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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취재│한일 양국 동병상련 연구] 분노조절장애와 세대범죄 

한국은 혐오범죄, 일본은 노인범죄로 슬프다 

김경철 일본 고단샤(講談社)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추모 공간에서도 증오와 분노만이 가득… 일본의 노인범죄 양상도 한국에 상륙할까 염려돼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인 참여자들.
“김 승무원과 박창진 사무장에게 내리라고 하여, 마치 그 비행기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제가 화가 났다는 이유로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왜 화가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변명도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5일, 뉴욕공항에서 이륙 준비 중이던 여객기를 램프 유턴시키고 승무원을 내리게 했던, 이른바 땅콩리턴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서울서부지법에 제출한 반성문의 한 부분이다. 본인의 말처럼 그녀는 한순간의 화를 참지 못함으로써 ‘최악의 갑질’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개인적으로도 143일 동안이나 수감생활을 하는 수모를 겪었다.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이웃집 차량의 손잡이 부분을 훼손하고 타이어를 펑크 내는 등, 손괴한 사건이 알려져서 판사직을 사직한 부장판사도 있다. 시누이에게 정신병자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벤츠를 몰고 시누이의 식당으로 돌진한 여성도 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도 상해를 입힌 이 주부는 징역형에 처해졌다. 인천의 한 어린이 집에서 보육교사가 김치를 남겼다는 이유로 여아를 사정없이 구타하는 CCTV 영상이 공개되며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주차 시비로 인한 폭행사건, 도로 위에서의 시비가 보복 운전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 등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보통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지난 5월 17일 새벽에는 서울 강남역 인근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 전문가) 5명을 투입하여 피의자를 정밀 면담한 결과, 피의자가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이 심한 상태였고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별다른 범죄촉발이 없었다”며 조현병 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결론지었다. 조현병은 환각, 망상, 환영, 긴장, 기이한 행동이 동반되는 만성 사고 장애로 조울증과 함께 대표적인 중증 정신병이다. 그러나 범인이 체포 직후 “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났다”고 진술한 점이나, 화장실에 숨어서 여성이 들어오기를 1시간 이상이나 기다렸다는 정황 등을 들어, 이번 범죄를 단순히 정신질환자의 범죄라기보다 여성혐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만연하고 있던 ‘여혐(여성혐오)’이라는 단어가 이 사건을 계기로 단숨에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사건장소 인근의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됐던 피해자를 애도하기 위한 추모 공간에 나붙은 수천 장의 포스트잇 중에는 ‘나는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다’, ‘남자가 죽였다’, ‘여자라서 죽었다’, ‘男자라서 살아男았다’ 등의 내용이 눈에 띄었다. 추모 현장에서는 또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는 남성들과 이에 항의하는 여성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으며 경찰이 여러 차례 출동하기도 했다.

혐오범죄는 사회구조의 문제


▎강남역 10번 출구 입구에 빼곡히 붙은 추모 메시지. 제어되지 못한 분노는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 된다.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에는 추모는 사라지고 혐오와 분노만이 가득 찼다. 인터넷상에서는 각각 여성과 남성 중심의 사이트를 주축으로 남자 대 여자의 성대결 공방이 불을 뿜으며 비하와 조롱이 범람하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왜 우리사회를 극단적인 혐오의 장으로 몰고 간 것일까? 젊은이들은 왜 이처럼 상대에 대해 분노하는 것일까? 많은 전문가는 이러한 혐오현상을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 여성비하가 문제가 되었다면 지금은 여성혐오가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최근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청년 실업률, 30∼40대의 경제난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좌절이나 분노를 심각하게 경험한 사람들이 이 감정을 외부로 분출할 때, 약한 집단을 찾아 그들에게 분노를 부딪치는 ‘투사적 혐오’가 나타난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성혐오가 대표적이다”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는 된장녀, 김치녀처럼 여성을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OO녀’라고 하는 언어가 만연한 지 오래다. “이미 여성혐오가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고 있고,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이 여성혐오 문화가 수면위로 떠올랐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문화평론가인 김헌식 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는 여혐이라는 정서가 남성들 사이에서 만연된 것은 아니며 “일부의 제한적인 정서”라고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혐오에 관련된 담론이 발생하는 루트를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데 언론이 그걸 남녀 간의 성대결 구도로 만들어버린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혐과 관련된 유행어나 담론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확대시키는 인터넷 사이트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을 차단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적극적인 조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소현 경기대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그간 남성에게 억압당했다는 여성들의 남성혐오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여성 또는 남성 혐오가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는 가부장적인 사회문화가 빚어낸 것”으로 설명한다. 곽 교수는 “혐오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며 “성차별 외에도 노인차별, 인종 차별 등이 각종 갈등과 반목을 불러일으키고 이로 인해 또 다른 혐오가 양산된다”고 경고했다.

