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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대선 출마 포기한 김종인 전 의원 

“안철수 집권하면 정계 빅뱅… 유승민 보수적통 이으려면 불출마해야”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대기업에 의존해 성장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봉착…두 후보의 정책 공약보다 더 중요한 건 실천 의지와 방법론

▎김종인 전 의원은 인터뷰에서 “대선 당선자는 180석 정도의 탄핵찬성 세력을 중심으로 통합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김종인 전 의원이 1주일 만에 끝내 후보 등록을 못하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의원직까지 내던지며 출마를 강행했지만 역시 현실 정치의 벽은 두꺼웠다. 무엇이 그를 강박했을까? 김종인 같은 인물이 국회에 남아 할 수 있는 일은 차고 넘쳤을 텐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할 때 그런 아쉬움을 전달한 적도 있지만 당시에도 김종인은 “세비만 챙기는 국회의원은 의미 없다”는 말로 기자의 의견을 일축했다. 출마 선언 꼭 1주일 만인 12일 김 전 의원은 입장문을 내어 “통합정부를 구성해 목전에 다가온 국가 위기를 극복해보겠다는 대선 후보로서의 제 노력은 오늘로 멈추겠다”고 밝혔다.

불출마 선언을 한 다음날인 13일 오전 광화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마음의 정리가 완전히 끝난 듯 표정은 담담했다. “한번 털어버리면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내 스타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역시 성격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인가? 정치인으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성정(性情)이다. 인터뷰를 통해서는 “1901년 집권 후 약 8년 동안 자유주의 미국경제의 독점 폐해를 개혁한 테오도어 루스벨트 같은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1년 전 상황이 떠올랐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 대표를 맡아 4·13 총선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총선 이틀 후인 작년 4월 15일, 당시 김종인 대표는 기자와 단독 인터뷰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 할 사람 없으면 저라도 나가겠다”


▎지난해 1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을 사퇴한 문재인 대표(왼쪽)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전민규 기자
경제민주화 철학을 구현할 대통령 후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적당한 사람이 없다면 본인이 직접 나갈 생각도 있나?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 할 때 대권 도전을 생각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에게 50대 나이의 대통령 감을 찾아야 한다고 건의했다. 대통령이 ‘누가 있겠나?’ 묻기에 ‘없으면 저라도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금 다 밝힐 순 없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던 적이 있다. 경제학을 주로 공부했지만 독일 유학 시절에는 선진국 정당정치를 꽤 깊게 연구했다. 국가 최고 리더의 자질과 역할에 대해 공부한 것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이미 한국 최고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봤던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이후에도 여러 명의 대통령,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 정치 지도자와 대화하고 토론했다. 그들의 정책 입안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 주도적인 역할도 직접 해본 경험이 있다. 대통령 공부를 50년 이상 했고,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그는 경제민주화라는 필생의 꿈의 실현이 스스로 집권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총선 이후에도 “킹메이커는 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문재인 전 대표와 거리를 뒀다. 그는 작년 초부터 거론된 여러 대선 후보와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만났지만 끝내 연대나 교감의 상대를 찾지 못했다. 그는 아마도 테오도어 루스벨트 같은 개혁 대통령을 꿈꿨을 것이다.

그의 대선 출마와 포기에 이르는 짧은 여정은 “정치는 역시 세력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한 과정이기도 했다. 유력한 정치 세력이 무능하거나 부패했을 때, 또 시대의 정신을 파악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어떤 대안이 마련될 수 있는가? 오직 선거에만 강한 지도자가 집권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유능한 국가 리더십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 김종인의 등장과 퇴장이 한국 정치에 던지는 질문이다. 바로 그 대목이 김종인으로 하여금 그토록 집요하게 경제민주화와 내각제 개헌을 주장케 한 동력이 된 것 아닐까? 정치를 떠났지만 그가 던진 문제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인터뷰를 통해 대선 정국을 홀연히 떠나는 그의 소회와 심경을 들어봤다.

정치를 이제 그만두는 것인가?

“거창하게 정계은퇴니 그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정치를 꼭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어제(4월 12일)부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2016년 1월 15일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대선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안타깝기는 뭘,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

당에 남아서 문재인 후보가 집권 후 잘못된 길을 갈 때 조언과 함께 견제를 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당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당은 그냥 거수기일 뿐.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제라 하는 것이지.”

더민주에서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높은 벽을 실감한 것인가?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정당을 다 해봤는데, 실질적인 내용면에선 다른 게 별로 없었다. 그 나물에 그 밥.”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없었다면 대선도 5월이 아니고 12월에 치러졌을 것이고, 시간도 충분하게 있어서 지금처럼 급박하게 정국이 요동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대선출마에 차분하게 준비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은 없나?

“아쉬움을 가지면 안 된다. 털어버릴 때 탈탈 털어버리는 게 타고난 성격이다. 성립하지 않는 미래를 가정해서 미련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일단은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다.”

대선 이후 특별한 계획이 있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는 것이다.”

현재의 대선 판세를 어떻게 보나?

“예상 밖으로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양자구도가 형성됐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문재인 대세론이라는 것에 유권자가 냉정하게 반응한 것이고, 각 정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서 국민이 당선 가능한 두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 안철수의 대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니까 안철수에 대한 지지도가 급상승하게 된 것이다.”

최종적인 승자가 누가 될 것이란 예감은 없나?

“그건 나도 궁금하다.”

안철수의 지지율 급등이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안철수가 대선 후보로 이렇게 높은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분석이 나오는 거겠지. 홍준표, 유승민 두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하면 안철수에 대한 지지는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홍준표, 유승민은 안철수 그늘에 가려서 선거 전까지 일어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것인가?

