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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 천황 ‘생전퇴위’에 미소짓는 아베 

‘헌법 제9조 개헌의 길 열린다’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천황제 폐지 두려워하는 황실의 속사정도 작용… ‘전후 70년 평화체제’ 무너지는 계기 될지도
천황이 생전퇴위를 희망하는 이유에는 미치코 황후에 대한 배려가 담겼다. 결혼 후 57년이란 세월을 일반인 출신 아내에게 희생과 수고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아베의 개헌 시도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은 상식적 관측에 불과하다. 아베는 생전퇴위를 위한 개헌작업이 제9조 개헌에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고무될지도 모른다.


▎8월 15일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1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비가 전쟁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묵념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바라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올해도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일본의 가해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8월 8일 오후 3시 천황이 ‘생전퇴위’를 표명한 것으로 일본 열도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우선 천황이 8분 남짓한 비디오 메시지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의 강렬한 마음이 담긴 메시지를 소개한다.

“전후 70년이라는 큰 이정표를 지나, 2년 후에는 헤이세이(平成: 아키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 30년을 맞이합니다. 저 역시 80세를 넘기면서 체력 면 등으로 여러 가지 제약을 느끼며 최근 들어 천황으로서의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자세나 임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천황 역시 고령이 되었을 경우, 어떤 자세가 바람직한지 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만 천황이라고 하는 입장상, 현행의 황실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삼가겠습니다.

저는 즉위 이래, 국사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일본 헌법에서 ‘상징’으로 규정한 천황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매일 고민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전통의 계승자로서, 이를 이어나갈 책임을 통감하면서도, 나날이 새로워지는 일본과 세계 속에서 일본 황실이 어떻게 전통을 살려서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고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몇 년 전에는 두 번의 외과수술을 받았고, 더불어 고령에 의한 체력 저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종래와 같이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곤란해졌을 경우,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게, 또한 제 뒤에 있는 황족에게 바람직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80세를 넘었고 다행히 아직 건강하다고는 해도 점차로 신체가 쇠약해질 것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상징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천황의 고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공무나 책무를 한없이 줄일 수도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천황이 미성년이거나 중병 등으로 인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경우에는 왕을 대신하는 섭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천황이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할 수 없는 상태로, 생이 끝날 때까지 왕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천황이 건강을 해쳐 위중한 상태에 빠진 경우,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회가 정체하고 국민 생활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더구나 사망 시에는 지금까지의 황실 관습에 따라 무거운 장례 행사가 두 달 동안이나 지속됩니다. 추도 관련 행사도 1년 동안 지속됩니다. 그런 여러 가지 장례 절차와 함께 새로운 천황 시대에 관한 제반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행사에 관련된 사람들, 특히 남아 있는 가족은 아주 힘든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피할 수는 없을지 때때로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도 말씀 드렸듯이, 헌법에 따라 천황은 국정에 대한 권한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긴 황실 역사를 돌아보면서, 앞으로도 황실이 어떤 순간에도 국민의 곁을 지키고 국민과 함께 이 나라의 미래를 준비해 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상징천황’의 책무가 끊이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계속 수행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이해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항상 긴장을 강요당하는 천황


▎일본 도쿄 시민들이 8월 8일 아키히토 일황이 조기퇴위 의사를 밝히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 천황의 비디오 메시지를 보면서 천황의 여러 다양한 기분을 추측해보았다. 먼저 첫째로 천황은 고령에 의해 현재의 일이 버거운 것이다. 일본의 일반적인 회사는 60세가 정년퇴임이다. 그러나 천황에게 정년은 없다. 실제로 만 82세가 된 현재도 이전과 전혀 변함없는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천황의 업무란 잘 아는 바와 같이 일반적인 업무와는 크게 다르다. 국사 행위는 항상 국민의 감시 아래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오가 일절 용납되지 않는다. 천황 측에서 보면 항상 긴장을 강요당하게 된다.

전임자인 쇼와 천황은 ‘24시간 천황’이라 불렸다. 쇼와 천황의 인생 전반부는 일본제국의 최고책임자로서 정부와 군의 총사령관이던 전쟁 시절이었다. 1945년에 일본이 패전한 뒤, 인생의 후반부는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평화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쇼와 천황은 평화로운 후반부의 인생에서도, 24시간 365일, 전쟁 시절과 다름없는 긴장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했다. 바꿔 말하면, “천황에게 사생활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쇼와 천황의 장남인 지금의 헤이세이 천황은 전후 평화스러운 시대에,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미국인 여성인 가정교사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 등의 개념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아왔다. 헤이세이 천황은 아버지에게는 절대 복종했지만 청년 시절에 한 번 아버지에게 반항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반려자는 스스로 고르겠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황족은 황족끼리 결혼하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민간인인 쇼오다 미치코를 아내로 선택했다. 황실은 이 결혼에 반대했지만, 일본 열도가 미치코 붐으로 끓어오르면서 반대를 꺾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또 한 번의 반항은 ‘24시간 천황’을 거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천황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오후 7시까지라고 정한 것이다. 매일 오후 7시가 지나면, 천황의 가면을 버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사적인 시간을 즐긴다. 이것을 즉위 이후 28년간, 일관되게 지켜왔다. 그러나 두 번의 수술을 거쳐 80세를 넘은 현재, 초기 알츠하이머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매일 계속되는 공무를 무사히 치르는 일이 힘들게 된 것이다.

