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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토로] 혁신위원장 ‘2일 천하’,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 

“최경환, 당대표 경선 불출마 결단 내려야” 

글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친박계, 연말부터 골수 친박당으로 만들려다 선거 망가뜨려… 내분 어설프게 봉합하면 훗날 대통령 탈당 요구하는 사태 올 수도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당의 혁신에 저항하는 세력은 국민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한다.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가 6월 16일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탈당파 의원들의 복당을 전격 승인했다. 이에 당의 주류인 친박계는 “쿠데타를 하듯이 복당을 밀어붙였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김희옥 새누리당 혁신비대위원장이 거취를 고민하는 등 여권이 계파갈등과 함께 격랑에 휩싸인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48·서울 양천을·3선)은 이 장면에서 데자뷔(기시감)를 느낀다. 꼭 한 달 전 20대 총선 참패 수습을 위한 혁신위원장에 선임됐다가 역시 친박계의 집단 보이콧에 반발해 이틀 만에 사퇴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비운의 혁신 수장이었던 셈이다.

탈당 의원 복당 문제도 그가 구상했던 ‘김용태 혁신안’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김 의원은 유 의원 등 탈당 의원들의 복당 결정을 “새누리당 혁신의 첫걸음”으로 환영하면서 “이를 방해하고 무산시키려는 세력은 국민과 당원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 세력에 경고했다.

나아가 “이번에 복당 결정으로 의원들은 원상회복이 됐지만 떨어진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피해를 복구할 길이 없다”고 전제, “막장공천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며 공천 파동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김 의원과의 인터뷰는 6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뤄졌으며 이후 전개된 상황에 대해서는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탈당파 의원들의 복당 결정을 둘러싸고 새누리당이 분란에 휩싸였다. 마음이 착잡하겠다.

“이번 복당 결정은 공천 배제에 반발해 탈당한 의원들에 대한 원상회복 조치라고 본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막장공천 때문에 아깝게 낙선한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는 어떤 보상이나 원상회복도 불가능하다. 총선 참패 원인을 규명하고 잘못된 공천을 주도한 인사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재발 방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는 피해갈 수 없는 숙제다.”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왜 무리한 공천을 밀어붙였을까?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이미 다 알려진 사안이니 더 언급할 건 없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그랬는가다. 권력은 잡았는데 국정운영이 제대로 안되니 좌절했을 수 있고, 여당 내부를 단단히 결속하자고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내가 놀란 것은 새누리당을 탈탈 털어 완벽한 골수 친박당으로 바꾸기로 작심했다는 점이다. 그런 작업이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고 하더라.”

그때는 야당이 분열하기 전인데.

“그렇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기 전이라 총선이 일대일 양자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한쪽을 잘라내면서 선거를 치르겠다는 계획을 세운 기본 배경이 굉장히 궁금했다.”

져도 좋으니 마음 맞는 우리 편이랑 가겠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은 김용태 혁신위원장에게 전권에 가까운 권한을 약속했으나 친박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지난해 말부터 준비됐다는 건 어떻게 확인했나?

“친박계 핵심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사람을 여럿 만나 확인했다. 지난해 말부터 살생부에 올릴 명단을 리스트업(list up)했다는 얘기를 충분히 들었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여권이 갈라지면 선거가 큰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 또 이재오, 정두언, 김용태 같은 이들을 쳐내면 수도권에서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점까지 깡그리 무시하면서 그런 의사결정을 내린 배경은 두 가지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첫째 ‘선거에서 져도 좋으니 마음 맞는 우리 편이랑 가겠다’는 것이거나 둘째 ‘다 잘라내더라도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 외에는 없다.”

그럼 총선 패배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보나?

“유권자들은 응징할 준비가 돼 있었고 공천 난맥상은 그 격발 포인트(trigger point)로 작용했다. 국민은 우리에게 정조준 사격을 가했다. 져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지니까 당으로서 답이 없는 것이다.”

