되는 시절이다. 유난히 깊은 겨울가뭄은 걱정을 더한다. 올해 농사는 끝났으니 한숨 돌렸다지만 당장 내년 봄이 문제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게 요즘 농촌의 현실이다. 이런 근심을 가장 가깝게 체감하는 곳이 한국농어촌공사다. 100년 넘게 영농현장을 지켜왔다. 11월 13일 이상무(66) 농어촌공사 사장을 만났다. 마침 목마름을 다소나마 풀어줄 단비가 내렸다.

이상무(66) 농어촌공사 사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서울의 한 호텔 비즈니스룸에 들어서자 그와 동행한 농어촌공사 직원이 태블릿PC를 펼쳐놓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업무를 보는 중이란다. 농어촌공사는 2013년 9월 이 사장이 취임한 뒤 ‘스마트워크’를 도입했다. 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고 전국에 공용 업무공간(10곳)을 만들었다. 시차출퇴근, 원격근무, 근무시간 선택제 등 혁신적인 유연근무제가 정착되니 업무 비용은 줄고 효율성이 높아졌다. 이 사장 본인도 대면보고보다 온라인 보고를 더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그가 말했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국농어촌공사 신사옥 전경. 농어촌공사의 신사옥 이전에 발맞춰 업무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상무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내부 개혁에 발벗고 나섰다. / 사진·한국농어촌공사
이 사장은 27년간 농수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출신이다. 1971년 농림부 사무관으로 입문해 1998년 농림부 기획관리실장으로 퇴임했다. 그 후로는 대학과 비정부국제기구 등에서 농업관련 전문가로 활약해왔다. 하지만 그에게서 관료적인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합리와 효율을 추구하는 그의 철학은 인터뷰 내내 곳곳에서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오랜 가뭄이 화두가 됐다.

현장에서 느끼는 가뭄은 얼마나 심각한가?

“솔직히 말하자면 언론에 나오는 건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이미 농사철도 지났고, 당장 물을 못 먹을 정도도 아니잖은가? 그럼에도 가뭄 대책은 당장 필요하다. 내년 농사를 위해서다. 내년 우기(6월) 전까지 사용할 물을 모으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올해 가뭄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래서 작년 초 저수량 확대를 시작했다. 당시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상이 맞았다. 공사가 관할하는 저수지 3370곳에 5천 만t 정도를 모아서 요긴하게 사용했다. 올해도 작년 경험을 토대로 벼 수확이 끝나자마자 저수 확대를 시작했다. 내년까지 1억7천만t을 모으는 게 목표다. 어느 정도 가뭄에 대비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이제는 강수 부족을 특수한 ‘변수’가 아닌 ‘상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간척호수 중 일부는 해수유통 필요성 인정”

그동안의 가뭄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경사가 가팔라서 물을 가둬두지 않으면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버린다. 물이 가능한 오래 머물도록 해야 하고 저장공간을 늘려야 한다. 4대강 보나 하굿둑처럼 말이다. 이렇게 확보한 물은 수로를 통해 필요한 곳으로 흘려 보내야 한다. 4대강이 대동맥이라면 관개수로는 몸 구석구석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모세혈관이다. 모세혈관이 구석까지 스며들어야 국토가 숨쉴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해 물관리 체계를 바꿔야 한다. 용도에 맞게 수질을 관리하고 물을 절약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체 물 소비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게 농업 아닌가?

“맞다. 전체 물소비량의 60%를 차지한다. 그중 벼농사가 70%를 차지하니까 벼농사용 물이 전체의 절반이라고 보면된다. 농업용수의 수질개선에 지나치게 돈을 들이는 건 낭비일 뿐이다. 어느 정도 수준이면 문제될 게 없다. 절수농법도 필요하다. 굳이 벼농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작목변환을 통해 농촌의 소득을 높이고 물은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정책의 전환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관리 업무는 농어촌공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저수지와 양·배수장은 물론 국내 최대 간척지인 새만금사업도 공사가 담당한다. 수자원공사와 기능이 중복되기도 하는데 물의 용도를 자로 재듯 잘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물관리 업무를 통합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이 사장의 의견은 다른 듯하다.

