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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새마을 세계화 사업’의 아프리카 현장을 가다 

테러 뛰어넘어 근면·자조·협동 전파하는 경상북도의 평화 랠리 

글·사진 다카르·생루이(세네갈)=송의호 중앙일보 기자
세네갈은 빈곤 퇴치로 눈 돌려 농촌 근대화를 주요 시책으로 추진… 새마을운동 모델삼아 청년 4천 명을 농업·교육·봉사 인재로 육성해

▎‘경상북도 새마을 방문단’이 찾은 탈바흘레 마을 어린이들이 태극기와 세네갈 국기를 흔들며 ‘새마을!’을 외치고 있다.
지난 11월 20일 오전 4시30분(현지시간)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온 ‘경상북도 새마을 방문단(단장 김관용 경북도지사)’은 숙소인 호텔 래디슨 블루를 나와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주변은 아직 어둠에 싸여 있다. 버스는 밤길을 뚫고 교외로 향했다. 목적지는 다카르에서 동북쪽으로 390㎞ 떨어진 생루이 지역 탈바흘레 마을. 경상북도가 지난해부터 봉사단을 파견해 세네갈에 조성 중인 새마을 시범마을 두 곳 중 한 곳이다.

버스에 올라탄 단원들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두어 시간을 달렸을까. 버스가 왕복 2차로 국도의 갓길에 멈췄다. 잠시 휴식을 위해서다. 눈을 떠보니 국도 양옆은 사막 같은 황량한 벌판이다. 새벽 어스름에 비친 이름 모를 잡초는 누렇게 변했고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는 가지만 앙상했다. 벌판에는 하얗게 변한 짐승의 머리뼈가 나뒹굴었다. 영화에서 많이 본 원시 아프리카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오전 7시 지평선 위로 먼동이 텄다.

방문단은 이동 중에 미리 준비한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며 세네갈의 국도 변 풍경을 내다보았다. 창 밖으로 비친 시골은 갈대 같은 것으로 엮은 집이 많이 보였다. 그보다 조금 나아 보이는 집은 흙벽이었다. 1970년대 한국의 초가집과 비슷한 분위기다. 페인트 색이 바랜 가게에는 간판 대신 건물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망치가 그려진 집, 짧은 머리가 그려진 집 등 글자를 모르는 주민들이 쉽게 가게를 찾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은 도로의 갓길을 따라 등교하고 있었다. 도로에는 자동차와 당나귀가 공존했다. 도로 오른쪽으로 철길이 보였지만 기차 운행이 끊긴 지 오래돼 보였다.

오전 10시 방문단은 생루이 지역 가스통 베르제 대학교에 도착했다. 개교한 지 25년이 된 짧은 역사지만 현재 세네갈 정부의 외교부장관 등을 배출한 명문 국립대학으로 꼽힌다. 농촌 개발 등 실용학문이 강하다고 한다. 김관용 지사 등 일행이 들어서자 이 대학 부설유치원 원아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나와 줄을 서 맞이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1호 새마을연구소


▎가스통 베르제 대학교측이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들과 함께 경북도 방문단을 맞이하고 있다.
대학 이름엔 세네갈 지도층의 정신이 배여 있다. 대학을 설립한 뒤 처음에는 ‘셍고르 대학교’란 이름이 검토됐다.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1906∼2001)라면 우리도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이다. 세네갈의 독립을 이끌고 초대 대통령을 지낸 시인이자 학자다. 당시 이야기를 전해들은 셍고르 전 대통령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대학에 붙일 수는 없다”며 “그렇다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세네갈의 철학자 이름을 붙여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철학자가 가스통 베르제다. 세네갈은 빈곤국이지만 이렇게 지성이 살아 있고 나름의 자존심이 있었다.

경상북도는 이 대학에 ‘새마을운동연구소’를 설립했다. 세네갈 현지에 맞는 새마을운동 모델을 정립하고 세네갈 인근 서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아프리카 대륙의 1호 새마을연구소다. 2015년 현재 경상북도는 새마을 세계화 사업을 시작한 지 11년째를 맞았다. 이를 기념해 경상북도는 지난 9월 인도네시아에 첫 해외 새마을운동연구소를 세운데 이어 이날 두 번째 연구소를 세네갈에 만든 것이다. 김 지사는 개소식에서 “우리는 어려울 때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 공동사업을 많이 했다”며 “거기서 나는 소득을 주민이 나눌 수 있었다”고 협동을 강조했다. 바이달라이 카네 총장은 “농업 발전은 의식 개혁에서 시작될 것”이라며 “우리 대학이 새마을을 통해 시민의식을 바꾸는데 앞장서겠다”고 화답했다. 연구소엔 대형 새마을기가 사무실 벽면 가운데에 붙여졌다. 현지 대학생들은 행사 현수막을 한글로 직접 제작했다. 대학 구내식당에서 방문단은 대학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쌀밥에 양고기를 곁들인 현지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 1시 방문단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경상북도 봉사단이 새마을운동을 보급 중인 탈바흘레 시범마을은 거기서 다시 두 시간을 가야 했다. 버스가 들어선 마을 입구에 새마을 깃발이 펄럭이는 하얀색 새마을회관이 보였다.