공천 당시 친박계 핵심이 작성한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복합한 심경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 ‘이렇게 죽을 순 없다’는 각오 등 만감이 교차했다. 공천에서 배제됐으면 탈당해서 출마했을 것이다. 그런데 양천을 선거구는 여당에서 공천 신청을 한 사람이 없는데도 나를 솎아내려고 하더라. 누가 와도 어려운 선거구인데…. 한 석 잃어도 김용태만 떨어뜨리면 상관없다는 얘기였나.”

지난 5월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선임되고 이틀 만에 사퇴했다. 그 내막이 궁금하다.

“총선 후에도 새누리당은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내가 그 자리에 선택된 건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는 요청이라고 봤다. 또 당 지도체제와 전당대회와 관련한 혁신 방안을 도출하는 것도 주요 과업이었다. 총선 후 머릿속에 그려온 구상을 혁신위원 내정자들에 설명했고 한 분에게는 메모 형식으로 줬다.”

정진석 당시 비대위원장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는데 사실인가?

“정 위원장은 두 가지만 빼고 혁신위원장에게 다 주겠다고 했다. ‘어떤 경우든 당이 깨져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갈라서선 안 된다’ 이 두 가지를 약속할 수 있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다시 제안했다. ‘당이 깨지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당이 깨진다는 자세로 철두철미하게 혁신해야 한다’, ‘대통령과 갈라서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천 파행은 확실하게 청소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당이 깨지거나, 대통령과 결별하는 일이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봉합했다가는 훗날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 때 그랬지 않은가? 정진석 위원장이 내 말에 오케이했다. 그래서 나도 전권을 주는 걸로 보고 수락한 것이다.”

김무성, 공천 파동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패배자


▎5월 15일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에 선임된 김용태 의원은 “뼛속까지 바꾸는 혁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박계 등 주류가 그런 혁신 구상을 수용하기는 어려운 구조 아니었나?

“지금 돌아보면 내가 좀 낙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했던 것 같다. 총선 패배 후 정권을 제대로 운영하자면 대통령이나 친박 핵심이 어떻게든 수습에 협조하리라 예상했다. 혁신을 통해 원구성이나 정국 운영의 동력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정부분 타협과 절충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해법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정무수석이 총선 패배를 책임지는 모양새로 자진 사퇴하고,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유감을 표명하고, 최경환 의원·김무성 전 대표 모두 책임지는 차원에서 전당대회 불참을 결정하고…. 전당대회와 관련해서도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 현 당헌당규를 고쳐 당권주자도 대권에 도전하는 길을 터면 많은 분이 당 대표 경선에 나설 것으로 보았다. 이 정도면 타협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와 혁신위 구성안을 의결하고자 5월 17일 소집된 전국위원회,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친박계가 김용태 의원의 혁심 위원장 선임,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 구성에 반발해 집단적으로 불참한 결과다. 김 의원은 전국위 무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며 혁신위원장 사퇴를 선언했다.

정진석 위원장이 청와대나 친박계와 사전협의하지 않고서 혁신위원장직을 제안한 게 됐나?

“사실 나는 이렇게 제안했다. 혹시라도 격렬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으니 전국위, 상임전국위가 열리는 5월 17일 이후로 혁신위원장 선임 결과 발표를 늦추자고. 전국위와 상임전국위에서 혁신의 틀을 만든 후에 혁신위원장 발표해도 늦지 않은 거였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보안 유지가 어렵고, 친박계가 반발하지 못할 거라고 해서 예정대로 발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 위원장의 판단착오였다. 나중에 정 위원장이 내게 제시했던 두 가지 조건을 공개했다. 자신이 (친박계를) 배신한 게 아니라는 사인을 보내려고 공개한 것 같다. 비대위, 혁신위 출범이 무산된 뒤 사태를 수습한다고 소위 3자회동(김무성-최경환-정진석의 5월 24일 회동)을 가진 것도 다 이런 것과 연관이 있지 않겠나.”

김 의원 혁신안에 공천파동 책임자의 당원권 박탈 같은 내용도 있다고 보도됐다.

