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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문재인 정부 新경제권력 지도 

혁신개혁파 VS 양극화해소파 정책 놓고 견제와 협력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인맥과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인맥이 양대 산맥…혁신에 필요한 노동 유연성 실천 방법 놓고 양측 견해 갈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업가가 혁신을 일으키는 여건 조성을 중시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요즘 시장의 궁금증은 누가 정부의 경제정책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가에 쏠리는 듯하다. 내각의 경제수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딱히 아닌 것 같은데 경제정책은 초고속으로 입안, 발표된다는 느낌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증세, 탈원전 등의 정책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정부는 왜 주요 경제 이슈들을 놓고 노·사·정이 모여 토론하고 양보하는 대타협을 시도하지 않느냐는 푸념도 나온다. 대기업을 눌러 중소기업과 상생케 하는 정책도 좋지만 중소기업이 성장하는 규제 완화나 금융 환경을 만드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더해진다.

시장의 일각에서는 그 책임을 여권 내 운동권,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에게 돌리는 기류도 감지된다. 경제를 자본과 노동, 부자와 빈자 간 대립·경쟁 구도로 읽고 거기서 해법을 찾다 보니 속전속결식 정책에 의존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권을 겨냥한다.

정통 관료 출신으로 정부 경제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기대되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선으로 완전히 물러선 양상이다. 지난 6월 공급 측면의 성장론에 기초한 슘페터식 혁신을 강조한 <경제철학의 전환>을 펴낸 뒤로 미디어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는 이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소득주도 성장론)와 일정한 선을 긋는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이론적 기반은 유효수요 창출을 중시하는 케인스주의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기존 케인스식 경제정책의 일부 수정이다. 근본적 철학의 전환은 아니다. 슘페터식 성장론이 뒷받침돼야 장기적 완성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변 전 실장의 한 지인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관한 변 전 실장의 시각이 그 책에 다 담겨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변양균 사단’의 간판으로 통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목소리가 경제 현장에서 잦아들고 있다. 인사청문회 당시만 해도 김 부총리는 변 전 실장의 공급 혁신 전략을 추구했다. 지금은 청와대가 최저임금 인상, 증세 등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케인스식 경제성장 모델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진보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김진표 의원은 새 정부 들어 국정기획자문위원장으로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선정을 관장했다. 그는 소득주도 성장론, 증세 정책 등에 대해 이“는 특정 개인의 결과물이 아니라 청와대 정책실장·경제수석을 비롯해 대선 캠프에 참여한 1000여 명의 학자가 오랜 기간 연구해서 내린 양극화 및 저성장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연 부총리 또한 그 기조를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실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들만 고달프다. 7월 24일 추경안 설명차 야당을 방문한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들은 쓴소리에 직면했다고 현장에 있던 관계자가 전했다. 조경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자유한국당)과 김세연 바른정당 정책위의장 등 야당 지도부로부터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뀐 건 알겠는데 기재부가 과거 자신들이 한 정책의 전제를 부정하는 등 자기반성문에 가까운 예산을 짠 게 아니냐”는 취지의 호된 핀잔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권 내 변 전 실장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법하다.

대외 발언·활동을 꺼리는 변양균, 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현안을 논의 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가운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변 전 실장은 어디서 뭘 하는 것일까? 그의 비서실은 “당분간은 언론 인터뷰를 사양하고 해외 출장이 잦아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 적다”고 한다. 대외적 발언과 활동을 꺼린다는 해석을 낳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청와대와 내각 인선 과정에서 변 전 실장 인맥은 눈부신 약진을 거듭했다. 김 부총리를 비롯해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반장식 일자리수석, 이 정도 총무비서관을 관가에선 변 전 실장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했다. 김 부총리는 2005년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전략기획관을 역임했다. 당시 그는 노무현 정부의 중장기 복지정책인 ‘비전2030’을 만들었다. 경제기획원 출신인 반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변 전 실장과 호흡을 맞추는 등 인연이 깊다. 홍 국무조정실장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그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다. 이 비서관도 노무현 정부 시절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장관의 비서로 일했고, 노무현 정권 말기 변 전 실장이 스캔들에 시달렸을 때도 끝까지 그와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당시 ‘문고리 3인방’이 차지했던 총무비서관직에 새 정권 출범 다음날인 5월 11일 측근 인사가 발탁되면서 변 전 실장은 여권의 ‘숨은 실세’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선 변 전 실장과 함께 장하성 라인이 양강 구도를 형성한다는 분석이 나돌았다. 재벌개혁론자로 알려진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각각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되면서다.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장 실장이 추천한 인물로 문재인 대통령이 소개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최수규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도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인연으로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 출신인 장 실장 사람으로 분류된다.