수십 명 아이들이 방문단을 반겼다. 손에는 세네갈 국기와 태극기, 새마을기가 들려 있다. 방문단이 들어서자 아이들은 깃발을 흔들며 또렷한 한국말로 소리쳤다. “새마을! 새마을! 새마을!”


▎1. 농기계업체 아세아텍이 현지에 기증한 ‘다목적 관리기’라는 영농기계를 시운전하는 김관용 경북도지사. / 2. 세네갈 어린이들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등 해맑은 동심을 보여줬다. / 3. 탈바흘레 마을 부녀회 관계자들이 전통북을 치며 경북도 방문단을 반겼다.
생루이의 탈바흘레 마을 주민들은 이렇게 한국 새마을 방문단을 맞았다. 김 지사가 주민들에게 “세네갈에서 아니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자 200여 명의 주민은 전통북을 두드리고 온몸을 흔들며 일행을 반겼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에 접어든 이곳의 기온은 32℃. 땅은 물을 적신 지가 오래인 듯 발을 딛기만 해도 모래 먼지가 훅훅 흩날렸다. 나무도 풀도 온통 매말라 있었다. 탈바흘레 마을은 경상북도가 전 세계 9개국에서 펼치고 있는 ‘새마을 세계화 사업’ 27개 시범마을 중 하나다.

탈바흘레는 330여 가구에 주민 700여 명이 거주하는 농촌이다. 쌀과 고구마·토마토 등을 주로 생산하지만 어린이의 절반은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도 못한다. 세네갈의 국민1인당 소득은 1092달러.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기 전 1970년대 한때 257달러에 머물렀던 한국에 비하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경상북도는 지난해 이곳에 봉사단원을 보내 새마을 가꾸기를 처음 시작했다가 에볼라 때문에 철수해야 했다. 올해 7월 다시 박의철(60) 팀장과 함진희(32·여)·김솔희(27·여) 씨를 이 마을에 파견했다.

빵 대신 ‘자조’ 정신을 전달


▎김관용 경북지사와 세네갈 청년고용부장관이 농업 인재 육성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탈바흘레 마을 어린이의 절반은 돈이 없어 학교 공부를 하지 못한다.
탈바흘레 마을은 처음엔 원조 물자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새마을 봉사단원들은 생각이 달랐다. 물자 지원 대신 쓰레기투성이인 마을을 청소하고 잎을 영양제처럼 쓰는 모링가 나무를 심었다. ‘스스로 노력한다’는 새마을정신, ‘자조(自助)’를 심어주려는 목적이었다. 김솔희 씨는 “처음엔 그저 구경하던 주민들이 이젠 우리를 따라 스스로 마을을 깨끗이 하고 나무를 심고 있다”고 전했다. 마을 이장 셰이크로는 “‘스스로 나서서 하는 마을’이란 얘기가 이웃마을에도 퍼졌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다른 지역과 달리 방문단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날 마을 진입로에는 빗질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봉사단은 또 주민을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다. 누가 어떤 질병이 있는 지 등을 파악한다. 눈병이 특히 많았다. 제대로 씻지 않고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세균 섞인 모래 먼지를 손으로 비벼댄 까닭이다. 단원들은 조사가 끝나는 대로 마을 곳곳을 돌며 방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올 초에 준공한 새마을회관에서 어린이와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시작했다. 부족언어인 월로푸어와 공용어인 프랑스어 수준도 점검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은 벌써 새마을회관에서 봉사단과 지내는 것이 즐거운 일과가 됐다.