“홍준표, 유승민은 자신들을 보수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보수의 권력을 스스로 죽인 장본인들 아닌가? 그런데 그 텃밭에서 뭐가 더 나올 것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나는 어리석은 환상이라고 본다.”

특히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유승민은 스스로 자신을 보수의 적자(嫡子)라고 생각한다면 대선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

왜 그런가?

“보수를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을 일정부분 져야 하고, 선거에 나와 참패하면 그나마 재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보수 적통을 잇겠다고 생각한다면 출마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

“국회보다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더 크다”


▎지난해 6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국회 개원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장 접견실을 찾아 여야 대표 등과 환담에 앞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결국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중 한 명이 집권하리라 보는 건가? 두 사람이 누가 되든 집권했을 때 무엇을 경계해야 하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탄핵으로 인해 조기선거가 이뤄진 것인데, 탄핵의 배경에 뭐가 깔려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과 막강한 재계의 힘이 한 ‘숙주여인’의 매개를 통해 결합했다. 그것이 이번 탄핵의 배경 아니겠나.”

정경유착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그런 두루뭉술한 표현은 좀 유치하고. 두 후보가 이번 탄핵의 진짜 원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최근 발표된 문재인 후보의 경제공약, 제이노믹스라는 것에 그런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인가?

“국가 재정을 5년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인데, 큰 정부를 만든다는 게 지금은 의미가 없다. 예산을 부풀려 한국경제가 치유된다는 발상 자체가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문제를 경기부양 차원에서 보는 것인가? 다른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 것인가? 이런 점에 대한 판단을 분명히 할 줄 알아야 한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는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경제공약은 어떻게 보나?

“대기업에 의존해 성장하는 것이 한계에 봉착했으니까, 이제는 고용 창출을 많이 할 수 있는 중소기업 중심의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지. 그러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이 없다. 목표만 설정하고 어떻게 달성한다는 방법이 나오질 않으니까.”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이 강한 의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그 주장은 지론인 내각제 개헌과 모순되는 것 아닌가?

“무엇이 모순되나? 총리가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각제 개헌이 된다고 하더라도 경제민주화 의지가 강력한 총리가 나타난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그러니까 각 정당의 뜻을 모아 경제구조를 민주화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지도자의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에 2018년 개헌이 되면 그 이후 의회를 리드할만한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나타날 수 있을까’ 하지 말고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우리가 희망을 해야지. 그래야 나라가 발전을 할 것 아닌가.”

최근 출간한 저서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를 읽었다. 인상 깊게 봤던 것은 기업경영의 자유를 건국정신으로 강조한 미국도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굉장히 광범위한 경제개혁을 이뤄냈다는 대목이다.

“자유주의 경제를 지키기 위해선 누리고 있는 자유를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미국의 선각자적 정치인들은 알고 있었다. 경제 기득권 세력이 양보하지 않으면 자유주의 경제라는 건 성립되지 않는다.”

내각제는 찬성하는 국민이 많지 않은 것이 문제다.

“국회가 불신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진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국회보다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더 크다.”

대선 출마 선언 후 통합정부론을 주창했다.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론과 무엇이 다른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여러 당이 협력을 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를 끌고 가기 힘들다. 대연정은 탄핵세력과도 손잡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인데, 탄핵찬성 세력만 모여도 180석 정도는 될 수가 있다. 그렇게 해서 통합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

자유한국당은 적극적인 정치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뜻인가?

“한국당에도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세력이 30명 정도 있다. 그래서 180석 이상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2018년 지방 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데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금년 말까지 개헌안이 확정돼야 하는데 그게 이뤄질지에 대해선 굉장히 회의적이다.”

안철수 후보는 당선되자마자 청와대 안에 개헌 TF팀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는데.

“개헌은 국회가 하는 것인데 청와대에 개헌 TF팀을 만들 게 뭐 있나. 청와대가 개헌을 논하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는 거다.”

문재인, 안철수 중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개헌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까?

“두 사람 다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안철수는 좀 다르지 않나?

“대통령의 권한만 좀 축소하는 그림이다.”

2018년 개헌 국면 때 역할을 할 여지가 있다고 보나.

“정치를 떠난 사람이 개헌에 대해 무슨 역할을 하나.”

심상정 후보는 개헌보다 선거법 개정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거법 개정하면 정의당 같은 군소정당이 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그런데 선거법을 개정하자고 하면 지금 국회의원들이 개헌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자기 선거구와 관련된 이슈가 튀어나오면 그들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그런 맹점을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한국이 처한 정치경제 상의 여러 문제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아직은 정확하고도 확고한 인식과 신념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 경제가 무수히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궁극적 활력을 잃지 않고 세계적 차원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 경제의 혁신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1901년 집권한 테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뉴욕 주지사 시절부터 독점과 불공정 행위를 일소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집권 직후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한 채 가격 횡포를 부린 ‘스탠더드 오일’에 30개 회사로 강제분할 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미국 담배시장의 95%를 독점했던 ‘아메리칸 토바코’도 16개 회사로 분리시켰다. J.P 모건의 금융 영업 행태에 대해서도 제재 조치를 취했다. 이런 독점기업 해체의 기초 작업이 모두 루스벨트 재임 기간(1901∼1909년)에 이뤄졌다. 이미 100년 전에 말이다. 요즘 정치인들은 나의 경제민주화 신념을 희화화하길 좋아하는데, 우리 경제 현실을 돌아보라. 양극화는 거대 경제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 사진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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