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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초점] 난기류 휩싸인 친박계의 하산(下山) 

구심점 이완 틈타 권력의 균형추 ‘흔들’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주류, 전당대회 관문에서 좌고우면, 사드 등 현안에서는 핵분열... 김무성은 세(勢) 과시, 유승민·정진석 등 새질서 구축 향해 각개약진

▎6월 16일 새누리당 혁신비대위가 유승민 의원 등 탈당파의 복당을 허용하자 친박계 의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8월 9일) 당대표 경선 거취에 관한 서청원 의원의 장고(長考)는 다양한 반응을 낳았다. 주류인 친박계의 유력한 당권 주자였던 최경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7월 6일)하면서 여권의 시선은 일제히 서 의원 쪽으로 쏠렸지만 그가 열흘 이상 침묵했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친박계 경선 주자들 간의 단일화 촉구 포석이라는 쪽도 있고, 청와대와의 조율이 여의치 않은 결과라는 해석도 나왔다. 나아가 출마시 승산을 장담치 못해 당내 기류를 점검하는 상황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당대표 경선 출사표를 던진 이주영·한선교·이정현 의원은 친박계로 분류된다. 이대로라면 표 분산은 피할 길이 없다.

대놓고 불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 당대표에 도전하는 정병국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서 의원의 출마를 만류했다. 정 의원은 “서청원 선배님께 충정을 담아 시 한 수 올린다”면서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隨將于仲文詩)’를 게시했다. “그대의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고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다. 싸우며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거든 그만 돌아가기를 바라노라”는 내용이다. 주류가 자신들의 당대표 후보로 서 의원을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겨냥한 것이다. ‘여수장우중문시’는 역사적 맥락으로 따져보면 조롱과 질책의 의미도 담겼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서 의원은 2003년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수수 사건(일명 차떼기사건)의 대표였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김 의원은 “지금 다시 대선을 치르는 마당에 또다시 차떼기 얘기가 나온다면 내년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서 의원을 정조준했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박근혜 정부도…


▎7월 13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개최한 경북 성주 군민들.
당내 실력자인 최경환 의원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부터 50억원을 받은 혐의를 검찰이 포착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로 인해 신경이 곤두섰다. 최 의원은 반박자료를 내고 “롯데에서 10원 한푼, 정치후원금조차 받은 적 없다”며 해당 언론사와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김현웅 법무부장관도 국회 법사위에서 “(수사 중이라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으나 해당 언론사는 기사의 논조를 굽히지 않았다. 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경북 성주로 확정되자 친박계가 주축인 TK 의원 21명이 집단 반발하기도 했다.

전에 없이 주류 진영이 어지럽다. 총선 전까지만 해도 여권 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장면들이다. 그만큼 친박계의 위상과 결속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방증이라고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한국정치 전공) 교수는 말한다. 한 교수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패한다면 서 의원의 존재감은 희미해진다”며 “승산이 불확실하다면 선뜻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비주류 행보는 물을 만난 듯하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2선으로 물러나 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그가 7월 14일 당대표 당선 2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를 서울에서 열었다. 1500명 이상이 참석해 대선 출정식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을 낳았다. 행사의 규모 이상으로 눈길을 끈 것은 김 전 대표의 발언이었다. 그는 “집권 여당 대표로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안 된다는 생각에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참고 참았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또 “국민공천제 약속을 지키려다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몰매를 맞았다”며 공천파동 과정에서의 울분을 거침없이 표출했다.

박 대통령과 대립하며 총선 직전 탈당에 내몰렸던 유승민 의원은 4·13 총선을 통해 ‘원내 재입성’, 6월 혁신비대위 결정으로 ‘새누리당 복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7월 들어서는 언론 인터뷰를 본격화하는 등 행보에 가속도가 붙는다. 특히 7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그의 시선이 대선을 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외형만 봐서는 친박계로 기울었던 여권의 권력 균형추가 조금씩 반대 방향으로 기운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변화의 한가운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자리하고 있다고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적한다. 황 평론가는 “정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박근혜 의원으로 여권의 권력이 넘어가기 시작하던 2010~2011년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면서 “달도 차면 기운다는 섭리를 그때 몸으로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 3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정진석 의원은 친박계의 지원을 업고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그땐 그가 친박계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리라는 전망을 낳았다.