고도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쟁지상주의의 사회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심지어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심리가 팽배한다. 특히 청년실업과 사회 양극화가 가져온 사회적 박탈감으로 인해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세상은 자기와 다른 집단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이미 임계점까지 도달한 상태다. 혐오라는 괴물이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위적 사고가 분노조절 장애 부른다


▎5월 30일 수락산 60대 여성 살인사건 용의자 김모 씨가 30일 서울 노원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2015년 4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일반인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이 분노조절이 잘 안되어 노력이 필요한 상태다.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분노조절장애 고 위험군도 11%에 이른다. 분노조절장애의 정확한 질환 이름은 ‘간헐적 폭발성 장애’로 충동조절장애에 속하는 정신질환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는 ‘분노조절장애’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최근 5년간 32.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2009년 3720명에서 2013년에는 4934명). 분노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여 대인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성인 인격 및 행동 장애’ 환자도 1만3000명에 이른다.

정신과 전문의인 고영민 원장(은초록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은 “분노조절이 안 되는 증상들은 조울증이나 조현병 등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의 속성”이라며 “그 어느 정신과적 진단명에도 속하지 않을 경우 분노조절장애(간헐성 폭발성 장애)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노조절장애에 대해서는 이전에는 명확한 진단기준이 없었다. 2013년에 들어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구체적인 진단기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분노조절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고 원장은 ▷지나친 핵가족화로 인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대상과 기회가 줄어든 점, ▷물질만능주의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회 양극화 현상, ▷인내의 가치를 가르치는 학교와 가정의 교육 부재 등을 분노 조절장애의 증가 원인으로 들었다. 곽소현 경기대 교수는 어린 시절 심리적인 상처나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해서는 안 된다’, ‘~해야만 한다’고 하는 당위적 사고가 많은 사람, 좌절에 대한 인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분노조절장애가 잘 나타난다고 말한다.

일상의 분노조절방법에 대하여 고 원장은 “적절한 벤틸레이션(ventilation 환기)과 함께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곽 교수는 또한 “분노발작 전에는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등 자율신경계가 전조증상이 보이는데, 이때는 잠시 동안 타임아웃(time out)을 하면서 신체이완을 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심호흡, 명상 등)을 시도해 볼 것”을 제안했다.

제어되지 못한 분노는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 된다. 곽 교수는 “분노를 자기 탓으로 돌리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올 수 있으며, 타인에게로 향하게 되면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져오는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내재화 장애(심리적 장애)도 역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12년에 발생한 묻지마 범죄 케이스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가해자들의 유형은 ▷만성분노형(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도를 곡해하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재미로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으로 주폭이나 상습 폭력범인 경우가 이에 해당)이 48.5%, ▷정신장애형(신체 및 정신 병력이 있고, 정신과 치료 경험이 있는 유형)이 37.5%, ▷현실 불만형(주로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범죄를 저지르는 유형)이 16.7%의 순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보다 개인적인 분노와 불만이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는 케이스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일본 경시청이 20세 이상의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감치안의 향상과 주변범죄의 피해상황’이라는 조사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자신과 가족이 범죄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일본인은 전체의 77.3%였다. 2013년 시행된 같은 조사에서는 거리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늘었다”고 대답한 사람이 45.1%에 달했다. 그 원인에 대한 질문에는 “쉽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람이 늘었다”는 대답이 76.6%로 압도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도 일상에서 쌓인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문제라는 얘기다. 사소한 일을 계기로 폭발, 폭력 등의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사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키레루(切れる·キレる)’라는 단어가 있다. ‘화를 담아두었던 인내주머니의 끈이 끊어진다(堪忍袋の緖が切れる)’라는 라쿠고(落語: 일본 만담)에서 유래한 속어다. 이 말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감정제어가 힘든 미숙한 젊은이들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 전후에는 당시 17세 전후의 소년들에 의한 이상 범죄가 다수 발생한 것을 계기로 ‘분노하는 17세(キレる17歲)’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일본 사회는 우리나라보다 10년 이상 먼저 폭발한 셈이다. 대표적인 사건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일본, ‘분노하는 17세’와 ‘폭주노인’


