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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손관승이 만난 ‘파.스.텔. 인생’] 4년 만에 메가폰 잡고 다시 현장에 선 이병훈 드라마 감독 

나는 내 인생의 위대한 디자이너다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
인생 황혼기에 원색의 매력을 발산하는 파워 스토리텔링… 일흔 나이 넘어서도 현장 누비며 자기만의 색깔 입힌 퓨전 사극을 열다

▎정년을 코앞에 둔 나이(55세)에 메가폰을 잡아 사극의 흥행보증수표가 된 이병훈 드라마감독의 인생은 알록달록 화려하다. 드라마 <허준> <대장금> 등 사극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올해로 72세인 그가 4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 사진·뉴시스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것. 파스텔 컬러에는 열정과 도전, 자유가 녹아 있다. 파스텔은 동시에 한 분야에서 브랜드가 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파워 스토리 텔링’이기 때문이다. 고유한 색깔이 있는 삶, 매력적인 스토리가 있는 인생을 우리는 ‘파스텔 인생’이라 부른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사극(史劇) 연출의 거장 이병훈 감독 이야기다.


▎이병훈 감독은 이름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그의 인생에는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 즉 ‘파워 스토리텔링’이 들어있다. / 사진제공·손관승
나는 내 인생의 당당한 주어(主語)가 될 수는 없는 걸까. 당연한 주장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게 한국 직장인들의 현실이다. 성공은커녕 우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라는 존재를 잊어야 했다. 누군가를 위한 목적어 혹은 수식어로 살다 보니, 도대체 누가 내 삶의 주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운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다 요즘 직장인들은 두 마리 잔인한 괴물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되고 있다. 첫째는 인터넷과 인공지능이라는 과학기술 문명이다.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이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알파고’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오자 많은 직장인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단순히 한국인 바둑 챔피언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다가 내 일자리마저 인공지능과 인터넷 프로그램에게 빼앗기는 게 아닌가 하는, 직업의 미래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는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지금 나의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금융권을 비롯한 몇몇 분야에서 급속히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영국에서 기계파괴를 주장하던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는 사람들마저 있을 정도다.

또 하나 직장인들 앞에 다가오는 잔인한 괴물은 나이다. 나이는 인생을 이끌어주는 길이기도 하고 동시에 벽이기도 하다. 입사 이후 세월과 함께 경험과 원숙함, 경륜이라는 이름의 순기능으로 작용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효율, 저성과, 고연봉이라는 역기능으로 돌변한다. 직장마다, 직업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느 순간 급격히 방향과 에너지가 바뀐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생의 잔인한 변곡점이다.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을 자유롭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마음속의 영원한 로망일 뿐일까? 해답은 역설적이게도 나이와 인터넷, 인공지능에 있다. 그 두 가지 잔인한 파괴력을 이겨낼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인간 특유의 능력인 상상력과 스토리 생산 능력이다. 나는 그런 능력을 가리켜 ‘파.스.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가리켜 ‘파.스.텔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파스텔이란 주지하다시피 크레용처럼 색의 도구를 의미한다. 번지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보여준다. 색은 열정, 꿈, 용기, 도전, 자유, 독자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파스텔은 동시에 ‘파워 스토리텔링’의 준말이다. 요즘 미국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 그리고 뉴욕에서 각광받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단순한 신변잡기 이야기가 아닌 무형자산으로 환산될 수 있는 강력한 스토리다. 그들은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를 스토리텔링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파스텔 인생이란 결국 고유한 컬러가 있는 삶, 그리고 매력적인 스토리가 있는 인생을 의미한다.

직장인의 매력은 결국 색깔이다. 그 이름을 떠올리면 무지개처럼 뭔가 판타지가 떠오르는 사람, 그를 가리켜 ‘브랜드’가 있다고 말한다. 중년들의 로망인 할리데이비슨이나 예술가와 작가들의 수첩이라고 하는 몰스킨 수첩에 그토록 자발적인 충성을 보이는 까닭은 확고한 브랜드 덕분이 아닐까. 훌륭한 브랜드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꿈을 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색깔이 있어야 한다. 직장인들에게 색깔이란 브랜드이자 매력이다. 매력은 곧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한마디로 요약되는 브랜드가 없다면, 그 이름 앞에 어떤 색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는 브랜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색무취, 그냥 주어진 일에 순응했을 뿐이다. 남다른 색깔이 있고, 브랜드가 있는 사람들은 직장을 나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청년실업,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와도 그렇다.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라지만 너끈히 이겨낼 수 있다.