다음 목표는 식량 증산이다. 세네갈은 한국처럼 쌀이 주식이다. 봉사단은 일단 벼 시범재배를 시작했다. 또 쌀 수확을 늘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번 방문단에 박소득 경상북도 농업기술원장 등이 동행해 토양의 상태를 진단했다. 박소득 원장은 “볍씨를 직접 뿌리는 대신 한국에서처럼 모내기를 하고, 또 영농기계를 사용하면 이내 쌀 생산량을 30% 이상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네갈강이 마을에서 2㎞ 거리에 있어 정부가 관개시설 등을 지원하면 곡창지대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경상북도는 또 ‘영농 선도자’가 될 주민을 한국으로 초청해 앞선 농업 기술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농기계업체 아세아텍은 이날 탈바흘레 마을에 ‘다목적 관리기’라는 영농기계 4대를 전달했다.

탈바흘레 마을 방문에는 파파 압둘라이 세크 세네갈 농업부장관과 주 세네갈 신종원 한국 대사도 동행했다. 그때였다. 신종원 대사가 연거푸 전화보고를 받았다. 세네갈과 국경을 맞댄 이웃 말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전갈이 온 것이다. 세네갈 대사는 주변 말리·기니 등 5개국을 함께 관할한다. 테러는 서방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말리의 래디슨 블루 호텔에서 발생했다. 알카에다 연계 조직원으로 알려진 테러범은 투숙객을 인질로 잡아 총격전을 벌여 20여 명이 희생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희생자 중에는 중국인도 포함됐지만 다행히 한국 교민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두 차례의 테러 위협에 노출된 방문단


▎※자료:경상북도, 2015년 11월 말 현재
이번 한국 방문단은 세네갈을 찾는 과정에서 두 차례나 테러 위협에 노출됐다. 출국 사흘 전 파리 테러가 발생해 파리를 경유하려던 당초 계획이 두바이로 긴급 변경됐다. 그 바람에 비행 시간은 편도만 두 시간이 연장돼 21시간을 타야 하는 강행군이 됐다. 또 세네갈에 도착해서는 말리 테러가 벌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네갈의 숙소도 말리와 같은 래디슨 블루였다. 테러범의 타깃이 될 수 있는 호텔이었다.

취재진은 탈바흘레 마을의 농가를 직접 방문해보았다. 하비시 할머니는 손자·손녀 넷과 마당에 쉬고 있었다. 아들과 두 며느리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할머니 집은 볏짚 지붕과 흙벽에 갈대가 덮인 구조다. 방안에는 흙바닥에 낡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천장도 없고 문도 없다. 이 마을에는 우물이 달랑 하나 있는데 깊이가 25m나 됐다. 인정 많아 보이는 할머니는 “먼 데서 손님이 온다고 해서 축복 기도를 드렸다”며 따뜻이 일행을 맞아주었다. 손자 잘되기만을 기도하는 우리네 할머니와 다를 바 없었다.

이날 밤 11시 방문단은 수도 다카르의 호텔 래디슨 블루로 돌아왔다. 호텔 입구는 흙더미가 쌓인 채 버스 출입을 막았다. 말리 테러의 대비책이었다. 세네갈 새마을운동은 이렇게 테러를 뛰어넘어 아프리카에 근면·자조·협동을 전파하는 평화의 랠리이기도 했다.

김 지사는 탈바흘레를 찾기 전날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살 대통령은 경상북도가 새마을 정신과 노하우를 전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김 지사에게 세네갈 최고 훈장인 ‘사자기사장’을 수여했다. 세네갈은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뒤 초대 셍고르 대통령부터 단 한 번도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정치가 안정돼 있는 나라다. 경상북도가 아프리카 새마을 세계화 사업 4개국에 에티오피아·르완다·탄자니아에 이어 세네갈을 포함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마키 살 대통령은 빈곤 퇴치로 눈을 돌려 농촌 근대화를 주요 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마키 살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새마을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김 지사를 직접 초청했다. 대통령은 세네갈을 방문한 김 지사와 1시간 가까이 새마을운동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는 이날 김 지사로부터 삼성전자의 아이패드를 선물 받고 직접 사용해 본 뒤 “내가 직접 쓰겠다”고 말했다. ‘서민 대통령’으로 통하는 마키 살은 선물을 받으면 공개한 뒤 필요한 국민에게 나눠 준다고 한다. 아이패드는 그만큼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농촌 주민의 정신을 바꿀 수 있는 새마을운동을 접하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통령궁은 초라해 보일 정도로 검소했다.

대통령 예방에 이어 방문단은 외교부 청사를 찾았다. 청년 고용부장관, 농업부장관이 주관하는 경상북도와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새마을운동을 모델삼아 세네갈 청년 4천 명을 농업·교육·봉사 인재로 키우는 데 협력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세네갈은 또 시범마을 인근에 한국 영농기술을 시범 적용할 200만㎡ 크기의 영농단지를 만들기로 했다.

