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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선] 아이오와-뉴햄프셔 경선 현장을 가다 

70대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은 주도면밀한 전략의 산물 

허은아 정치전문 이미지컨설턴트 mannernia@yerago.co.kr
잘 짜인 프레임, 달인 수준의 소통으로 허를 찌른 샌더스와 트럼프… 스킨십과 겸손 부족한 힐러리, 카리스마와 열정 부족한 부시는 반격카드 마련에 고심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인 버니 샌더스의 열풍이 대단하다. 1%의 지지율로 시작한 버니는 언론의 안중에도 없었던 인물이었다. 2016년 2월 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60% 지지율로 압승을 거뒀다.

▎‘막말정치’로 논란이 됐던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은 거품이 아니라 진짜였다. 뉴햄프셔에서는 35%를 득표해 2위와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내며 승리했다.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유권자들은 화났고, 미국 변화의 싹은 움트기 시작했다. 2016년 2월 9일(현지 시각)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개표시각인 저녁 8시부터 미국이 들썩였다. 설마설마했던 민주·공화 양당의 아웃사이더들이 압도적인 표차로 1등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는 준비된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60% 지지율로 압승을 거뒀고, 35%를 득표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역시 2등과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내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다음 날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모든 신문사에서는 두 아웃사이더의 승리에 관한 장문의 기사와 더불어 미국이 분열되고, 변화하고 있다는 논평을 쏟아냈다. 미국 대선이 혼돈 그 자체에 빠져들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지난해 8월 필자가 이미지 컨퍼런스 참석차 워싱턴 DC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28%를 오가던 트럼프 후보의 이상 지지율에 대해 다들 한때의 거품 정도로 치부했다. 현지 정치 전문가들마저도 오늘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띄워주기가 한창이었다. 민주당도 조 바이든 부통령이 출마하느냐 안 하느냐를 놓고 힐러리와의 지지율을 분석하는 데 여념 없었다. 1%의 지지율로 시작한 버니 샌더스 상원위원은 언론의 안중에도 없었다. 바로 5개월 전만 해도 예상조차 못했던 양당의 아웃사이더들이 힐러리와 부시를 압도적으로 눌렀으니 미국의 기득권자들이 당황해 할 만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전략 ‘미디어를 믿지 마세요’

미국의 첫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현장에서 만나본 그들에게는 분명 단단함이 있었고, 특별함이 묻어났다. 그들의 인기는 한때의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고,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인 지지 후보 목록에 버니와 트럼프를 생각해볼 정도로 그들은 대선후보로서의 매력도 충분했다.

2월 1일 프라이머리보다 1주일 먼저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는 트럼프의 지지율이 거품이었나 싶을 정도로 3등 마르코 루비오와는 겨우 1% 차이로 턱걸이 2등을 차지했다. 1등 테드 크루즈와는 3.4% 밀렸다. 사전조사와 다르게 나온 저조한 트럼프 지지율에 많은 전문가는 ‘역시나 거품’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민주당도 대선 레이스의 출발지이며 미국 대선의 풍향계라고 불린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여성 첫 승리자’라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 때문에 클린턴에게 0.2% 차이로 진(사실상 비긴) 버니보다는 이긴 힐러리에 언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승리의 여신은 예상대로 움직여주는 듯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뉴햄프셔에서 아웃사이더들의 선전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차이로 압승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당장 각 당의 지도부가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과거의 선거 전략은 잊어라, 모든 것이 변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미국 정치전문가 대부분이 내놓는 평가의 기조다.

이 변화에 대해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만난 화제의 대선 후보 네 명의 ‘집회 이미지(Rally Image)’ 분석을 통해 그들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대통령후보 이미지(대선후보 이미지) 요인을 유권자 관점에서 찾아보고자 2월 1일 진행된 아이오와

코커스 하루 전 후보들의 행사 현장을 찾았다. 후보자와 지지자들을 직접 만났고, 코커스 이후 며칠 동안 현장에 머물면서 행사 이미지를 분석했다. 뉴햄프셔의 프라이어머리 자원봉사 현장과 투표소 풍경,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경선까지 두루 돌아보았다.



