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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외교] ‘북한 병풍론’ 고수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드(THAAD)’ 도입하면 한국이 가장 위험해진다”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3월 7일 한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합동군사작전 시작… 중국 “북한 핑계삼아 ‘중국 포위망’ 구축하려는 것” 불쾌감 표출

▎시진핑 주석은 1월 6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김정은이라는 극동아시아의 ‘폭군’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 사진·중앙포토
“이놈의 산팡(三胖)이 또….”

1월 6일 오전 11시, 동행 중인 리잔수(栗戦書) 당중앙판공청 주임에게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했다고 합니다”라는 보고를 받은 시진핑 국가주석은 반사적으로 이렇게 탄식했다.

‘산팡(三胖)’이란 ‘3세 뚱보’라는 의미로 중국의 공산당·중앙정부 간부들 사이에서 김정은 제1서기를 가리키는 은어가 되어 있다. 원래는 ‘金三胖(김씨 패밀리의 3세 뚱보)’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왠지 모르게 앞머리의 한 글자가 누락됐다.

당시 시진핑 주석(이하 시진핑)은 중국 서남부의 중앙 직할지로 중국 최대 인구(3000만 명)가 밀집돼 있는 대도시 충칭(重慶)시를 2박3일 일정으로 시찰 중이었다. 충칭시의 수장인 쑨정차이(孫政才) 당위서기는 2015년 GDP 성장률 11%를 달성해 전국 31지구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시진핑은 자신보다 열 살 어린 데다 절대 충성을 맹세한 이 남자를 후계자로 보고 확인 차 먼 길을 달려왔다. 그런데 베이징에서 이런 ‘부하오샤오시(不好消息: 좋지 못한 소식)’가 날라온 것이다. 시진핑이 김정은 제1서기(이하 김정은)에게 분통을 터트린 것은 이번이 이미 다섯 번째다.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시기는 2012년 11월. 김정은이 조선 노동당 제1서기에 취임한 시기는 같은 해 4월이다. 즉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양국의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원만하지 않았다.

김정은 향한 네 차례의 ‘분노’


▎미군이 2013년 하와이 인근 섬에서 실시한 ‘사드(THAAD)’의 요격용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 미국이 한반도 배치를 원하는 ‘사드’는 요격고도가 40~150㎞에 이른다. 탐지거리가 최대 2000㎞에 달하는 레이더 때문에 중국이 반대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김정은을 향한 시진핑의 첫 번째 분노는 북한이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한 데 이어 2013년 2월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터져나왔다. 2013년 5월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 국장이 중국을 방문해 해명한 끝에 간신히 관계를 수복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분노는 2013년 12월 김정은이 중국과 북한의 가교와 같은 존재였던 ‘친중파의 수장’ 장성택 당 행정부장을 전격 처형했을 때 일어났다. 이때 시진핑은 김정은에 대해서도 분노했지만, 중국중앙텔레비전의 뉴스 속보를 보고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더 격분했다. 중국 정부의 정보수집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사건이었다.

지난해 9월 3일 전승 7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김정은이 참가하지 않았을 때도 시진핑의 심기는 편치 않았다. 중국과 북한은 한국전쟁의 ‘혈맹 관계’이며 실제로 1961년부터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밖에도 중국은 매년 북한에 식량·석유·화학 비료를 대량으로 원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는 비행기로 불과 한 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인사 차 방문도 하지 않았다. 김정은의 이런 행보는 시진핑 입장에서는 대단한 결례로 느껴졌다. 이런 일은 또 있었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북한 모란봉악단이 공연 직전에 공연을 취소하고 귀국해버린 것이다. 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시진핑은 지난해 9월 남중국해의 매립과 사이버 테러의 문제로 미국의 오바마 정권과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자 주변국을 상대로 ‘미소외교’를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같은 해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 노동당창건 70주년 군사 퍼레이드에 류윈산(劉雲山) 당상무위원(공산당 서열5위)을 파견했다.

이때 비로소 김정은은 외국의 요직에 있는 인사와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은은 류윈산 서기에게 “내 악단(모란봉악단)을 연말에 베이징에 파견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중국은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류윈산 서기는 귀국 후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의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측에 모란봉악단의 공연 내용이 담긴 DVD를 제출토록 했다. 당시 이 DVD가 제출되는 과정에서 검토를 맡은 한 젊은 외교관은 ‘중국에서 공연해도 문제없음’이라고 판정했다.

2015년 12월 베이징역에 ‘미녀군단’이 도착했다. 그녀들은 민쭈호텔(民族飯店)에 여장을 풀자마자 곧바로 공연 회장인 국가대극원으로 이동해 이틀 후 공연을 위한 리허설을 시작했다.