“물관리 업무는 컨트롤타워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협업이 되고 있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농어촌공사와 수자원공사는 오래전부터 경쟁관계였다. 그런데 올해 가뭄을 해갈하는 데 수자원공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부족한 물 자원을 최대한 실속 있게 활용하려면 협업을 활발히 하는 수밖에 없다.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물관리를 통합하자는 건 주도권을 잡으려고 싸우는 것에 불과하다. 협업이 이뤄지면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물관리를 할 수 있다.”

‘ 부패 온상’ 오명 씻으려 혁신 주력

간척호수의 담수화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을 가둬두면 수질 관리가 어려우니 해수 유통을 시키자는 주장이다.

“모든 담수호를 해수유통하자는 주장은 위험하다. 화성호의 경우 화성시가 해수유통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럴 경우 송산면 주변의 개발지역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등을 공급할 방법이 없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당진 대산산단의 경우에도 대산호를 담수화해서 서산 일대에 용수를 공급한다. 전남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조선소의 경우 영암호가 있기에 산업시설 입지가 가능했다. 1만여 명이 이 작은 시골에 와서 일하고 있지 않나?

다만 충남 홍성보령지구(홍성보령호)의 경우에는 축산단지 때문에 수질관리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런 곳은 차라리 해수유통을 하는 게 효율적이다. 새만금도 동진강 하구에 둑이나 수중보를 설치해 해수 역류를 막고, 방조제까지 공간은 바닷물로 채워 어족자원을 육성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각 지역의 특성과 기능에 따라 결정할 일이지 무조건 한 가지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사장이 취임하기 전 농어촌공사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불투명한 인사와 채용이 비일비재했다. 2011년에는 공사 임직원들이 출장비를 빼돌려 상급자에게 무려 1억1천여 만원을 전달해 파문이 일었다. 전국에 수많은 조직을 거느리고 있어서 투명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한때 유동성위기에 직면할 만큼 경영상황도 낙제점이었다. 이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공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이 사장은 승진시험을 폐지하고 승진배심원제를 도입했다. 승진서열명부를 공개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인사 원칙을 만들었다. 외부공모를 확대해 조직에 활력을 더했다. 그러자 승진 시기에 만연했던 인사청탁과 투서가 이 사장 취임 후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개인목표관리제를 도입해 업적과 성과 중심으로 평가를 강화하자 조직은 금세 능률이 올랐다.

오랫동안 쌓여온 적폐를 청산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엔 막막했다. 정부 대행사업을 위주로 하다 보니 창조적 아이디어가 부족했고, 지역에 국한된 네트워크에 길들여져 글로벌 의식과 역량도 미흡했다. 직원들의 자발적 동기부여를 이끌어내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근무의 유연성과 분권 경영을 도입했다. 일하는 방식과 인사제도를 능력 중심으로 바꿨더니 생산성이 높아지고 청탁이 사라졌다. 공사 창립 최초로 무분규를 달성했다.”

조직 내부의 정비에 이어 주력하는 관심 분야는 무엇인가?

“우선 기초체력을 보강하는 게 시급했다. 4대강 사업 이후 정부예산이 축소돼 성장이 정체됐고, 기존 사업들이 기대한 만큼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해 경영수지가 악화되고 있었다. 자체투자금 회수와 자산매각이 늦어져 유동성 위기도 찾아왔다. 우선 백방으로 뛴 끝에 정부 예산은 2조원대에서 3조원대로 회복했다. 의왕사옥을 2614억원에 매각하는 데 성공해 유동성위기를 극복하고 재무건전성도 나아졌다. 지금은 성장전략실을 설치해 미래 신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해외사업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취임 후에 해외 사업 부서를 2개 처로 늘렸다. 이번엔 조직개편을 통해 3개로 늘릴 예정이다. 해외사업 규모는 2012년 76억원에서 지난해 391억원으로 늘었고, 대상 국가도 동남아에서 아프리카, 중남미로 확대됐다. 앞으로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등 물부족 국가를 대상으로 태양광·풍력에너지와 용수시설, 논·밭 기반조성사업을 연계한 패키지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아직까진 전체 매출(4조~4조5천억원)의 1% 수준이지만 절반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최근 해외사업의 부실이 드러나듯이 자칫 구호로 그칠 위험이 적지 않을 텐데.

