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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축구굴기(蹴球屈起)? 중국축구가 달려온다 

‘차이나 메시’ 7000명 발굴 중 

중국 항저우=송지훈 기자 ilkyan@joongang.co.kr
풍부한 자금력 무기삼아 전 세계 스타 선수와 지도자들 빨아들이는 블랙홀… 장기적으로 2030년 월드컵 유치 이어 2050년 FIFA 랭킹 1위 등극 꿈꿔

▎중국 수퍼리그는 천문학적 투자로 ‘아시아의 축구 공룡’으로 발돋움했다. 상하이 뤼디선화의 마르틴스와 장루, 김기희(왼쪽부터).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 축구에 ‘신경 쓰이는 이웃’이 생겼다. 영원히 공한증(恐韓症)에 눌려 지낼 것만 같던 중국이 천문학적인 투자를 앞세워 아시아 축구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프로축구다. 2010년을 전후해 중국 수퍼리그(프로 1부 리그) 구단들이 운영비를 대폭 끌어올리며 앞다퉈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 축구의 내로라하는 스타 선수와 유명 지도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돈과 사람이 모이면서 팬들도 뜨거운 호응을 보내고 있다.

중국 축구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표팀의 경쟁력을 세계 최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당면과제는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 장기적으로는 2030년 월드컵 유치 및 아시아 제패, 2050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등극까지 꿈꾼다.

14억 명에 달하는 인구와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정부의 전폭지원이 맞물려 중국 축구는 쾌속 성장하고 있다. 현지로 날라가 직접 들여다본 중국 축구의 성장 잠재력은 그동안 건네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4월 24일 저녁 중국 상하이. 온종일 장대비가 내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내에 위치한 훙커우(虹口) 축구전용구장 조명탑에 불이 켜지자 사람들이 말 그대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수퍼리그 두 강호로 꼽히는 상하이 뤼디 선화(上海 绿地申花)와 허베이 화샤 싱푸(河北 华夏幸福)의 라이벌전을 관전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관중석은 킥오프 한 시간 전에 이미 꽉 들어찼다. 3만5000석 중 홈팀과 원정팀 응원단의 충돌을 막기 위해 비워놓은 2000석을 제외하고 3만3000석의 스탠드가 홈팀 상하이를 상징하는 파란색 물결로 뒤덮였다.

상하이 구단 관계자는 “수퍼리그에 유명 선수와 지도자들이 모여들면서 중국에서 축구 관람이 수준 높은 문화 생활로 자리 잡았다”면서 “지역 라이벌전이나 우승권 강팀들과 맞대결을 할 땐 티켓 가격이 최소 300위안(5만3000원) 이상으로 올라가지만 그마저도 경기 며칠 전에 동난다”고 설명했다.

중국축구 쥐락펴락하는 ‘세븐 시스터스’


▎3월 16일 중국 지난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조별예선 3차전 산둥 루넝- FC 서울의 경기. 주실레이의 골이 터지자 루넝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경기장 안팎의 분위기는 마치 유럽 프로축구의 팬들을 보는 듯하다. 홈팀 상하이는 그라운드 주변 곳곳에 자리 잡은 세 무리의 각기 다른 서포터스가 응원을 주도했다. 때론 제각각으로, 때론 한 목소리로 합을 맞춰 경기 내내 노래와 구호를 쏟아냈다. 관중석 북동쪽 2층 모서리 부근에 자리 잡은 원정팀 허베이 서포터스 500여 명은 보안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조직적인 응원으로 맞섰다. 경기장 밖의 술집과 상점도 축구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날 홈팀 상하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출신의 공격수 뎀바 바(30·세네갈)를 최전방에 세웠다. 허베이는 파리생제르맹(프랑스)에서 뛰던 공격형 미드필더 에세키엘 라베치(31)를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두 선수의 이적료는 각각 186억원(바)과 67억원(라베치). 이들을 비롯해 양팀에서 이날 그라운드를 밟은 외국인 선수는 모두 8명으로 몸값 총액이 1174억원에 달했다. 유럽무대에서 검증받은 선수들을 데려와 공격의 중심축 역할을 맡기는 방식은 근래 수퍼리그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유럽축구 겨울 이적시장 마감 직후인 지난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중국 수퍼리그 16개 팀이 1월 한 달간 지출한 이적료가 2억5890만유로(3437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2억4730만유로(3283억원)를 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에 그쳤다. 이탈리아 세리에A(8665만 유로·1150억원), 독일 분데스리가(4792만 유로·636억원) 등 나머지 유럽 빅리그를 멀찌감치 제쳤다. 같은 기간 중국 갑(甲)급리그(프로 2부리그)가 쓴 돈도 분데스리가와 엇비슷한 규모(4740만유로·629억원)다.