“‘박탈’이란 말은 없었다. 총선 패배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면 책임자급에서는 어떤 대처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공관위원장, 당 대표, 친박 핵심, 청와대 정무라인 이렇게 기본적으로 4개 덩어리가 있다. 이들에 대한 처분은 비대위 몫이며 혁신위는 이런 방식이 좋겠다고 의견을 개진하면 된다. 자연스럽게 당원권 정지, 정치적 거취 요구 등 두 가지 논의가 수반되는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가 김용태 혁신위 출범에 일조했나?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김 전 대표는 공천 파동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패배자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대선후보로서 위상을 추구하다가 그냥 망한 케이스다. 그는 친박계하고 한데 묶이는 바람에 총선 패배의 멍에를 함께 뒤집어썼다. 그래서 피해자라는 것이다. 패배자라는 건 당 대표로서 친박계에 맞서 새누리당 공천 관리를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못했기 때문이다. 친박계가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비토하고 괴롭혔다면 국민에게 알리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싸웠어야 옳았다.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의 소극적 반응만 일삼다 계속 밀리고 만 셈이다.”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건가?

“아직은…. 기본적으로 당 대표 선거에 나서는 문제를 제대로 검토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진 채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가’라는 위기감은 느낀다. 이런 말 꺼내는 것도 눈치를 보게 되는 게 우리 당의 현실이지 않나. 오죽하면 나더러 비박계 강성이라고 할까. 나는 강성이 아니라 일반인의 상식의 수준에서 얘기하는 정도다.”

수원수구(誰怨誰咎), 대통령은 누굴 탓하는 자리 아냐


▎지난 4월 총선 당시 서울 양천구 신월2동 거리에서 ‘목발’을 짚은 채 선거운동을 펼치는 김용태 의원.
박근혜 정부 출범 3년이 지났다. 평가를 한다면?

“박 대통령도 잘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법과 원칙이 서는 나라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겠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으로서 경제도 일으켜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 댓글 사건, 세월호 침몰, 메르스 확산, 교과서 국정화 등 예기치 않은 악재에 개혁 의제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게다가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총선을 치러 이 지경에까지 와 있는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나. 수원수구(誰怨誰咎)다. 그 자리(대통령직)는 누구를 탓하는 자리가 아니다. ”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비협조적인 국회를 서운하게 여기지 않을까?

“집권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집권은 영광이 아니라 고난이다. 결과로써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 힘들고 귀찮고 자존심 상해도 나 같은 정치인을 계속 설득해야 하는 자리다. 더 중요한 쪽은 야당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의원들 뒷조사도 했다. 약점을 파고들어 회유하고 협박도 해서 중대한 법안과 정책을 관철시켰다. 그런 게 쌓여서 역사의 기록이 되고 후대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 아니겠나. 나 같은 사람 정무수석 시켜주면 진짜 잘할 것 같은데.”(웃음)

청와대 정무수석실 기능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익히 알지 않나?

“의원들 가려운 데 긁어주면서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과 법안 협조를 이끌어내는 일을 하는 곳이 청와대 정무수석실이다. 필요하면 대통령으로 하여금 직접 전화를 걸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정무수석이 여럿 거쳐갔지만 나랑 전화통화 한 번 하지 않은 이도 있다. 지금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대통령이 ‘원하는’ 기능만 하는 것 같다. 정작 필요한 것은 대통령을 ‘위하는’ 기능인데도 말이다.”

보수 진영에 내년 대선 비관론이 짙게 드리운다. 어떻게 전망하나?

“요즘 사는 게 다들 힘들지 않나. 희망도, 기쁨도 없이…. 어디에다 화풀이를 한다면 결국 정부여당이 떠안아야 한다. 화난 국민들이 혼낼 대상을 찾을 것이고 내년 대선은 (집권기간 업적을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가 될 것 같다.”

미래 지도자의 리더십에 주안점을 두는 전망적 투표가 아니라는 말인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같은 사람이 그런 걸(전망적 투표)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반 총장은) 국민들이 뭘 힘들어하는지 물어도 잘 모를 것만 같다. 뭐라고 답은 할 텐데 ‘지난 10년간 한국을 떠나 놓고선 뭘 안다고 말하느냐’고 반박하면 답이 궁할 것 같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느낌이니까.”