“우리나라의 농업 관련 기술력과 노하우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우리 공사에는 500명이 넘는 석·박사급 전문인력이 있다. 새만금 설계도 자체적으로 했을 만큼 우리의 간척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 2억 달러 규모의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에서도 댐과 수리관개시설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도에선 칼파사르방조제 건설을 우리가 참여하는데, 새만금과 규모가 비슷해 사업비만 약 10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밖에 농업 인프라 구축과 수자원 개발, 새마을운동을 접목한 농촌개발 등 23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해외농장 개척을 지원해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본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기업뿐만 아니라 젊은 농업인들도 해외농장 개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해외·북한과 농업교류로 농어촌 활로 모색

해외 사업에 대한 그의 관심과 자신감은 남달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해외 농업 선진국의 영농현장에 대한 경험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농림부에 근무하던 시절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농업경제학과 농촌개발론을 공부했다. 유럽 7개국을 돌며 선진 농업 현장도 둘러봤다. 퇴직 직후에는 UN 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본부 주재 대표를 맡았다. FAO 한국협회 회장과 아시아태평양농업정책포럼 의장, 세계농정 연구원 이사장 등 세계농업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 사장이 해외농업만큼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통일농업이다. 이 사장은 참여정부 시절에 남북 농수산협력을 위한 (사)통일농수산사업단 대표로 일하며 금강산 협동농장 등 대북 농업 협력사업을 주도했다. 취임 후에는 공사 농어촌연구원 산하에 ‘북한농업연구센터’를 설립해 남북간 농업 교류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농업연구센터를 연구실로 승격·확대해 남북 농업교류에 대한 연구 기능을 강화하려고 한다. 앞으로 사업단도 만들어 구체적인 교류 사업도 추진할 생각이다. 북한에 고작 식량 얼만큼을 지원하고 생색내는 것은 남북관계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북한이 자립해 식량생산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남과 북의 농업 교류는 ‘협력’돼야 한다. 우리가 ‘도와준다’는 인상을 주면 북한은 자존심상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어차피 통일 이후에는 먹거리를 나눠가져야 하는데 지금부터 그 기반을 만드는 준비가 필요하다.”

북한과 협력하는 게 우리에겐 어떤 이익이 있나?

“북한과 농업 협력사업을 하는 건 우리에게도 이득이다. 북한에는 우리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분야를 계속 육성할 자원이 풍부하다. 축산업의 예를 보자. 폐수와 악취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단지를 조성하기가 쉽지 않고 사양화 추세다. 하지만 북한에는 축산업을 하기에 좋은 곳이 얼마든지 있다. 지력을 많이 빼앗는 인삼재배도 북한에서 할 만하다.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분야는 생각보다 많다. 북한에는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우리 농업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 언제든 농업 협력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사장은 농어촌공사가 정부의 위탁사업 집행기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농어촌경쟁력과 농어민의 복지 향상을 이끄는 역할을 꿈꾼다. 그는 취임 후 ‘농산어촌 행복충전활동’이라는 농어촌 통합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했다. 집 고쳐주기와 행복 진짓상 차려주기, 내복펀드 등 전국 지사별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 농어업인의 곁으로 다가서는 정책이다. “농어촌 복지도 공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에서다.

농촌의 문제에 대한 그의 비전은 확고하다. 농촌의 문제를 ‘농업’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사장은 “농촌이 유지되려면 농촌 인구비율이 25%는 돼야 하는데 지금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농촌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농촌 가서 농사짓고 살라고 하면 누가 가겠나? 농촌에 일자리와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주면 자연히 사람들이 농촌으로 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이상무 사장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10회 행정고시를 거쳐 1971년 행정사무관으로 시작해 27년간 농림부(현 농림축산 식품부)에 재직하며 농업구조정책국장, 농촌개발국장, 기획관리실장(1급),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장 등을 거쳤다.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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