수퍼리그 소속 축구팀들의 평균 예산은 600억~7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200억원 전후인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의 3배가 넘는다. 매년 1000억원 이상을 쓰는 팀이 상하이 선화와 허베이 화샤싱푸를 비롯해 광저우 헝다·산둥 루넝·상하이 상강·장쑤 쑤닝·베이징 궈안 등 7팀에 이른다. 이른바 ‘수퍼리그 세븐 시스터스’다. 이들의 뒤에는 중국 굴지의 재벌 기업들이 버티고 섰다. 상하이 선화의 모기업 뤼디그룹은 지난해 매출 4000억 위안(70조7000억원)을 기록해 중국 내 부동산 관련 기업 중 1위를 했다.

우승에 도전하는 ‘일곱 자매’의 씀씀이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상하이 선화에서 뛰는 한국 국가대표팀 수비수 김기희(27)는 “베이징 궈안과의 지역 라이벌전 등 빅 매치가 다가오면 구단이 선수단에 300만 위안(5억3000만원·세금 공제 후)의 특별 승리수당을 내걸고 승리를 독려한다”면서 “이긴 다음날엔 1인당 17만 위안(3000만원)이 든 현금 봉투가 라커룸에 풀린다. 금액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팀이 비슷한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희는 지난 2월 이적료 600만 달러(69억원)에 전북 현대에서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 향후 3년간 매년 200만 달러(23억원·세후, 수당 별도)의 연봉을 받는다. 상하이가 쓰는 1000억원의 예산 중 70%가량이 선수 인건비다.

수퍼리그가 앞다퉈 씀씀이를 키워가는 배경엔 중국 정부가 있다. 축구에 대한 시진핑(63·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기대감은 절대적이라 할 만하다. 1가구 1자녀 정책(현재는 폐지) 탓에 가정에서 ‘소황제’로 자라난 중국인들이 단체스포츠인 축구를 통해 협동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닫길 바라고 있다. 중국 체육정책의 핵심과제로 ‘축구 보급’을 설정한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중국은 오는 2050년까지 FIFA랭킹 1위에 올라 세계 축구를 지배한다는 야심 찬 비전을 내놓았다. 그 첫걸음은 선수 육성이다. 2020년까지 축구선수 5000만 명을 길러내기로 하고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2월 ‘중국 축구 개혁 발전 총체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 4월11일에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중국축구협회, 체육총국, 교육부와 손잡고 ‘2016~2050 중국 축구 중장기 발전계획’을 완성해 공표했다.

새 계획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전국 초·중·고를 통해 축구 유망주 3000만 명을 길러낸다. 중국축구협회 등록선수를 71만 명(2015년 기준)에서 5000만 명으로 늘리는 것은 물론, 국가대표급 프로부터 조기축구회 수준 아마추어까지 정기적으로 축구를 즐기는 인구를 5억 명까지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인프라 확충에도 적극 나선다. 전국의 모든 현(縣)마다 국제 규격(가로 105·세로 68) 축구장을 2곳 이상 만들고,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풋살 경기장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인구 1만 명당 축구장 한 개씩을 갖추기로 했다. 현재 인구(14억명·추정)를 기준으로 전국에 14만 개의 축구장을 짓는 셈이다.

