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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역사전쟁’ 방아쇠 당긴 황우여 교육부장관 

“올바른 역사교육은 헌법가치 따른 평화통일 준비용”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험난한 여정이라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 … 교육부 수장으로서 임무에 최선 다할 것

▎10월 국정교과서 논쟁의 정점에 섰던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보필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해서는 “임명권자에게 맡기겠다”며 말을 아꼈다.
황우여(68)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에게 10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정부의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불똥은 주무장관인 그에게 튀었다. 우선 단일 역사교과서 추진 과정의 전략 부재에 대한 책임론이 고개를 내밀었다. 10월 26일 친박계 한 초선 의원은 “정부의 국정교과서 홍보가 미흡했다. 교육부장관을 갈아치워야 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당 대표는 “경질론이 나올 만하다”며 거드는 모양새를 취했다.

야당의 교육부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건은 정부를 상대로 한 압박의 방편이라 하더라도 ‘친정’에서 불거져 나온 경질론은 황 장관으로서는 곤혹스러워 할 일이다. 이에 대해 황 장관은 “다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어떤 얘기든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10월 국정교과서 논쟁의 정점에 섰던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보필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해서는 “임명권자에게 맡기겠다”며 말을 아꼈다.

교육부 수장이 정치하면 되겠나?


▎황우여 장관은 “현행 역사교과서의 검정발행 제도로는 올바른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며 국정화 배경을 설명했다.
5선 국회의원이기도 한 황 장관은 의정활동 20년 중 14년을 국회 교육 관련 상임위원회에 몸담은 여권 내 교육통으로도 분류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교육부장관에 임용한 것도 이런 경력이 감안됐으리란 평가다. 그런데도 왜 그는 국정교과서 논쟁 국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물론 일부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도 사퇴 요구를 받는 걸까? 사퇴를 요구한 여당 의원들은 황 장관이 정부의 국정교과서 정책 홍보에 미온적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예컨대 주무장관으로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국정교과서의 당위성을 알리는 노력이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장관은 “여야 양쪽으로부터 욕을 참 많이 먹었다”면서 “나를 단순히 장관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해명했다. 말하자면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교과서 논쟁과 관련해 그에게 전직 당 대표이자 중진 국회의원으로서의 처신을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정당인이기에 앞서 교과서 국정화 실무를 책임지는 정부 부처의 장으로서 찬반 여론을 모두 수렴하는 데 방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정교과서는 헌법 가치의 수호와 남북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향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11월 8일 정부종합청사 교육부장관실과 광화문에 위치한 한 음식점을 오가며 6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요즘 심신이 많이 피로할 것 같다. 최근 ‘역사교육 정상화’(이하 ‘국정교과서’) 건을 두고 장관 경질론까지 나왔다. 불편하진 않나?

“악평이든 혹평이든 차분히 듣고 자기 반성의 계기로 삼겠다.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의견에 귀 기울이겠다.”

‘친정’에서도 전례 없는 비난이 나왔다.

“나도 당에 있을 때는 강성 발언을 자주 했다. 그러나 교육부 수장의 스탠스(stance, 자세)는 정치인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장관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백지상태에서 귀를 열어야 한다. 정부가 확정하기 전 공론화 과정에서 여권 일각의 요구대로 장관이 강한 카리스마를 보이지 못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부 수장은 정치인으로서 몸값을 높이는 자리가 아니다. 당장은 욕먹더라도 다양한 의견을 낮은 자세에서 공들여 듣고 수용해야 한다. 굳이 정치적 시선으로 따져볼 때 내가 공론화 과정에서 수용적인 태도를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면 야권에서는 그걸 트집잡았을 것이다.”

낮은 자세에서 의견을 수용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공론화를 거친 뒤 국정교과서 발행을 하기로 행정예고한 후에는 정부의 입장은 국정교과서로 정해진 상태다. 여기서 장관의 역할을 고민했다. 20일에 걸친 예고기간 동안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정부의 입장에서 국정교과서 취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서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국정으로 확정된 것이다.”