‘순례의 여행’도 끝이 났다


▎아키히토 일황이 생전 퇴위와 관련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예정인 가운데, 일본 정부가 일황에 한해서 생전퇴위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8월 7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2월 23일 81세 생일을 맞은 아키히토 일황(왼쪽에서 셋째)이 왕실 가족과 함께 왕궁 발코니에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
그는 원래부터 성실하고 외고집인 성격을 가졌다. 예를 들면 누군가와 면담할 경우에는 상대방이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예외 없이 상대방의 저서나 과거 언동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공부하고 나서 만났다. 그런데 그런 점을 포함해서 이제는 체력적인 한계를 느낀 것이다. 확실히 TV 화면을 봐도 최근의 천황은 고령으로 인해 대단히 지쳐 보인다. 예를 들면, 지난해 8월 15일의 전후 70주년의 전몰자 위령제에서는 식전 순서를 일부 혼동해서 주위를 긴장시켰다.

천황이 생전 퇴위를 희망하는 둘째 이유는 미치코 황후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황실 담당기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있다. 지금의 헤이세이 천황은 미치코 황후와 완전히 한 몸이 된 존재라는 것이다. 천황과 황후는 아침부터 밤까지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했다. 금슬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천황은 모든 일을 황후와 상의해서 결정하고, 황후의 조언에는 최대한 귀를 기울인다. 천황은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결정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관례로는 천황과 황후의 무덤은 따로따로였다. 그런데 헤이세이 천황은 “반드시 황후와 같은 무덤에 들어가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헌법은 천황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의 천황과 황후는 정말로 ‘일본의 이상적 부부의 상징’인 것이다. 이처럼 아내에 대한 사랑이 큰 헤이세이 천황의 입장에서는 결혼 후 57년이란 참으로 오랜 기간을 일반인 출신의 아내에게 희생과 수고를 끼쳐온 것이다. 그 때문에 마지막으로 얼마 남지 않는 여생에는 아내의 어깨에서 짐을 내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일 생전 퇴위가 가능해지면 이들 부부의 행동은 지극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도, 외출이나 쇼핑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천황은 바로 그런 여생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천황가의 내막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근의 천황과 황후는 마음을 전부 정리한 듯 전에 없이 밝은 분위기다. 만약 생전 퇴위가 가능해지면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면서 두 사람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아닐까?”

천황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아무리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는 하지만 무거운 ‘갑옷’을 벗어 던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궁이라고 하는 ‘새장 속의 새’와 같은 생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아내가 옆에 있기 때문에.

천황이 생전퇴위를 표명한 셋째 이유는 지난해 여름, 전후 70주년을 지내면서 마음의 정리를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언급한 대로 천황은 어린 시절부터 미국인 가정교사에게 자유와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다. 그 때문에 대단히 자유롭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천황에게 선거권은 없지만 설사 선거권이 있다 한들 아마 아베 신조의 자민당 정권에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천황을 잘 아는 인물은 이런 애기를 들려줬다.

남북한과 대만 방문이 좌절된 이유


▎아키히토 일황 부부가 지난해 4월 9일 2차대전 격전지였던 팔라우를 방문해 페릴류섬의 전몰자 위령비에 헌화한 후 또 다른 전투가 벌어졌던 앙가우르섬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금의 천황은 자신의 아버지 시대에 일본이 아시아 각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는 점을 항상 마음에 두어왔다. 그래서 자신의 역할은 아시아 나라를 돌며 속죄를 하고, 아시아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9년 천황에 즉위한 이후 예전에 일본군이 피해를 입힌 각국으로 ‘순례의 여행’을 계속했다. 1992년 중국을 방문했으며, 작년에는 팔라우, 올해는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시아 나라를 방문하여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렸다. 이러한 아시아 순례 여행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전후 70주년이 지나자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아시아 순례 여행’에서 천황과 황후가 아직 가지 못한 나라가 3곳 있다. 첫 번째는 지난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이다. 중국은 방문하면서 한국에 가지 않은 이유는 한국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수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국민감정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천황은 한국을 방문해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그 넋을 기리고 싶을 것이다. 최근에는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장남인 황태자를 파견하려고 했다. 우선 황태자를 파견하여 한국 국민의 거부감이 엷어진 후에는 자신도 방한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해 4월 대구 경북에서 제7차 세계물포럼이 열렸다. 유엔 ‘물과 위생에 관한 사무총장 자문위원회’의 명예총재를 맡고 있는 황태자가 방한할 수 있는 명목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이때 한국 측도 황태자의 방한에 적극적이었다.