[1] ‘터프한 보수’ |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미디어와 불화…‘미국의 소리 없는 다수’ 대변


▎(왼쪽)행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직접 만났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며 친근하게 스킨십을 시도했다. (오른쪽)트럼프를 기다리는 행사장에서는 지지자들로 북적거렸다.
미국 대선후보경선의 키워드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창조’였다. 트럼프 후보가 첫 코커스인 아이오와에서 24.3%의 지지를 받으며 2등을 했다는 것은 결국 그의 지지율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고 실제로 표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첫 경선이었다. 아이오와 드모인에서 두 시간 걸리는 트럼프 행사장까지 직접 다녀온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프라이머리에서는 트럼프의 상승세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현장에서 만나는 유권자 수가 증가할수록 그에게 덧칠된 편견이 점차 벗겨져나가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첫 징조는 첫째 프라이머리 뉴햄프셔 맨체스터 시내였다. 트럼프를 만나고자 5000명 이상의 청중이 모였고, 이들은 아이오와에서와는 다르게 트럼프 지지에 대한 본심을 표로 분출했다.

부동산으로 어마어마한 부(富)를 축적한 트럼프는 기업의 경쟁력과 자본의 이익을 강조하며 ‘터프한 보수’를 표방한다. 사업가다운 접근으로 기존의 정치를 바꾸는 혁명을 이야기한다. 트럼프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막말과 여성 비하발언으로 몰상식한 남자로 낙인 찍힌 후보다.

트럼프는 정말 미국의 모든 유권자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 수준 이하의 후보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그는 준비가 탄탄한 미국의 사업가이자 아버지다. 멍청하고 무식한 백인의 이미지는 미디어가 만든 가공의 이미지다.

스피치가 시작되니 이유를 알 듯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일관되게 미디어와 전쟁을 하는 사람 같았다. 미디어를 때로는 무섭게 공격하고, 때로는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다 뉴햄프셔에서부터 그의 진짜 전략이 드러났다. 스스로 언론 프레임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유권자들이 자율적으로 ‘TTT 16(Tell The Truth 2016)-Don’t believe the liberal media!’ 운동을 만들어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진실을 말하라. 리버럴 성향의 미디어를 아직도 믿는가’ 정도로 해석된다. 뉴햄프셔 승리 이후 트럼프의 언론 노출은 더 잦아졌다. 어쩌면 ‘막말’조차 ‘의도된 연출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트럼프의 연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철저히 준비된 스피치다. 그동안 부정적으로 각인된(?) 막말도 연설에서는 집중도를 높이는 하나의 강화기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훈련된 연설기법을 제대로 구사하고 특히 유머, 솔직함, 대담함 등은 청중을 집중시키고 자신을 드러낸다. 지루할 틈이 없다. 무거운 정치적 단어보다는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와 감정선을 따라 갈 수 있는 어휘를 선택한다. 마치 유명강사의 강연 같다. 아마도 방송 진행을 했던 경험이 그를 능수능란한 연설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한 듯하다.