교과서를 반대하는 진영의 의견은 다 읽어봤나?

“교육부는 예고기간 동안 들어온 의견을 빠짐없이 다 검토했다”

어떤 주장이 있었는가?

“‘친일, 독재를 미화할 것이다’ 등의 주장이 나왔다. 우리가 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겠나. 그런 것은 생각도 말아야 한다.”

장관은 국정교과서 정책과 관련해서 어떤 설득 논리를 폈나?

“반대 의견을 들어보니 ‘역사 교과서를 일원화하면 학생들이 국가가 정한 하나의 역사적 시각만 공부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이에 대해 ‘균형잡힌 올바른 교과서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일례로 검정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 되는 집필진과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분들이 충분한 독자성을 갖고 일하도록 하겠다. 내용 검증은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그리고 최종 검토본이 나오면 온라인을 통해 공개해 ‘국민과 함께 검증하고, 국민 의사가 잘 반영된, 국민의 교과서’로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2013년 교육부의 편향성 수정 명령 안 먹혀


▎2012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황우여 의원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부터 당기를 건네받는 모습. 황우여 장관은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를 왜 이 시기에 추진하는지 궁금하다. 총선도 앞둔 마당에 여야에서는 좀 더 협의과정을 거쳤으면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보았다. 미루다 보면 또 다음 정권으로 과제가 넘어간다. 이는 무책임한 자세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점이다. 집필 기간을 약 1년 정도 확보할 수 있는 시기로서, 정부에서 책임지고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봐달라.”

최근 국정교과서 건을 놓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발행제’로 가야 한다고 발언한 이유는 무엇인가?

“발언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만 발췌돼 와전됐다. 우선 장관은 법치행정을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으면 따라야 한다. 1992년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지향하는 교육이념과 국내외의 제반 교육여건, 특히 남북긴장관계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여건 등에 비추어 검토해야 하고, 국정교과서도 운용에 따라서는 오히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며 국정교과서가 합헌이라고 했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국정보다는 검·인정, 검·인정보다는 자유발행제가 헌법이념과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다 한 것이다. 그러나 결정문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의 경우와 같이 남북이 대치된 특수한 상황을 감안했을 때, 역사교과서의 경우는 오히려 국정이 교육의 전문성,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에 유익하다는 판단이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유발행제가 언급됐던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정권마다 교과서 내용이 달라질 것”이라며 우려한다.

“국정화를 한다고 해서 국가 마음대로 (교과서를) 만들 수는 없다. 감수와 검토 단계를 거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교과서는 총선과 대선 사이에 나오지 않나. 막 만들어서 (선거를) 버틸 수 있겠는가?”

국정교과서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학자마다 연구가 다르고 학설도 다양하다. 이처럼 학문에는 다양성이 존중되지만, 교육으로 건너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고교 8종, 중학교 9종의 현행 검정교과서에는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를 100만 년 전, 70만 년 전, 50만 년 전, 30만 년 전이라거나, 10만~30만 년 사이라고 교과서마다 다르게 씌여 있다. 이렇게 학설이 다양한데, 학교마다 제각각의 학설이 담긴 교과서 중 하나를 채택하여 가르치면 학생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겠나? 수능 필수과목인데 학생의 입장에서는 다양성의 장점은 사라지고 혼란만 온다.”

국정교과서보다는 기존의 검정교과서의 내용을 보완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보완 노력으로는 현재 검정교과서의 편향성을 고치기 어렵다고 본다. 일례로 2013년 교육부가 편향성의 내용을 포함한 몇몇 역사교과서 출판사에 대해 ‘편향성으로 문제되는 내용 41건에 대해서는 꼭 고치라’는 수정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당시 출판사들은, 집필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대로 둔 채 1줄 정도만 별도로 추가하거나, 사진·삽화를 통해 미완의 수정만 하고는 학교에 배포했다. 일부 집필진은 법원에 교육부의 수정명령에 불복하는 소송까지 냈다. 기초가 잘못된 집은 수선이 아니라 다시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

황 장관은 당 대표 시절부터 국정 역사교과서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그는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국사는 국가가 책임지고 하나로 가르쳐 국민통합의 기반을 든든히 해야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국정교과서, 역사논쟁 아닌 교육학으로 접근해야


▎최근 대학구조개혁에 대해 황우여 장관은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우선 대학 재정 중 평균 60%에 가까운 등록금 의존율을 20%까지 낮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어떻게 보나?

