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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대륙 공략의 전초기지, 현대자동차 베이징공장 

대륙의 굴기 앞에 현대차의 저력으로 맞선다 

베이징=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전통 강점 보급형 시장 외에 친환경·SUV 수요에도 적극 대응… 중·서부 신흥시장 판매망 강화하고 제네시스로 프리미엄차 시장에 도전장

▎베이징 외곽 순의구에 위치한 베이징현대 3공장은 연간 45만 대 생산능력을 갖춰 일대 공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철컹, 철컹, 쿵, 쿵… 시끄러운 각종 기계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둥글게 말려있던 철판이 프레스를 지나자 자동차의 차체가 형태를 갖춘다. 컨베이어를 따라 가는 동안 양 옆에 설치된 용접용 로봇팔들이 일사불란하게 차체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 작업자는 그리 많지 않다. 무게가 꽤 나갈 법한 엔진 모듈을 로봇팔로 붙잡아 들어올리자 가뿐하게 차체에 올라앉는다. 타이어를 부착하고 페인트 도장 처리를 한 뒤 내·외장 부품 장착을 모두 마치자 어느새 반짝반짝 광이나는 새 자동차가 출구로 빠져나온다. 철판에 불과했던 재료들이 승용차로 만들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15.8시간. 한 시간에 97대의 자동차가 컨베이어를 빠져나온다.

5개 공장, 연간 200만 대 생산능력 갖춰


▎베이징현대 3공장에선 5kg 이상 부품을 운반하기 위해 설치된 400대의 로봇으로 생산공정의 효율화를 이뤄냈다.
4월 26일 현대자동차의 중국 내 주력 생산기지인 베이징공장을 찾았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중국 현지에 모두 8개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 현지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가 5곳, 둥펑위에다기아차가 3개의 공장을 가동 중이다. 이날 찾아간 곳은 베이징 시내로부터 1시간30분가량 떨어진 순의구의 3개 공장 중 3공장이다. 직경 30㎞ 이내에 3개 공장이 모여 있다. 그중 3공장은 연간 생산능력 45만 대로 가장 크다. 전체 5개 공장의 연산능력은 165만 대다.

생산라인은 총 1.7㎞ 길이다. 롤러로 말린 철판을 자르고 금형을 거쳐 접착하는 차체 조립라인, 장착라인, 도장라인, 최종 조립하는 의장라인까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대부분의 공정은 로봇이 작업한다. 3공장에는 400대의 로봇이 있다. 사람은 로봇의 작업을 보조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5㎏이 넘는 부품을 옮기는 건 모두 자동화로 이뤄진다. 작업자의 안전과 효율을 위해서다.

3공장에서 하루에 1700대 정도의 완성차가 나온다. 월 4000~4500대 수준이다. 직원들은 11시간 2교대로 근무한다. 일주일 전에 딜러사의 오더를 받아서 제작하는 방식이다. 현대차의 효자 차종인 ‘랑동(아반떼MD)’이 3공장에서 생산된다. 2002년부터 올해 3월까지 86만1000여 대를 판매했다. 3공장은 랑동 외에 위에둥(아반떼HD), 밍투(쏘나타), 싼타페를 생산한다.


3공장 직원은 4000명 정도다. 전체 평균 연령이 27.8세에 불과하다. 생산직만 따지면 23세다. 생산직 기준 임금은 월 7750위안, 한화로 130만원 정도다. 한국 현대차 근로자 임금의 6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꽤 높은 편이다. 지난해 베이징시가 정한 최저임금은 1770위안이었다. 그러나 효율은 더 높다. 승용차 한 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15.8시간으로 국내 공장(27.7시간)의 절반 수준이다. 베이징현대차 관계자는 “엔진 모듈을 제작하는 현대모비스와 브릿지 컨베이어로 연결돼 있어 모든 공정이 논스톱으로 처리된다”고 말했다.

베이징 3공장은 앞서 지은 1, 2공장과 해외공장의 개선 사례를 반영해 효율성과 작업 편의·안전성을 높였다. 올 하반기에 가동하는 창저우 4공장과 2018년에 가동을 목표로 짓고 있는 충칭 5공장은 3공장을 모델로 삼았다. 5개 공장이 완공되면 중국 내에서 연간 200만 대의 생산능력을 갖게 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공장 가동을 계기로 생산과 판매망을 재정비하고 중국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중국에 현지 생산체제를 갖춘 13년 동안 생산능력은 21배 증가했다.