천황이 황태자를 한국에 파견하려 했고, 한국 측도 이를 수용했다. 그럼 왜 황태자의 방한은 실현하지 못했을까? 아베 정권의 반대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극히 보수적인 인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극우사상의 소유자다. 즉 천황과는 생각이 극과 극처럼 다르다.

물포럼이 열린 지난해 4월 시점에서, 한일 양국은 새로운 정권이 발족된 지 2년이 넘도록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단독 정상회담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일본 황실이 황실외교를 시작하게 된다면 아베 정권은 톡톡히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헌법에 의하면 황실의 국사행위는 모두 내각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즉 아베 총리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황태자는 한국에 갈 수 없다. 그리고 실제 아베 총리는 “노”라고 말한 것이다. 천황의 입장에서는 이 과정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방한은, 한국 측의 반일감정이란 사정에 더해 일본 측의 사정도 문제가 되면서 실현이 곤란하다고 깨달은 것이 아닐까?

천황과 황후가 ‘순례 여행’을 가지 못한 두 번째 나라는 북한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과 1990년 이래 국교정상화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36년이 지난 현재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과는 국교를 정상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아베 정권도 그 원칙을 답습한다. 한편 북한 측은 “납치 문제는 2002년에 해결완료”라는 입장으로 일본과 북한은 평행선을 긋고 있다. 북한과의 국교정상화가 실현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천황의 방북은 불가능하다. 즉 가까운 미래에 천황의 방북이 이뤄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천황부부가 ‘순례 여행’을 가지 못한 세 번째 나라는 중화민국, 곧 대만이다. 일본이 대만과 단교한 1972년 당시 지금의 천황은 아직 황태자였다. 그리고 천황에 즉위하고 나서는 중국 측의 맹렬한 반발로 방문이 성사되지 않고 있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반일감정이 강할 리도 없고, 오히려 대환영이다. 친 대만파인 아베 총리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천황의 대만 방문을 가로 막는 것은 오로지 중국의 맹렬한 반발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반발이 그칠 일은 없기 때문에 천황의 대만 방문도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순례 여행’에서 빠진 한국, 북한, 대만은 모두 가까운 미래에는 방문 가능성이 적은 것이다. 그렇다면 전후 70주년의 이정표를 지난 현재,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천황이 판단했다고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다.

‘황실폐지론’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 우려


▎아베 신조가 총리가 ‘일본 주권회복 기념식’에서 연설하기 직전 아키히토 일황 내외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필자는 천황이 생전퇴위를 표명한 네 번째 이유로, 황실 존속에 대한 불안을 꼽는다. 일본의 매스컴이 지금까지 황실의 소문에 대해 가장 많이 보도한 내용은 미치코 황후와 마사코 황태자비의 불화문제다.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미치코 황후와 마찬가지로 귀족이 아닌 일반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도쿄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우수한 커리어우먼이었다. 당시 외무성 직원이었던 오와다 마사코와 나루히토 황태자의 러브 스토리는 헤이세이 천황의 러브스토리에 못지않게 일본 열도를 열광시켰다.

