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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김상곤 전 새정연 혁신위원장의 격정토로 

“혁신안 실천 안 되면 ‘국민 외면’ 계속될 것” 

최경호 월간중앙 차장 정리 김보현 인턴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5월 27일부터 10월 19일까지 146일 동안 11차례에 걸쳐 혁신안 발표… “문재인 대표 체제로 총선 치르되 그 전에 천정배 등 야권 통합작업이 필요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은 146일 동안 11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번에도 혁신안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면 새정연에 대한 ‘국민 외면상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혁신위원회가 10월 19일 해산했다. 5월 27일 김상곤(66) 전 혁신위원장이 선장을 맡은 지 146일 만에 닻을 내린 것이다. 혁신위는 11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 당헌·당규에 반영하는 성과를 올렸다. 반면 소속의원 128명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79명이 혁신위가 내놓은 ‘시스템공천안’과 대치되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를 당론(黨論)으로 확정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공천안뿐만 아니라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방안이 원안대로 진행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혁신위는 5개월 동안 어떤 활동을 했으며, 총선 등 향후 정치일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구원투수’ 김상곤이 등판한 것은 재·보선 패배 직후다. 새정연은 올해 2·8 전당대회 이후 첫 대외선거였던 4·29 재·보선에서 참패(0승 4패)를 당했다. ‘당의 심장’이라는 광주 서을에서는 조영택 후보가 29.8%의 득표율에 그치며 천정배 무소속 후보(52.37%)에게 거의 더블스코어 차로 무릎을 꿇었다. 역대 선거에서 새정연 후보가 호남에서 30% 이하의 득표율에 그친 것은 조 후보가 처음이었다.

비노·비주류는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문재인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고, 문 대표 측은 이를 ‘계파갈등’이라고 맞받아쳤다. 이후 당은 친노·범주류와 비노·비주류로 갈린 채 깊은 갈등의 골을 드러냈다. 문 대표는 이 같은 난국의 타개책으로 혁신위를 내세웠고,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을 혁신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돌이켜보면 이전에도 새정연(전신 민주당 포함) 내에는 명칭만 달랐을 뿐 6차례나 혁신위원회가 구성됐었다. 당의 변화와 권력구조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에서는 ‘김상곤호(號)’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전 혁신위의 혁신안이 지도부에 건네진 후 사장(死藏)된 경우가 많았던 데 반해 ‘김상곤호’는 혁신안을 모두 당헌·당규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번 혁신안은 당헌·당규를 새로 만들거나 개정하지 않는 한 적용해야 하는 ‘강제성’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이 “혁신안을 제도로 정착시킨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자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노·비주류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의 기강·정체성 확립 등을 명분으로 문 대표와 각을 세우는 인사들을 솎아내는 장치가 ‘합법적으로’ 마련된 것 아니냐는 반발도 나온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만 해도 모바일경선에 유리한 친노의 편을 들어준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월간중앙>은 새정연의 위기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해 임무를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온 김상곤 전 위원장을 11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혁신더하기연구소’에서 만났다. 김 전 위원장은 5개월 동안 혁신위의 성과와 제1야당의 나아갈 길 등에 대해 힘줘 말했다.

사약 두고 상소문 쓰는 심정으로 위원장직 수락”


▎지난 9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연 당무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표가 김상곤 혁신위원장, 조국 혁신위원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11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간 혁신안을 사안별로 요약한다면?

“지난 60년 동안 새정연은 나름대로 제 몫을 해왔는데 최근 들어서 그 역할이 정체되면서 국민과 당원들부터 외면받게 된 것 같다. 그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혁신위가 출범해 146 일간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새정연이 갖고 있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정체성을 무엇으로 삼느냐였다. 그동안 당의 정체성을 놓고 자주 헷갈리고 흔들렸다. 국민과 함께,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게 정당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정체성은 ‘민생복지정당’이다. 민생 제일주의가 새정연의 정체성이 돼야 한다. 그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당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조직과 제도가 혁신돼야 한다. 그래서 최고위원회제도를 대표위원회제도로 바꾸고, 사무총장제를 본부장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또 총선을 앞두고 도덕성·정체성을 갖춘 인물을 공천하는 것도 당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서 시스템공천이나 이기는 공천방안을 제안했던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다소 순탄할 것으로 보였던 ‘교육감 3선’의 길을 포기하고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연 경기지사 후보경선에 나섰다. 30.7%의 득표율에 그친 그는 48.2%를 얻은 김진표 전 3선 의원에게 패했다. 김 전 위원장은 같은해 7·30 재·보선을 앞두고는 수원을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백혜련 변호사에게 밀렸다. 그런 그에게 올해 4·29 재·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문 대표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성남 중원 출마를 권유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김 전 위원장이 손사래를 쳤다. 김 전 위원장은 ‘조용히’ 2016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보선 참패 후 문 대표는 다시 김 전 위원장을 찾아가 혁신위원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위원장은 5월 27일 위원장직 수락 기자회견에서 “사약을 앞에 두고 상소문을 쓰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얼마 뒤 “저부터 내려놓겠다”며 내년 4·13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혁신위에 대한 비판도 끊이질 않았다.