예상과 달리 그는 친박계와 곧잘 엇박자를 냈다. 5월 중순 20대 총선 참패 수습을 위한 혁신위원장에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을 선임했다. 친박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집단 반발에 나섰다. 김 의원이 사퇴하면서 이틀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또 비대위원으로 선임한 이혜훈·김세연 의원도 친 유승민계라는 이유로 친박계에 의해 보이콧됐다. 반면, 정 원내대표도 청와대가 비대위원으로 추천한 인사를 비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16일은 훗날 새누리당 운명의 물줄기를 돌려 놓은 사례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날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유승민 의원 등 탈당인사의 일괄 복당을 의결했다. 유 의원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게 쌓고자 했던 청와대와 친박계의 기대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친박계는 ‘비대위 쿠데타’로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이를 주도한 정 원내대표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한 측근은 정 원내대표가 16대 국회는 자민련, 17대 국회는 무소속으로 입성했음을 상기시켰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몸담은 기간은 비례대표 의원을 하다가 청와대로 갔으니까 2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가 정치적으로 늘 비주류의 삶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당권 잡으면 분당 가능성?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운데)가 7월 14일 당대표 당선 2주년 기념만찬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 전 대표의 부인인 최양옥 여사.
박근혜 정부 출범 후 3년여 동안 숨죽이고 있던 비박계, 비주류의 시대가 오는 걸까?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박근혜 정부도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권력누수가 가속화할 게 자명하다. 박 대통령을 따르는 새누리당 내 주류의 입지도 날로 위축되게 마련이다.

김용태 의원 같은 이는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축소지향적 국정운영에 의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예측한다. 김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친박계만 똘똘 뭉쳐 만든 정권이 아니다. 비박계, 친이명박계 심지어 새누리당을 지지하진 않아도 야당이 집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이들의 성원과 열망을 안고 출범한 정권이다. 하지만 집권 후로는 친박과 비박을 나누고, 친박에서도 진짜(진박)와 가짜(가박)가 갈렸다.

그 진박 중에서도 진짜 실세와 핵심은 또 따로 놀았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과거를 반추해보면 보면 끊임없이 국정 동력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용해왔다. 그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굉장히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유승민 의원도 끌어안지 못하는 정부가 어떻게 출범 당시 국민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겠나?”

김 의원이 보는 친박계는 국민의 기본적인 생각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고립된 의식의 섬과도 같다. 그럼에도 내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제기할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그런 친박계가 8월 전당대회에서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당권을 장악하고 당을 한 쪽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간다면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고 그는 우려한다.

새누리당의 심장부격인 대구 정서가 사드배치 문제로 들끓는 것도 임기말 주류 결속력 이완의 단초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한정훈 서울대 교수는 “사드배치 문제가 박 대통령의 레임덕과 친박의 분화를 함께 부추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교수가 보기에 현재 친박계는 뚜렷한 후계구도가 보이지 않는다. 여권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망론을 통해 안정화의 계기를 잡았다고 하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공무원 출신’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핸디캡으로 거론된다. 반 총장 중심으로 친박계가 결속을 다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한 교수는 진단한다. 더구나 박 대통령도 후계구도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주지 않아 친박계가 결집할 유인(誘因)이 약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대구 지역 친박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사드 경북 배치 문제가 터졌다는 점에 한 교수는 주목했다. 그는 “핵심 친박이라면 모를까 변방의 친박들은 새로운 살 길을 도모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바야흐로 주류와 비주류, 친박과 비박 간 희비가 엇갈리는 시대로 새누리당이 접어들고 있다는 해석이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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