처음에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본심을 드러내길 꺼려하던 ‘미국의 소리 없는 다수(The silent majority)’ 백인 유권자도(아시아계와 흑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순간 큰 소리로 ‘트럼프’를 외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트럼프는 쌍방향 소통의 달인이다. 청중과 함께 반응하며 ‘나는 지금 이 자리의 바로 당신과 이야기하는 중이다’라는 메시지를 심어 준다. 토크쇼처럼 말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유권자들이 대기할 때다. 마치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것처럼 음악을 들으면서 앉아 기다리면 된다. 아이오와 행사장에는 롤링스톤의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2012), 비틀스의 ‘Hey Jude’(1973), 파파로티의 ‘Turandot’ 등 익숙한 팝이나 가곡 등이 흘러나왔다. 어느 행사장에도 의자가 없었던 후보들과는 달랐던 대기문화는 아마도 최고급 호텔사업을 하는 그와 스태프들이 기존 비즈니스 행사처럼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드디어 ‘신사숙녀 여러분~’ 성우의 힘찬 소개와 함께 쇼의 주인공처럼 트럼프가 등장한다. 부인과 딸은 늘 트럼프 연설에 앞서 지지연설을 해준다. 여기서 트럼프의 딸 이반카 트럼프를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기업의 부사장이며 와튼스쿨을 졸업한 재원이다. 시카고의 트럼프 호텔의 회계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인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그는 함께 일해보고 싶을 정도로 나이스하고 똑똑하고 배울 점이 많은 사장이라고 한다. 현재 셋째를 임신 중인 그의 스피치는 역시나 빛을 발했다. 트럼프 후보의 그동안 ‘멍청한 백인의 이미지’를 충분히 상쇄해주면서 시너지를 낸다. 모델 출신의 섹시한 매력이 아니라 스마트한 사업가이자 아버지의 딸로서 말이다.

스피치가 끝나자 많은 사람이 트럼프의 사인을 받으려고 모여들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 필자도 악수를 하며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의 대화는 간명하고 명쾌했다.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뒤에서 우리를 사진 찍는 저 사람 누구에요?”, “제 친구입니다.”, “아 그렇군요. 나도 당신의 친구인 거지요? 친구라면 코커스에서 의리를 보여줘요~.”, “네. 당신을 응원합니다.”, ”고마워요. 코커스에서 봅시다.” 필자와 동행한 지인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싱긋 웃는 얼굴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트럼프에게는 약점이 있다. 무슬림과 이민자들과 같은 소수민족에게 그는 이미 무례한 강자다. 공화당 주류는 걱정이 태산이다. 만약 트럼프가 지금의 백인 보수층의 인기를 발판으로 후보가 된다면, 향후 본선에서 상대해야 할 소수 인종, 중도층 공략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미디어와의 관계 설정도 더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 현재 미디어에게 그는 시청률을 올려주는 상품일 뿐이다. 자신의 상품성을 잘 활용하는 전략 수립이 숙제다.

[2] ‘민주적 사회주의자’ | 민주당 버니 샌더스
젊은층 83%가 좋아하는 70대


▎뉴햄프셔에서는 ‘정직’과 ‘믿음’에 대해 유권자의 91%가 버니를, 5%가 힐러리를 선택했다.
공화당에서 떠오르는 스타가 트럼프라면 민주당에서는 당연히 버니 샌더스다. 1%의 지지율로 시작한 그가 정치권 거물이자 준비된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맞짱을 뜨고 있다.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는 75세 버니(그는 자신을 샌더스보다는 애칭인 버니로 불러주길 바란다고 한다) 후보는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면서 반(反)자본주의 정서를 키워왔고, 월가와 거대자본을 개혁하고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언론을 통해 만난 그는 어깨가 구부정한 고령의 정치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18~29세의 젊은층에게 83%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는 걸까? 힐러리는 16%에 그치는 이 마당에 말이다. 버니 후보의 행사장인 그랜드뷰 대학의 농구장으로 향했다.

먼저 하나둘 모여드는 지지자들을 살펴보았다. 현장 서포터들의 힘은 선거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지자들의 분위기는 지지하는 후보의 이미지와 거의 일치한다. 음식점의 손님을 보면 음식점이 맛으로 승부하는지, 멋으로 유혹하는지 알 수 있듯이 선거판에서도 서포터들을 보면 후보가 평상시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버니의 행사장에서 만난 서포터들의 표정엔 ‘버니를 응원해주세요’라는 동양인들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동지애가 보였다. 서포터들은 줄 서 있는 지지자들에게 다가와 눈을 마주치며 후원을 요청했다. 버니의 서포터들은 비용을 받지 않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버니보다도 더 나이가 많음직한 노인들뿐 아니라 프랑스와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왔다는 외국인과 열정적인 젊은이들까지 버니 캠프는 총천연색 서포터들로 채워져 있다. 선거 전략가들이 중심을 이루는 힐러리 캠프와는 밑바닥 조직부터가 다른 구조다. “왜 버니를 지지하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지지자들은 “그는 슈퍼팩(선거자금 모금 법인) 자금이나 월가의 자본에 의존하는 대신 유권자 개인의 작은 돈(27달러)을 모아 혁명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입을 모았다.

