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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사] 흔들리는 북·중관계… 압록·두만강 접경지대를 가다 

북한은 왜 막대한 예산으로 국경 철책 설치했나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2014년 7월 시진핑 방한(訪韓) 이후 북·중 간 정치적 냉각관계 이어져··· 철책 구축은 한국 쪽에 기운 중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의 발로?

▎백두산에서 무산광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중국 숭선이라는 마을에서 바라본 북한 도로변 철책. 2014년 11월 초만 해도 철책이 없었던 곳이다.
북·중 관계가 오랜 기간 불협화음을 낸다. 중국은 이미 북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혈맹’이 아닌 정상적 국가관계를 지향한다는 발언도 나온다. 압록강 중·상류와 두만강 전역의 중국 측 강변에 철책이 설치됐다. 2014년 10월 필자가 확인한 사실이다. 북한도 같은 지역의 북측 강변에 철책을 설치한 사실이 지난 10월 확인됐다. 북·중관계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셈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현재까지의 북·중관계 역사는 부침이 심했다. 때로는 중국이 3년간이나 한반도에 병력을 파견해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치를 정도로 가까웠던 시기도 있었다. 반면 북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남한과 국교를 정상화해 거의 8년간이나 고위급 교류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1999년부터 북·중 고위급 교류가 재개되긴 했지만 양국은 북한의 개방, 북핵문제, 군사협력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심각한 이견을 보여왔다.

일부 전문가는 북·중관계를 ‘혈맹’이나 ‘동맹’ 관계로 묘사한다. 그러나 현재 북·중 간에는 ‘동맹관계’의 존속에 필요한 공동의 ‘적’도 ‘공동의 안보정책’도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표현들은 부적절하다. 2013년 7월 북한의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60주년 행사 참석차 방북한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 겸 공산당 정치국원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중·조(북)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두 나라의 가까웠던 시기를 회고하는 ‘과거형’ 표현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2015년 10월 북·중관계와 관련해 “중국과 북한 간 정상적 국가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국 정부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는 중국이 북한과 상호 이익이 되는 일반적인 ‘국가간 관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은 현재 대체적으로 북한과 일반적인 ‘국가간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북·중관계는 그리 간단치는 않다. 6·25전쟁 기간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을 비롯해 수많은 중국인이 한반도에서 피를 흘렸다. 북·중 접경지역에는 아직도 이 같은 역사를 상기시키는 많은 유적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이징에서의 북·중관계에 대한 논의와 북·중 접경지역에서 느껴지는 양국관계에는 현저한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중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고, 경제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각자의 전공 분야에 따라 중요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리고 대북정책과 관련해 중국의 중앙정부가 외교·안보적 측면을 상대적으로 중시한다면, 동북3성의 지방정부는 경제적 측면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복잡성 때문에 북·중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중국공산당과 북한 노동당 지도부 간의 대화와 갈등에 대한 이해, 또 하나는 양국의 국경지역에서 이뤄지는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에 대한 조사다. 중국과 북한 간 ‘특수관계’는 무엇보다도 두 국가가 1400㎞가 넘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가라는 점에 기인한다. 두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1950년 6·25전쟁에 개입했고, 현재는 자국의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북한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병사가 새 철책 점검하는 모습 목격


▎지난 10월 중순 철책을 점검하는 북한 병사의 모습이 필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북한도 국경 통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중국으로부터 남한 상품과 정보 등의 유입 방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탈북자와 내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북3성 정부는 북·중 압록강과 두만강의 중국 강변에 서서히 철책을 설치해 불법적 국경이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원 부족으로 오랫동안 자국 강변에 철책을 설치하지 못하고 군데군데 초소를 설치해 병사들의 감시에 의존해야 했다.

2014년과 2015년에 북·중 국경에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발생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북·중 국경 전반에 걸쳐 철책을 설치하지는 못하고 탈북자들이 많이 발생하는 강변지역에만 철책을 설치했었다.

하지만 필자가 2014년 10월과 11월 북·중 접경지역 답사를 진행했을 때는 강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압록강 중·상류와 두만강의 거의 전역에 걸쳐 중국 측 강변에 철책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바 있다. 필자가 2015년 10월 접경지역 조사를 또다시 실시했을 때는 압록강 중·상류와 두만강의 거의 전역에 걸쳐 북한도 철책을 설치한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렇게 긴 구간에 철책을 설치하는 데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도대체 왜 철책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을까?

백두산에서 무산광산이 내려다보이는 도로로 가는 길에 중국의 숭선이라는 마을이 있다. 여기서는 두만강 상류의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북한 마을을 매우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2014년 11월 초만 해도 숭선 건너편의 북한 도로변에는 철책이 없었다. 그런데 2015년 10월 중순 필자가 숭선을 다시 방문했을 때 건너편 북한 마을의 하천변에는 철책이 새롭게 설치돼 있었다. 철책이 설치된 곳은 숭선만이 아니었다. 중국 지안(輯安) 건너편의 북한 도시 만포의 압록강변에서도 새롭게 설치된 철책들을 볼 수 있었다.