‘직업’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해본다. 이 단어는 직(職)과 업(業)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직’은 타이틀과 직위, 직장을 의미한다. 반면에 ‘업’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고유한 능력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브랜드이고 경쟁력이다. 만져지지 않고 측정이 어려워 영어로 ‘intangibles’라 부르는 무형자산, 그 가운데 최고의 무형 자산이 바로 업이다. 그것만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전자인 직에 집착하지만, 매력 있는 사람은 후자인 업에 더 충실하다. 업에 충실한 인생, 바로 파스텔 인생이다.

한류 사극의 거장, 이병훈


▎2003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대장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쳤다. 흑백 일색이던 사극에 파스텔톤을 입혀 새로운 감각을 시도한 게 흥행요인이었다. / 사진·중앙포토
이병훈 감독. 1944 년생이니 올해 나이 72세다. 동년배들은 물론이고 후배들조차 회사를 퇴직한 지 오래되어 집에서 잔소리나 하고 있을 나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한 현역이다. 4월말 방영 예정인 MBC 창사 55주년 기념 사극 <옥중화> 촬영을 위해 그는 지금 야외 현장 로케이션에 한창이다. 40대 후반만 되어도 직장에서 퇴물 소리를 받고, 눈치를 보기 일쑤인 현실을 감안하면 여간 이례적이고,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평생을 스토리와 함께 살아왔다. <대장금> <허준> <이산> <동이>…. 그가 만든 드라마는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되었고 세상의 흐름을 뒤바꾸어 놓았다. 그에게는 언제나 ‘한류 사극의 거장’이라는 확고한 브랜드가 따라다닌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자신만의 확고한 꿈의 왕국을 세웠을까?

이병훈 감독은 오래전부터 나의 롤모델(role model)이었다. 그와 나는 같은 방송사를 다녔지만 그는 드라마 연출자, 나는 기자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연배 차이도 많다. 내가 퇴직 이후에도 기적처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어쩌면 직업정신의 구루(Guru)라 할 수 있는 그를 만난 덕분이 아닌가 한다.

그 첫 계기는 2003년, <대장금> 첫 방영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나는 보도국 뉴스를 통해 창사기념 특집 드라마를 소개하는 미션을 맡아서 드라마국에 흔히 ‘클립’이라고 하는 짧은 홍보영상을 요청하였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여의도 MBC 5층 보도국에서 나를 찾는 분이 있다고 했다. 바로 이병훈 감독이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라면 으레 드라마의 보조 연출자나 보조 작가들이 담당하는 게 관행이었다. 더욱이 첫 방송을 앞두고 촬영에다 편집에다 밤샘 작업으로 단 1초가 아쉬운 판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이미 <허준> 같은 작품으로 유명해진 거장이 까마득한 회사 후배 앞에 직접 클립 동영상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메타포였다. 그가 들고 온 클립 동영상은 단순한 화면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에 대한 열망과 간절함이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목이 뻣뻣해지고, 행동보다는 지시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리네의 흔한 광경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였다. 당시 나는 유럽에서 특파원 근무를 막 끝내고 돌아온 시기여서 약간은 붕 뜨고 약간은 겉멋에 겨운 시기였을 거다. 그때는 그럴 때였다. 그런데 그의 행동 하나가 나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나는 그만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감동은 디테일이다!”, 그날 내 수첩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세월이 훌쩍 흘렀다. 나는 전혀 뜻밖에도 방송 동영상 콘텐트 기업의 대표이사가 되어 한류 수출을 위해 해외출장을 자주 다녀야 했다. 가는 곳마다 <대장금>과 그 드라마를 만든 ‘이병훈 감독’의 이름이 들려왔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이 되어 면담조차 어려운 중국의 방송사와 플랫폼 기업 대표들이 그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만나고자 했다. 그 가운데 한 인사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남아프리카 몇 나라를 순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쪽 나라 대표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요즘 당신네 나라의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의복도 멋있고 음식도 무척 맛있어 보이더군요. 멋진 문화를 갖고 계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고 우쭐해져서 상대방에게 어떤 드라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jewel in the palace’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이런…!”

