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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유시민·전원책의 ‘지상(紙上) 썰전’ - 20대 총선과 대선을 말하다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문다(전원책)” vs “재 너머 사래 긴 밭은 언제 다 갈꼬!(유시민)” 

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안철수 신화? DJ, YS, 박근혜 지지층과 강도(强度) 달라… 정체성 불분명하면 총선 이후 사라질 거품일 수도

▎JTBC의 시사예능프로그램인 <썰전>에서 각 보수와 진보 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는 전원책 변호사(왼쪽)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두 사람이 2월 5일 서울 서소문의 한 중식당에 마주앉아 20대 총선에 대해 ‘지상 썰전’을 벌였다.
4·13 총선 레이스의 총성이 울렸다. 두 달 남짓 남은 선거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국민의 관심도 점점 높아진다. 예비후보자들도 선거운동에 본격적인 몸풀기를 시작했다. 여야를 대표하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 더해 국민의당 창당으로 선거구마다 2파전이 될지 3파전이 될 지에 관심이 쏠린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방송사들의 정치시사 프로그램도 시청자들의 주목을 끈다. JTBC 시사예능 프로그램인 <썰전>도 그중 하나다. 1월부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전원책 변호사가 새로운 라인업에 들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전의 패널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강용석 변호사,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세 사람이 모두 총선 무대에 뛰어든 까닭이다. 신인 패널이지만 방송가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대표할 ‘중량급’의 논객들이다.

방송 토론에서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유시민-전원책 조합은 ‘기막힌 콜라보’라고 불린다. 허허실실 농담으로 현실정치를 풍자하기도 하고, 날 선 근거로 논리에 깊이를 더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토론은 유쾌하다. 두 사람 모두 정치와 예능 사이에서 완급조절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둘의 역할은 분명하다. 진보 논객 유시민 전 장관은 현실정치에 직접 몸담은 경험과 작가로서의 뛰어난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정치인과 논객 시절의 예리함과 삐딱함을 한꺼풀 벗고 담담하게 토론에 임하는 모습에서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는 방송계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며 인기를 구가한다. 최근 <썰전> 방영 분에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언급하며 유시민 전 장관이 전 변호사를 향해 “저런 분이 검찰총장을 해야 한다”고 하자 전 변호사가 “대통령이 돼야 해. 그러면 전부 다 단두대로 보낸다”고 호쾌하게 맞받아쳐 웃음을 선사했다.

토론의 심층성과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썰전>은 팟캐스트를 뛰어넘는 정치 예능의 대안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시청률이 4%대에 이르며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 한 네티즌은 “지적이고 정중한 토론의 긴장감과 재미를 갖춘 ‘혀의 전쟁’”이라며 “매주 목요일(방송)이 기다려진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오십보·백보 차이를 인정하는 것


▎JTBC <썰전>은 토론의 심층성과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두루 갖추며 정치 예능의 대안프로그램으로떠올랐다. 최근에는 자체 시청률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4·13총선을 두 달여 앞둔 상황에서 <월간중앙>은 두 패널에게 ‘지상(紙上) 썰전’을 제안했다. “편한 자리에서 총선을 주제로 토론하자”고 연락하자 “음습한 중국집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2월 5일 서울 서소문로에 있는 한 중식당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고량주를 곁들이며 시작됐다.

요즘 <썰전>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뜨거워요. 인기 비결을 말씀해주신다면요?

유시민(이하 유) _ 전 변호사님, 요즘 전화 많이 오신다면서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전 변호사님은 못 알아들으시는 경우가 없어요. 별 고민을 하지 않고 얘기하게 되죠.

전원책(이하 전) _ 말을 하는 재미를 알 수 있어요. 성숙한 민주주의와 성숙하지 못한 민주주의의 차이는 ‘민도’인데 민도가 올라가는 데 있어서 <썰전>이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것도 우리 사명이거든요.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방향성이 다른 경우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같아요.

유 _ 같은 나라에 있는데 어떻게 아예 다르겠어요? 같은 것도 있는 게 당연한 거지.