“확정된 역사적 사실, 확립된 해석과 평가를 중심으로 풍부한 자료를 담아 재미있고도 충실하고 균형잡힌 올바른 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말인 즉, 외형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교과서가 출간돼도 학교에선 실질적으로 동류의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다. 헌법에 따르면 교육은 정치적 중립, 자주, 전문성 3대 요소가 핵심이다. 교실 앞에서는 정치라는 외투를 벗고 오로지 헌법 가치에 충실하여 미래는 미래세대에 맡기는 기성세대의 겸허함이 역사교육에도 적용돼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다른 나라에 지배당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때다.”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진까지 나서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참여하지 않겠다’, ‘성찰적인 대안자료를 만들겠다’고 한다.

“학문의 자유를 존중한다. 교수들께서 자유롭게 역사학을 연구, 저술하고 성인인 일반인과 대학생을 다양한 자신의 사관에 따라 가르치는 건 자유다. 그러나 아직 미성숙한 초·중·고 학생들은 역사학이 아닌, 역사교육의 대상이다. 국정화냐 검정화냐는 그릇의 문제다. 이제는 그릇이 정해졌으니 그 안에 담길 요리가 문제다. 그릇이 흡족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이 먹을 요리를 잘 만들자며 힘을 합치는 공감대가 절실하다. 정부가 최선을 다할 터이니 지켜봐달라.”

역사학이 아닌 교육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학문적으로만 접근한다는 현 체제에서는 다양성을 살린다면서 결과적으로 혼잡성의 위험이 발생했다. 때문에 반드시 국가의 책임아래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

역사관에 대해서 최근 박 대통령과 얘기를 나눠본 적이 있나?

“장관의 자리에서 대통령과의 대화를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개혁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는 분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정치적인 부담을 일정부분 짊어지더라도 옳은 일은 반드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황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국제적으로 격변의 전환기에 있는 상황이다. 평화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이 정부가 반드시 성공해야 된다. 박근혜 정부라고 칭하기 이전에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자 우리 정부 아닌가? 여야가 대립만 하기 보다는 대화와 협의를 통해 변혁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다.”

국정교과서를 두고 정쟁의 소용돌이로 가는 티켓이라는 말도 나온다. 관여해봤자 얻을 게 없다는 얘기다. 장관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맡은 바가 있으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끊임없이 교육부장관 교체설, 경질설이 나왔다. 원론적인 얘기 말고 본심이 궁금하다.

“경질설이 나온 건 안다. 시원치 않다고. (웃음) 이를 두고 반박을 하든 뭐든 반응을 보이라는 충고도 많이 들어왔다. 정말 ‘하늘에 맡겨야지’라는 생각으로 업무에만 충실해왔다.”

그는 법조인 시절부터 교육에 관심이 높아 새마을운동의 모태인 가나안농군학교 등과 인연을 맺어왔다. 의정활동도 주로 교육위에 몸담아 교육정책에 관심을 쏟아왔다. 이 과정에서 2005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지냈던 박 대통령과 함께 ‘사학법 개정 반대투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면 소개해달라.

“2005년 사학법 투쟁 때의 박근혜 대표가 기억난다. 그때 다들 많이 흔들렸다. 사학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상징, 근간이다. 많은 분들이 포기했는데 그 분은 다르더라. 그리고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당원, 대의원 투표에서 이기고도 여론조사에서 지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도 담담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이번 전당대회 때 두 명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졌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내가 사무총장이었는데 치우침 없이 중립과 원칙을 지켰고, 지난 18대 대선 때, 당대표로서 경선과 본선을 흔들림없이 중심을 잡고 일관되게 치렀다는 평이다. 아마 이런 과정에서 신뢰가 쌓였던 게 아닐까? 그리고 정치인들 간에는 딱 한 번 약속을 하면 쭉 나아가는 의리가 중요하다. 이런 면에선 박 대통령은 흔들림이 없고, 의리있는 분이다.”

