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고미숙의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⑧] 세대간 소통을 향한 모험적 길 찾기 

“마주침의 광장을 윤리적 혁명의 공간으로!” 

고미숙 고전평론가
공자를 넘어 장자와 조르바를 만나야 하는 이유… ‘절대적 탈영토화’의 크기와 방향 지닌 마음과 자연의 가르침 배워야
인문학적 담론도 자본이나 국가장치에 포획되면 언제든 상품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국가, 이윤, 제도에 포획되지 않는 자유의 새로운 시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생명 리듬의 강밀도(intensity)를 찾는 여정, 마음과 자연의 ‘대칭성’을 복원하는 발원이다.

“‘그러므로 내게 신체를 달라.’ 이것이야말로 철학적 전복을 알리는 공식이다. 신체는 더 이상 사유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 장애물도, 사유할 수 있기 위해 극복해야만 할 것도 아니다. 반대로 사유가 비사유에 도달하기 위해, 즉 삶에 도달하기 위해 잠겨 들어가는 혹은 잠겨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유의 범주 앞에 삶을 출두시킬 것이 아니라 사유를 삶의 범주 속으로 투기해야 할 것이다. 삶의 범주란 정확히 말해 신체의 태도, 자세이다.”(들뢰즈, )

그렇다! ‘사유한다는 것, 그것은 신체의 능력, 태도 혹은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이때 신체는 이성이자 감각이며 무의식이자 자연이다. 하여, ‘신체를 달라’는 전언은 몸과 우주, 마음과 자연의 ‘대칭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강렬한 발원이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601호 (2015.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