‘1% 대 99%의 불평등 타파’라는 간단명료한 선거전략은 그날 2000여 명의 지지자를 끌어 모았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지지자들이 쏟아내는 응원 구호들로 그랜드뷰 대학의 농구장은 후끈 달아오른다. 흥분과 열기로 가득한 행사장에 있노라면 개막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다. 각자 조용히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행사 시작을 기다리는 트럼프 후보 행사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믿을 수 있는 미래 (A future to Belive in)’, ‘오늘의 정치혁명에 동참해주세요(Join the political revolution today)’, ‘크게 생각하라(Think big)’, ‘비매품입니다(Not for sale!)’, ‘나 말고 우리(Not me us)’, ‘버니를 믿어요(I belive Bernie)’ 등 수많은 선전 홍보물과 구호까지도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그는 결국 열정적인 젊은 지지자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미국의 젊은층은 우리나라의 청춘들만큼이나 아프다. 버니는 아픈 그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감싸주며 행사장으로 불러보았다. 개인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게 된 건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와 선거전략 덕분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세련미는 없지만 솔직하고 대범한 버니의 연설


12개 그룹의 찬조 연설이 끝난 후 버니 후보가 등장했다. 지지자들은 준비해 온 응원 도구들을 흔들며 환호했다. 연설 중간에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선거운동이었다.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이야기할 때 지지자들도 함께 따라 외쳤고 큰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솔직히 그의 스피치에서는 힐러리처럼 강한 카리스마와 세련미는 보이지 않는다. 연설 내내 축 처진 어깨는 파워풀한 스피치와 묘한 대조를 이룰 정도다. 그럼에도 빠져드는 이유는 솔직함과 대범함 때문이다. 정치인생을 관통하는 실행력이 스피치에 힘을 더한다. 경쟁자 힐러리에 견줘보면 아주 큰 무기다. 힐러리의 네거티브 공격에도 맞받아치지 않는다. 2015년 네거티브 공세를 하지 않기로 한 약속 때문이다.

버니는 검소하다. “개인의 패션스타일은 시간낭비”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왜 기자들은 정치인의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미국의 현실에 더 관심을 가지라고 충고한다. 가족들을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버니가 대통령이 된다면 퍼스트레이디가 될 부인 제인 샌더스는 지금까지 보아온 어떠한 퍼스트레이디보다도 검소할 것이다. 버니 정치활동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로서 항상 곁에서 버니를 응원해주는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검약한 생활도 유명하다. 힐러리에게 악재가 된 딸의 사치, 그리고 미녀인 트럼프 부인의 화려함과 비교한다면 버니에게 그의 부인은 대중적 신뢰를 사는 든든한 자산이라고 하겠다. 이 또한 이미지 전략 중 하나다. 버튼다운 셔츠와 구겨진 양복은 이미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에게도 아쉬움 점은 있다. 75세 고령의 나이가 주는 건강에 대한 우려다. 이를 불식시키려는 듯 뉴햄프셔에서 아들, 손자들과 농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기존 오바마 때의 대중적 파괴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승리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높이 올린 승리 사인과 그의 미소는 지지자들에게는 아주 큰 선물이 될 것이다.