‘jewel in the palace’란 곧 <대장금>을 의미했다. 영어권 국가에는 ‘궁중 안의 보석’이라는 뜻으로 번안해 수출했었다. 궁중 안의 보석이란 물론 이영애가 맡은 장금이였다. 그런데 남아프리카의 몇몇 나라에서는 한국과 중국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국 인사는 한류 드라마의 위력과 그 드라마가 미치는 소프트파워를 절감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으며 ‘따창진’을 몇 번이고 외쳤다. ‘따창진’이란 대장금(大長今)의 중국어 발음이다. 물론 그런 일들이 계속되면서 중국의 문화정책과 해외제작 콘텐트에 대한 정책이 크게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묻고 있었다.

“한류의 비밀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이병훈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식탁에서는 순식간에 밥 두 공기가 비워졌다. ‘이병훈 표 드라마의 비밀’의 비결은 무엇보다 밥 두 공기의 힘이었다. 뭔가 해내려면 역시 체력이 중요했다.

인생의 전환점 된 드라마 <허준>


▎이병훈 감독은 고달프기 그지없는 현장에서의 삶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번엔 ‘어드벤처 사극’이라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 사진제공·손관승
나는 그가 젊은 시절부터 출세가도를 달린 줄 알았다. 시청률의 보증수표라는 신비한 손을 원래부터 타고 태어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생애 첫 대중적 출세작이 그의 나이 만 55세, 한국 나이로 56세에 나왔다는 것이다. 바로 1999년에 방영된 <허준>이라는 화제의 드라마였다. 보통 직장인들이라면 이미 직장의 퇴사를 했거나 아니더라도 정년퇴임을 코앞에 두고 있을 즈음이었다. 남들은 은퇴 준비를 서서히 시작할 무렵 그는 오히려 본격적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드라마 국장으로 재직할 무렵 내가 관리하는 작품들이 한동안 침체일로를 걷기 시작하는 겁니다. 드라마의 데스크라는 자리는 후배 PD들을 지도하고 지원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관리직인데, 회사에 면목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국장 자리를 그만두고 현장을 자원했습니다. 솔직히 현장에 다시 나간다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가 8년 만에 다시 드라마 연출자로 복귀해 사극을 준비 중이라고 했을 때 기대했던 가족들의 환영하는 얼굴과는 달리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고 한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딸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또 사극이요? 누가 보는데? 너무 고리타분하고, 칙칙하고 재미없어요. 도포와 갓이 나오면 지겹다고요. 내 친구들도 전부 싫어해요. 믿지 못하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

돌직구처럼 날아오는 딸의 반응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청자 조사를 해보니 사실이었다. 당시 사극은 50~60대가 다수이며, 40대는 소수, 그리고 그 밑으로는 완전히 사각지대였다.

“아빠, 사극 지겨워요. 절대 하지 마세요.”

딸의 이 한마디가 오늘날 ‘이병훈표 역사 드라마’의 탄생과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다준 결정적 계기였다. 생각해보니 기존의 사극은 너무 뻔했다. 대부분 왕과 그 주변의 정치노름이었다. 등장인물의 의복은 ‘흰색, 검정색, 회색’으로 달랑 3색에 불과했고, 대사는 너무 늘어졌다. 구성도 탄력이 없었고 음악은 매력이 없었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사극을 보겠는가.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나는 우선 색채부터 바꾸기로 했어요. 흰색과 검정 일색이던 의상을 파스텔 톤으로 바꾸고 화면 배경도 과감히 변화를 줬습니다. 또한 느리게 진행되는 극의 전개를 속도감 있게 하고, 대사 또한 현대어에 가깝게 풀어나가기로 했지요. 음악도 기존의 국악이나 클래식이 아닌 뉴에이지 풍으로 바꾸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Think Different!’ 라고 했던가. 이병훈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드라마의 스티브 잡스였다. 그에게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를 가져다준 것은 바로 색(色)에 대한 눈뜨기였다. 사극에 파스텔 톤의 의상을 입힌 것은 한국에서 그가 처음이었다. 40가지의 다양한 색을 도입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반발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그는 한 발 더 나갔다. 음식과 의술, 상업 같은,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지만 이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생활의 이야기들에 눈길을 돌렸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사극을 전혀 써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작가를 쓰기로 결심한다. 그만큼 그는 절박했다. 이병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사극을 뿌리부터 송두리째 바꾸려면 작가부터 바꿔야 했어요.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풍부한 역사지식이 아니라 극작 능력, 창작 능력이 뛰어난 작가였습니다.”