전 _ 이런 토론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유 _ 우리는 (토론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거야. 가끔씩은 골탕 먹이고 면박도 주고.(웃음)

노선 차이 좁혀진 정당, 1여다야 구도 오나?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조합은 ‘기막힌 콜라보’라고 불릴 정도다. 유 전 장관과 전 변호사는 “서로 합이 잘 맞는다”고 말했다.
두 분의 의견이 자주 부딪치는 주제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유 _ 여러 가지죠. 특히 대북관계?(웃음) 전 변호사는 “단두대행!”이라면서 정치인들을 모두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요. “다 오십보백보야!” 이러면서. 오십보와 백보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아세요? 민주주의는 오십보와 백보의 차이를 인정하고 좁혀가는 것이에요.

전 _ 유 (전) 장관은 ‘어차피 (정치가) 자체적으로 정화되고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여기서는 오히려 내가 좌파적이라니까요. 원래는 좌파가 혁명을 통해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이야기로 많이 등장하거든요. 유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핵심적인 자리에 있어봤잖아. 정치판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변명하고자 하는 자연적 욕구가 나오는 거 같아.(웃음)

유 _ 전 변호사님이 정치를 10년 했고, 제가 학계에 있었으면 진짜 합이 안 맞았을 거야.

전 _ 토론이 안 됐겠지.(웃음)

본론으로 들어가보죠.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012년 총선과 비교해서 이번 총선의 두드러진 특징을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요?

유 _ 2012년은 일대일 구도가 전국적으로 성립됐어요. 당시 민주당하고 통진당(통합진보당)이 전국적인 연대를 해서 여야 일대일 구도가 성립된 거죠. 지금은 그게 불확실해졌어요. 1여다야로 될지 구조가 달라진 거죠.

전 _ 2008년 18대 총선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정책 차이와 노선의 차이가 보였거든요. 국민의당이 떨어져 나왔다고는 하지만 중도 타령하고 있잖아요? 세 당의 컬러가 별로 다르지 않아요. 그러면 인물이라도 경쟁이 돼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정책도 차별화되지 않고, 인물도 변별력이 없다? 유 (전) 장관님도 그렇게 보시나요?

유 _ 말은 닮아 있는데 서로 달라요. 현대 정치는 보편적으로 중도로 접근할수록 유리한 포지션으로 가기 때문에 양당제에서는 수렴될 수밖에 없어요. 정치가 단순해지는 거죠. 그런 점에서 말은 닮았는데, 하는 행동은 많이 달라요. 1번(새누리당)과 2번(더불어민주당)이.

전 _ 내가 보기엔 1번과 2번 비슷하고 3번(국민의당)은 더 웃기고, 4번(정의당)은 보이지도 않고 기가 막히던데.(웃음)

유 _ 원래 4번이 3번일 때는 보였는데 4번으로 밀려난 뒤로는 안 보이게 됐어요. 요즘 4번이 열 받아서 3번을 열심히 치고 있어.

전 _ 3번은 치일 만하죠. 문제가 있거든. 호남에서는 확실히 1여다야가 될 거에요. 호남에서 새누리가 이길 곳은 이정현 의원이 있는 순천·곡성 말고는 거의 없어요. 어차피 야당 텃밭이라 호남 패권을 두고 경쟁할 거거든요. 더민주는 국민의당에 안 뺏기고 눌러버리려고 할 거고. 처음에는 ‘호남 자민련’ 되는 거 아니냐 생각했는데 자민련은 무슨! 그만큼 국민의당에서 물갈이를 못했어. 천정배 의원이 얼마나 잘라낼지 의심스럽죠.

수도권의 판세는 어떻게 보세요?

전 _ 나머지 지역에 단일화가 된다고 보면 수도권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법칙이 적용될 겁니다. 국민의 눈에는 새누리당이 골리앗으로 보여요. 더민주나, 특히 정의당은 뽑지를 않아 불쌍하게 보인다 이거야. 정의당은 민노당 시절 18%까지 오르기도 했는데 말이죠. 1여다야 구도라고 하지만, 수도권에서 지역별로 연대 내지 단일화가 이뤄지면 새누리가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위험해요. 더민주는 최근 인재영입을 다각도로 해서 정당 지지도가 꽤 올라갔잖아요? 새누리당도 공천에 신경 쓰지 않으면 힘들 거예요.