그러나 미치코 황후는 두 사람의 결혼에 반대했다. 이유는 “마사코에게 황후의 역할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태자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사코와 결혼했다. 유학파에 엘리트 외교관 출신인 마사코는 자신이 ‘새로운 황실외교’를 선보이겠다는 야심 찬 꿈을 안고 황실에 들어왔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는 인습의 고리가 뿌리 깊게 둥지를 틀고 그녀를 짓눌렀고, 그녀는 곧 노이로제 증상을 겪게 됐다. 황태자와 마사코에게는 외동딸 아이코가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끊임없이 이혼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미치코 황후는, 이기적인 성격의 마사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만일 지금의 천황이 타계한다면 천황이 비디오 메시지에서 말한 것처럼 1년간에 걸쳐 각종 의식이 이어진다. 그러한 무거운 짐을 마사코가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고 천황부부는 판단한 것 아닐까? 만일 마사코가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없어서 황후로서의 직무를 포기하기라도 하면, 일본에서는 ‘황실폐지론’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21세기에 1500년 전에 형성된 전통의 세계는 필요 없다는 의견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천황과 황후로서는 그러한 사태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전에 자리에서 물러나 황태자 부부를 일찌감치 천황 황후로 추대하는 것으로 직무에 익숙해지도록 함과 동시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타계에 따르는 부담을 줄이고자 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이른바 황실 존속이라고 하는 방어본능이 작용한 것이다. 비디오 메시지를 보면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한 천황의 기색이 진하게 느껴진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을 때, 당시의 쇼와 천황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제일 먼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A급 전범으로서 천황이 처형되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미국에 의한 황실의 폐지였다. 이때 일본정부와 천황은 그 어느 쪽도 회피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 두 가지 비극을 회피하는 데에 성공했다. 간략히 설명하면 닥쳐오는 소련과의 냉전 속에서, 일본이 미국의 교두보가 될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천황은 전범에서 벗어났고 황실도 존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 일본정부로서는 앞으로 언제 천황제가 폐지될 것인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1947년 시행된 일본 헌법에 ‘천황계승 규정’은 담았지만, 고의로 ‘천황퇴위 규정’을 담지 않은 것이다. 69년이 지난 시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 소동의 원인을 제공했다. 천황이 아무리 생전 퇴위를 희망한다고 표명했어도, 실현되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앞서 지적한 대로 헌법에는 ‘퇴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난데없는 황실의 소동에 비밀스럽게 미소 짓고 있는 인물은 아베 총리일지도 모른다. 아베 총리의 비원은 외조부인 키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비원이기도 했던 일본헌법의 개정이다. 특히, 교전 포기와 무력보유의 포기를 강조한 헌법 9조를 개정하여 군대를 가지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로 일본을 바꾸고 싶어 한다. 아베 총리는 1993년 정치가가 되었을 때부터, “헌법개정을 위해서 자신은 정치가가 되었다”라고 공언해왔다. 2006년 총리가 되었을 때도, 2012년에 두 번째로 총리직에 올랐을 때에도 ‘헌법개정’을 외쳐댔다. 그런데 일본헌법은 1947년에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69년에 걸쳐 단 한 문자도 개정되지 않고 있다.

헌법개정에는 96조의 규정에 의해 두 가지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로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이며, 두 번째로 국민투표에 의한 과반수 찬성이다. 아베 정권은 2014년 12월 중의원선거에 의해 중의원에서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해 3분의 2 이상을 이미 확보했다. 그리고 올해 7월의 참의원선거에 의해 참의원에서 헌법개정 찬성파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했다. 즉 국회에서의 동의 인원수는 확보한 셈이어서, 다음은 “무엇을 언제 동의할 것인가”라는 단계가 남은 것이다.

천황의 생전퇴위와 아베의 개헌 전략

아무리 국회에서 헌법개정에 동의하여 가결된다 해도,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면 통과되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 국회동의를 얻는 내용은 국민이 반대하지 않을 듯한 것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2년 연말에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총리가 계획한 것은 96조의 변경이었다. 즉, ‘국회의원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고 국민 투표로 과반수를 얻는다’는 규정 자체를 변경하여 헌법 수정의 허들 높이를 낮추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헌법 9조를 바꾸고 싶은 야심이 역력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내부에서 많은 반대를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마침 그런 때에 천황이 생전퇴위의 말을 꺼내준 것이다. 생전퇴위는 헌법에 규정이 없기 때문에, 천황의 의향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라면, 연립 여당을 구성한 공명당이 주장하는 ‘가헌(加憲: 현행의 헌법에 새로운 문장이나 개념을 첨가하는 것)’의 개념과도 일치한다. 가장 좌익적인 공산당에서조차 최근엔 천황제를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전 퇴위를 위한 헌법개정이라면 일본 국민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아사히 신문이 8월 6~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생전 퇴위를 가능케 하는 것에 대해 84%가 “찬성한다”고 답했으며 반대는 5%에 머물렀다. 국민투표가 확정되면, 가결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앞으로 생전퇴위 문제는 어떻게 진전될까? 먼저 가을 임시 국회에서 중의원과 참의원에 헌법 조사회를 설치하고, 천황의 생전퇴위를 인정하기 위한 헌법개정 제도를 갖추어갈 것이다. 그리고 내년 5월 3일 헌법 기념일, 곧 헌법 시행으로부터 70주년이 되는 것을 기회로, 국회에서 헌법개정 동의를 얻고 천황의 생전퇴위 규정을 담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후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통과되면 천황은 바라던 생전퇴위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헌법 9조의 변경이다. 그 때문에 천황의 생전 퇴위에 관한 개헌을 통해 일본 국민의 개헌에 대한 알레르기를 해소한 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헌법 9조의 개정 동의를 발의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8월 8일 천황의 비디오 메시지(누구보다도 평화를 기원하는 천황이 전한 메시지)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전후 70년 넘게 구축해온 평화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609호 (201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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