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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강정호 부상 후 첫 심경고백 

“올해 귀국은 없다, 복귀는 내년 4~5월 쯤” 

수술은 성공적, 깁스·보조기 풀고 본격적인 재활 시작… “이대호·박병호 MLB서도 통한다. 풀타임이면 20홈런도 가능”

▎미국프로야구 피츠버그 내야수 강정호가 10월 8일(한국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피그버그의 PNC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앞선 식전행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하고 있다. ‘킹캉’ 강정호의 등장에 홈팬들은 뜨거운 박수로 환호했다. / 사진·뉴시스
9월 1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MLB) 피츠버그 파이리츠-시카고 컵스의 경기. 선발투수의 난조로 피츠버그는 1회초부터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4번 타자 앤서니 리조의 땅볼타구를 잡은 피츠버그 2루수 닐 워커는 4-6-3(2루수-유격수-1루수)으로 이어지는 병살플레이를 완성하기 위해 2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간 유격수 강정호(28)에게 공을 던졌다. 2루 베이스를 찍고 아웃카운트 1개를 잡은 강정호는 1루로 송구하기 위해 베이스 옆으로 살짝 이동했다.

그러나 1루 주자 크리스 코글란의 오른쪽 다리에 왼 무릎을 찍힌 강정호는 간신히 병살플레이를 마무리한 뒤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TV 화면상으로도 부상은 매우 심각해 보였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던 강정호는 의료진의 부축을 받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잘나가던 ‘킹캉(킹콩+강정호)’ 강정호는 그렇게 올 시즌을 접었다. 왼쪽 무릎 안쪽 측부인대 및 반열판 파열, 정강이뼈 골절 진단을 받은 강정호는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고, 재활기간만 6~8개월가량 걸릴 것이라는 의료진의 소견을 들었다.

<월간중앙>은 수술 후 피츠버그 자택에서 재활 중인 강정호와 11월 4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강정호는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며 말끝에 힘을 실었다. 부상 후 강정호가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려움 없는 플레이는 계속된다”


코글란과 부딪히는 순간 어떤 느낌이 들었나?

“부딪히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고 큰일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다쳤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큰 수술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됐었다. 한편으로는 전열에서 이탈하게 돼 팀에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됐다. 욕심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기로 했다.”

올해 포스팅(비공개경쟁입찰)을 통해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은 강정호는 부상 전까지 126경기에서 타율 0.287에 15홈런, 58타점, 60득점을 기록하며 20홈런을 눈앞에 뒀다. 2002년 일본에서 50홈런을 뿜었던 마쓰이 히데키는 뉴욕 양키스 입단 첫해였던 2003년 16홈런(타율 0.287)에 그쳤다. 3년 뒤인 2006년 시애틀에 입단한 한신 타이거스 출신의 포수 조지마 겐지가 홈런 18방을 터뜨리며 아시아인 데뷔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웠지만 20홈런 고지는 넘지 못했다.

유력한 신인왕 후보였던 강정호는 시즌 막판의 부상으로 하차했지만, 10월 말 <스포팅 뉴스>가 내셔널리그 선수 167명을 대상으로 한 신인왕 투표에서 강정호는 5표를 얻어 전체 신인선수 중 3위에 올랐다. 데뷔 첫해 강정호는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7년에도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그때도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지금이 훨씬 더 심각하다. 한창 잘하고 있을 때 다치지 않았나?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강정호는 프로 2년차이던 2007년 미국 플로리다 스프링 캠프 때 큰 부상을 당했다. 동료 지석훈(NC)에게 토스배팅을 던져주다 얼굴에 공을 맞아 오른쪽 눈 아래 광대뼈가 함몰된 것이다. 구단 관계자들은 물론 의료진들조차 “야구는 고사하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지만 강정호는 모든 우려와 두려움을 떨치고 다시 방망이를 움켜쥐었다.