또 50대 이상의 유권자들에게 사회주의자라는 이미지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화두다. 버니가 날로 지지세를 확산해간다고는 하지만 최종 승자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힐러리의 파워는 8년 이상 다져온 충성도 높은 지지층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3] ‘여성 리더’ | 표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겸손, 정직, 인간미 그리고…


▎힐러리는 8년 전에 비해 겸손함을 잃었다. ‘늙은 아저씨’로 전락한 듯한 빌 클린턴에 비해 힐러리의 이미지는 너무 강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인상을 줬다.
힐러리 클린턴. 여성리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동경을 품게 하는 이름이다. 그의 리더십을 알고자 필자 또한 관련 도서들을 구매하고 연구하고 분석했다. 8년 후 대선후보로 그가 재도전한다고 했을 때 끝없는 도전정신과 노력에 경탄했다.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수자들을 위해 보여온 노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공로다. ‘팬심’을 몰고 다니는 정치인이다. 8년이라는 세월로 인해 어쩌면 미국의 대선후보 중 가장 익숙한 주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힐러리의 스피치는 완벽했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을 잡고 흔들 정도로 힘이 넘치는 연설을 선사했다. ‘역시 강한 후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발음, 톤, 스피드, 몸짓 등 다른 어떤 후보보다도 대중 연설에서만큼은 힐러리가 최고였다.

문제는 ‘겸손함의 부족’이다. 어느 순간인가 그의 눈에서는 ‘이 나라를 위해’라는 진보주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개별 정치인의 욕심이 어른거린다. 마치 이제는 “내가 할 차례, 아니 내가 해야 해”라는 욕심 말이다. 이기지 못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날 그 자리에서 함께해 준 빌 클린턴과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늙은 아저씨’로 전락한 듯한 빌과 힘이 넘치는 여성 후보 힐러리의 대조적 이미지는 득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남자 친구 관련 일화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장 강력한 지지자인 남편에게 먼저 부드럽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연출해 보여주는 것도 필요치 않을까 하는 단상을 갖게 했다.

승리의 스피치를 열정적으로 마치고 힐러리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순식간에 연단을 빠져 나와 밖으로 나가버린다. 남편 빌은 지금까지 기다려준 지지자들과 스킨십을 해보려 하지만 이미 힐러리가 나가버려 부랴부랴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무례함의 대명사가 된 트럼프 후보도 스피치가 끝나고도 의외로 아주 오랜 시간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계속 손을 흔들어주고 대화를 나누며 눈높이를 맞춘다. 지지자들 이 힐러리를 찾는 건 비단 그의 스피치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축하해주고 유대감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현장에서 보여준 힐러리의 태도는 전문가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이미 많은 언론사에서 힐러리의 단점을 지적한다. 정직(Honesty)과 인간미(Humility)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힐러리는 선출되는 선거인단이 아닌 당연직 선거인단인 특별대의원(super delegate)들의 조직적 지지를 업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힐러리를 직접 만나는 유권자들이 만약 필자와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면 ‘표심’이 어떤 식으로 흐를지 장담할 수 없다. 지난 2008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는 뉴햄프셔에서 11만2404표를 얻어 오바마를 앞선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2016년 다시 찾은 뉴햄프셔에서는 버니가 13만9000표를 가져가는 동안 8만9000표를 받는데 그쳤다. 2만3000명은 어디로 갔을까?

[4] ‘대통령의 가족’ | 공화당 젭 부시
3대 가는 부자 없다? 지지율 바닥 기는 젭

힐러리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시작으로 젊은 여성 유권자층 공략에 본격 돌입했다. 여성 투표에서도 버니가 힐러리를 앞섰다고 한다. 최초 여성 대통령이라는 매혹적인 슬로건조차 여성들의 표심을 끌어안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내가 만약 힐러리 캠프의 전략가라면 그의 욕심을 가리든가,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기고 싶다면 유권자에게 친절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서 엄마의 마음, 선배의 마음, 지도자의 마음을 스피치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힘을 빼야 한다. 8년 전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공화당의 준비된 재원인 젭 부시. 힐러리와 부시는 진작에 준비된 대선 후보로 각 당에서 주목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편이 대통령을 지낸 힐러리, 아버지와 형이 대통령을 역임한 부시는 정치적 환경도 유사하다. 지금 부시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가족이라는 백그라운드에 비해 그의 개인적 준비는 아주 빈약해 보인다. 심지어 힐러리의 카리스마와 열정을 그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워 아쉬움을 남긴다.