사회적 분배, 보수가 지향해야 할 길


▎지난해 황우여 장관(당시 새누리당 대표)이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를 방문했다. 그는 “보수 진영이 남북통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 오해도 샀는데,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걱정되지 않았나?

“나를 20년간 지켜보셨다. 오해 안 하실 줄로 짐작한다.”

박 대통령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큰 그림을 읽을 줄 아는 분이다. 개인적으로 깊이 존경한다. 대통령으로서 성공하시기를 언제나 바란다.”

평소 복지 중요성도 강조해왔다. 복지는 진보 진영의 프레임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렇지 않다. 보수는 기본적으로 ‘자립하는 중산층’을 지향한다. 나아가 과부·고아·나그네 이런 사람들이 상징하는 사회적 약자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이게 바로 보수가 잊으면 안 되는 점이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와도 연결된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직업을 통해서 부를 축적한 후 여유분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행위가 비로소 건전한 보수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공동체의 혁신과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 된다.”

2011년 5월 여당 원내대표 취임 직후 반값등록금 정책을 냈다. 여권 내 반발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

“그때 새누리당에 개혁의 기운이 있었다. 우리에게 단돈 10원만 있더라도 미래세대에 투자를 하고 써야 한다고 본 거다. 학기 초만 되면 다 빨간 띠 매고 총장실 점거해서 울고불고 ‘등록금 내려달라’, ‘올리지 말라’ 그런 부탁을 해오지 않았나. 우리 젊은이들이 등록금을 가지고 걱정하는 건 기성세대의 수치다.”

학자금 대출제도가 있지 않나?

“공부하고 싶을 때 돈을 꿔야 하는 건 미국식 아닌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 학자금 빚을 안고 취업해야 한다니 가혹한 일이다. 배고프고, 병들어 아프고,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이들을 지켜줘야 하는 게 우리 기성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최근 대학구조개혁에 대해 말이 많다. 각자 자율에 맡길 생각은 없나?

“시장실패가 예상되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우선 대학재정 중 등록금 비율을 낮춰야 한다. 현재 평균 60% 가까이 되는 등록금 의존 비율을 가급적 20%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자면 공적지원이 따라야 한다.”

공적지원을 어떻게 충당할 생각인가?

“우선 국가의 고등교육재정 지원을 GDP 대비 1%대로 올리는 것이 출발이다. 그리고 기부제도다. 만일 전 재산 10억원을 내 자식한테 다 주기보다는 한 5억원 정도는 남의 자식에게 주겠다는 것, 그런 기부 형태로 공적기금을 만들어서 대학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트러스트 펀드’(Trust Fund) 제도도 고려하고 있다. 이어 대학이 운영 중인 기금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기금을 잘 운영하는 대학은 인증과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있을 거다.”

일부 대학의 학과 통폐합으로 철학과 등이 대학에서 사라지고 있다. 인문학 교육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잘 안다. 일례로 세계적인 기업 ‘구글’에서는 인문학도의 채용을 더 중요시한다. 휴머니티스가 첨단기술에서도 중요하다는 거다. 다만 학생들을 학과별로 붙잡아서 취직도 안 되게 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프라임사업(PRIME, 산업 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을 실시해 학생들은 풀어주고, 동시에 코어사업(CORE,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을 통해 인문학 교육·연구를 진흥하고 학생들의 전반적인 인문소양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맞다.”

반값등록금, 공적기금 투입 등 진보 진영의 주장에 가까운 내용인 것 같다.