이 리허설을 중국 중앙대외연락부(中聯部), 외교부, 문화부 담당자들이 모여 지켜봤다. 그때 외교부의 한 담당자가 모란봉악단이 북한의 핵실험 성공을 칭송하는 영상을 약 15초간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 담당자는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방지를 협의하는 6자회담의 의장국이며 과거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에도 동참하고 있다”며 문제의 영상을 삭제토록 요구했다.

그러나 악단의 인솔 책임자인 조선 노동당선전선동부의 최휘 제1부부장은 이런 중국 측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이 공연 내용은 김정은 제1서기가 직접 지도해서 정한 것이며 지난 번 중국 측도 이미 승인하지 않았나?”

중국, 극동아시아의 ‘폭군’ 대처방안 고심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이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열리는 친선 공연을 위해 평양에서 국제열차로 출발했다. 그러나 공연의 연출문제로 야기된 논란 끝에 첫 공연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철수’를 결정했다. / 사진·중앙포토
중국 측은 “영상을 빼지 않으면 이 공연에 참석할 중국 간부의 계급을 부부장(차관급)급으로 격하하겠다”고 통고했다. 이에 최휘 제1부부장은 “본 공연은 김정은의 ‘대리’이며, 시진핑 주석 혹은 리커창 총리의 출석을 요구한다”고 맞섰다.

밀고 당기기가 시작된 지 하루 만에 북한은 “주석과 총리가 도저히 안 된다면 당 중앙상무위원(톱7) 중 누군가가 출석해줄 것을 원한다”며 한 발 양보했다. 이에 중국이 “당 중앙정치국(톱25) 중에서 한 명을 파견한다”라고 답하며 다시 평행선이 됐다.

최휘 제1부부장의 입장에선 여기서 실수라도 한다면 귀국 즉시 숙청된다는 것을 불 보듯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양의 김정은에게 세세히 현장을 보고했다. 김정은이 “공연의 성사 여부는 현장의 판단에 맡긴다”라고 하자, 최휘는 중국 측에 “지금부터 15분 내에 당 상무위원의 출석을 결정해라. 그렇지 않으면 귀국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왕이(王毅) 외무장관은 시진핑과의 의논 끝에 “돌아갈 테면 멋대로 해라”라고 답했다.

결국 모란봉악단은 첫 공연을 불과 몇 시간 앞 두고 ‘명예로운 철수’를 하게 됐다. 미녀들은 중국 측이 제공한 버스 승차를 거부하고 국가대극원에서 민쭈호텔까지 영하 10도의 거리를 걸어가며 항의의 데모 행진을 했다. 연말 정체로 몸살을 앓던 인근의 도로는 이 뜻밖의 미녀행진에 의해 정체가 더욱 심해졌다.

모란봉악단 간부는 평양이 보낸 고려항공 특별기로, 남은 단원은 베이징 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김정은이 직접 마중 나와 “너희들이 영웅이다”라고 추켜세우며 노고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흘 뒤인 12월 15일 김정은은 수소폭탄 실험을 승인했다.

돌이켜보면 북한은 중국을 함정에 빠트리려 했다고도 분석할 수 있다. 이유인즉 모란봉악단이 베이징에 도착한 12월 10일 조선 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평양의 평천 혁명공적지를 시찰하는 과정에서 “오늘 우리 조국은 국가의 자주적 권리와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위의 핵폭탄인 수소폭탄이 거대한 폭음을 울려 퍼지는, 강대한 핵 보유국이 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즉 북한은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하고 류윈산 상무위원과의 회담이 있던 당시 이미 1월 8일 김정은의 생일에 맞춰 수소폭탄 실험을 강행할 것을 예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원조가 끊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란봉악단 공연을 통해 핵실험 영상을 중국의 주요 간부에게 보여줌으로써 승인을 얻어 보증서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을 앞두고 약 30분 전에 중국에 사전통보를 하며 “양국 관계는 이 실험과 관계없이 앞으로도 순탄할 것이다”라는 서론까지 붙였다. 경제원조는 끊지 말고 계속해달라는 뜻이다.

시진핑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1월 6일 베이징으로 돌아오자마자 김정은이라는 극동아시아의 ‘폭군’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마침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할 북한 제재안의 초고를 중국에 건네 왔다. 과거 미국이 이라크에 행사했던 제재와 비슷한 수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일례로 미국은 2005년 김정일의 거래 은행이었던 ‘방코델타 아시아’를 거래금지 은행으로 지정했다. 이에 겁을 먹은 해당 은행은 52개의 계좌에 있던 김정일의 자금 총 2500만 달러를 동결했고 북한은 충격에 빠져버렸다.