부시의 행사장에는 인원도 많지 않고 연설도 마치 수업을 듣는 듯했다. 지지자들도 집중력에 한계를 보였다. 연설 도중 박수가 나오지 않자 부시 본인이 “박수 좀 쳐주세요(Please clap)”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SNS에서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됐다. 스피치 중 조명이 꺼지는 사고까지 겹쳤다.

하지만 부시는 뉴햄프셔에서의 4위를 차지한 이후 자신감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캠페인은 지금부터 시작이다.(This campaign is not dead-we’re going on to South Carolina)”라는 인사말과 함께 다음 날 부시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안경을 벗고 인터뷰에 임하는 등 변신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부시가 ‘열정이 없다(No energy)’는 트럼프의 공격에 유권자들이 동의했던 만큼 부시 나름의 색과 특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 키워드, ‘태도’와 ‘진실’

힐러리와 부시 만큼 샌더스와 트럼프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극과 극’의 인간형이다. 샌더스와 트럼프는 주류에 저항하는 ‘아웃사이더’ 자격으로 경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기득권에 연연하는 워싱턴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두 사람의 정책, 공약보다는 주류를 공격하는 발언에서 더 후련함을 느끼는 듯하다. 70대의 ‘사회주의자’와 ‘부동산 재벌’에게 2030 세대들이 열광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선거공학적으로 보면 젊은 후보가 개혁을 주창하며 돌풍을 일으키는 게 일반적이다. 70대 대선 후보가 젊은 층을 열광케 하는 건 정책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갖는 장점 때문이다. 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는 선동가적 기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공격 대상을 명확히 하고 해법도 단순, 명쾌하게 제시함으로써 유권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정책적인 문제 제기에도 ‘교집합’이 있다. 아이돌 스타와 같은 팬덤 현상이다. 필자가 양당의 대선후보자 4명의 현장과 유권자를 분석해 본 결과,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는 세 가지 이미지 요인이 있었다. 후보의 지지자, 후보자 개인 스타일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가장 든든하고 큰 힘을 주는 지지자는 바로 가족이다. 트럼프 딸의 이미지가 트럼프의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버니의 부인이 갖는 수수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현장의 스태프나 자원봉사자들인 서포터들도 승부의 관건적 요소다. 각 후보의 성격과 태도에 따라 서포터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버니 캠프의 서포터들은 언론의 조명을 받는 등 대선국면의 화제가 되는 예가 그런 경우다.

버니의 검소함과 트럼프의 제스처 그리고 힐러리의 태도와 부시의 위기대처 등이 바로 후보자 개인 스타일 항목에 속한다. 이번 경선을 통해서 특히 두드러진 게 바로 ‘태도’다. 향후 2016년 대선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요인이 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툴은 트럼프 행사장 장내 음악, 샌더스 선거 문구, 그리고 다양한 도구와 이벤트를 활용했던 힐러리의 응원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현장의 열기를 북돋우며 캠프의 분위기를 고양하는 소재라서 주목을 받는다.

미국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경제문제 만큼이나 ‘진실’ 문제가 큰 이슈를 장식한다. 2016년 뉴햄프셔에서는 ‘정직(Honesty)’과 ‘믿음(Trustworthiness)’에 대해 유권자의 91%가 버니를, 5%가 힐러리를 선택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이슈를 본다. 어젠다가 자신의 삶과 가정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는가를 따지고 살핀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신이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그 신을 믿은 결과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과 일치한다.

중요한 점은 유권자가 투표를 할 때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결국엔 ‘후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 신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바로 ‘대선후보 이미지’다.

- 허은아 정치전문 이미지컨설턴트 mannernia@yerago.co.kr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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