“약간 레프트(left, 좌)로 가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듣지만 실은 이런 건 보수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진보에서는 ‘무상보육’이라고 하는데 사실 ‘공보육’이 더 정확한 말이다. 통일도 보수가 주체가 되어 하는 게 적절하다. 오히려 진보 쪽에서 추진하는 것보다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가 통일을 추진하는 게 좀 더 설득력이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 보수가 통일을 추진해야 국민도 안심한다. 그간 진보가 나서면 이런저런 오해도 받고 아직은 국민적 정서상 말 그대로 ‘급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때문에 아무래도 통일에 있어서는 보수가 진보보다는 치우침이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다만 보수의 특성상 협상 과정에서 고집스러워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항상 ‘열린’ 보수로서 대화하는 자세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자칫하다가 ‘가진’자의 만용에 빠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통일은 ‘열린’ 보수가 이끌어야

보수가 대화하는 자세를 잃어버리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보수가 닫혀있을 때는 가진 자의 오만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보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근면하게 살아 사유재산을 쌓는 것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보수는 항상 강한 자, 가진 자의 영역을 차지했다. 때문에 자칫하면 양극화의 한 쪽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 보수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려 있어야 한다. 잦은 대화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

황 장관은 2012년 ‘몸싸움 방지법’으로 알려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국회의장 직권 상정을 제한하여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 처리와 몸싸움을 막는 법)’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법에 의하면 직권상정을 대신하여 자동상정제를 채택하고 심의를 하되, 상임위원장이 의결을 하지 않을 경우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을 강제하는 외에는 법안의 강행처리는 불가능하다.

당시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한 상황이었다. 황 장관(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이 “의회에서는 오로지 국민을 위한 대화와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일일이 의원들을 만나 끈질긴 설득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선진화법이 가지고 온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회선진화법은 단순히 폭력국회를 없앴다는 데서 나아가 정치·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여야의 합의하에 결정됐고 애초부터 선거공약으로 내건 법이다. 예산은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 이후 자동부의제를 채택함으로써, 쉽게 말해 삼권분립의 주춧돌을 다시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후회는 없나?

“법의 정신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협의(協議) 정치’다. 그것을 국회선진화법이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본다. 투표 결과를 한번 봐라. 절대로 국민은 다수당에게 60~70% 이상의 표를 주지 않는다. 늘 51 대 49 이런 식이다. 대승했다고 주장할 때도 높아 봐야 53% 정도다. 결국 국민의 뜻이 뭐겠는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한 게 아니니 서로 손잡고 의논해서 하라’는 뜻 아니겠는가? 49%에 해당하는 당에 대한 존중도 함께 가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하자는 의견은 어떻게 보나?

“법의 문제에 앞서, 정치 관행의 문제로 봐야 한다. 이를테면 절대다수결의 나라인 미국도 예산이 폐쇄(shut down)되는데도 결국 합의 처리를 한다. 요즘은 직권상정이 아니고 자동상정이니, 상정은 문제가 아니나, 상임위원장이 가결을 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사위원장과 같은 주요 상임위원장을 소수당에 배정하기 때문이다. 쟁점법안도 아닌데 모든 법안을 붙잡아 둔다면 국민의 심판이 따를 것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협의정치가 중요한 거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제지만 내각제를 가미하고 있지 않나. 결국 연정의 개념도 가능하단 얘기다.”

과거 당대표 시절 최우선으로 여겼던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당의 ‘단합’이다. 당의 단합 없이는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단합된 당이 해야 할 일은 바로 분열된 이념과 계층적 갈등의 봉합이다. 이를 위해 2012년 대선 때 호남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나?

“호남의 아픔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알고 싶었고 실제로 많이 배웠다. 그 경험이 훗날 정책 기획과 구상 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

현재 호남에서 여권 지지율이 낮은데 어떻게 보나?

“여권에 표를 던지지 않더라도 호남도 우리 국민이다. 언제든지 안고 갈 것이며 존중할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새누리당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전국 통합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광주의 아픔과 호남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특히 광주는 정치적으로 진취적인 기운이 있는 곳이다. 보수를 견지하는 당에 몸담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필요한 정신이다.”