대북 유화정책이냐? 대북 강경론이냐?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무렵 중국은 남중국해의 매립 문제로 오바마 정권과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자 주변국을 상대로 ‘미소외교’를 시작했다. / 사진·중앙포토
미국은 이때의 경험을 통해 금융제재가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중국에 북한 기업과 개인 계좌를 동결토록 요구해온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각 부처의 반응은 반으로 갈라졌다. 첫째 ‘라오위다이(老一代: 베테랑파)’는 대북 유화정책을 주장했다. 이는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에 주류였던 ‘북한 병풍론’ 혹은 ‘북한 번견(番犬)론’을 답습하는 사고방식이었다.

북한 병풍론은 북한이 미군의 중국 대륙침입을 막는 병풍과 같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병풍을 잘 ‘손질’(원조)해두는 게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북한 번견론은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 미국을 향해 짖어주는 번견(番犬: 집 지키는 개)과 같기 때문에 ‘먹이’(원조)를 주거나 ‘산책’(지도자의 방중)에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김정은이 아무리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되풀이하는 폭군이라고는 해도 중국에 적대하지 않으며 한국을 공격할 리도 없다. 무엇보다 북한의 통치 상황은 시리아, 이라크 등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상태다. 때문에 중국은 김정은 정권을 자극해 국경지역을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과 근접한 중국 동북3성의 경제 악화가 터졌다. 2015년 중국 전역 31지역 GDP성장률 중 흑룡강성(黑龍江省) 28위, 지린성(吉林省) 29위, 랴오닝성(遼寧省) 31위로 동북3성은 나란히 최악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북한에 강경한 제재를 가하게 되면 북한 난민의 대량 유입이 일어나 동북3성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편 ‘신위다이(新一代: 소장파)’는 ‘대북 강경론’과 ‘북한 희생물론’을 주장했다. 최근 중국의 최대 현안은 남중국해를 매립해 바다의 만리장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으로서는 미국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대적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희생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이 바로 김정은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인민해방군 심양(瀋陽)군구의 입장이 반영됐다. 지난해 9월 시진핑 주석이 ‘30만 명의 재군(裁軍: 군인감소)’을 선언하자 심양군구는 삭감의 위협에 처하게 됐다. 결국 이들로서는 삭감을 피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고민 끝에 전통적인 ‘북한 병풍론’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중국이 북한 제재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과의 ‘이면 충돌’ 리스크가 있었다. ‘이면’이란 남중국해와 한반도를 말한다.

현재 시진핑 정권과 오바마 정권은 제1열도선을 둘러싸고 격한 공방을 펼치고 있다. 제1열도선은 캄차가 반도와 일본열도, 한반도, 대만, 필리핀, 대순다(Sunda)열도로 이어진 라인을 말한다.

제1열도선의 제해권(制海権)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최근까지 약 70년 간 미국이 장악해왔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슬로건에 내세우고 있는 시진핑 정권은 ‘제1열도선’을 미국에서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제1열도선’을 확보하지 못하면 21세기 아시아를 중국의 시대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박근혜, 우리 편 되어줬다”며 미소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탄도 미사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하자 한·미 양국정부는 사드 배치를 위한 교섭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이틀 후 아베 일본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반도 사드 배치 논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 사진·중앙포토
최근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암초 매립공사를 가속화해왔다. 이에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자 지난해 9월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남중국해가 자유로운 바다인 것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 함대를 파견한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같은 해 10월 27일 이지스 구축함 ‘라센함’이 난사군도(南沙群島, 스프래들리 군도)의 주비자오(渚碧礁, 수비 환초) 12해리에 들어와 항해했다. 이어 12월 10일 B52폭격기가 난사군도의 화양자오(華陽礁, 쾨테른 암초) 부근 상공을 비행했다.