부상 부위는 어떤가? 다시 그라운드에 서면 두려움은 없겠나?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걷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깁스는 풀었고 보조기도 얼마 전에 뗐다. 지금은 집에서 매일 한두 시간 정도 기본적인 재활을 하고 있다. 다음주(11월 9일)부터 구단 전용 재활센터로 가서 본격적인 재활에 들어간다. 타자로는 물론이고 다시 유격수로 돌아갈 것이다. 수비에서 비슷한 상황(코글란과 충돌)을 맞더라도 두려움 없는 플레이를 할 것이다.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부상 위험을 안고 있다.”

강정호가 한국프로야구 출신 야수(野手) 메이저리거 1호라면 그의 광주일고 17년 선배인 이종범은 한국프로야구 출신 야수로는 일본 진출 1호다. 이종범은 일본 무대 첫해였던 1998년 주니치 드래건스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23일 한신 타이거스 오른손 투수 가와지리의 공에 오른 팔꿈치를 맞고 그대로 시즌을 접었다. 부상 전만 해도 이종범은 몸쪽 공 공략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부상 후로는 되레 몸쪽 공이 약점이 됐다. 훗날 이종범은 “그때 그 공 하나가 내 야구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고백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었다.

“CF·방송 출연? 내년 이맘때 보자”


▎강정호가 9월 18일(한국시간) PNC파크에서 벌어진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수비 도중 상대팀 1루 주자 코글란의 거친 슬라이딩에 무릎을 다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연말에 한국에 들어오나?

“당초 귀국 계획이 있었지만 재활에 전념하기 위해 안 들어가기로 했다. 조만간 플로리다로 이동해서 집중적으로 재활치료를 받게 된다.”

CF·방송 출연 등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빨리 부상에서 회복해서 그라운드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오직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올해 초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메이저리그에서 10년간 잘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은퇴하겠다’고 다짐했다. 내년 이맘때 한국으로 돌아가서 팬들과 만나면 된다.”

재활이 순조롭다는데 복귀는 언제쯤 가능할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페이스나 몸 상태라면 4~5월쯤이면 그라운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복귀 시점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메이저리그 첫해였던 올해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아무래도 문화, 야구 스타일, 주변 환경, 언어 등 여러 면에서 적응이 어려웠다. 모든 게 처음이지 않았나? 사실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내 자신을 믿고 기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강정호는 늘 시련 뒤 더 강해졌던 것 같다.

“그런가?(웃음)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자신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마음이 편해졌다. 복귀하면 이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강정호에게는 그동안 몇 차례 큰 시련이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강정호는 놀라운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2007년 스프링캠프 때 광대뼈 함몰 부상을 당했지만 그해 여름 건강한 모습으로 방망이를 쥐고 글러브를 끼었다. 2008년에는 재정난에 시달리던 현대 유니콘스가 간판을 내리고 우리 히어로즈가 어렵게 문을 열면서 선수단 전체가 동계훈련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지만 강정호는 그해 주전 유격수를 꿰찼다. 2010년에는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왼 손등 골절상을 입었지만 13타수 8안타(타율 0.615), 3홈런, 8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팬들은 강정호가 피츠버그라는 팀에 잘 적응한 것 같다고 말한다.

“성격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지만 구단에서도 정말 많은 배려를 해줬다. 단장·감독·동료들 모두 잘해줬다. 동료들과는 다 친하다. 경쟁자이자 같은 유격수인 조디 머서와도 잘 지낸다. 서로 경쟁하지만 격려도 아끼지 않는다.”

강정호는 <월간중앙> 지난 9월호 인터뷰에서도 “피츠버그만한 팀은 정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다른 팀 선수들도 하나같이 피츠버그의 팀 분위기를 부러워한다고 귀띔했다. 강정호는 “팀 동료들 간에 융화도 잘되고 프런트와 선수단,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사이에 벽이 없다. 팀 동료들과는 다 잘 지낸다”며 “경기 중에는 물론이고 훈련할 때, 경기장 밖에서도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그중에서도 한 명을 꼽으라면 ‘키스톤 콤비(2루수와 유격수)’인 2루수 닐 워커”라고 말했다.