새누리당 대선 후보군을 재건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를 빼면 변변한 대선 후보군이 없다. 그러자면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규정을 고쳐야 하는데 혁신비대위는 기존 규정을 고수한다. 지금 같은 구조라면 전당대회는 잔칫집이 아니라 비난만 쏟아지는 행사로 전락할 것이다.”

최경환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걸 반대하나?

“사실 최 의원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 (총선 참패 등 지금의 사태에) 책임을 떠안지는 않더라도 전당대회 출마하는 일은 재고해야 한다. (최 의원이) 뭔가 공간을 열어 줘야 많은 사람이 출마해서 겨뤄 볼 것 아닌가. 당을 살리려면 이번 전당대회에 안 나오는 게 맞다. 전당대회 공간이 넓어져야 당이 거듭나는 기회를 잡는다.”

총선 패배 유승민 책임론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


▎2014년 새누리당 보수혁신특위 회의에 참석한 김문수 보수혁신특위 의원장과 복거일·김용태 특위위원.(왼쪽부터)
총선 직후 새누리당이 갈라지는 줄 알았다. 헤쳐모여식 새판짜기가 아직도 가능할까?

“친박계와 같은 특정 세력이 전권을 장악하고 당을 일방적으로 운영한다면 일부 세력이 뛰쳐나가리라는 관측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게 현실화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당에서 끝까지 싸워나갈 생각이다.”

복당하게 된 유승민 의원에게 새누리당 총선 참패 책임은 없나?

“유승민 의원 파동이 커지면서 이 지경으로 왔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책임져야 한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공천관리위를 장악한 친박계가 책임을 져야 한다. 엉망이 된 연후에 유 의원 책임이라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나. 과거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는 얘기는 유승민 의원이 해야 할 말이다.”

유 의원의 취향과 노선에 공감하는 편인가?

“개인적으로 그와 친한 것도 아니고 따로 밥을 먹은 적도 없다. 공당에서는 의원마다 정치적, 정책적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도 유 의원이 추진 중인 사회적경제기본법에는 반대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입장도 달리 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무조건 당에서 나가라, 출당시키겠다고 한 건 온당치 않은 처사였다.”

기업 문제를 다루는 국회 정무위에서 오래 일했다. 최근 롯데그룹 등 재계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해 사정정국으로 간다는 얘기가 있는데.

“재계, 기업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Fact), 즉 사실 관계다. 사실관계만큼이나 중요한 게 시중 여론이다. 공연한 오해를 사지 않아야 검찰의 수사에도 탄력이 붙는다. 자칫 잘못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면 안 한 것만도 못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검찰 스스로도 역풍을 맞거나 경제에 큰 타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수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개각 가능성을 전망한다면?

“전면 개각이 필요하다. 국정의 일대 쇄신이 불가피한 환경 아닌가. 대탕평 개각으로 혁신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호남 출신 총리가 야당을 찾아가 법안 처리 협조를 요청하고 국정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정부산하기관장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추천을 받아 임명한다면 공공분야 개혁도 속도를 낼 것이다.”

김 의원은 1991년 동기들보다 네 살 많은 나이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8월엔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 군부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상대로 실패한 쿠데타를 획책하는 등 동구권이 일대 혼란기에 접어들 즈음이다. 학과 생활이나 동아리 활동에 흥미를 잃은 그는 91년 2학기에 휴학을 하고 언론사가 주최하는 소련 탐방단에 합류,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한 소련의 현실을 목도한다. 그는 “체제가 무너질 때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두 눈으로 봤다”면서 “이래서 정치가 중요하며 세상을 바꾸는 지렛대도 정치라는 걸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1992년 총선에서 제도 정치권 진입을 시도한 민중당에 합류해 이재오, 이우재, 김문수, 정태인 등 당시로서는 재야의 쟁쟁한 인물과 인연을 맺는다. 그는 민중당의 반(反)ML(마르크스·레닌)주의, 반김일성주의, 헌법 준수, 독자 정치세력화 노선에 매료됐다고 돌이켰다. 의석획득에 실패한 민중당이 해산하자 1993년부터 경실련에 참여했다가 1995년 문민 정부 청와대에 몸을 담는다. 이런 인연으로 만난 이원종 전 정무수석, 김원용 차의과학대 석좌교수 등은 평생의 멘토로 자리매김하면서 오늘날 ‘정치인 김용태’를 만들었다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1996년 청와대 입성 경위가 궁금하다?