최근 들어 ‘변양균 실세론’에 대한 믿음이 약간씩 흔들린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변 전 실장이 여권 내 파워게임에서 밀려났다는 얘기마저 나돌았다. 바른정당 정책위 하현철 수석전문위원은 “진보 진영에서 볼 때 변 전 실장의 경제철학은 노동 유연성 제고의 측면에서 민주당보다는 오히려 바른정당에 더 가까운 걸로 보일 것”이라고 평했다. 하 전문위원은 “그 변곡점은 바로 노동문제”라고 지목했다.

변 전 실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가도 함께 누려야 한다는 ‘노동의 쌍방 자유’를 강조했다. 기업가를 위한 ‘노동의 자유’와 노동자를 위한 ‘노동의 자유’를 동시에 강화하자고 했다. 기업가를 위한 노동의 자유는 이를테면 정규직 고용 경직성 완화, 비정규직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파견직의 네거티브 방식 규제 등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식이다. 이와 함께 노동자를 위한 ‘노동의 자유’는 노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의 자유를 노동자에게 주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실업 상태의 국민에게 국가는 기본 수요를 충족해 줘야 한다. 예컨대 주택·교육·의료·안전에 드는 비용을 대폭 낮추거나 정부가 지원해주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홀가분하게 실직 상태로 지낼 수 있다.

변 전 실장은 이처럼 기업과 노동자 양쪽의 노동의 자유가 개선돼야 슘페터식 공급 혁신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노동 유연성이 제고되면 일시적으로는 실업이 증가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일자리가 늘고,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이중구조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노동 유연성에 앞서 필요한 게 노동 안정성”


▎노무현 정부 시절 변양균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청와대에서 얘기하고 있다.
정부는 변 전 실장이 제안한 ‘노동의 쌍방 자유’ 중 현재까지는 일방의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 통신비 인하, 부동산 규제, 의료보험 급여 확대 정책은 노동자의 소득은 올리고 일상의 지출은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기업가의 혁신에 필요한 노동의 자유는 사실상 고용의 자유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 해고가 엄격하지 않아야 하고 비정규직 활용 범위도 확대돼야 한다. 노동계를 비롯한 진보 진영이 달가워할 리 없고,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부담스러운 의제들이다.

제이(J)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는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도 최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변 전 실장과는 노동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변 전 실장의 슘페터식 혁신성장 전략이 J노믹스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만 노동문제에서는 청와대 정책라인과 궤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김 보좌관은 “변 전 실장은 노동 유연성을 노동개혁의 요체로 보고 슘페터적 혁신의 중요한 축으로 보는데 나도 공감한다”면서도 “그걸(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이지만 순서에서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김 보좌관이 언급한 순서에서 다르다는 것은 ‘기업가를 위한 노동의 자유’와 ‘노동자를 위한 노동의 자유’의 우선 순위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말로 해석된다. 즉 현 정부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의 자유에 방점을 찍는데 반해 반 전 실장은 양쪽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 견해차는 당분간 쉽게 좁혀지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김 보좌관은 “노동 유연성에 앞서 필요한 게 노동 안정성”이라며 문제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흔히 고용이 비탄력적이고 고정화돼서 해고도 자유롭게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노동의 유연화를 주장한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노동은 너무나 유연화돼 있다. 언론계만 하더라도 법정 정년을 다 채우는 직원들이 얼마나 될까? 규모가 작은 일반 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유연화(Flexibility)도 필요하지만 안정화(Security)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를 유연안전성(Flexsecurity) 모델로 부른다. 노르딕 모델의 핵심이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안정성, 특히 저소득층의 안정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게 어느 정도 이뤄지면 고소득층·전문가 집단의 노동 유연화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김 보좌관은 덧붙였다. “변 전 실장과 우리는 이 순서만 다른 것이다.”