2015년 10월 중순, 필자는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하면서 북한 병사가 철책을 점검하는 모습과 철책에 아직 페인트가 칠해지지 않은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로 미뤄볼 때 북한 국경지역에서의 철책 설치는 2015년 여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북·중 접경지역에 새롭게 철책을 설치한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하나는 2014년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의 방한 이후 북·중 간의 정치적 냉각관계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불신이 고조되면서 북한도 북·중 국경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하나는 북한 경제상황의 호전이다. 북한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철책을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1% 안팎으로 추정한다. 이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느끼는 북한의 경제상황과는 다소 큰 온도 차이가 있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주최 토론회에서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매년 경제성장률을 5%대로 추정했다. 이 같은 평가는 북·중 접경지역조사를 통해 느끼게 되는 북한경제의 호전 속도와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2014년 완공 신압록강대교, 새해 개통 가능성 높아


▎1. 구글 어스가 촬영한 신압록강대교의 북한 측 지역. 완공 후 개통을 기다리고 있다. / 2. 중국 숭선 마을에서 바라본 북측 지역의 철책. 2015년 여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압록강의 섬 가운데 위화도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토지가 비옥해 신의주의 대표적 곡창지대로 꼽히는 황금평이 있다. 북한과 중국이 2011년에 6월 특구 착공식을 열고 공동 개발에 착수했던 지역이다. 이 황금평 특구에 대해 국내 일부 언론은 장성택의 처형으로 특구 건설이 마치 중단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필자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매년 단둥 신도시를 방문해 황금평 특구 건설이 느리지만 꾸준하게 진척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압록강 하구와 가까운 단둥 신도시 랑터우(浪頭)와 남신의주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중국에선 ‘압록강대교’로 표기)도 지속적으로 건설이 진행됐다. 2014년 10월 마침내 완공된 뒤로 현재 개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신압록강대교가 아직까지도 개통을 미루고 있는 것은 이 다리와 북한 국도 제1호선을 연결하는 약 4㎞ 거리의 접속도로가 아직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압록강대교가 개통되기 위해선 북한 측과 신압록강대교가 연결되는 지점에 세관, 검역, 물류시설 등의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북한은 그간 2천만 달러(200억원)에 이르는 통관시설 건설 등에 참여할 투자자를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북측 도로 건설에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2016년 중에 대교 개통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15년 3월에 필자의 지인이 촬영한 신압록강대교 중국 측 세관과 주변 건물 등의 사진을 동년 10월에 필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비교해보면 약 7개월의 짧은 기간 중에도 큰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글 어스를 통해 인공위성으로 2014년 9월과 2015년 9월 사이 신압록강대교 북한측 지역을 촬영한 사진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북한 지역에는 신압록강대교와 연결된 도로 주변이 상대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을 뿐 큰 변화를 발견하기 어렵다. 중국은 북한을 개방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중국의 개방 요구에 대해 소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과 중국이 압록강에서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준비하고 있다면 두만강에서는 신두만강대교 건설이 한창이다. 필자는 2014년 11월에 이어 2015년 8월 중국 옌벤을 방문해 기존의 ‘두만강대교’ 상류 바로 옆 지점에서 신두만강대교 건설이 빠른 속도로 진척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2014년 11월에만 해도 북한 온정리 쪽에 교각 몇 개만 세워져 있을 뿐이었으나 2015년 8월에는 신두만강대교의 교각이 거의 건설되고 북한 온정리 쪽에서는 다시 상판 설치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중국 훈춘과 북한 나진항을 이어줄 신두만강대교 건설에는 공사비 1억6천800만 위안(약 300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두만강대교는 총 길이 630m, 왕복 4차선 규모에 차량통행속도 시속 60㎞로 설계됐다. 신두만강대교는 역시 4차선인 훈춘~취안허세관 간 고속도로와 연결돼 북·중 국경지역을 자연스럽게 이을 예정이다.

기존의 두만강대교는 1936년에 건설돼 이미 사용 연한을 넘겼으며 여러 차례 보수공사에도 교각이 흔들리는 등 위험이 감지되고 있다. 그리고 왕복 2차선으로 폭이 좁고 교각이 튼튼해 보이지 않은데 비해 왕복 4차선의 신두만강대교 교각과 철판 상판은 상대적으로 견고해 보인다. 그런데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중국의 경제 침체로 인해 훈춘에서 나진항을 거쳐 수출되는 물동량이 감소한 것이 문제다. 예정대로 2016년에 신두만강대교가 완공되더라도 그것이 북·중 경협의 확대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경통제 강화와 경제협력 확대 이중정책 실시


▎북한은 압록강 중·상류와 두만강의 거의 전역에 걸쳐 철책을 설치해 중국과의 정치적인 거리감을 나타냈다.
2014년 7월 시진핑 총서기의 방한 이후 북·중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에 이어 북한도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에 광범위하게 철책을 설치했다. 북·중 간의 정치적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국경 통제가 과거처럼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상황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탈북자 증가로 인한 내부정보 유출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통제 강화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실리주의적 차원에서 중국과의 경제협력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물론 중국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와 관련이 없는 경제 협력사업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꾸준하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중국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북한과의 실리적인 협력사업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

북·중 간의 정치적인 관계 냉각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유로 양국의 경제교역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북한 근로자의 중국 파견은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동북 3성은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연수생 형식으로 북한 노동력을 받아들이고 있다. 2014년에는 두만강과 접해 있는 지린(吉林)·투먼(圖們)·훈춘(琿春) 일대에 북한 근로자 2만 명을 고용하기로 했다. 압록강 하구의 랴오닝성(遼寧省)도 단둥(丹東)지역에 추가로 2만 명의 북한 근로자를 받기로 북한 당국과 합의했다. 이 같은 합의가 이행되면 중국 내 북한 근로자 수는 조만간 5만 명 이상으로 불어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북·중 간의 경제협력은 갈수록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데 5·24 대북 제재조치로 인해 개성공단사업을 제외한 남북경협과 교류는 극도로 제한을 받고 있다.

현실적으로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불행한 과거에 계속 집착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카드를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남북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점진적으로 ‘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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