사극 ‘정석’을 깬 이병훈의 승부수


▎드라마 <이산>의 주인공 이서진(정조 분)과 연기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이병훈 감독. / 사진제공·손관승
그렇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은 신선해야 한다.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스토리텔링의 세계에서 상투적인 것은 곧 죽음이다. ‘뻔’하지 않고 ‘FUN’해야 한다.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의 핵심 원리다. 오랫동안 미국 할리우드의 킬러 콘텐트와 실리콘밸리의 IT융합을 연구한 프랭크 로즈가 <콘텐츠의 미래>라는 책에서 표현했던 것처럼 결국은 ‘몰입하게 만드는 예술(the art of Immersion)’이다. 그것이 파워 스토리텔링이다. 디지털 시대의 다매체를 겨냥한 트랜스 미디어이건 아날로그이건 그 핵심정신은 같다.

이병훈 감독이 선택한 승부수는 사극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작가 최완규였다. 그는 비록 사극에 문외한이었지만 한국 최초의 메디컬 드라마인 <종합병원>으로 잠재력을 입증한 바 있는 젊은 작가였다. 이번에 이병훈 감독과 함께 다시 손잡고 <옥중녀>를 제작하게 되는 작가다. 두 사람은 극의 첫 회부터 10회까지 젊은 감각에 맞게 ‘바람이 휘몰아치듯 정신 없이 가자’고 결정했다. 최 작가의 글 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시청자들은 시청률로 화답했다. 결국 63.7%라는 꿈같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다. 남다른 발상과 의지가 행운을 불러온 것이다.

역사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은 ‘3난(難)’이라는 어려움과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 ‘고증난’, ‘예산난’, ‘제작난’이라는 열악한 조건을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박제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생생하고 살아 움직이는 오늘날의 인물로 부활시켰다. 그 이후 김영현, 김이영 같은 유명 작가들도 그와 일하기 전에는 사극에는 문외한이었지만 함께 해냈다.

그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주변부 인생들이다. 주로 중인들이나 서민들의 이야기다. 신분차별과 성차별, 직업 차별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 인생역전 스토리다. 요즘 말하는 ‘금수저 인생’이 아니라 ‘흙수저 인생’이었다는 뜻이다. 허준을 시발점으로 상도, 대장금, 동이, 마의, 그리고 이번의 옥중화에 이르기까지 하나같다.

“나는 평소부터 역사 속에서 소외되거나 무시되어온 이들의 삶에 주목해왔습니다. 고단한 삶에 주저 않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혼의 무게는 누구나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시청자들에게 드라마가 공감을 받으려면 꿈을 줘야 한다. 그것을 가리켜 주인공의 ‘성공 이야기(Success Story)’라 말한다. 바로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공감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성공 뒤의 회한과 페이소스도 있어야 한다. <대장금>에서 민정호에게 건네는 장금이의 말에서 궁을 직장으로 바꾸면 곧 오늘날 직장인의 마음이 아닐까.

“궁은 제게 음식도 해보게 해주었고

서방님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허나 어머니를 잃게 하였고

한상궁 마마님을 잃게 하였고

제 뜻도 잃을 뻔하였습니다.

궁은 제게 그런 곳입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으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곳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듯싶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곳입니다.

모두가 화려해 보이나

모두가 슬픈 곳입니다.”