그동안 보수 진영 일각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해왔다는 평도 듣는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미 보수를 포함해서 이견 없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관련 법도 만들고 유족들에게 보상도 하지 않았나. 그 큰 줄거리를 가슴을 열어 받아들여야 진정한 보수다.”

카리스마보다는 ‘진정한 소통’ 리더십 필요

시시각각 미소를 띠며 힘줘 말하는 황 장관의 답변에는 한결같은 뼈대가 있다고 느껴졌다. 바로 헌법이다. 황 장관의 발언에는 늘 헌법이 등장한다. 그는 서울대 법대에서 헌법학박사학위를 받았고 부장판사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을 거쳐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법조인 출신이다. 때문에 황 장관은 ‘헌법가치의 구현’을 법조인과 정치인이 완수해야 할 공통 과제로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최근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자신의 미온적 태도가 여권의 도마 위에 오르자 “협의와 조율을 중시하는 헌법 정신에 따라 장관으로서 원칙을 지켰다. 확정고시 전까지는 무조건적인 강행보다는 공론화 과정을 갖고 반대의견을 신중히 듣는 데 노력했다”고 말했다.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미온적’이라는 일각의 평이 있지만 헌법적 가치 집착에서만큼은 일관된 면모를 보여온 것 같다”는 말에 그는 “그런데 시시때때로 미온적인 게 나타난다. 미온적인 점에서 일관돼 있다(웃음)”며 언중유골의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리더십이 너무 온건해서 오해를 산 적은 없나?

“큰 잔치를 벌이는 집주인에게 누가 시비를 건다고 생각해봐라. 보통은 싸우지 않고 ‘잘 챙겨드리고 보내라’ 하지 않나. 그런 식의 여유가 정치인에게도 필요하다. 날 선 비난과 오해를 접고 진정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한 시대다.

내가 도통 싸움을 벌이지 않으니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唐手)가 팔단)’이라는 별명도 생기고 때로는 사람이 너무 유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는 걸 잘 안다. ‘어당팔’이든 뭐든 조롱거리가 될지언정 진정한 협의로 가는 첩경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다. 내 진심은 언젠가 국민이 알아줄 거다.”

정치인으로서 황 장관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나?

“대한민국이 정의와 평화, 거기서 더 나아가 기쁨이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게 내 꿈이다. 이것이 신약성서가 말하는 하늘나라의 모습이라 하는데, 이상국가의 특징이 아니겠나? 선진국 정치는 유머가 삶 속에 녹아있다. 비판에도 유머가 있다. 링컨 대통령이 ‘링컨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라는 정적의 비난에 대해 ‘여러분, 제가 얼굴이 두 개라면 왜 이 얼굴로 나왔겠습니까?’ 그랬다는 거 아닌가? 공격을 공격으로, 원수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된다. 내가 검도를 하지 않았나? 유도에서 낙법부터 제대로 배워야 하듯이, 무도에서는 공격부터 가르치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는 출마하나?

“지금 이 순간에는 장관직에 충실해야지, 다른 잡념을 가질 여유가 없다. 현재 국회의원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생각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것도 맞다. 다만 마음은 표밭에 가 있으면서 중대한 국가 정책을 수행하는 건 내 양심에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자세를 가졌다간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된다. 사사로운 것에 마음 두고 결정 내린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을 거다. (퇴임 여부는) 하늘과 임명권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황우여 장관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언제 봐도 웃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 속에 여전히 예리한 그 무엇이 잠재돼 있는 듯했다. 2년 전 인터뷰에서 했던 질문을 이번에도 다시 던져봤다.

항상 웃는 얼굴이다. 속을 알 수 없어 무섭다. 항상 그런 얼굴로 상대편을 달래가며 설득하나?

“그런가? 옳은 길은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길 날이 온다는 도산의 말이 있다. 사람들도 옳은 말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참된 리더십이 아니겠는가.” 그의 표정이 진중하게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 글 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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