“새정연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이 당내 계파주의와 기득권 싸움이다. 당원들뿐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그것 때문에 새정연을 외면하는 것이다. 혁신위의 활동과 혁신안 제출 과정에서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한 지적은 얼마든지 환영했지만 계파주의적인, 기득권적인 시각에서 제기하는 비판들에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많은 국민이 ‘과연 새정연이 바뀔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비주류는 혁신위가 친노 성향이 강한 집단이라고 비판한다.

“그렇게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 있는 것 아닌가? 혁신위원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친노 또는 비노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저를 비롯해 (혁신위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편향된 성향을 가진 위원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새정연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다.”

친노·주류는 혁신위를 당내 갈등과 분란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사’로 규정했다. 반면 비노·비주류 측은 혁신위가 문재인 대표를 포함해 친노 패권주의를 해소하면서 통합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가 비주류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에서 혁신위원장직을 제안했으나 안 전 대표가 “혁신 작업의 주체는 문 대표”라며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안 전 대표는 4·29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문 대표가 혁신위 뒤에 숨었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비판은 찬물, 문재인은 리더십 보완해야”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시간만 낭비했다. 혁신위는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혁신위원장직 제안을 수락하면서 두 가지를 요청했다. 하나는 혁신위 구성과 혁신위 활동에 대해 전권을 달라. 또 하나는 이전 혁신위들과는 달리 이번 혁신위는 구체적인 실천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실천을 담보해달라는 것이었다. 당 최고위원회에서 저에게 ‘당무와 공천에 관한 혁신작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안 전 대표는 혁신위의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을 때 느닷없이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인 사안과 관련해 비판하거나 제안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실패했다고만 하니 당혹스러웠다. 제가 혁신위원장을 맡기 전에 안 전 대표는 문 대표에게 위원장직 수락을 요청받았던 분이다. 그런 분이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안타깝다.”

11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만들었는데 제대로 실천될 걸로 보나?

“이전에도 새정연에는 6차례나 혁신위가 구성됐었다. 명칭은 혁신위원회, 비전위원회 등 조금 달랐지만 성격은 같았다. 활동 과정에서 좋은 혁신안도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캐비닛에 사장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는 이번 혁신안만은 제대로 제도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실천을 담보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혁신위 활동 5개월간 당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가 여러 차례 열려 혁신안이 당헌·당규화했다. 제도화된 혁신안은 실천돼야 한다. 만일 이번에도 혁신안들이 실천되지 않는다면 새정연은 지금의 ‘국민 외면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혁신안을 마련하면서 새정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느꼈나?

“첫째 계파주의, 둘째 패배주의, 셋째 자영업자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계파주의는 의원들이 기득권을 확보·유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형태로, 패배주의는 의원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기피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당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이다. 따라서 정당은 국가의 정치·사회의 주요 통로 역할을 수행하고 의원들은 그 큰 틀 안에서 비전과 정책을 국민의 삶에 반영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의원들 개인별로 ‘소매점’을 열어서 (자기정치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 때문에 의원들이 본연의 역할에도 소홀할 뿐 아니라 당내 협력·연대가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재인 대표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은 사실 아닌가?

“지금 새정연의 당내 사정, 역학구도상 누가 대표를 맡든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계파주의적인 구도 등을 극복해 내야 하는 게 대표의 역할이다. 문 대표가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는 있지만 아직 계파주의적인 구도를 극복하는 리더십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

가까이서 본 문 대표는 어떤 사람이었나?