유 _ 더민주와 정의당은 연대를 할 것 같아요. 물론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게 (권한을) 넘긴 데다 김 대표는 좀 소극적 입장을 보이곤 있지만. 지난번 총선 사례를 보면 일대일 구도로 치러도 2000표 안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게 30~40개 선거구에서 나올 겁니다. 현역 비례대표가 나갈 경우 호남은 단일화가 필요 없고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영남, 강원, 수도권 이런 곳에서 연대가 될 거라고 봐요. 울산·창원도 물론이고. 결국 국민의당이 문제죠.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유 _ 현재의 스탠스는 ‘연대는 없다’잖아요. 이 조건에서 수도권에 괜찮은 후보가 얼마나 나올지. 저는 거의 없다고 봐요. 더민주와 정의당이 연대하고 국민의당이 독자로 가고 3파전으로 치를 경우엔, 국민의당이 교섭단체로 못 갈 거라고 봐요.

부자 집안에서 싸움 난다… 새누리 분열이 변수


국민의당은 교섭단체 구성조차 불가능하리라고 보는 건가요?

전 _ 저는 교섭단체는 만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유 _ 3파전을 하게 되면 수도권에서 될 곳이 없어요. 그러면 안철수 자신도 위험해지는 거죠.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이 유리한 구조예요. 더민주와 정의당이 연합해도 1여2야니까 반타작은 하게 되죠.

전 _ 저는 기본적으로 정당들의 연대, 후보단일화에 반대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합당을 하라는 거죠. 박정희 대통령 때 김한길 의원의 부친인 김철 씨의 사회당을 정략적으로 보호해서 국회의원을 만들었어요. 워낙 우리나라에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없었으니까. 정의당과 더민주가 보호차원에서 후보단일화 연대하는 것에 크게 이상하게 생각 안 해요. 국민의당이 연대하고 후보 단일화한다면 그건 코미디지.

유 _ 1여2야로 치러지면 여가 유리한데, 변수는 두 가지예요. 첫째는 원래 재산 많은 집에서 싸움이 나죠. 롯데그룹처럼. 지금 새누리당이 분열할 가능성이 생겨요. 공천과정에서 잡음이 생기는 거지. 무소속 출마자, 경선으로 후보가 됐지만, 갈등이 깊어져서 탈락후보가 야당후보를 도와준다든가 이런 교란 요인이 여권 내에서 발생하는 게 하나예요. 둘째는 국민의당이 정치적 포지션을 어디로 가져 가느냐예요. 3번 당이 계속 2번 당만 공격하면 1번 당 좋아하는 사람이 호감을 가질 수도 있거든요. 이게 여당이야, 야당이야 하면서.

전 _ 다수대표제, 다수결이라는 것은 절대 제대로 된 결론을 못 내니까.

유 _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해서 ‘애로우의 이론’이 있어요. 합리적 결과를 확정할 수 없는 거죠. 국민의당 스스로 주관적인 포지션도 중요하지만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인식이 되느냐도 매우 중요해요. 새누리당과 가깝다고 인식되면 그냥 3파전이죠. 2번에서 떨어져 나온 3번이 아니라 진짜 3번이라고 인식되면 국민의당의 존재가 1번, 2번의 승패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불확정적이죠.

전 _ 국민의당이 자기 나름대로의 노선조차 정립을 못하고 있어요.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인물에서도 밀려요. 국민의당이야말로 ‘용두사미’가 될 수 있어요.

유 _ 잘못하면 총선 끝나고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

전 _ 저는 시작할 때부터 대단히 잘못된 거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어요.

유 _ 에이, 우리야 불리할 건 없지 관찰잔데.(웃음)

각당이 공천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당마다 인재영입이 한창인데, 어떤 평가를 내리세요?

전 _ 인물을 데리고 올 때는 유명세뿐 아니라 국가 어젠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된다고 봐요.

유 _ 인재는 정당이 내부에서 길러내야 정상이에요. 한국 정당은 인재양성 시스템이 없고 동원시스템만 있어요. 선거 때 급하면 곧바로 실전 투입이 가능한 요원이 필요하죠. 전문성을 취득하고 인정받는 분을 영입하는 건 축구에서 ‘즉시전력감’이라고 해요. 유소년 팀에서 재능 있는 아이를 받아서 바르셀로나에서 키워서 가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다른 데서 데려오는 거죠. 스카우트하고 입단식하고 바로 다음날 투입하는 식이에요. 급할 때는 그렇게라도 해야죠. 그런 점에서 더민주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재미를 제일 많이 봤죠.

