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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의 ‘바닷가 서재’] 딸로 살아간다는 것 

사랑의 은유, 화해의 긴 여정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민가정 애환과 모녀간 애증, 존재의 바닥 드러내며 찾은 치유의 문장들

4월이면 해운대 해변 동쪽 끝자락 미포에서 청사포, 이어 구덕포까지 이어지는 달맞이 언덕길은 벚꽃 터널이다. 이 길과 나란히 바닷가 쪽으로 철길이 나 있다. 동해 남부를 완행으로 달리는 노선이다. 해운대역과 송정역이 새 역사를 지어 옮기면서 이 구간은 폐 철길이 되었다. 벚꽃이 피고 지는 봄이면 철길을 지나가며 내는 기적소리에 가슴이 사무치곤 했다. 사무침은 대게 회고적이어서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 지나온 세월의 풍경 속에 벚꽃은 속절없이 피고 또 지고, 나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녹슨 철로 위를 파도 소리 들으며 걸을 뿐이다.

흩날리는 벚꽃과 철썩이는 파도와 녹슨 철로를 뒤로하고 서재로 돌아오자, 줌파 라히리(<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와 리베카 솔닛(<멀고도 가까운>)이 기다리고 있다. 벌써 한 달째 봄 꽃이 피기 훨씬 전부터 책상 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그들을 초대해놓고 좀처럼 마주앉지 못했다. 그들을 한자리에 부르기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내게 먼 듯 가까이, 아니 가까운 듯 멀리 있어왔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할 말이 많았다. 무엇보다 어머니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작가이기 이전에 딸이라는 정체성, 딸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작가 본연의 임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대해.

“내 인생 최초의 언어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벵골어였다. (…) 나와 영어의 첫 만남은 힘들고 불쾌했다. (…)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자 벵골어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 모국어 벵골어는 더는 홀로 날 성장시킬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내 모국어는 죽었다. 새어머니 영어가 왔다. (…) 내가 집에서 영어를 말하기라도 하면 혼을 냈다. (…) 난 벵골어와 영어 어느 것과도 일체감을 느낄 수 없었다. (…) 부모님께 어떤 용어의 뜻을 설명해야 할 때면 마치 내가 부모가 된 것 같았다. 때때로 나는 부모님을 위해 통역을 했다. (…) 부모님이 무시받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 벵골 출신의 부모님 사이에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이민 2세 작가다. 이 책은 줌파 라히리가 모국어인 벵골어도 새어머니어(영어)도 아닌 제3의 언어, 이탈리아어로 쓴 첫 책이다. 그녀는 미국의 인도계 이민 가정의 장녀로, 유치원에서 영어로 교육받은 이후부터 영어로 이루어지는 공적인 일에서 집안을 대표하는 역할을 어쩔 수 없이 수행하며 자랐다. 어린 나이부터 감당해야 했던 마음의 짐을 소설로 썼고,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마음의 짐이란 곧 불가항력적인 언어의 벽 앞에서 느껴야 했던 해소될 수 없었던 감정들과 그로 인한 고독이다.

내가 50개 주로 이루어진 대륙의 규모와 다민족 공동체 세계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에는 몇 번의 여행이 필요했다. LA나 시카고, 뉴욕 한인타운의 어느 지역은 1980년대 전후 서울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채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고,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민 사회의 애환과 향수를 접하고 난 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만났다. 이민지에서 이중 언어 사용자이자 통역자로 성장해야 했던 딸, 양가적인 언어 갈등과 무관하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의 자의식을 가지고 자란 남동생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이 공감은 곧 그들과 같은 처지로 살아가는 한인 공동체의 실상과 이면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이 미국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대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보한 것은 이민가정마다 안고 있는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사연들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에서 ‘작은 책’은 손바닥 크기의 포켓판 ‘이탈리아어 사전’을 가리킨다. 짧은 산문들로 이루어진 이 책을 작가는 언어를 향한 사랑의 은유라고 고백한다. 독자는 이민 가정의 딸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명성을 내려놓고, 주어진 언어인 ‘벵골어’와 ‘영어’로부터 벗어나 세상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 작가가 주체적으로 이탈리아어를 선택해 글쓰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나가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도전을 만날 수 있다.

애증과 연민의 관계, 모녀(母女)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은 어떤 의미에서, 줌파 라히리의 소설 세계와 깊숙이 맞닿아 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딸의 의미와 역할, 어머니를 통한 인간의 나약함과 부조리(그릇된 집착과 오해, 불균형), 그 모든 것에 맞서 써나가야 하는 작가의 운명(글)과 삶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심장마비로 말을 잃어버린 노인, 처형인 앞에 선 젊은이, 국경을 넘는 여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어린이처럼, 오직 책에서만 접해본 사람이 되어보는 것 혹은 나와 침대에 나란히 누운 옆 사람이 되어본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리벳카 솔닛, ‘살구’, <멀고도 가까운>, 김현우 옮김, 반비)

단도직입적인 질문 형태로 시작되는 서두가 얼핏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 이야기의 핵심은 어머니, 알츠하이머병을 앓다가 세상을 뜬 어머니와 글쓰기에 있다. 솔닛은,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지면서 어머니가 더 이상 집에 머물게 될 수 없었을 때, 어머니 집의 살구나무에서 따온 마지막 살구들을 집안에 들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은 13개의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고, 살구가 처음과 끝을 담당한다. 작가가 집 안에 품은 살구들은 오랫동안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동반자로 함께해온 살구나무의 마지막 열매들이고, 작가에게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회상하도록 돕는 결정적인 매개체다.

“어머니는 아들들에게는 당신의 문제를 늘 숨겨왔다. 그들은 어머니의 가장 좋은 모습만 상영하는 극장의 관객이었고, 어머니도 그걸 바라셨다. 나는 늘 무대 뒤에, 상황이 훨씬 더 지저분한 곳에 머물렀다. 응급상황이 닥쳤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거는 대상은 언제나 나였다. 한번은 왜 다른 형제들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고 늘 나만 찾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너는 딸이잖아’ 그러고는 덧붙였다. ‘너는 온종일 집안에만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하잖아.’ 작가의 삶은 그렇게 묘사될 수도 있었다.”(리베카 솔닛, 위의 책)

세상의 딸들이 어머니와 맺는 관계는 대략 두 가지다. 사사건건 충돌하고 불화하는 대결 구도와 한쪽(대개 어머니)이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돌보는 희생 구도. 어느 쪽이든 딸은 애증과 연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멀고도 가까운>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전자의 경우였던 리베카 솔닛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해원(解寃)과 화해의 방법으로 써내려간 것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으로,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으로,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으로.

글쓰기의 본질은 성찰과 구원에 있다. 결핍과 과잉, 부조리와 부조화가 낳은 불행한 의식과 관계로부터의 해방, 그 여정에 라히리는 이탈리아어(제3의 언어) 이야기를, 솔닛은 살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존재의 바닥까지 내려가 퍼 올리는 치유와 화해의 문장은 감동적이고, 이야기는 힘이 세다.

함정임 -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화여대 불문과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소설집〈버스, 지나가다〉〈네 마음의 푸른 눈〉, 장편소설 〈춘하추동〉〈내 남자의 책〉, 예술기행서 〈인생의 사용〉〈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소설가의 여행법〉〈먹다 사랑하다 떠나다〉, 번역서〈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행복을 주는 그림〉등을 썼다.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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