변 전 실장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창출하려면 노동에 대한 기업가의 자유로운 결합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는 보수 진영의 시각과도 일부 겹친다. 한국현대정치경제사를 연구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경제는 대기업 독점체제일 뿐만 아니라 대기업 노조의 독점체제이기도 하다”면서 “대기업 노조가 진보적 가치에 충실하자면 자기 희생을 통해 중소기업 노조의 급여를 올려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내 진보성향 학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2012년,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일한 여권의 경제 전문가는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노동의 자유를 주자는 말은 취지는 좋아도 양쪽 다 만족할 수는 없는 구상”이라면서 “노동 유연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노동개혁은 친(親)노동 쪽인 개혁으로 기우는 게 여권의 기류”라고 전했다. 노사정위원장 후보군에 노조 출신 인사가 유력하게 포함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당·청의 주류적 흐름은 불평등·격차 해소


▎8월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노동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문 대통령은 노동권 자체에 대한 존중이 워낙 강한 분”이라며 “노동권은 신성한 권리이므로 규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대기업·공공부문 노조의 비대한 권한과 위상 조정 문제는 향후 노사정위원회에서 설득 논리를 만들겠지만 기본적으로 기업이 바라는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직 확대 등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범주와 순위 설정을 놓고 여권의 정책 줄기가 갈리는 양상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여권에서는 ‘혁신개혁파’와 ‘양극화해소파’가 경제정책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는 새로운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추구하는 핵심 가치가 다르다. 혁신개혁파는 노동·토지·자본 등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결합을 방해하는 기득권적 요인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보는 그룹을 말한다. 변 전 실장의 슘페터식 성장 혁신론자들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양극화해소파는 성장의 과실을 다수 국민에게 공정하게 배분해 사회 계층 간 경제력 격차를 해소하자는 그룹이 중심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해서 양극화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이 주장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하다. 당연히 노동자 다수의 권익 강화에 치중하는 양극화해소파는 당·청의 주류적 흐름을 대변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내 양극화해소파의 수장은 장하성 실장으로 대별되지만 여권 전반으로 넓혀보면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경북대 명예교수) 계열이 주력군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여권 내부 기류에 밝은 한 정책통은 “김동연 부총리 등 앞서 언급된 변 전 실장의 당·청 인맥 외에도 청와대 정책실 산하 비서관·행정관 상당수가 혁신개혁파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로 정부에서 청와대 일자리수석실 등 경제 관련 수석실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혁신개혁파의 기반을 이룬다는 것이다.

양극화해소파의 경우 대표적 재벌개혁론자인 장하성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김수현 사회수석, 홍장표 경제수석, 황덕순 고용노동비서관 등이 격차 해소와 불평등 완화를 추진하는 주역으로 언급된다. 앞서의 정책통은 “김수현·홍장표 수석은 이정우 전 실장과 가까워 그쪽 라인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상층부를 차지하는 양극화해소파가 정권 초기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행사하리라는 추측이 가능한 배경이다. 실제 미시적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반면, 상당 기간 변 전 실장의 영향력이 여권 경제라인에 두루 미치리라는 견해도 있다. 대선 당시 문 대통령과 교감한 한 인사는 “변 전 실장은 청와대에 간 누구보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동지적 관계로 보였다”고 피력했다. 지금도 그가 공직에 전혀 뜻이 없어 외곽에 머물 뿐 여권 내 파워게임에서 밀리거나 한 건 전혀 아닌 것으로 평했다. 그는 “변 전 실장은 결국엔 정부 경제정책이 자신의 철학으로 수렴될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향후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들 두 그룹 간 견제와 협력이 빚어낼 이정표를 따라 펼쳐질 공산이 커 보인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709호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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