2020년까지 유망주 3000만 명 육성 계획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영국 방문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10월 23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 있는 EPL 소속 맨체스터시티 훈련장을 데이비드 캐머런(오른쪽) 영국 총리와 함께 찾았다. 가운데는 맨시티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
축구 교육에도 박차를 가한다. 5년 내로 중국 전역에 축구 특성화학교 2만 곳을 지정해 본격적으로 선수를 길러낸다. 초·중·고 정규 수업에 체육 과목과 별도로 ‘축구’ 과목을 신설한다는 결정도 흥미롭다. 이를 위해 2012년 우리 돈으로 92억원 수준이던 학교축구 지원 예산을 올해 76배나 많은 7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초·중·고·대에 지역별 축구리그를 만들고, 두각을 나타내는 팀은 광역리그와 전국리그로 진출해 경쟁하는 유럽식 디비전 시스템(division syste) 도입도 준비 중이다. 중국 정부는 수퍼리그(1부)와 갑급(2부), 을(乙)급(3부)까지 3단계로 운영 중인 프로축구 시스템에 참여하는 구단의 수를 대폭 늘려 더욱 치열한 경쟁을 유도할 방침이다.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이상 스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AC 밀란(이탈리아),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 세계적인 수준의 축구클럽을 두세 개 육성해 중국 축구의 상징물로 만든다는 청사진도 그려졌다. 시 주석은 “규정에서 조금 벗어나더라도 상관없다. 축구 발전을 위해 관계 당국이 지역 내 축구 발전에 발벗고 나서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아스널은 지난해 7월 “리오넬 메시(27·아르헨티나)처럼 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인물이 20만 명 중 한 명 꼴로 태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공식을 중국에 대입한다면 14억 명 중 메시급으로 성장 가능한 축구 천재가 7000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 정부가 계획한 대로 5억 명의 축구선수를 확보한다면 ‘중국의 메시’를 발굴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시 주석은 축구 선진국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동반 성장할 축구 관련 산업이 중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축구를 통해 국민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한편, 내수 시장을 확대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중국 정부는 2014년 10월 발표한 ‘체육산업 발전과 소비 촉진에 관한 의견’을 통해 스포츠 시장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운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2013년 기준으로 3100억 위안(55조원) 안팎인 중국 스포츠 산업의 몸집을 2025년까지 5조 위안(887조5000억원)으로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중국 전체 국민총생산(GDP)에서 스포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10년 0.56%, 2012년 0.61%이던 것을 2025년엔 3.51%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시 주석이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진 ‘축구굴기(蹴球崛起·축구를 통해 일어섬)’라는 표현은 스포츠를 넘어 중국의 산업과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인들의 축구 사랑은 유별나다. ‘축구는 중국에서 유래한 스포츠’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에는 ‘황제가 병사를 훈련시키기 위해 축국(蹴鞠)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중국은 이 내용을 근거로 “축구는 중국에서 탄생해 유럽으로 전해진 스포츠”라고 주장한다.

뛰는 프로팀, 걷는 대표팀의 ‘딜레마’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수도로, 산둥성에 위치한 츠보(淄博)는 중국인들이 ‘축구의 발상지’로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다. 자칭 ‘축구 종주국’임에도 국제 무대에서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각급 대표팀을 바라보는 중국 국민의 마음은 그래서 더 착잡하다.

중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컵 본선을 밟아본 이후 10여 년째 부진을 거듭한다. 2006년(독일), 2010년(남아공), 2014년(브라질) 등 이후 열린 3개 대회에서는 아시아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조기 탈락했다. 프로팀들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는 등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다 보니 대표팀 부진이 더 한층 도드라진다.

중국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움츠러드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술이나 체력보다는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정신 자세에서 원인을 찾는다. 과거 광저우 헝다(廣州恒大)의 갑급리그 우승과 수퍼리그 우승을 잇달아 이끈 ‘중국통’ 이장수 창춘 야타이(長春 亞泰) 감독은 “소황제로 자라난 중국인들은 팀 스포츠에 약하다. 조직보다 개인을 앞세우는 마음가짐이 경기력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라 진단했다.

2013년 중국 프로축구 경기 도중 한 선수가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경기 도중 주심의 머리를 때리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당시 중국 언론은 “팀워크와 참을성을 기대하기 힘든 중국 축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면서 “이기적이고 나약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팀플레이에 협력하지 않고, 위기에 처하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꼬집었다.