전 _ 유일하게 (재미를) 봤어요.

유 _ 국민의당은 잘 안 되고, 새누리는 영입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모양새죠.

정권교체? 지난번보다는 가능성 높겠죠

그렇다면 총선 이후 대선까지는 어떻게 갈까요?

전 _ 앞서는 (대선)주자들을 보면 여당에선 김무성, 야당에선 문재인·박원순, 국민의당 안철수….

유 _ <썰전>의 전원책.(웃음) 미국에서 트럼프가 되면 바로 투입될 거야. 트럼프에 맞설 사람은 이분 밖에 없다니까요.

전 _ 지금 이 상태로 가다가는 대권의 부침이 상당할 거예요. 반기문에 대해서 30~40% 나오거든. 그런데 이 수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앞으로 들어온 뒤에 결정할 문제죠. 새누리당도 6월이 되면 김무성 대표가 당권을 놓고 나와야 돼요. 그러면 똑같은 입장에서 경쟁해야 하거든요. 당 대표 프리미엄을 떼야 하니까. 그때 당권을 친박(친박근혜계)이 쥐느냐 비박(비박근혜계)이 쥐느냐에 따라서 김무성 대표의 행보도 달라지겠죠. 만약 국민의당이 교섭단체를 못 만든다면? 안철수 의원은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이번 총선이 지나고 나야만 대선주자의 행보가 드러날 수 있어요.

유 _ 야권은 확실히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경쟁이에요. 대선후보는 2년 안에 새로 안 나와요. 총선이나 도지사 후보에서 신데렐라가 나올 수 있겠지만.

전 _ 최소 3~4년은 있어야 해요.

유 _ 문-안-박 세 사람 중 하나예요, 제가 볼 땐. 총선 결과에 따라서 더민주가 좋으면 문재인 대세론, 국민의당이 선전하면 안철수가 떠오르고, 둘 다 망하면? 박원순 시장을 호출하는 목소리가 생길 수 있어요.

전 _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행동하겠다고 하면 또 다른 변수가 되겠죠.

유 _ 하겠다고 할 거에요. 나는 박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를 대선후보로 지지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왜냐? (김무성 대표는 박 대통령을) 한 번 배신한 사람이니까.

전 _ 거꾸로 박 대통령이 다음 정권 재창출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면 완전히 또 달라질 것이고요.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말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거든. 쉽게 봐서는 안 돼요.

유 _ 김무성 대표는 이미 하락세예요. 현재 지지율은 집권당 대표라는 게 크죠. 대표 프리미엄이 사라지면 총선 결과가 좋아도 김 대표 공으로 가지 않을 거예요. 대표가 아닌 의원으로서 대권주자로 가야 하기 때문에 미디어 노출량이 줄게 되고,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될 거에요. 10% 지키는 게 어렵겠죠.

전 _ 여권에는 매력적이고 신망을 얻는, 작더라도 절대적인 지지층을 가진 주자가 없어요. 야권도 마찬가지죠. 안철수 대표가 신화를 일군 사람처럼 보이지만, 안 대표에 대한 지지는 DJ, YS,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이 갖고 있는 강도와는 차원이 달라요.

유 _ 비유하자면 벽돌이 아니라 통나무를 걸쳐서 세워놓았다고 할까. 하나만 빠져도 무너져요. 여권을 보면 정치적 자산을 확고히 가진 사람이 없어요. 안철수 대표도 마찬가지지만 김무성 대표도 정치적 자산이 없거든요.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절대 안 밀어줄 거예요. 친박은 대통령 후보가 없어요. 지금도, 앞으로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른 사람에게 승계될 수 있는 게 아니고. 대통령이 누구를 곧바로 띄우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나온 게 반기문 프로젝트죠. 반기문은 친박의 카드예요. 반기문이 등판하면 저쪽(여당)은 다 정리돼요.

전 _ 친박에서 반기문 카드를 쓰면 곧장 레임덕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친박의 상당수도 신뢰감을 안 가질 테니까.

유 _ 유엔사무총장이라는 것 때문에 절대적 지지율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를 빼고 나면 오세훈(전 서울시장)이 다시 뜰 가능성이 있어요, 외연이 좁긴 하지만. 김문수(전 경기 도지사)는 영 안 떠요. 보수 본류가 아니니까. 여권의 권력 지도가 굉장히 혼미하죠.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51, 아닐 가능성이 49로 봅니다. 지난번보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요즘 대구에서는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 논란이 인다면서요?