“자신을 믿고 부담감을 버려라”


▎피츠버그 집 근처로 산책을 나온 강정호. 수술 한 달 후부터는 보조기를 떼고도 큰 무리 없이 걷고 있다. / 사진제공·강정호
‘강정호 효과’가 이대호·박병호에게 어느 정도 미쳤다는 보는가?

“데뷔 첫해 제가 어느 정도는 했던(성적을 냈던) 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겠지만 그 이전에 그들은 최고 선수들이 아닌가? 한국프로야구에서 정상급 선수라면 미국에서도 통할 것으로 본다. 다만 보이지 않는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MLB 사무국은 박병호(29·넥센)의 포스팅 응찰액 최고가가 1285만 달러(약 147억원)라고 한국야구위원회(KBO)에 11월 7일 통보했다. 1285만 달러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아시아 야수 중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아시아 야수 중 포스팅 금액이 1천만 달러를 넘은 선수는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1312만5천달러)와 박병호뿐이다. 지난해 500만2015달러를 제시받은 강정호는 아시아 야수 중 4위다.

메이저리그 사정에 밝은 모 구단 관계자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선수들이 ‘강정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미국 스카우트 관계자들에게 들어보면 ‘강정호를 곧 한국리그의 수준’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하더라”며 “올 시즌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은 강정호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포스팅에서 최고액을 써낸 구단은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 속한 미네소타 트윈스였다. 올 시즌 미네소타는 지구 2위를 차지했으나 팀 타율이 0.247로 리그 15개 팀 가운데 14위였을 뿐 아니라 팀 홈런도 156개로 10위에 그치는 등 극심한 공격력 빈곤에 시달렸다. 특히 간판타자이자 1루수인 조 마우어는 홈런을 10개밖에 치지 못했다.

이대호와 박병호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일본에서, 한국에서 최고 타자들인데 조언이랄 게 뭐 있겠나? 다만 ‘자신을 믿고 부담감을 버려라. 인내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전해주고 싶다. 야구 외적인 면에서 잘 적응하고 이겨내야 한다.”

이대호와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면 어느 정도의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

“풀타임을 뛰면서 충분히 기회를 얻는다면 둘 다 20홈런 이상을 칠 것으로 본다. 타율이나 타점 같은 세부적인 기록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솔직히 예상하기 어렵다.”

올해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이대호(33·소프트뱅크)는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무대”라며 메이저리그 도전의사를 밝혔다. 그가 입성에 성공하면 한국인 야수 최초로 한국·미국·일본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하는 선수가 된다. 소프트뱅크에서 올해 5억엔(약 47억원)의 연봉을 받은 이대호는 내년에도 같은 금액을 받고 잔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대호는 “돈보다는 꿈이 먼저”라며 메이저리그를 노크하고 나섰다.

프리미어 12 대표팀 타격코치를 맡고 있는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풀타임을 기준으로 하면 홈런 20개 정도는 치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팬들에게 인사말을 전해달라.

“올해는 마무리가 아쉬웠지만 내년을 위해서 다시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 좀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내년 이맘때 한국으로 돌아가서 팬들과 만나겠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강정호와 전화인터뷰를 마친 뒤 그의 부친 강성수 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강씨는 아들의 부상 직후인 지난 9월 하순 일주일 일정으로 피츠버그에 다녀왔다고 했다. 5월과 7월에 이어 세 번째 방문이었다. 그는 “괜찮아, 야구하다 보면 그럴 때도 있잖아. 더 잘하려고 그러는 거야”라며 아들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들에게 글러브와 배트를 쥐어준 이후 무슨 일이든 단 한 번도 억지로 시켜본 적이 없다는 강씨는 이번 일에도 덤덤한 표정이었다. “지금 재활도 잘되고 있으니 걱정 안 합니다. 내년에는 건강하게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강정호가 그라운드에 다시 서면 더 많이 응원해주십시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201512호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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