자기관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 또한 부진의 이유다. 수퍼리그 소속팀 항저우 뤼청(杭州 綠城)을 이끄는 홍명보(47) 감독은 “부임 초기 항저우 선수들의 몸 상태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식사 시간에 기름지고 열량 높은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는 선수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면서 “축구선수들의 평균 체지방량이 9.5% 안팎인데, 항저우 선수들은 12%가 넘었다. 선수들에게 몸 관리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상하이 선화 수비수 김기희는 “원정 경기를 가보면 대부분의 라커룸에 담배 냄새가 찌들어 있다”면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유럽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중국리그에 진출하면서 비로소 선수들이 자기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무대에 이름을 올리면서 ‘16년 만의 월드컵 본선행’을 향한 중국 축구팬들의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중국은 앞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C조에 속해 5승 2무1패로 승점 17점을 벌어들이며 카타르(22점)에 이어 조 2위에 올랐다. 이어 각조 2위 8개 팀 중 상위 4팀에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 자격을 확보해 최종예선 무대에 진출했다. 중국축구협회는 모처럼만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총력 지원을 준비 중이다.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즈음해 수퍼리그 일정을 일시 중단하고 대표선수들을 조기 소집해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장수 감독은 “수퍼리그 일정이 끝난 올겨울에는 한 달 이상의 장기 합숙 훈련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어우추량(區楚良·48) 중국축구대표팀 수석코치는 “최종예선에서 만날 이란·한국·우즈베키스탄·아랍에미리트·시리아는 모두가 껄끄러운 상대들”이라면서 “대표팀 일정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는 수퍼리그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축구 중장기 성장 계획의 중요한 축은 ‘선진국 벤치마킹’이다. 대기업들이 축구팀을 포함한 스포츠 관련 기업의 인수합병, 지분투자 등을 통해 축구 선진국의 시스템과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미디어캐피털(CC)과 시틱(CITIC)캐피털 컨소시엄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강호 맨체스터 시티의 모기업 시티풋볼그룹(CFG)의 지분 13%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인수 금액은 4억 달러(4620억원)다. CFG 산하에는 맨체스터시티 이외에도 멜버른시티(호주)·뉴욕시티(미국)·요코하마 마리 노스(일본) 등이 있다. 리루이강(黎瑞剛·46) CC 회장은 “중국이 세계축구에 공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세계 각국 축구클럽의 장점을 모아 중국 축구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웃의 성장, 한국축구에는 위기이자 기회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지만 국내리그는 위기라는 진단이 나온다. 관중석이 텅 비다시피 한 가운데 K리그 경기가 열리고 있다.
중국 굴지의 부동산 재벌 완다그룹은 지난해 FIFA 월드컵 중계권 독점판매업체 ‘인프런트 스포츠 앤드 미디어 AG’를 11억9000만 달러(1조3750원)에 인수했다.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와 완구업체 라스타그룹, 에너지기업 중국화신은 각각 AC 밀란(이탈리아), 에스파뇰(스페인), 슬라비아 프라하(체코) 등 유럽 명문 축구팀을 사들였다. 유럽 무대에서 실력 검증을 마친 선수들에게 거액의 이적료와 연봉을 지급하고 중국 무대로 데려오는 것 또한 단기간에 수퍼리그의 경기력을 끌어올려 중국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 축구의 급속한 성장은 표면적으로 한국 축구에 위기다. 수준급 선수와 지도자들이 앞다퉈 수퍼리그로 이적하며 K리그의 스타 부재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은 “중국 축구가 거대한 시장으로 거듭나면서 실력 검증을 마친 선수와 지도자들이 속속 중국으로 건너간다”며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여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K리그가 ‘스타 부재’라는 추가 악재를 만났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상하이 수비수 김기희를 비롯해 김영권(26·광저우 헝다), 장현수(25·광저우 푸리) 등 현역 국가대표 중앙수비수 3인방이 중국에서 활약 중이다. 올 시즌 수퍼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감독은 홍명보·이장수·장외룡(충칭 리판)·박태하(옌볜 푸더) 등 4명에 이른다.

‘중국행 러시’를 부정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김기희를 중국으로 보내며 69억원의 이적료 수입을 챙긴 전북 현대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발 ‘황사 머니’가 K리그에 새 활력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장수 감독은 “K리그팀들이 꾸준한 예산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웃에 ‘수퍼리그’라는 큰 시장이 등장한 건 축복이나 마찬가지”라면서 “K리그 구단들이 좋은 선수를 지속적으로 발굴한다면 수퍼리그를 통해 적지 않은 이적료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중국 축구계는 월드컵 8회 연속 본선행, 2002한·일월드컵 4강 등 주목할 만한 발자취를 남긴 한국 선수들에 대해 ‘실력과 목표 의식, 리더십 모두 수준급’이라며 신뢰하는 분위기”라고 조언했다.

- 중국 항저우=송지훈 기자 ilkyan@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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