“1993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경실련학생회 후보를 냈으나 고배를 마셨다. 그때 내세운 후보가 김동성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었다. 지금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는 고성국 박사가 1995년인가에 ‘한국 사회의 변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가보라’고 해서 소개해준 곳이 청와대였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폭삭 망한 집권여당인 신한국당과 청와대는 1996년 총선 승리를 위해 이른바 고수들을 끌어 모았다. 그때 이런저런 계기로 만난 이들이 이원종(전 청와대 정무수석), 권영진(대구시장), 이성헌(전 국회의원), 권택기(전 국회의원) 등이다.”

박 대통령, 퇴임 후 정치세력화 염두에 뒀나


▎김용태 의원은 국민의당이 나선다면 개헌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치는 왜 하는 건가?

“나와 가족, 공동체, 이걸 바꾸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정치다. 정치는 내 삶의 목표이자 존재형식이다. 내 가치를 구현해내는 수단이기에 모든 것을 거는 거다. 허튼 짓, 창피한 짓을 할 수 없는 이유다.”

그 정치가 제 몫을 못해서 나라가 위기라는 지적이다.

“진단과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문제는 정치세력이 정반대 방향으로 달린다는 데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정치 불능상태다. 과거엔 제자리에 있으면 현상유지라도 했지만 지금은 물 위에 떠있는 형국이라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무조건 뒷걸음질치는 세상이다. 역수행주 부진즉퇴(逆水行舟 不進則退)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우리 스스로가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나? ‘위기의 일상화’ 속에서 국민들은 위기 그 자체를 ‘평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 아닌가?

“정치권도 위기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손 놓고 있다. 군 인력 수급을 보자. 지금 현역은 22개월 복무하고, 군 병력은 63만 명 수준을 유지한다. 2005년도에 태어난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는 2024년쯤 입대한다고 치자. 2005년 출생인구가 43만 명이다. 이중 남자를 21만5000명으로 칠 때 군 병력 63만 명을 유지하자면 복무기간은 어떻게 돼야 하나? 딱 3년이다.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군 병력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모병제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7년 뒤가 2024년이다. 그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은 판에 정치권은 입도 뻥긋 않는다. 대학 정원, 노인 의료비 심지어 김영란법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를 일대 혼란에 빠뜨릴 폭탄들이 줄을 섰는데도 정치권은 들여다보길 꺼린다.”

뾰족한 수라도 있나?

“지금은 180도 반대방향으로 내달리는 정치세력들이 150도든, 130도든 조금만 각도를 좁혀주면 된다. 동의할 수 있는 접점을 찾고 정책적 합의를 이룰 협치가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

개헌론이 요즘 다시 고개를 든다.

“대권을 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 개헌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민의당이 키를 잡고 나서면 개헌 논의라는 바퀴는 굴러갈 수 있다. 대통령은 초기에는 개헌에 부정적이다가도 임기 종반으로 가면 개헌 쪽으로 기우는 법인데 (개헌 논의에 반대하는) 박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독특한 케이스다. (퇴임 후에도) 일정한 정치 세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때가 아니라고 보는 건지….”

물리적으로 대선 전에는 불가능해 보이는데.

“대선 전 개헌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게 어려우면 적어도(각 후보들이) 개헌을 대선의 제 1 공약으로 제시하면 좋겠다. 개헌 관련 정치일정까지 공약에 반영해 대선을 치르는 방법은 어떨까.”

- 녹취·정리 나은경 인턴기자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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