전 _ 대구사람들 만나보면 옛날 같지가 않아요. 대구·경북이라 무조건 진박을 민다는 게 아니더라고요. 김무성 대표 말이 맞아요. “박근혜 찍으면 다 친박 아니냐”. 굳이 진박을 나누는 건 완장 차는 골품제와 비슷한 거죠.

유 _ 진박의 언행이 저렴해요.

전 _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진박 감별사’라는 게 박 대통령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처음에 여섯 후보가 모여서 ‘반격의 서막’이니 보도하는 것 자체가 공익을 위해서,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위해서일까요? 아니거든요.

유 _ 어느 정도의 품격은 지켜야 해요. 유치해서 눈 뜨고 못 봐주겠어요.

전 _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얼마나 가겠어요.

젊은층의 무기력증? 징징거려봤자 아무도 안 도와준다

요즘 20대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니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무기력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자신이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요.

전 _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 무기력, 냉소, 혐오 이런 말들이 많이 돌아요. 이유는 크게 봐서 두 가지에요. 하나는 내가 나서봤자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 가령 우리가 민주주의로 스스로를 다스린다고 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투표소에 가서 앞에 제시된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주권을 행사하는 건 딱 그것 하나죠. 그것으로 마치 주권을 행사했다고 믿고 정치에 관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아닌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전 _ 데이비드 리스먼이 1962년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을 썼는데 아무리 설쳐봤자 하등 바꿀 수 있는 건 없고 무력하다고 해요. 말이 n분의 1이지 n이 몇 백만, 몇 천만 명이에요. 미국은 몇 억.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게 없는 거지. 배경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내려온 게 있어요. 나보다 못한 놈한테 통치받는 것만큼 화나는 일이 없다는 거죠.

또 다른 이유는요?

전 _ 정치보다 더 재미있는 게 많아졌거든요. 정치보다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있어요.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왔잖아요. 선사시대, 역사시대보다 큰 혁명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라고 언젠가는 누가 쓸 거라고 믿어요. 성취욕을 발휘할 길이 많은데 굳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나요?

유 _ 저는 냉정하게 얘기해요. 그렇게 불평해봤자 소용없다고. 첫째, 내가 나선다고 달라지랴? n분의 1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n이 15만 명 정도 돼요. 투표율을 60%로 잡으면. 최소 10만 명, 많으면 20만 명. 대통령 선거는 2500만 분의 1.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거의 제로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왜 투표할까? 논리적으로 따지면 불합리한 행동이에요. ‘합리적 행동이론’에 따르면 아무것도 못 바꿔요. 그런데 사람들은 투표를 하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여서 그래요. 철학적으로 그런 거지,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있어서 하는 투표가 아니에요.

둘째로, 그까짓 투표해봤자 안 바뀐다고? 그거 하나 받으려고 얼마나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나한테 그냥 주어졌다고 공짠 거 같아요? 주권자는 왕이에요. 왕은 원래 불평하면 안 돼요. <맹자>에 보면 나와요. 왕이 맹자한테 상담하죠. “저도 좋은 군주가 될 수 있을까요?” 맹자 왈, “산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깃털도 못 든다고 불평하는군.” 유권자들은 아주 센 왕이에요. 자기가 얼마나 센지 모르면 깃털도 못 들어요. 이걸 가지고 정치인들은 ‘너희들이 투표 안 하니까 무기력한 거야’라고 한다고요. 징징거려봤자 아무도 안 도와줘요.

전 _ 합리적인 무지(raitonal ignorance). 무기력하다는 게 바로 그런 경향이에요. 어떤 어젠다가 정치판에서 논의되는데, 굳이 공부를 할 동인이 없어요. 내 의견이 결정권자들에게 반영될 기회는 거의 없거든요. 들이댈 이유도 기회도 없는 거예요.

유 _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고민하던 문제죠.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정치가 훌륭해야 하고 정치가 훌륭하려면 시민이 훌륭해야 하고 훌륭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불평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훌륭한 시민인가, 자기표현을 얼마나 잘 하는가 생각해 봐야죠.