▎일본은 노인들의 분노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심리적, 사회적 고립감이 분노를 부르고 범죄에 빠져들게 한다.
2000년 5월 1일, 아이치현 토요카와시의 주택가에서 대낮에 주부(60세) 혼자 있는 집에 괴한이 침입, 나이프로 40군데 이상을 찔러서 주부를 살해하고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17세의 소년. 그는 범행 직후 근처 역으로 달아나 공중 화장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춥고 피곤하다”며 스스로 경찰을 찾아와 자수했다. 그는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젊은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니 피하고 싶어서 노인을 노렸다”고 범행동기를 밝혀 일본 사회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틀 후인 5월 3일에는 고속버스에 40㎝의 부엌칼을 든 17세의 소년이 승차, 운전수를 위협해 버스를 탈취했다. 버스 안의 승객을 인질로 잡고 15시간에 걸쳐 경찰과 대치하던 중, 소년은 승객들을 찔러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 소년은 중학교 때부터 심한 왕따를 당하고 고교 입학 후에는 등교를 거부한 채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은둔형외톨이)로 지내왔으며, 2채널이라는 인터넷의 익명게시판에서 범행을 예고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6월 21일에는 오카야마현의 한 공립고교의 야구부 소년이 모친을 금속배트로 때려 즉사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소년은 평소 야구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는데 사건 당일에 자신을 괴롭히던 야구부원 4명을 배트로 때려 부상을 입힌 뒤 집으로 도주,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모친을 집안에 있었던 금속배트로 때려 숨지게 한 것이다. 소년이 경찰조사에서 밝힌 범행 동기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모친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자신이 야구부원들을 살해하여 살인자가 되면 “살인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가 불쌍해지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2000년 한 해 동안에만 총 7건의 흉악 범죄가 17세 전후의 소년에 의해서 발생했다. ‘분노하는 17세’ 혹은 ‘분노하는 소년’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준 것이다. 범인들이 학교에서 심각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는 점이 공통 점이었다. 학교폭력과 왕따로 축적된 분노가 잔인한 폭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1982년생인 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인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는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것이다.

이웃집 초등학생을 살해한 후 머리를 절단하고 입 속에 범행성명문을 꾸겨 넣어 학교교문에 매다는 등의 끔찍한 범행 수법으로 일본사회를 경악시킨 ‘고베 연속아동살상사건’도 있다. 이 사건의 범인 역시 1997년 범행 당시 14세로 1982년 생이었다. 2008년에는 아키하바라의 보행자천국 도로에 트럭을 몰고 난입하여 통행인들을 나이프로 무차별 공격하여 7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아키하바라 도오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사건의 범인 역시 당시 25세로 1982년생이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1982년생 세대가 ‘분노하는 세대’로 불리는 등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소년범죄는 소년범에 대한 법의 처벌이 미약하다는 사회의 비난으로 이어지면서, 2000년 11월에는 형사처벌이 가능한 연령을 기존의 16세 이상에서 14세 이상으로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이 성립되기도 했다.

83세 남성이 여동생을 지팡이로 난타해 살해


▎일본 사이타마현의 하토야마 뉴타운. 고도성장기 베드타운으로 개발됐지만 현재는 고령화에 따른 빈집이 증가해 외로운 노인들의 거주지로 변했다.
과거의 일본이 분노하는 젊은이들 문제로 시끄러웠다면 최근에는 분노하는 중년과 고령자들에 의한 엽기적인 사건이 빈번하다. 특히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고령자 범죄’는 사회의 또 다른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일본 법무성이 매년 발간하는 <범죄백서>에 의하면 미성년자의 흉악범죄는 1983년을 정점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오히려 65세 이상의 고령자들에 의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자의 범죄 내용을 살펴보면 살인 등의 상해사건은 지난 20년간 9배, 폭력 사건은 45배 이상 증가했다. 2015년 상반기에는 형법범(살인·강도·폭행·절도·강간 등 형법 등의 법률이 규정한 범죄를 저지른 자) 중 65세 이상의 고령자의 비율이 14~19세의 미성년자보다 많았다. 고령자에 의한 범죄율이 미성년의 범죄율을 뛰어넘은 것은 연령별 통계가 시작된 1989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2015년 6월 가나가와현을 통과하던 노조미 신칸센 차량에서 71세의 남성이 가솔린을 뒤집어쓰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52세의 여성을 비롯해 2명이 숨지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사자인 71세 남성은 도쿄에 거주하는 독거노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노인은 평소 연금수령액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고, 생활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했다. 2015년 10월 야마구치현에서는 83세의 남성이 여동생을 지팡이로 난타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80세의 여동생은 늑골이 부러질 정도로 몸과 얼굴을 심하게 구타당한 끝에 외상성 쇼크로 사망했다. 노인은 경찰조사에서 “여동생이 농사일을 돕지 않겠다고 해서 화가 났다”고 범행동기를 진술했다.