200만㎡ 영농단지에 한국 영농기술을 심는다

호텔 래디슨 블루 다카르에서 창문을 열면 눈앞에 대서양이 시원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만날 수 있다. 호텔에서 200m쯤 떨어진 해변 모래사장에선 새벽부터 청소년들이 달리기를 하며 기초체력을 다지고 있었다. 축구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아이들이다. 세네갈도 우리와 접점이 있다. 세네갈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처녀 출전해 개막전에서 전 대회 우승국이자 FIFA 랭킹 1위 프랑스를 1대 0으로 물리치고 파란을 일으킨 주역이다. 더욱이 세네갈을 점령했던 프랑스를 꺾었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세를 몰아 세네갈은 스웨덴을 제치고 8강까지 올랐다. 대한민국과 함께 한국에서 기적을 만든 주인공이다. 또한 한국인이 즐겨 먹는 수입 갈치는 모두 세네갈에서 온다고 한다.

축구를 통해 기적도 만들어본 나라가 또 다른 기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새마을세계화재단 이지하 대표이사는 “시범마을 조성 2년차에 정부가 가능성을 믿고 전적으로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세네갈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 글·사진 다카르·생루이(세네갈)=송의호 중앙일보 기자

[박스기사] 아프리카 ‘아픈 역사’의 현장 고레(Goree)


▎다카르 동쪽의 고레 기념관 앞에 세워진 남녀 노예상.
노예무역의 상흔이 남은 피눈물의 공간… 노예로 팔리든가, 탈출하다 상어 먹이가 되는 절망의 섬

세 네갈의 수도 다카르에는 사람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관광지가 있다. 다카르의 동쪽에 있는 고레(Goree)섬이다.

유네스코는 1978년 창립 첫해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11월 19일 오후(현지시간) 한국 방문단은 고레섬을 찾았다. 해안에서 불과 3㎞, 배로 20분 남짓 걸리는 길이 900m의 작은 섬이다.

1444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상륙한 이래 이 섬은 아프리카 노예와 아라비아 고무, 밀랍 등을 거래하는 상업기지가 됐다. 고레라는 이름은 16세기 후반 네덜란드가 잠시 점령했을 때 자국의 남부 삼각주 ‘괴레(Goeree)’라는 섬과 비슷하다며 따 붙였다.


▎고레섬에서 팔려나간 노예를 채웠던 족쇄들.
이곳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노예무역의 상흔이 남은 피눈물의 공간이다. 아프리카에서는 7세기 이래 적어도 3천만 명 이상이 노예로 팔려갔다. 유럽 사람은 18세기부터 노예무역이 폐지된 1815년까지 아프리카 사람을 이 섬으로 잡아 들인 뒤 신대륙으로 파는 대서양 노예 무역 기지로 만들었다. 그동안 1500여 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이 이곳을 거쳐 노예로 팔려갔거나 몸이 부실해 바다에 던져져 상어의 먹이가 됐다.

노예들이 감금됐던 ‘노예의 집’은 보기만 해도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 지를 보여 주는 듯했다. 이런 노예의 집은 한때 29곳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여관 등으로 개조되고 한 곳만 기념관 형태로 남겨두었다. 기념관 앞에는 전통 손북 위에 올라선 쇠사슬을 한 부둥켜 안은 남녀 노예상이 있다. 잡혀 온 노예들이 부족마다 언어가 달라 북소리로 명령한 걸 상징한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1층은 노예 수용소에 2층은 감독관의 거처였다. 1층은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좁은 공간이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를 수용하는 시설로 구분되고 말을 듣지 않는 노예를 체벌하는 징벌방도 따로 있었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납치돼 온 노예들은 팔려가기 전까지 족쇄를 차고 이곳에 갇혀 지냈다. 이동할 때는 손을 뒤로 묶고 한 줄로 세워 걸쇠로 목을 채웠다. 모두 서너평 남짓한 방안에서 수십 명이 쪼그리고 앉아 하루 한 번의 용변만 허용된 채 짐승처럼 살았다.

거친 파도와 상어떼로 둘러싸인 고레섬은 노예로 팔리든가, 탈출하다 상어 먹잇감이 되어야 하는 절망의 섬이었다. 세네갈이 독립하자 초대 대통령 셍고르는 이곳을 사들여 아픈 역사를 기억하자며 기념관을 만들었다.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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