“문 대표의 성실함·진지함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본다. 그럼에도 거대 조직을 이끌어나갈 경험은 덜 쌓인 듯하다. 큰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보완돼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문 대표에게 세 가지 리더십을 바란다. 첫째,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민주적 리더십이라고 해서 ‘대중추수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더라도 그것을 모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과단성을 발휘해야 한다. 둘째, 혁신적인 리더십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정당으로 발돋움하려면 혁신적인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셋째, 섬기는 리더십이다. 당원과 국민들을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총선에서 문 대표 체제로는 어려운 만큼 재창당 수준의 통합전당대회를 개최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제는 말씀드릴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혁신위에서는 최고위원회제도를 폐지하고 대표위원회체제로 바꾸는 것을 당헌화했다. 그런데 대표위원회체제로 바꾸는 시점을 총선 직후로 결정했다. 물론 혁신위 내부적으로 토론할 때는 연내에 전환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 연내에 체제를 바꿀 경우 가뜩이나 허약한 새정연의 체력이 전당대회와 총선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있었다. 전당대회와 총선을 잇달아 치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체제 변화를 총선 이후로 미뤘다.”

“총선 전 전당대회는 무리일 듯”


▎2014년 4월 16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경기도의회 생활임금조례 통과 및 생활 임금제 전국확대 기자회견에서 김상곤 경기지사 예비후보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 고 있다. 왼쪽은 원혜영 의원, 가운데는 김진표 의원. / 사진·중앙포토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친노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나?

“공천제도, 경선제도 등과 관련해 의원들에게 ‘당원과 일반 유권자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반영했으면 좋겠느냐’는 내용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답변의 평균은 당원 30%, 일반유권자 70% 정도였다. 얼마 전 안심번호제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들 간에 합의됐다. 그동안에는 선거인단이나 배심원을 선정할 때 여러 가지 왜곡과 꼼수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불신이 쌓인 것이다. 그래서 안심번호제를 도입하면 그런 꼼수와 왜곡이 배제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안심번호제 아래서는 당원과 일반유권자를 분리해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

안심번호란 가상전화번호를 이용해 여론조사에 참여할 수신자의 실제 전화번호 노출을 차단시켜 공천에 참여하게 하는 방식이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정당은 실제 전화번호가 아니라 이동통신사가 무작위로 만든 11자리 가상번호만 제공받게 된다. 특정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선거인단에 조직력을 동원하기 어렵고, 무더기로 착신전환하는 등 기존 여론조사의 허점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노·비주류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2012년 총선 당시, 친노계 한명숙 대표 체제에서 시행했던 공천방식인 ‘모바일투표’를 떠올리게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모바일 투표는 모집된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임의 투표자들을 선정하기 때문에 조직력이 강한 친노에 크게 유리했다는 게 비주류의 해석이다. 실제로 2012년 당내 선거에서 친노 후보들은 승리를 독식했다. 1월과 6월 전당대회에서는 한명숙·이해찬 후보가 당대표에 올랐고, 9월 대선후보경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총선과 대선에서는 적잖은 격차로 패배했다.

당의 후보를 뽑는 선거인데 당원이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는 그게 맞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물리적인 불가피성 때문이라는 것인가?”

“그렇다.”

혁신위원장직을 수락한 뒤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후회는 없나?

“혁신위원장직 제안을 받은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당내에서 활동한 적이 없었고, 당원으로 가입한 것도 지난해 경기지사 경선에 나오면서였다. 문재인 대표 등의 위원장직 수락 요청이 있었을 때 두 가지를 고민했다. 하나는 ‘정말로 혁신위원장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느냐’는 거였고, 또 하나는 ‘혁신위원장직을 수행하려면 내가 계획하고 있는 정치일정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느냐’였다. 전자와 관련해서는 ‘오죽하면 당신에게 그런 제안을 했겠느냐’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다. ‘위기를 돌파할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당의 요청 앞에서 개인적인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문재인 사퇴는 과한 주장, 그러나 패배에 대한 책임은 필요”


▎2010년 2월 16일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민주당 이종걸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장과 경기도교육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경기지사 경선 참여에 이어 이번에 혁신위원장직을 맡으면서 ‘실물정치’를 경험하게 됐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국회가 갖는 입법권 또는 행정부 견제권이 상당히 제한돼 있다고 느꼈다. 외국의 경우 국회가 예산 감사권까지 갖는 경우가 있는 데 반해 우리는 예산 심의권 정도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입법부의 권한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국회가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당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여전히 취약한 것 같다. 일부 국회의원의 ‘자영업자 정치’로 인한 역할수행 미흡도 정치가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4·29 재·보선 참패 후 김상곤 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는데 공교롭게도 마운드를 내려간 직후에 치러진 10·28 재·보선에서도 야당은 KO패를 당했다.