현대차의 중국 내 판매 실적은 다소 주춤하다. 2013년 중국 진출 11년 만에 연간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하고, 2014년 112만 대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이듬해에는 106만 대로 약간 감소했다. 올 1분기 실적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급감한 22만9011대에 그쳤다. 이는 중국 내 연간 목표 생산량의 20% 수준이다. 반면 혼다(40.6%), 도요타(34.1%), GM(22.3%) 등 경쟁업체는 실적 향상이 두드러졌다. 베이징 현대차 관계자는 “제품의 주력차종인 액센트와 아반떼 등 소형 차종의 라이프사이클이 끝나가고 있고, 중국 내 소비 성향이 SUV로 옮겨간 게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추격이 위협적이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성장률은 지난해 19%에 달했다. 10만 위안 이하의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형차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소형차 시장은 현대차가 강점을 가진 분야였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주춤한 것도 한 원인이다.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8% 수준이었다. 중국 정부는 적정 경제성장 수준을 7%대로 보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던 시대가 끝나고 과잉 생산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베이징, 상하이 등 동북부 대도시에서 판매 증가는 한계에 도달했다. 베이징시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차량 신규 등록을 제한하고 있다. 베이징시는 연간 15만 대를 허용하는데 경쟁률이 무려 675대 1이다. 상하이, 천진 등 8개 도시는 번호판 입찰제를 도입했다. 번호판 가격이 1500만원에 달한다. 중국에 합작법인을 둔 글로벌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들의 판매망이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북동부지역에 치중해 있어 경쟁도 치열하다. 여러모로 현대차가 고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최근의 저조한 실적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1분기 판매 중 절반가량인 10만549대가 3월에 판매돼 2월보다 89% 급증했다는 것이다. 또 1분기에 현대차의 세계 판매량이 94만6507대인데 그 중 중국 내 판매량이 24%를 차지해 여전히 중국의 판매 비중이 높다는 판단이다.

현대차는 신차와 친환경 차를 출시해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선 올해 3월 출시한 링동(아반떼 AD 개조차)이 현대차 전성기를 가져온 직전 모델 ‘랑동(아반떼MD 개조차)’의 대를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랑동은 2012년 베이징 3공장 양산과 함께 출시한 현지 전략형 모델이다. 올해 3월까지 86만1037대가 팔린 베이징현대차의 베스트셀러 모델이다. 랑동은 화려하고 큰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 인기를 끌었다.

신모델 투입하고 다양화해 저가·프리미엄 동시 공략


▎베이징현대 1공장에서 ‘랑동(아반떼MD 개조차)’의 대를 잇는 ‘링동(아반떼AD 개조차)’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링동도 프론트 그릴과 헤드램프를 화려하게 하는 등 취향을 반영했다. 링동은 출시하자마자 판매량 1만 대를 넘어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링동은 설계 단계부터 중국 소비자의 생활 환경을 고려했다. 대기오염을 감안해 공기청정시스템을 적용하고 스마트폰 연동 기능 등 소비자 선호도를 반영한 사양들을 채택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현지 특성을 반영해 국내 아반떼AD보다 지상고를 10㎜ 높이기도 했다. 하반기에는 신형 베르나와 신형 K2를 각각 출시할 예정이다.

베이징모터쇼를 통해 재확인된 SUV 인기를 고려해 현대·기아차의 SUV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전체 판매 중 SUV 비중은 2005년 2.6%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27%까지 높아졌다. 올해 3월에는 37.3%까지 확대됐다. 친환경 차량 판매도 확대한다. 베이징현대차 연구소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친환경차량에 대한 각종 지원을 통해 적극 장려하고 있고, 특히 저가 보급형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말했다.

판매망도 재정비한다. 베이징현대차는 현재 1700여 개인 딜러를 내년까지 2000개로 늘리기로 했다. 특히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서부 지역과 소도시 딜러를 집중 확보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현대차 딜러망은 대도시 지역 위주로 전개돼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서부 지역의 마케팅 능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현대차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저가 이미지 탈피’다. 그동안 현대·기아차는 소형차를 주력으로 삼아 성장해왔다. 베이징에서 현대차 마크를 단 택시가 80%에 달할 만큼 소형차 시장에 공을 들여왔다. 이는 글로벌 톱 메이커들과 직접 경쟁을 피하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저가로 무장한 중국 로컬 메이커들의 공세가 발목을 잡았다. 고급도 아니고, 저가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이 된 것이다.

이를 탈피할 현대·기아차의 전략은 한마디로 ‘양면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강세인 소형차 시장에서 품질로 승부하면서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우선 D(중형)+S(SUV) 비중을 55%로 늘리는 것을 올해 목표로 정했다.

또 프리미엄 브랜드로 특화한 제네시스의 중국 론칭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 미국에서 출시해 호응을 얻은 제네시스 G90을 내세워 벤츠, BMW 등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제네시스가 대륙을 상륙하면 그랜저-에쿠스-제네시스로 이어지는 프리미엄 라인업이 구축된다. 베이징현대차 관계자는 “지금도 제네시스를 한국에서 수입 판매하고 있지만 물량이 많지 않다”며 “향후 중국 공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 베이징=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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