2015년 9월 26일, 도쿄 지하철 역사 안에서는 64세의 남성이 유모차에 타고 있던 한 살 아이를 구타해 경찰에 체포됐다. 유모차 근처를 지나가던 이 남성은 “통행에 방해가 되는 유모차가 눈에 거슬려서 그만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2016년 3월 22일에는 효고현의 주택가 공원에서 여섯 살 난 남자아이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을 가한 75세의 노인이 체포됐다. 노인은 경찰조사에서 “(아이에게)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분노가 범죄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며 이웃을 불쾌하게 만드는 노인들은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조금의 불편도 참지 못하고 폭언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리는 노인들을 일컫는 ‘폭주노인(暴走老人=보우소우로진)’, ‘노인공해(老害=로가이)’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한 주간지의 앙케이트에 따르면 이들 폭주노인이 자주 출몰하는 장소로는 ▷슈퍼 ▷지하철이나 버스 등의 교통시설 ▷병원이라고 한다.

철도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철도원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가해자의 연령은 60대 이상이 5년 연속 가장 많았다. 2011년 도쿄 도내의 병원근무자 3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병원에서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약 44%였으며 그들을 폭행한 가해자는 60대 이상이었다는 대답이 절반을 넘었다.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노인들에게 불친절하다” 등의 이유로 빈발하는 노인들의 트러블에 대처하기 위해 최근 들어 대형 병원에서는 경찰 출신 경호원을 고용해 원내 파출소를 설치하고 있다.

“노인문제는 세대갈등 아니다”

노인들을 왜 쉽게 분노하는 것일까? 먼저 의학적으로는 ‘노화되는 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을 담당하는 뇌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위축되는데 이 때문에 뇌의 기능이 약해지며 건망증과 같은 노화현상이 일어난다. 뇌의 부분 중에서 가장 일찍부터 위축되기 시작하는 것은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인간의 이성을 담당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데 이 전두엽의 위축으로 인해 감정억제 기능의 저하, 판단력·의욕의 저하 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감정 밸런스를 맞추어주는 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하는 것도 원인이라고 한다.

소통 부재와 언어능력의 노화를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사람은 육체뿐만 아니라 사고나 대화하는 능력도 노화한다. 고령자들은 보통 현업에서 은퇴한 후, 부부 단둘이 혹은 독신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평소에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 대화가 급격히 감소하고 언어력이 노화되지만 주위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제한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노인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화로 해결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폭발시켜버린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유대감이 점차 사라지는 현대사회에 능숙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생활보다 스마트폰이나 SNS를 통해 유대감을 공유하는 현대인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사회가 변화하지만 그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인들은 점차 혼자만이 뒤에 남겨졌다고 느끼는 고립감과 좌절감에 빠져든다. 이 같은 심리적, 사회적 고립이 노인들을 쉽게 분노하게 만들고 범죄의 길로 빠지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오랫 동안 노인문제를 취재해온 일본의 시사주간지 <슈칸 겐다이>의 엔도 스스무 기자의 지적은 일본과 한국 양국의 고민을 대변한다.

“일본은 이미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며 2060년에는 2.1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 된다고 한다. 노인들의 경제적 빈곤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가운데, 쉽게 분노하는 노인들에 의한 범죄문제까지 일본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분노하는 노인 문제를 세대갈등으로 해석한다거나 빈곤에서만 원인을 찾아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성향의 고령자를 일본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서포트해야 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 김경철 일본 고단샤(講談社)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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