전 _ 유 (전) 장관 말은 교과서적인 얘기에요. 가령 보일러를 설치해주겠다 하면 매표행위로 인정 안 받아요. 정치인들의 공약을 분석해봐요. 거의 다 매표행위지. 세금 깎고, 뭐 깎아 주고. 이러다간 복무기간이 0으로 바뀐다니까.(웃음)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하고, 못된 세대가 50·60대


▎두 사람의 대화는 쉴 틈이 없다. 전 변호사가 “(50, 60대는) 고민을 가장 많이 한 세대”라고 하자 유 전 장관은 “고민은 어느 세대나 많거든요”라며 맞받아치며 웃었다.
반대로 50·60대의 보수층 지지율은 부동이거든요?

전 _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자기 생활의 틀을 바꾸고 싶지 않은 거예요, 잘살든 못살든.

유 _ 다른 건 지금 50·60대는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하고, 못된 세대라는 거예요. 나를 포함해서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어른들이 맏아들이 와서 “이번에는 몇 번 찍으셔야 해요” 이러면 “그래 네가 잘 알지, 내가 뭘 알겠느냐” 이랬다고요. 특히 맏아들이 말하면 어르신 표가 바뀌기도 했고요. 지금은 안 그래요. “네가 뭘 안다고 그래!”(웃음) 빈곤독재시대로 시작해 산업화·민주화를 이룬 세대에요. 성취감이 큰 세대라 고집도 세요.

전 _ 고민을 가장 많이 한 세대예요.

유 _ 고민은 어느 세대든 많거든요.

전 _ 우리 세대는 지금 20대보다 두 배 이상 많았어요. 대학교 예비고사 응시자가 요즘 졸업생보다 훨씬 많았죠. 한 해 졸업자가 120만 명이었는데 요즘은 40만 정도죠. 그런데 일자리는 3D 업종까지 포함해서 3분의 1에 불과했죠.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다들 어려웠기 때문에 불평 불만을 안 해요. 겸손했죠. 부자에 대한 증오심이 크질 않았어요. 스스로 성취하려 하고 오히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걸 부끄러워했을 정도니까.

유 _ 요즘 아이들의 꿈은 ‘재벌 2세’래요. 그래서 아빠보고 “그러니까 아빠가 잘해” 그런대, 2세니까.(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회의식도 깨어 있고 고민도 많이 하는데 부모가 자녀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 자녀 말을 좀 들으라고 하고 싶어요. 나는 60·70대 되면 우리 애들이 하자는 대로 할 거예요.

전 _ 60대 돼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50대가 얼마나 어려 보이는지 몰라.(웃음)

그러면 이번 총선을 전반적으로 정리해주세요.

전 _ 이 상태로 가면 선거가 뭐가 되냐? 우리는 패거리정치에 개인적인 입신영달을 탐하는 총선밖에 되지 못해요. 그 많은 후보자에게 왜 출마하느냐고 물어보면 전부 다 국리민복을 위해서다, 공공의 선(public good)을 위해서다 이런다니까.

유 _ 에이, 그건 그래야 맞는 거죠. 애써봤자 진짜 가짜를 구분할 수 없다니까.

전 _ 금배지 단 사람들에게 시험을 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국어, 국사, 헌법 세 과목만이라도요. (정치인 중에) 국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일본식 표현을 쓰는 사람도 많잖아요. “본 의원은~” 이런 거. “중대한” 이러면 되지 “중차대한” 이렇게 쓴다거나.

유 _ 너무 높은 요구를 하신다. 힘들어서 누가 국회의원 하겠어요?(웃음)

전 _ 정치하는 사람이 고민해야 할 것은 미래 세대거든. 내일 대한민국, 우리 후손들이 어떻게 잘살게 할 것인가 비전을 제시하고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요.

유 _ 전 변호사님은 교장선생님이 됐어야 할 분이야. 가만히 보면 좌절한 교장선생님 같아.(웃음)

전 _ 좌절한 교장선생님은 이상한 교장선생님인가?(웃음)

저까지 두 분의 노선이 혼란스러워지네요.(웃음) 20대 총선 한 줄 평 좀 남겨주시죠.

전 _ 갈 길은 멀고, 날은 저문다.

유 _ 재 너머 사래 긴 밭은 언제 다 갈꼬.

전 _ 하하. 역시 합이 맞아

- 글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 사진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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