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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포트] 첩첩산중! 김정은의 국제 외교무대 데뷔 

9월 중국 전승절 행사도 불투명 

의전, 경호, 어젠다 사전조율 등에서 북·중 입장차 좁히기 어렵다는 전망… 맷 새먼 미 하원 아·태소위원장 “중국이 김정은 방중 진정으로 바라지 않아”

▎6월 1일 우리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북한의 국제아동절을 맞아 준공식을 앞둔 강원도 원산 육아원을 방문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 사진·중앙포토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언제쯤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할까? 북한 권력을 장악한지 3년이 지나도록 그는 아직 외국 정상과의 회담 한 번 갖지 못했다. 그는 중국으로부터 오는 9월 ‘항일전쟁승리 70년’ 기념식 초청장을 받아둔 상태다. 9월엔 북·중 국경을 건너는 모습을 보여줄까?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오는 9월 초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날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공산당 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기관지인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는 6월 1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한 소식통을 인용, 김 위원장이 9월 초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제88여단(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참전했던 부대) 기념비 제막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9월 3일 중국 베이징 노구교(盧溝橋) 인근 인민항일전쟁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69주년 기념식’에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도열해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이 즈음 하바롭스크에서는 소련군 출병 및 중국·북한의 항일전쟁 70주년 기념 열병식도 열린다. 푸틴 대통령도 열병식에 참석할 계획이어서 두 지도자의 회동이 점쳐진다는 게 <중국청년보>의 보도 요지다.(크렘린궁은 회동과 관련 “사실이 아니다”며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하바롭스크 열병식에 참석한 뒤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 9월 3일 중국의 정부가 주최하는 전승절 기념식에 갈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회동이 이뤄진다면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제 1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는 첫 외국 정부의 수반이 된다. 김 위원장의 첫 해외방문국도 러시아로 귀착된다. 물론 김 위원장도 중국 정부로부터 전승절 기념식 초청을 받은 상태지만 푸틴 대통령의 동선(動線)을 따지면 중국에 가기 전에 러시아에서 푸틴과 먼저 만나게 된다.

중국은 승전일인 9월 3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등 국가적으로 성대한 기념식을 준비 중이다. 지난 5월 러시아 전승절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던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러시아 기념식에서 만난 왕이 외교 부장 등 중국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전승절 행사에 외국 정상을 초대하는 등 행사의 성공적 개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어 “왕이 부장이 박근혜 대통령은 꼭 오셔야 한다고 당부했다”면서 “주한 중국 대사도 같은 취지로 박 대통령의 방중을 간곡히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중국, 김정은 정신 상태 걱정

이처럼 9월 초에는 러시아 극동과 중국 베이징에서 항일전쟁승리 기념식이 잇따라 열린다. 다자 외교의 무대가 활짝 펼쳐지는 것이다. 지난 5월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불참한 김정은 위원장이 9월에는 움직일까?

국내외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김 위원장의 9월 방중 가능성을 낮게 점친다.

맷 새먼(공화당) 미국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6월 4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김정은의 방문을 진정으로 환영하고 바라는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새먼 위원장은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중국말을 구사하는 몇 안 되는 미국 하원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북·중간에는 씻기 힘든 불신이 여전히 가로놓여 있다”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북·중 관계는 한마디로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다. 북한과 중국의 광범하고 긴밀한 경제 교류에도 불구하고 서로 우려하고 걱정하는 정서가 깔려 있다. 김정은 지도자가 성숙하지 못한 면을 많이 보이고 있어 과연 정신적으로 건강한지에 대해서는 중국에서도 우려하는 실정이다.”

이는 지난 4월 중국 방문에서 그가 확인한 현지의 기류다. 새먼 위원장은 중국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물었다고 한다. 그는 “중국 지도자들이 북한에 대해 좌절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북·중 양국 관계는 유지되지만 아주 불균형적이다. 북한이 에너지와 식량을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해주기를 기대한다. 중국은 그런데 북한의 불안정한 상태를 매우 걱정한다.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중국은 북한의(고위관리 공개 총살 등 일련의) 행태에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최근 고위 관료를 줄줄이 공개 처형하는 등 공포 정치가 정점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새먼 위원장도 북한 내부가 불안정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과 행보가 미국인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고도 했다. 그는 “북한 체제가 과연 안정적인지 의문”이라며 “특히 지도자 김정은의 정신건강 상태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김 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 숙청을 예로 들며 “자신의 인척을 처형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 아니냐”며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정부도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에 회의적인 편이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의 주요 관계자도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다자 외교무대에 김 위원장이 참여하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9월 러시아 방문 건도 북한 내부의 문제, 북핵 문제, 의전 문제 등으로 무산됐지만 북한 특유의 지도자에 대한 기밀주의도 공개된 외교 무대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특별 의전과 경호를 제공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도 귀국 후에야 관련 사실을 공개할 정도였다”면서 “김정은 위원장도 아버지와 크게 다를 바 없어 결국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다자 외교는 체질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전승절 아닌 다른 타이밍의 방중 가능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퍼레이드에 등장한 RS-24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 / 사진·중앙포토
게다가 김 위원장은 공식 국가 수반이 아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북한을 대표한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나 중국을 방문한다고 해도 다른 정상보다 덜하면 덜하지 우대할 수는 없는 구조라고 국회 정보위 소속의 이철우 의원이 지적했다. 북한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김 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행사장에서 다른 정상들과 같이 줄을 맞춰 서거나 뒷줄에 자리한다면 체면을 구기게 된다. 이철우 의원은 “그걸 북한 주민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입장”이라며 “특별의전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 점도 방러 무산의 한 이유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생전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시 제공받던 특별경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조건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5월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중무장한 호위대가 김 위원장을 경호토록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경호 문제는 철저하게 자국 통제에 두려던 러시아와 의견 차이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가 수반도 아닌 손님에게 다른 정상보다 우월한 경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넌센스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의 9월 중국 전승절 참석도 어렵다고 이철우 의원은 내다보았다. 이 의원은 “차리리 김 위원장이 전승절이 아닌 다른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단 둘이 만나는 모습을 연출하려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사례에서 보듯 김 위원장이 다자 외교무대에 등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의 경우도 전승절 전 혹은 후에 중국에 가서 단독 정상 회동을 갖는 게 더 실익이 있다는 말이다.