남중국해와 더불어 중국이 전부터 경계하고 있었던 사안이 북방의 ‘사드(THAAD: 고고도방위 미사일)’ 배치 문제였다. 미국은 조속한 시기에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입장이었고 중국은 이를 단호히 반대해왔다. 그런데 최근 한반도에 북한 위기의 기운이 감돌자 미국이 이에 편승해 박근혜 정권을 향해 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초조해진 시진핑은 지난 2월 5일 음력정월 축사를 서로 교환하는 전화회담이라는 명목으로 박 대통령에게 직접 “사드를 도입하면 가장 위험해지는 것이 한국이다”라고 사드 도입 중지를 권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사드는 중국을 향한 것이 아니고, 북한만을 향한 것이다”라며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2월 7일 오전 북한이 장거리탄도 미사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하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같은 날 오후에 한·미군이 합동으로 사드 배치를 위한 교섭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만 3년에 걸쳐 이룩해온 ‘한·중(韓中) 밀월관계’가 와해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박 대통령이 상당히 우회를 했지만 드디어 우리 편으로 되돌아와줬다”라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4월 총선거를 앞둔 박근혜 정권은 더 이상 대북 유화정책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일까? 사드 도입과 개성공단 폐쇄는 박근혜 정권이 큰 도박에 나섰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한국군은 3월 7일부터 32만 명에 가까운 군인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합동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한 방 먹은 것은 중국이었다. 2월 7일 이후 현지언론에 ‘薩徳’(사더: THAAD)이라는 문자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거센 비난 보도가 이어졌다. 여기에 쓰는 한자 ‘薩’(살)은 중국에서는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한자를 보고 중국인은 악명 높았던 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薩達姆·侯賽因’)을 떠올린다. 결국 중국 언론이 사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 한자를 사용한 것이다.

2월 12일 뮌헨에서 열린 제4회 시리아 국제지원 외무장관회의를 마친 중국의 왕이 외무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려고 하고 있는 사드에 대해 우리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드의 X선 레이더가 커버하는 것은 한반도의 방위를 크게 넘어서 아시아 대륙을 깊숙이 들어가는 범위다. 이는 중국의 안전과 국익에 대한 직접적인 협박일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타국 안전과 국익도 협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왕이 외무장관은 중국의 유명한 고사성어를 소개했다. ‘항장무검 의재패공(項庄舞剣 意在沛公)’와 ‘사마소지심 로인개지(司馬昭之心 路人皆知)’였다.

“미국이 또 하나의 나토를 구축하려 한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드를 도입하면 가장 위험해지는 것이 한국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사드는 중국이 아닌 북한만을 향한 것이다”라며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 사진·중앙포토
한반도 안정에 책임을 가진 중국은 다음의 세 가지 입장을 견지한다. 첫째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 둘째 무력이 아닌 대화와 교섭에 의한 해결, 셋째 중국의 국익을 생각한 안전보장이다. 그런데 사드는 이 세 원칙에 커다란 장해물이 되는 것이다.

‘항장무검 의재패공’은 고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연회인 ‘홍문연(鴻門宴)’에 얽힌 고사다. 진시황제 사망 후 천하통일을 꾀하던 항우는 대군을 인솔해 함양의 수도를 점령하려 했지만 약소한 유방군이 먼저 수도에 들어가버린다. 그러자 항우는 유방을 홍문연에 불러내고, 항우의 동생 항장이 그 연회에서 ‘칼춤’을 선보인다, 이것이 유방의 목숨을 노린다는 의미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사마소지심 로인개지’는 위나라 조가의 왕위를 찬탈하려 했던 부하 사마소의 마음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다 알고 있다는 의미다.

즉 왕이 외무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항한다는 구실로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지적은 진실에 가까웠다. F22 스텔스 전투기 14대를 동아시아에 가지고 온 데다 지난 3월부터 한 달간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합동 군사연습을 실시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날로 증가하는 중국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중국의 한 외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최근 동향이 한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의 불안감 역시 지금의 한국과 같아지는 것이다. 미국은 중동에서 이란의 핵 위협을 핑계로 러시아를 공격하기 쉬운 태세를 갖추려 했다. 사드도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핑계삼아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외교 관계자는 “미국이 아시아에 또 하나의 나토(NATO)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한국이 이에 가담한다면 한반도에 우크라이나와 같은 또 하나의 비극이 생길 위기가 높아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3월 2일 유엔 안보리는 만장일치로 북한에의 제재 결의를 가결했다. 북한에 항공연료 수출 금지(민간항공기용 제외), 북한으로부터 금·티타늄 등 광물 수입 금지, 위법행위에 관여한 북한 외교관 추방 의무화와 같은 조치가 결의됐다. 이 북한 제재 결의에 대해서 중국의 또 다른 외교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쉽게 말해 당초 미국이 내걸었던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는 제재’에서 ‘핵미사일 개발을 늦추는 제재’로 궤도가 일부 수정됐다. 중국은 사실상 김정은 정권을 위기에서 구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여전히 기존의 ‘북한 병풍론’, ‘북한 번견론’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앞으로도 북한에 대한 원조를 계속해갈 것이다. 오는 5월 조선 노동당 대회에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톱7)을 대표로 하는 북한방문단이 파견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합동 군사연습이 진행 중이다. 이에 북한은 보복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한반도 정세를 지켜보고 있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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