한국은 주당 평균 35회의 드라마가 각 채널에서 방영되는 세계 최고의 드라마 왕국이다. 그처럼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이병훈 표 드라마는 늘 성공한다. 그의 숨겨진 또 하나의 성공 비결은 방송가에서 ‘트리트먼트(treatment)’라고 부르는 설계도 작업이다. 한류라고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직도 ‘쪽대본’이 고질병으로 남아있는데, 그의 사극에는 최소한 그게 없다. 다른 감독들은 전회를 고작 3~4장의 시놉시스로 사전작업을 마무리할 때도 있지만 그는 다르다.

드라마 소재가 확정되면 보통 4~5개월 동안 작가와 함께 스토리 작업을 하고, 1회부터 50회까지 회별 스토리를 A4용지 1~2장 정도의 분량으로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트리트먼트다. 이는 이병훈 감독의 전매특허다. 이것이 뼈대가 되어 나중에 정식 드라마대본이 된다. 이런 작업을 하는 드라마 감독은 한국에서 이병훈 감독이 거의 유일하다. 그의 힘은 곧 준비의 힘이다.

그는 역사에 파묻힌 감동적 인물들을 어떻게 발굴해낼까? 그 비결은 독서다. 정규 역사서적뿐 아니라 박사학위 논문, 야사, 신간, 잡지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는다. 국내 드라마는 다 보고, 미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 가운데 인기 있는 드라마도 빼놓지 않고 다 챙긴다. 젊은 세대들과 호흡하려고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그는 드라마 연출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를 한다.

“아이디어를 영화나 비디오 같은 영상물만 보고 찾으려 하지 마라.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표절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보다는 책을 읽어라. 창의적 연출은 책 속에서 시작된다.”

일흔 넘은 나이에 ‘어드벤처 사극’ 새로운 도전

드라마는 3D업종이다. 화면에서는 아름답게 보여도 촬영현장은 아직도 고달프기 짝이 없다. 사극은 특히 더 심하다. 현장 로케이션이 많은 탓이다. 일본 사극은 대부분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이뤄지지만 한국 사극의 40%는 로케이션이다. 좀 더 생생한 화면을 잡고 싶은 욕심 탓이다. 강추위가 닥치면 닥치는 대로 무더우면 무더운 대로 배우와 현장 스텝들은 오로지 몸 하나로 버텨내야 한다. 잠자리도 촬영현장의 허름한 여관일 때가 비일비재하고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한다. 그래서 사극 한 편을 찍고 나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갑자기 뜬 젊은 배우들일수록 무슨 이유를 대어서라도 도망가기 일쑤다.

“지독한 분이지요!”

후배 PD들이나 드라마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자기관리에 있어서나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준비성에 있어서나 한결같다. 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 실린 시청자들의 의견 하나하나를 그가 체크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팬덤 현상이 극성을 부리기 이전에는 게시판에 직접 댓글도 달았을 정도다.

“실제 인물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그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내 할 일이다.”

일흔 살을 훌쩍 넘긴 그는 왜 다시 제작의 현장으로 달려온 것일까.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다시는 드라마 찍지 말라고 애원하는 가족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그는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 돈을 위해서? 명성을 위해서? 아니다. 그런 것을 생각했으면 다시는 못 한다. 자칫 과거의 명성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 생전에 <상도>를 통해 인연을 맺은 작가 최인호 선생이 이병훈 감독이 <꿈의 왕국을 세워라>란 책을 발간했을 때 서문을 통해 당부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제의 성공은 과감히 잊어버리고 끊임없는 도전과 새로움에 대한 추구로 마치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 날개가 녹아 추락하였던 이카루스처럼 태양의 흑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산화해주기를 나는 바란다.”

아마도 여기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직업정신이다. 그는 이번에는 어드벤처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주인공에 전세연이라는 뜻밖의 카드도 들이밀었다.

누구나 성공과 자유를 꿈꾼다. 파스텔 정신이란 결국 남과 다른 삶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눈과 평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남의 인생, 남의 가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끝끝내 자기만의 길을 분명히 가겠다는 다짐이다. 내 삶은 내가 주도하고 직접 디자인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내 인생의 위대한 디자이너일 테니까.

손관승 - 세한대학교 교수. MBC 기자와 베를린특파원, 국제 부장 등을 거쳐, iM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앙대학교에서도 미디어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ceonomad@ gmail.com

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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