구시월에 몰린 북한 국경일 행사도 김 위원장의 행보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인 1948년 9월 9일을 ‘구구절’이라고 하여 국경일로 삼고 있다. 또 10월 10일은 노동당 창건일인 ‘쌍십절’로 최고 국경일로 삼는다. 윤상현 의원은 “구구절, 쌍십절을 앞두고 있어 김 위원장이 방중을 피하지 않을까 한다”며 방중 무산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또 중국이 김정은 위원장을 특별히 우대해야 할 동인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이런 전망의 한 근거라고 윤 의원은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찾을 때는 중국의 대(對)북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아쉬울 게 없다. 초청은 하는데 줄 선물은 없는 게 현재 중국 정부의 입장으로 관측된다. 선택은 김 위원장에게 달렸다.”

2013년 장성택 처형 사건이 북·중 관계에서 김 위원장의 발목을 두고두고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군부가 장성택을 갑자기 죽음으로 몬 김 위원장에게 가진 감정을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라 그렇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안보 고위직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중국 군부 인사들에 따르면 중국은 장성택의 죽음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고 했다. 장성택이 대표적 중국통으로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했기에 그의 죽음에 중국도 깊숙이 연관돼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중국 권부 일각에는 김 위원장에 대한 반감이 잔존하고 있다고 이 인사는 지적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첫 해외 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한 것만으로도 중국에 성의를 보인 걸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중국 배려 차원의 방문이므로 경제 지원 등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중국은 ‘그게(김정은의 방중) 뭔 대수냐’는 입장이다. 강대국 중국 변방의 소국(북한)이 와서 행사의 체면을 세워주는 정도로만 중국은 받아들인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 바로 이런 양국의 시각차다.”

통치 스타일은 할아버지, 외교 스타일은 아버지?


▎1989년 1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는 김일성 주석의 특별열차에 올라 환송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김 주석은 외교, 김 위원장은 내정을 주로 담당했다. / 사진·중앙포토
물론 중국이 적극 나선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은 전승절 행사를 자국의 외교 파워를 극대화하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동시에 초청했다. 극적인 남북정상회담도 베이징에서 이뤄질 수 있다. 미국도 못하는 일을 중국이 했다는 선전효과를 거두게 되므로 나쁠 게 없다. 이런 외교적 기대심리가 현실의 장벽을 허물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방중 길은 여러모로 멀고 험하다. 집권 3년이 넘도록 외교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통치 스타일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따라가지만, 외교 스타일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을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다수의 사회주의권 국가 순방과 각종 국제행사 참석을 통해 활달한 면모를 과시했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생전에 열한 차례나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고 한다. 첫 방문인 1953년 11월부터 마지막인 1991년 10월까지 38년 동안 3년에 한 번꼴로 공식 방문했다. 비공식 방문을 포함하면 37회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김 주석은 또 사회주의 양대 강국인 소련과 중국은 물론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순방했다. 사회주의권 국가와의 유대 강화는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밑거름이 됐다는 지적이다. 김 주석은 제 3세계 지도자들과의 친분을 중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 달리 은둔의 통치자 이미지가 강했고 국제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중국 <런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983년 6월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이래 2011년 8월 러시아 방문 후 귀국길에 중국 동북지구를 방문하기까지 중국을 총 아홉 번 찾았을 뿐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안보 고위직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의 풍경을 하나 소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당시 북한과 관련해 한 가지 착각한 일이 있었다. 바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한 답방 문제였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답방을 약속했다. 김 대통령은 이 약속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방한시 돌맹이까지는 아니라도 계란이 날아 들 텐데 그가 과연 서울에 오려 했을까? 그건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었다. 북한에서 받는 대우를 남한이 제공할 수 없는 구조다. 김정은 위원장의 오는 9월 중국 전승절 참석도 마찬가지다. 다자외교 석상에서 중국은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별도의 계기를 통해 이뤄질 공산이 크다는 게 이 인사의 예상이다. 할아버지(김일성 주석)의 헤어스타일을 이어받은 김정은 위원장이 순방 외교 스타일까지 이어받기에는 대내외 환경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듯하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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