“연전연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국민들뿐만 아니라 당원들조차 당에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것은 당이 정체성 없이 흔들리고, 그 속에서 지도력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에 임하니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혁신안이 당헌·당규화됐는데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면 당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번에도 혁신안이 사장된다면 내년 총선도 어렵지 않겠나?”

광역·기초의원 24명을 뽑는 10·28 재·보선에서 15곳을 차지한 새누리당이 2석에 그친 새정연(무소속 7석)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6개월 전에 치러졌던 4·29 재·보선에서도 새누리당은 서울 관악을, 인천 서·강화, 광주 서을, 성남 중원 4곳에서 모두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완승을 거뒀다.

10·28 재·보선 이후 문재인 대표 책임론이 다시 불거진다. 일리 있는 비판인가, 정치공세인가?

“비판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본다. 선거에 패할 경우 당대표가 어떤 형태의 책임을 지는 게 합당하고 합리적인지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비주류는 문 대표의 사퇴를 주장한다.

“선거마다 당대표가 책임지고 거취를 결정하는 것은 무리 아닌가? 그럼에도 실패에 대한 원인을 꼼꼼히 분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어느 수준에서 질건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전체 300석 가운데 200석까지 차지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심의 움직임에는 지금까지 누적된 부분이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새롭게 변화하고 혁신하는 부분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정연이 죽을 쑤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총선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새정연이 범야권을 아우르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선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조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는 여성 사회학자로, 저 역시 유심히 지켜봤던 분이다. 그분이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비전과 발전모델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해왔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실 분이라고 믿는다. 한 말씀 드린다면 평가 과정에서 한치의 불공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주셨으면 좋겠다. 평가위원들 모두 그런 마음으로 역할을 해주시기 바란다.”

조은 교수는 19대 총선 당시에도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패배한 선거의 공심위원이 20대 총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보나?

“저 또한 그런 부분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는 분을 모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안이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 조 교수가 공심위원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결코 편파적인 분은 아니기 때문에 역할을 잘 수행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본이 서면 길은 열린다”

교육감 출신으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말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교과서 발행 제도는 국정에서 검정, 자유발행제로 바뀌는 추세다. 그런데 다시 국정화로 되돌아간다 것은 시대에 역행하고 역사를 역류하는 것이다. 국정화는 반교육적인 처사다.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어떤 의식과 생각을 갖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획일적인 국정화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인정, 나아가 자유발행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또 국정화는 반민주적이다. 국정화는 역사 쿠데타 수준을 넘어 친일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영구집권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려 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국정화 논란이 내년 총선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총선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국정화 결정 자체가 다시 판단되기 전까지 이 문제는 살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선에서도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다면 야당은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고 보나?

“예전에는 야권이 시민사회와 강한 연대를 유지하면서 공동의 비전과 희망을 만들고 추진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연대가 많이 약해졌다. 국정화 문제를 계기로 새정연이 학계, 시민사회와 새로운 연대·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그러한 움직임이 보이긴 하지만 보다 구조화·조직화해 가는 게 중요하다. 국정화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 특히 민생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시민사회와의 연대·협력은 필수다.”

총선 불출마는 선언했지만 등판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본다.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이제 정치인이 됐기 때문에 총선·대선 과정에서 저의 역할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 여론조사를 보면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절반이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정권교체를 위한 제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정치인 김상곤의 소신이 궁금하다.

“혁신위 활동 때도 말씀드렸듯이 <논어>에 나오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구절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기본이 바로서면 길은 생기는 법이다. 새정연도 정당으로서의 기본을 제대로 다하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의도 실물정치를 경험하면서 정의·미래구상·혁신 세 가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정의가 살아 숨쉬는 정치, 미래를 향한 정치, 지속 가능한 혁신정치를 하는 게 꿈이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정리 김보현 인턴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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